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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색의 세계사 - 새로 쓴 제3세계 인민의 역사
비자이 프라샤드 지음, 박소현 옮김 / 뿌리와이파리 / 2015년 9월
평점 :
절판

세계를 3개로 처음 구분한 것은 1952년 프랑스 레지스탕스 출신 지식인 알프레드 소비였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세계는 미국과 서유럽을 중심으로 한 제1세계와 소련과 동구권을 중심으로 한 제2세계로 나뉘어졌다. 이때 미·소 냉전에 가담하지 않고 중립을 표명한 개발도상국들을 일컬어 ‘제3세계’라고 불렀다. ‘제3세계’란 말이 처음 쓰인 것은 1952년 12월 아시아-아랍 12개국 회의에서였다.
한편 1991년 소련이 해체되고 제2세계가 몰락하자, ‘제3세계’는 남북 문제 등 경제적 의미를 띄어 현재 개발도상국과 같은 개념으로 사용된다.
인도 출신 역사학자 비자이 프라샤드는 이 책에서 ‘제3세계’라는 단어를 새롭게 해석하고 재발굴하자고 주장한다. 그는 192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제3세계 프로젝트의 흥망을 추적하면서 그간 진행됐던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려는 역사적 궤적을 발굴, 재평가를 시도한다.
책명 '갈색의 세계사'가 의미하는 바는 갈색, 즉 유색 인종(황인종)의 시각에서 쓴 세계사를 말한다.
저자에 따르면 ‘제3세계’는 특정 지역을 일컫는 지리적 개념이 아니라 “인민의 희망을 담아낼 사상과 그 희망을 실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구들을 아우르는 프로젝트였다.” 또한 “제3세계 프로젝트의 역사는 순전한 영웅과 악당이 등장하는 서사가 아니라 울퉁불퉁한 진실”이었고, 끝내 “실패한 투쟁의 역사”이기도 하다.
가령 2차 대전 직후 수많은 신생 독립국들이 생겨났지만 식민지배가 남긴 한계를 극복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들은 “투쟁의 열기로 만들어진 신생국들은 사회관계를 효과적으로 재조직하지도, 남겨진 식민지형 국가구조를 분쇄하지도 못했다. 구사회계급과 손잡고 식민지 관료제 구조를 받아들이면서 제3세계 의제를 무너뜨렸다.”
우리나라만 해도 일제가 남긴 정치구조와 관료제 등 지배체계가 대부분 그대로 이어졌고, 적산 자본이 민족 자본을 잠식, 거대자본으로 성장해왔다.
제2차 대전 이후 세계 경제는 근 30년간의 대호황을 맞았으나 1973년 오일 쇼크 이후 위기에 직면했다. 이후 세계자본주의는 신자유주의라는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고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시키기 위해 제3세계에 대한 압박을 가속해 왔다.
저자의 관점 중 독특한 것은 제3세계의 의제를 실현하려는 노력이 있던 시절 세계는 나아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자본주의도 사회주의도 아닌 제3의 대안 같은 것일까? 생물은 종(種)는 다양성의 유지될 때 번성하는 법이다. 정치도 경제도 다양성이 공존할 때 활기를 띌 수 있으며 번영할 구가한다. 나는 저자의 시각을 이런 의미로 받아들였다.
종의 다양성이 사라지면 결국 그 종은 멸종을 향해 치닫을 것이다. 제3세계의 이상과 의제가 사라진 세계는 점점 황폐해져가고 있다. 그렇다면 새로운 길은 없는 것일까?
저자의 평가는 희망적이다. 그는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대중 운동들이 미래의 새로운 의제를 창조하고 부각시킬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날이 오면 ‘제3세계’는 (새로운) 후계자를 찾게 될 것”이다.
사실 제3세계는 1952년 처음 거론된 이래 1954년 인도 네루와 중국 저우언라이의 평화 5원칙선언과 1955년 4월 반둥회의를 거치면서 출범했다. 이렇듯 인도는 제3세계의 정체성과 비전을 제창한 주도국이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인도 출신의 저자가 제3세계에 관한 역사와 평가를 정리한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