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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분 지나고까지 ㅣ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10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5년 8월
평점 :

"춘분이 지나고까지'라는 제목은 소세키가 "새해 첫날부터 시작해서 춘분 지나고까지 쓸 예정이라 그냥 그렇게 붙인 것"이다. 그는 1910년 이즈 슈젠지 온천에서 위궤양으로 요양하던 중에 다량의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그 후 몇 달 간 안정을 취하며 글쓰는 것을 멈추었다.
소세키는 1912년 1월 1일부터 이 작품을 아사히 신문에 연재하기 시작했다. 그는 각각의 단편을 쓴 뒤에 그 단편들이 합쳐져 하나의 장편이 되도록 구성하려 했다. 이 발상은 그가 좋아했던 작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작품 《신 아라비안나이트》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라 한다.
작가의 글을 보면 이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기조를 엿볼 수 있다.
"평범한 실제 세상에서 우리가 계획한 일이 뜻밖의 장애에 부딪혀 예상대로 진행되지 못하는 것과 같다. 따라서 이는 계속 써나가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전적으로 미래에 속하는 문제일지도 모른다." - 18쪽
이 책에는 모두 여섯 편의 단편이 담겨 있다. '목욕탕에 다녀온 후'는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구하고 있는 청년 게이타로의 이야기이다. "평범함을 싫어하는 로맨틱한 청년"인 게이타로는 경시청의 탐정이 되고 싶어 한다. "세상의 표면에서 밑으로 기어드는 사회의 잠수부 같은 존재"이고 "인간의 불가사의함을 포착하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정거장'은 게이타로가 실제로 탐정 비슷한 일을 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보고'는 그가 관찰했던 그녀의 진실이 밝혀지고 있어 탐정소설 같은 느낌을 준다.
'비오는 날'에서 소세키는 개인사적 비극을 그리고 있다. 글쓰기를 통해 신경쇠약을 치유하고자 했던 소세키는 소설을 공양하며 딸의 넋을 위로했다. '스나가의 이야기'는 자의식 강하고 내성적인 남자 '스나가'와 자유롭고 적극적인 여자, 이모부의 딸 '지요코' 사이의 묘한 감정을 다루고 있다.
'마쓰모토 이야기'는 마쓰모토가 화자가 되어 스나가가 비뚤어진 이유, 스나가가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으나 차마 인정할 수는 없었던 비밀을 이야기한다.
이 모든 이야기들은 게이타로의 모험에서 시작되고 끝난다. 소세키는 작품의 맨 뒤 '결말'에서 게이타로와 여섯 편의 이야기에 담긴 연결 고리를 독자에게 들려준다. 가령 게이타로는 모리모토의 입을 통해 방랑 생활의 단편을 들었고, 다구치라는 실무가의 입을 통해 그가 사회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조금 알게 되었다는 식이다.
우리는 게이타로가 들은 '세상'의 일을 관음적으로 지켜본다. 게이타로는 결국 자신이 들은 세상의 일, 그 안에 들어갈 수 없었다. 작가는 게이타로에게는 그것이 어딘가 부족한 점이고 동시에 다행스러운 점이라고 해설한다. 무언가가 게이타로를 움직이는가 싶더니 갑작스럽게 끝나게 했다. 시작과 끝, 이 극이 우리의 삶에서 어떻게 변화하며 흘러갈 것인지 생각해봐야 할 화두다.
말하고자 하는 것과 말하는 것 사이, 쓰고자 하는 것과 쓰는 것 사이에 늘 분리와 공백이 존재한다. 알듯 모를 듯, 일듯 아닐 듯 그렇게 사랑은 흘러가고 인생은 지나간다. 그렇게 우리는 현재 가진 것에 집착하고, 찰나의 감정을, 영원한 욕망을 움켜쥐려고 '분투'한다.
어쩌면 우리의 삶은 우리의 뜻대로 될듯 말듯하다. 아, 어렵다. 게다가 오묘조묘하다.
정혜윤 PD는 이 작품을 읽고 그녀의 독특한 해석을 던진다. "(이 작품은) 지금 우리의 눈이 빛을 찾고 있다면 반드시 어둠을 포용해야 한다고.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어둠이 빛이 될 수 있다고. 어둠도 빛이라고. 그렇게 태어날 수 있다고. (말한다)" 역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