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암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14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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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나쓰메 소세키가 마저 쓰지 못하고 마친 유고 작이다. 1916년 5월부터 아사히 신문에 연재되기 시작해서 그해 12월 14일 제188회를 마지막으로 연재가 중단되었다. 나쓰메 소세키는 위궤양이 악화되어 내출혈로 1916년 12월 9일 사망했다.

그가 작가로 데뷔한 때는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호토토기스》에 발표한 1905년이었다. 이때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고작 10여 년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는 국민 작가의 반열에 올랐고 일본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가 되었다.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에는 일관된 흐름이 하나 있다. 바로 인간에 대한 심오한 관조다. 작가가 활동하던 시기는 일본이 청일 전쟁과 러일 전쟁에서 승리하고, 군국주의의 야망을 이루기 위해 부산하기 이를 데 없던 때였다. 게다가 새로운 서양 문물이 쓰나미 처럼 쏟아져 정신적으로도 혼란을 겪던 때이기도 하다.

작가의 눈은 결코 현실에서 떠날 수 없는 법. 나쓰메 소세키 역시 20세기 초 사회의 격변을 냉철하게 지켜보았을 것이다. 그 속에서 작가는 사람들이 신식 문물에 떠밀려 잃어버린 것들이 무엇인지, 사람이라면 응당 찾아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성찰하고 고민했으리라.

‘명암’(明暗)은 밝음과 어두움의 이중적인 반어를 지닌 말이다. 사람 관계에서 ‘명암’이라면 누구를 좋아하기도 하고, 누구를 싫어하기도 하는 것이다. 같은 사람이라도 어떤 때는 좋아졌다가 어떤 때는 싫어지는 것이다. 이 작품은 이에 대한 이야기다.

쓰다와 오노부는 요시카와 부인의 중매로 만나 결혼한 지 채 1년이 지나지 않은 신혼 부부. 부부 사이의 감정은 주위 상황과 주변 사람들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우선 돈 문제다. 그 다음은 사랑이다. 돈과 사랑에 관련된 다양한 사람들의 반응이 흥미롭게 전개된다. 부부를 둘러싸고 시누이 오히데, 쓰다의 친구 고바야시, 쓰다의 옛 애인 기요코, 기요코를 소개해 준 요시카와 부인 등 인물들 사이의 긴장 관계가 주요 골자다.

쓰다는 옛 애인 기요코에 대한 향수가 있다. 기요코가 온천에서 요양 중이라는 소식을 전해 듣지만 망설인다. 오노부는 이런 쓰다를 두고 ‘자존심은 단순한 허세’(425)라며 만나볼 것을 종용한다.

하지만 오노부 역시 자존심이 세다. 돈이 궁함에도 불구하고 오카모토 고모 댁에 차마 이야기할 수 없는 것도 바로 자존심 때문이다. 작가는 사람 관계의 명암은 자존심에 달려 있고, 그 자존심은 허세라고 오노부의 입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오노부와 오히데의 관계를 보면 사람의 평가에 대한 선와 악의 문제를 보여준다.

현암사에서 나쓰메 소세키의 전집을 펴내기 시작한 것은 2013년 9월이었다. 이 『명암』이 14권에 이르는 전집의 마지막 권이다. 그 사이 3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났다. 한 나라를 이해하는 데는 그 나라의 문화를 접하는 것이 지름길이다. 우리와 일본과는 가깝고도 먼, 애증(愛憎)의 관계다. 이런 맥락에서 일본 최고의 국민 작가 나쓰메 소세키의 전집이 간행된 것은 의미심장하다.

어려운 출판 시장 여건에도 불구하고 이번 전집을 펴낸 현암사의 수고에 뜨거운 축하 박수를 보낸다.  마침 올해는 나쓰메 소세키가 타계한 지 꼭 백 주년이 되는 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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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트 아미 - 제2차 세계대전 일급비밀부대 이야기
릭 바이어.엘리자베스 세일스 지음, 노시내 옮김 / 마티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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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트 아미(ghost army), 유령 군대. 이 책은 제2차 세계 대전 때 실존했던 특수 부대, '고스트 아미는'의 활약성을 그렸다. 때는 1944년 6월, 노르망디 상륙작전 개시일로부터 몇 주 후였다. 미군은 1100명 규모의 특수 부대, 23부대를 유럽에 급파했다. 이들은 화가, 디자이너, 엔지니어들이었다.

 

작전은 단 하나. 적과 아군을 깜쪽같이 속이는 것이었다. 군 최고 수뇌부만 아는 그들은 말 그대로 유령처럼 움직였다. 이들은 전장에서 '기만'을 위한 전술, 가히 아트 수준의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가령 공기 주입식 모조 탱크와 수송 트럭을 만들고, 불도저로 전차 바퀴 자국을 내며, 거대한 스피커로 대부대가 이동하거나 주둔하는 것처럼 위장했다. 엉터리 정보를 담은 모스 부호를 날리기도 했다.

 

▲고스트 아미 부대원들이 모조 공기주입식 탱크를 번쩍 들어 올리고 있다.

 

작전에 관한 정보가 노출되면 적들도 미리 대비하기 마련이다. 작전의 성패 여부를 떠나 막대한 희생이 따르기 쉽다. 이들이 발휘한 기지 덕분으로 작전을 성공적으로 이끌었을 뿐만 아니라, 막대한 희생을 줄일 수 있었다.

 

저자들이 소개한 활약산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라인강 도하 작전이었다. 고스트 아미에게 1945년 독일로 진격하던 미9군 제30보병사단과 제79보병사단이 실제 공격 지점보다 남쪽으로 16㎞ 아래에서 도강 공격을 하는 것처럼 위장하는 임무가 주어졌다.

 

이들은 모조 탱크와 군용차 200대를 동원하여 마치 두 사단이 실제 도강을 하는 것처럼 기만술을 펼쳤다. 독일군이 엉뚱한 곳에 화력을 집중한 덕분에 실제 두 사단이 라인강을 돌파하면서 발생한 사망자는 31명에 그쳤다. 사실 노르망디 작전이 하나의 거대한 기만술의 승리였다. 독일군은 연합군의 상륙 작전이 임박했음을 눈치챘으나, 칼레에 집결한 위장 함대에 속아넘어갔다.

 

저자 릭 바이어·엘리자베스 세일스는 1996년 50년 만에 기밀해제된 '고스트 아미'에 관한 방대한 기록과 문서를 찾아 정리했다. 고스트 아미 출신 병사들과의 인터뷰, 편지, 일기와 회고록까지 꼼꼼하게 살폈다. 당초 릭 바이어는 '고스트 아미'란 동명의 다큐멘터리로 이들을 조명하면서 '고스트 아미'의 존재가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독자는 이 책을 통해 색다른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겠다. 우선 잘 알려져 있지 않던 제2차 세계 대전의 비사(秘史)를 읽는 재미가 솔솔하다. 이어 예술적 재능으로 뭉친 병사들이 그린 수채화와 드로잉 을 감상하는 맛이다. 가령 추상주의 화가 엘즈워스 켈리, 패션 디자이너 빌 블라스, 야생동물 화가 아서 싱어, 사진작가 아트 케인 등이 모두 고스트 아미 출신이었다.

 

살다보면 정공법보다 우회 전략이 더 먹힐 때가 있는 법이다. 삶이 곧 전쟁터라고 했든가. 넘어서야 할 상대가 있다면 정면 대결보다는 에둘러 가거나 그럴 듯하게 위장하는 것도 하나의 비책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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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05 03:3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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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눈팔기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13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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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눈팔기〉는 나쓰메 소세키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완결한 작품이다. 1915년 6~9월 아사히 신문에 연재되었던 것으로 시대의 배경은 1904년 무렵이다.

이 작품은 작가의 자전 소설로 널리 알려져 있다. 주인공 겐조의 삶은 나쓰메 자신과 거의 일치한다. 가령 영국 유학을 마친 후 대학 강사로 활동한 점, 유년기에 양부에게 수양아들로 보내졌다 본가로 되돌아왔다는 점, 자주 감기에 걸려 기침을 한 점(폐병의 전조같이)이나 천연두를 앓은 점, 작품에 등장하는 누나와 형 등 가족 관계 역시 그대로 빼닮았다.

그래서 당시 나쓰메와 그 일가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상상해볼 수 있다. 물론 나쓰메 작가의 시점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1904년 무렵이면 청일 전쟁의 승전 이후 러일 전쟁을 앞둔 때다. 일본은 청이라는 대국을 물리쳤으니 그 분위기가 가히 대단했을 것이다. 환희와 승리에 대한 도취... 작가의 시선은 오히려 한발짝 물러나 있다.

가령 겐조를 두고 "습속을 중시하기 위해 학문을 한 듯한 나쁜 결과에 빠지고도 그것을 깨닫지 못했던 그에게는 아무튼 자신의 분별없는 짓을 식견이라 자랑하고 싶어 하는 나쁜 버릇이 있었다."(107쪽)라고 한다든지, "그는 살아 있는 동안 뭔가 해내야 한다고, 또 해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67쪽)한다고 묘사한 대목은 자신의 술회일지도 모른다.

겐조는 신경질적인 우직한 성격, 생계를 위한 일에 허비하는 시간과 노력을 아까와한다. 이것이 또 신경쇠약의 원인이 되기 마련이다. 나쓰메도 그러했듯이.

작가는 영국 유학을 통해서 유럽 문명의 발흥을 직접 목격하고 왔다. 막 일본은 시작이었다. 그의 눈에 과연 일본은 험난한 열강들의 각국장에서 잘 헤쳐 나갈 수 있을까? 긍정적이지도 비관적이지도 않다. 관조자의 자세다. 다만 얽힌 실타래같이 잘 풀어내야 할 역사의 전조랄까.

작가는 겐조와 누나(나쓰)와 형(조타로), 그리고 양부(시마다)와의 관계를 "모든 것이 퇴폐의 그림자이고 조락의 빛인 가운데 피와 살과 역사가 뒤얽힌" 관계라고 묘사한다. 청을 이겼다고 들뜨지 말고 차분히 대국의 기본과 밑거름을 닦는 것이 중요하다는 항변일지 모른다.

이야기 서사는 '돈'과 관련되어 있다. 겐조와 일가, 양부와 장인과의 관계는 돈을 빌리고 꾸어주는 것이다. '돈'은 곧 부국강병의 상징이다. 전쟁을 준비하고 치르는 과정에서 물자와 돈에 대한 요구는 넘쳐난다. 하지만 작가의 눈에는 물질적 요구는 결국 사람 사이의 정신과 관계를 피폐하게 만드는 악으로 보인다. "물질적 요구에 응하려고 마련한 그 돈은 두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정신적 요구를 채우는 방편으로서는 오히려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66쪽)

소설가 정이현의 평이 가슴에 와 닿는다. 겐조의 삶은 "시종일관 몹시도 현실적인 세속의 일들에 압박당하고 그 과정에서 느끼는 중압감은 스스로를 '특별한 존재'가 아닌 한갓 '길가의 풀 한 포기'라고 자조하게" 만든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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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진정한 이름은 무엇인가 우리 시대의 주변 횡단 총서 7
오카 마리 지음, 이재봉.사이키 가쓰히로 옮김 / 현암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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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오카 마리는 1986년 홀로 예루살렘을 방문했을 때의 경험을 들려주며 시작한다. 당시 그녀는 작은 숙소에 머물게 되었다. 안내받은 방에는 팔레스타인 여성이 혼자 살고 있었다. 팔레스타인 여성은 오카에게 저녁을 같이 먹자고 했다. 피곤했던 오카는 그녀의 호위를 거절했다.

십 수 년이 지나 오카는 그녀의 호위를 거절한 것을 후회했다. 진정한 의미에서 그녀를 만나지 못했다는 생각이 미쳤고, 만나지 못해 자신이 놓쳐 버린 것이 무엇인지 반추한다.
일종의 트라우마 같은 경험이라고 고백한다.

이후 저자는 제3세계 페미니즘의 문제를 탐색하면서 아랍의 여성들뿐만 아니라 미국의 아프리카계 흑인 여성들이나 한국의 위안부 여성들에게 지속적인 관심을 보인다.
그녀가 다루는 '제3세계'의 범주는 백인이 아닌 유색인, 피식민자, 소수자, 프롤레타리아 등을 가리키는 말이며 따라서 '제3세계'는 어느 사회에나 존재할 수 있다.

저자는 '페미니즘 대 이슬람', '보편적 인권주의 대 문화상대주의'라는 이분법은 문제의 본질을 은폐하기 위한 중립성, 객관성을 가장한 장치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 물음에 답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하면서 문제는 이항대립적인 논의를 생겨나게 하는 담론의 토포스(타자를 표상함으로써 그것을 지배하고 싶은 욕망이 생겨나는 토포스)야말로 우리가 문제 삼아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제3세계'를 희생자로 간주하는 시선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해방시켜, '제3세계'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에 따르면 이를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제3세계 여성들의 말과 온갖 표상을 알아듣는 진정한 귀다. 그녀들의 진정한 이름을 알기 위해서는 바로 여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것.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진정으로 그녀들의 말을 알아듣고 그녀들의 아픔을 공감하고 함께 나누는(분유) 것이고, 그녀들의 요청이나 부름에 언제나 응답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들을 대리 표상하려는 욕망에서 벗어나 그녀들의 상황과 표상을 수동적인 주체의 입장에서 다른 사람에게 전해야(목격-증인) 한다. 그리하여 언제나 그녀들과 진정으로 함께 만날 수 있어야 하는 것(공진)이 우리게 부여된 의무이다." - 옮긴이 후기 중에서 (331쪽)

 

오랜 기간 이 문제에 천착해 온 저자의 세련된 서술은 중립적인 시각에서 '그녀의 진정한 이름'을 알아야겠다는 자각을 일깨운다. 이 책은 서양의 시각에서 강요된 제3세계의 페미니즘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해준다. 책을 읽는 것은 기존의 사고를 되집어 보고 새로이 다듬는 성찰의 길이라는 것을 다시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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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족 2016-08-31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티셔츠에서 촉발된 메갈리아 논쟁 한 가운데서 계속 하고 싶을 말들을 정리하지 못해서 어지러운 중이었어요. 아무도 내게 묻지 않으니, 대답할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무언가 말하고 싶었던 게 있거든요. 그게 뭔지 알았어요. 그러니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그 질문에 대답하지마!!!질문이 잘못된 거야,였나봐요.

사랑지기 2016-09-01 08:38   좋아요 0 | URL
네 님의 답변도 좋은 착상이에요~ 잘못된 질문에는 대답할 필요가 없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