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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박은정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평점 :

이 책은 제2차 세계대전(소련 입장에서 대조국전쟁)에 참전했던 소련과 그 연방의 여자 병사들의 이야기다.
나는 이 책을 앉은 자리에서 내리 읽었다. 때로는 탄식하면서 때로는 눈물을 글썽이면서. 전쟁에 참전한 여자들의 목소리와 그녀들의 슬픈 역사를 접하며 내 가슴이 뻥 뚫리듯이 아려 왔다.
가슴이 아린 이유는 두 가지를 들 수 있겠다. 하나는 전쟁을 통해 여자들이, 아니 인류가 겪었을 고통과 슬픔이 고스란히 전해져 왔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에게도 이런 역사가 있었음에도 재평가 받지 못하는 데 대한 아쉬움이 컸기 때문이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그녀는 지난 8일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1948년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나 벨로루시에서 저널리스트로 활약하고 있다. 알렉시예비치는 ‘소설-코러스’라고 부르는 장르, 일명 ‘목소리 소설’을 창시했다.
그녀는 2차 대전에 참전한 수백 명의 여자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인터뷰하고 녹취했다. 수천 미터에 이르는 녹음 테이프를 기록하고 헤아릴 수 없는 앨범과 훈장 그리고 무공 증명서들을 분석했다.
알렉시예비치는 “모든 것은 문학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녀는 자신의 글을 통해 이를 입증했다. 그녀가 가슴으로 옮긴 말과 감정은 그 어떤 전후 문학 보다 더 심금을 울린다.
갓 10대의 나이에 참전한 그녀들은 인터뷰 당시 노년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려 40년간이나 말하지 못했던 수많은 사연들, 그리고 감정들. 전쟁을 통해 남자들은 지식을 쌓고, 여자들은 감정을 쌓는다고 했다. 알렉시예비치는 전쟁과 4년 여를 함께 하면서 여자들에게 층층이 스며들었던 이야기들을 호소력 있고 생생하게 복원했다.
여자들은 남자와 다름 없이 자동소총을 쏘고, 폭탄을 터트리고, 전투기를 몰고 나치와 싸웠다. 통신병이나 간호병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나는 이 책을 통해 그녀들의 애환을 새로이 깨닫게 되었다. 여자들이 신체적 특성(생리나 체력부족 등) 때문에 힘들어하고, 전장 속에서도 여자다움(원피스나 구두를 신고 거울을 본다든지, 자수를 놓는)을 찾으려는 노력은 각별해 보였다.
특히 승전 후 고향에 돌아가 안 좋은 소문이 퍼질까봐 참전을 비밀에 붙였다는 일화는 편견의 벽을 실감하게 해준다.
“길은 오로지 하나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 그리고 사랑으로 사람을 이해하는 것.” - 26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