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눈팔기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13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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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눈팔기〉는 나쓰메 소세키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완결한 작품이다. 1915년 6~9월 아사히 신문에 연재되었던 것으로 시대의 배경은 1904년 무렵이다.

이 작품은 작가의 자전 소설로 널리 알려져 있다. 주인공 겐조의 삶은 나쓰메 자신과 거의 일치한다. 가령 영국 유학을 마친 후 대학 강사로 활동한 점, 유년기에 양부에게 수양아들로 보내졌다 본가로 되돌아왔다는 점, 자주 감기에 걸려 기침을 한 점(폐병의 전조같이)이나 천연두를 앓은 점, 작품에 등장하는 누나와 형 등 가족 관계 역시 그대로 빼닮았다.

그래서 당시 나쓰메와 그 일가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상상해볼 수 있다. 물론 나쓰메 작가의 시점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1904년 무렵이면 청일 전쟁의 승전 이후 러일 전쟁을 앞둔 때다. 일본은 청이라는 대국을 물리쳤으니 그 분위기가 가히 대단했을 것이다. 환희와 승리에 대한 도취... 작가의 시선은 오히려 한발짝 물러나 있다.

가령 겐조를 두고 "습속을 중시하기 위해 학문을 한 듯한 나쁜 결과에 빠지고도 그것을 깨닫지 못했던 그에게는 아무튼 자신의 분별없는 짓을 식견이라 자랑하고 싶어 하는 나쁜 버릇이 있었다."(107쪽)라고 한다든지, "그는 살아 있는 동안 뭔가 해내야 한다고, 또 해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67쪽)한다고 묘사한 대목은 자신의 술회일지도 모른다.

겐조는 신경질적인 우직한 성격, 생계를 위한 일에 허비하는 시간과 노력을 아까와한다. 이것이 또 신경쇠약의 원인이 되기 마련이다. 나쓰메도 그러했듯이.

작가는 영국 유학을 통해서 유럽 문명의 발흥을 직접 목격하고 왔다. 막 일본은 시작이었다. 그의 눈에 과연 일본은 험난한 열강들의 각국장에서 잘 헤쳐 나갈 수 있을까? 긍정적이지도 비관적이지도 않다. 관조자의 자세다. 다만 얽힌 실타래같이 잘 풀어내야 할 역사의 전조랄까.

작가는 겐조와 누나(나쓰)와 형(조타로), 그리고 양부(시마다)와의 관계를 "모든 것이 퇴폐의 그림자이고 조락의 빛인 가운데 피와 살과 역사가 뒤얽힌" 관계라고 묘사한다. 청을 이겼다고 들뜨지 말고 차분히 대국의 기본과 밑거름을 닦는 것이 중요하다는 항변일지 모른다.

이야기 서사는 '돈'과 관련되어 있다. 겐조와 일가, 양부와 장인과의 관계는 돈을 빌리고 꾸어주는 것이다. '돈'은 곧 부국강병의 상징이다. 전쟁을 준비하고 치르는 과정에서 물자와 돈에 대한 요구는 넘쳐난다. 하지만 작가의 눈에는 물질적 요구는 결국 사람 사이의 정신과 관계를 피폐하게 만드는 악으로 보인다. "물질적 요구에 응하려고 마련한 그 돈은 두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정신적 요구를 채우는 방편으로서는 오히려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66쪽)

소설가 정이현의 평이 가슴에 와 닿는다. 겐조의 삶은 "시종일관 몹시도 현실적인 세속의 일들에 압박당하고 그 과정에서 느끼는 중압감은 스스로를 '특별한 존재'가 아닌 한갓 '길가의 풀 한 포기'라고 자조하게" 만든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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