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기호의 역사 - 상징의 기원을 탐구하는 매혹적인 여정
조지프 마주르 지음, 권혜승 옮김 / 반니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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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수학 기호는 과연 언제부터 생겨났을까?

 

수학의 전형적인 기호는 연산, 무리 짓기, 관계, 상수, 변수, 함수, 행렬, 벡터, 집합론, 논리학, 수론, 확률론, 통계학에서 쓰이는 것들이다. 수학 기호가 생성된 시기를 거슬러 올라가는 작업은 언뜻 간단해 보인다. 기호가 처음 나타난 문헌을 추적하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심오한 의미가 숨어 있다면? 그리고 당시에는 일일이 베껴 써야 했다. 그 과정에서 가감되고 변형이 생겼다. 또 수학이 풍부한 기호 없이 온통 수사적(이야기 형식)이라면 어떨까? 알콰리즈미가 825년에 쓴 《대수》에 나오는 문장을 보자.

 

어떤 사람이 당신에게 묻는다. “나는 십을 두 부분으로 나눴다. 그중 하나를 다른 것에 곱하면 그 결과는 이십일이다.” 그러면 당신은 그 부분들 중 하나가 무엇이라면, 나머지 하나는 십 빼기 무엇임을 안다.

 

우리는 이 문장을 간단히 x(10-x)=21이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놀랍게도 15세기까지 수학 표기에 진정한 기호가 사용되지 않았다.

 

저자는 미국 말보로 대학에서 수학을 가르치고 있는 조지프 마주르 교수. 그는 10년 전 《밀림으로 간 유클리드》(한승 2006)라는 책으로 국내에 소개된 바 있다. 이번 책은 흥미로우면서도 무척 까다롭다. 수학자나 공리의 역사가 아닌 수학 기호와 연산자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밀림으로 간 유클리드》에서 상세히 설명한 루이스 캐럴의 3단논법이 다시 나온다. 282쪽을 보라.

 

2016년 내셔널 북 페스티벌에 참석한 저자, 조지프 마주르

 

책은 크게 3부로 나뉘어졌다. 1부 숫자의 역사와 2부 대수의 역사는 거의 독립적이지만 발전의 초기에는 숫자와 대수의 기호가 서로 얽혀 있었다. 3부는 기호의 힘에 대해 다룬다.

 

저자는 수학의 기호와 관련한 고문서를 일일이 찾아보고 꼼꼼하게 살핀다. 특히 그는 옥스퍼드에 있는 보들리 도서관에서 유클리드의 《원론Elementa》(기원전 300년) 사본 중 가장 오래된 것을 볼 기회를 가졌다.

 

《원론》은 임의의 두 원의 넓이의 비가 그 지름의 제곱의 비와 같다는, 증명하기 어려운 사실의 증명을 포함하고 있으면서도 거듭제곱이나 덧셈을 나타내는 대수기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단다. 왜냐하면 그의 서술이나 증명은 기하학적이면서 완전히 수사적이기 때문이다. 지금으로서는 기호가 빠진 수학을 상상하기가 어렵지만, 16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유럽의 수학 저작물은 본질적으로 《원론》처럼 수사적이었다.

*유클리드의 《원론》은 온라인으로 볼 수 있다(http://rarebookroom.org에서 검색해 보라.

 

중국판 유클리드의 《원론》으로 볼 수 있는 한나라 때의 필사본 《구장산술九章算術》도 소개하고 있다. 《구장산술》은 대나무 조각에 246개의 문제를 모아 적은 방대한 책이다. 학자들에 따르면 《구장산술》은 그 전에 존재했다고 알려진 모든 수학을 모아 놓은 가장 오래된 중국 수학책이다.

 

지금의 아라비아 수 체계가 유럽으로 전해진 것은 겨우 몇 세기 전이다. 저자는 피사 출신의 피보나치의 《산반서Liber Abbaci》(1202)를 비중 있게 설명한다. 피보나치는 아버지와 지중해 연안을 여행하며 이집트, 시리아, 그리스, 프로방스에서 무역에 쓰는 수 체계를 배웠다.

 

그는 아라비아숫자 체계가 당시 쓰이던 로마숫자 체계보다 계산법으로 더 우월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다. 그의 책은 유럽 사회에 아라비아숫자를 처음 소개한 것은 아니지만, 본격적으로 붐을 일으키는데 큰 기여를 했을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800년 무렵 칼리프 하룬알라시드의 공적이다. 그는 그리스 저작물들을 아랍어로 번역하라고 명했다. 대표단은 콘스탄티노플과 인도의 대도서관을 방문하여 그리스어와 힌디어 저작물 수백 권을 복사해 와 아랍어와 시리아어로 옮겼다. 그 덕분에 현존하는 유일한 복사본이 되었다.

 

일반적으로 대학에서 대수학을 가르치기 시작한 것은 17세 중반 이후였다. 그 이전까지 대학은 성직자나 의사와 법률가를 양성하는 것이 중심이었다.

 

한편 기호를 사용한 현대 수학의 근원은 디오판토스의 《산술Arithmetica》(3세기, 1세기에 쓰였다는 의견도 있다)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문에 총 13권으로 구성되었다고 했지만, 여섯 권만 그리스어 원본의 사본으로 남아 있다. 《산술》을 보면 1차 방정식과 2차 방정식을 푸는 방법이 나온다.

 

여기서 유의할 점은 원본 또는 사본에 대한 필사본은 여러 경로를 거치면서 변형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수학의 기호와 같이 획 하나, 점 하나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것을 감안한다면, 기호의 근원을 찾는 작업은 남다른 인내심과 고문서에 대한 지식을 필요로 한다. 저자의 수고로움이 달리 보이는 연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수학 기호들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가 처음 등장한 것은 비드만이 1489년에 쓴 《모든 거래의 현명하고 깔끔한 계산》에서였다. “+”가 없을 때와 생기고 난 뒤의 차이는 무엇일까?

*참고로 등호(=)는 1557년, 파이(π)는 1706년 처음 등장했다.

 

저자에 따르면 수학에서 기호는 “눈에 보이는 형태나 의사소통에서 얻은 패턴과 형상의 의미를 감지하고 인지하고 창조하는 수단”이다. 기호는 반복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생각과 강력한 연관성을 제공하고, 때때로 경험적인 것을 물질적인 것과 연결시킨다.

 

기호들 각각은 수학자의 창의적인 사고에 별 영향을 미치지 않을지 몰라도, 이들이 합쳐지면 유사성·연상·동일성·닮음·반복적인 형상화를 통해 강력한 연관성을 획득한다. 심지어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도 있다. 어떤 수학기호는 경험과 미지의 것을 연결하거나 유사성과 닮음을 통해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 비유적 생각을 전하기 위해 계획적으로 고안되기도 했다.

 

기호(상징의 범주로써)는 의사소통의 수단을 초월한다. 우리의 언어 어디에나 존재하며 의미의 문화적·감정적 성향을 주기 위해, 창조적인 과정을 증강하기 위해, 의식과 잠재의식 및 익숙한 것과 미지의 것을 연결하는 수학적 형상화에 상당한 구실을 한다.

 

이 책은 수를 세는 것에서 출발해 현대 수학의 주요 연산자들로 이어지면서, 수학에서 확립된 기호들의 기원과 진화를 추적한다. 《산술》을 주석한 히파티아, 데카르트의 기하학, 그리고 뉴턴의 도함수도 소개된다.

 

저자는 특히 뉴턴의 논문이 온전히 정리된 것은 영국의 수학 역사가 화이트사이드의 공로 덕분이라고 지적한다. 화이트사이드는 17세기 수학사에 관한 박사 논문을 준비하던 대학원생 때 케임브리지 사서에게서 뉴턴의 사본들 여덟 상자를 건네받아 여덟 권으로 정리했다. 그는 무려 23년이라는 시간동안 헌신적으로 매달렸다.

 

수학사를 새로운 관점에서 접근한 방식이 참신하다. 그간 별다른 의심 없이 사용해 왔던 수학 기호나 연산자가 나름 역사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 자못 흥미롭다. 이 책이 아니었다면 수학 기호는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존재했던 것이려니 치부했을 것이다.

 

저자는 각 파트별로 수학사에서 한 획을 그은 대표적인 수학자와 저작 또는 업적을 요약하여 정리 소개한다. 전문가가 아니라면 자료를 구하기도 어렵고, 이해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저자의 해박한 수학사 지식과 치밀한 학문적 자세 덕분에 우리는 수학 기호의 변천에서 인류 지성의 연원을 캐는 남다른 재미를 만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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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겠습니다 - 일본군 위안부가 된 남한과 북한의 여성들
이토 다카시 지음, 안해룡.이은 옮김 / 알마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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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44일 위안부 피해자 중 최고령 이순덕 할머니(100)가 생을 마감했다. 등록된 위안부 피해 할머니 238명 중 이제 38명만 생존해 있다. 이들은 전체 피해자에 비하면 아직도 극소수에 불과하다.

 

저자 이토 다카시(伊藤隆) 씨는 199110월 고() 김학순 할머니를 처음 만났다. 같은 해 813일 김학순 할머니는 실명을 드러내고 자신이 피해자임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역사의 암흑 속에 묻혀 사라져가던 일제에 의한 중대 범죄가 용기 있는 고발로 서서히 폭로되기 시작한 것이다. 증언의 봇물은 한국을 비롯하여 북한, 필리핀, 대만, 인도네시아 각국에서 터져 나와 2만 명 이상에 이르렀다.

      

이 책의 원제 無窮花(ムグンファ)しみ》는 "무궁화의 슬픔"이란 뜻이다. 옮긴이 안해룡 감독과 출판사 알마 측은 이 책을 기획, 번역하면서 스토리펀딩을 했었다, 타이틀은 원제와 같이 무궁화의 슬픔”.

 

 

저자는 이름처럼 아름답고 소박한 꽃을 끊임없이 피우는 무궁화에서 주변 대국으로부터 끊임없는 침략을 받으면서도 저항을 계속해온 역사를 읽는다고 소회를 밝힌다. 그는 가련한 무궁화처럼 피해 여성들의 깊은 슬픔과 생각을 그들의 유언으로 이 책에 담았다.

 

이토 씨는 취미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가 바로 다큐멘터리 사진에 관심을 기울였다. 1981년 원자폭탄의 피해 실태를 취재하다가 약 7만 명에 달하는 조선인이 피폭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엄청난 충격을 받은 그는 일본의 식민지 지배로 피해를 보았던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기록으로 남기기 시작했다.

 

일본에서는 가해의 역사를 소홀히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아시아태평양전쟁의 기억이 희박해지고 있다. 이는 남한이나 북한에서도 마찬가지다. 식민지 지배에 의한 피해의 기억은 급속히 풍화해가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이미 피해자 대부분이 사망했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를 침략하고 지배하지 않는 세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여러 피해자의 경험을 기록해서 후세에 남겨야 할 것이다. 이 책이 이런 일을 조금이나마 할 수 있다면 좋겠다.” - 작가의 말 중에서

 

안해룡 감독은 프리랜서 사진작가로 활동하던 무렵 도쿄에서 저자를 처음 만났다. 당시 그는 왜 한국 사진작가들은 이런 문제로 작업하지 않는지 부끄러움이 앞섰다. 이후 그는 오키나와에서 규슈, 본토를 넘어 훗카이도, 사할린까지 일본 전국을 돌면서 강제 징용·징병, 일본군 위안부, 유골 등 조선인 강제동원의 흔적들을 기록했다.

 

어쩌면 역사를 기록한다는 것은 소명의식에서 비롯됨일까? 안 감독은 세월호 참사로 스러져간 생명들과 그 유족들의 이야기도 생생히 담고 있다.

 

이토 씨는 아시아태평양 각국에서 지금까지 피해자 800여 명을 취재했다. 이중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는 90여 명이다. 그는 과거 식민지 지배로 피해를 보았던 사람들의 목소리를 많은 사람에게 전하고자 지금도 카메라를 들고 현장으로 달려간다.

 

▲자신의 모습(맨오른쪽)이 담긴 사진을 들고 있는 박용심 할머니

 

이귀분 할머니(2004년 작고)가 운영하던 식당 모습은 어찌나 정겨운지 진작 찾아뵙고 막걸리 한 잔 따라드렸으면 어땠을까눈에 익은 사진 속 주인공도 등장한다. 당시 미군이 촬영한 사진에서 임신한 여성은 북한이 고향인 박영심 할머니(2006년 작고).

 

목소리 소설(Novels of Voices)’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노벨문학상을 받은 것도 기록 문화의 중요성을 널리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자못 뜻 깊다. 바로잡아야할 역사와의 싸움은 오랜 수고와 지난한 시간을 필요로 한다. 세대를 이어 갈 싸움일 수도 있다. 기억하기 위해서는 우선 기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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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 워크 - 강렬한 몰입, 최고의 성과
칼 뉴포트 지음, 김태훈 옮김 / 민음사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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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칼 뉴포트(Cal Newport)는 조지타운대에서 컴퓨터과학을 가르치는 부교수다. 그는 현대인들이 한시도 손에서 놓지 못하는 소셜 미디어의 사용을 즉각 중단하라고 충고한다.

 

딥 워크(deep work)’란 인지능력을 한계까지 밀어붙이는 완전한 집중의 상태에서 수행하는 직업적 활동이다. 곧 자신이 진정 원하는 중요한 일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그것에 몰두하는 능력을 말한다. 이와 대척점에 있는 것이 피상적 작업(shallow work)’이다.

 

저자는 멀티태스킹이 대세인 시대에 딥 워크가 필요한 이유를 명쾌하게 정리한다.

 

첫째, 급속히 변화하는 정보 사회에서 우리는 늘 초심자일 수밖에 없다. 가치 있는 일을 해내려면 복잡한것을 신속하게학습해야 한다. 이 능력을 익히지 않으면 기술 진보에 뒤처질 가능성이 높다.

 

둘째, 디지털 네트워크 혁명으로 전 세계가 연결되어 있어 어중간한 결과물은 바로 대체된다. 즉 유용한 가치를 하나 창조하면 거의 무한한 소비자에게 도달할 수 있다. 그래서 보상을 크게 키울 수 있다. 절대적으로 뛰어난 성과를 내려면 몰입은 필수다.

 

저자는 MIT 박사과정 시절 알게된 맥아더 재단의 천재상수상자 MIT 교수를 회고한다. 그 교수는 십대에 MIT에 채용되었다. 교수는 다른 학자들에게 둘러싸인 채 공용 공간에 앉아서 화이트보드에 그린 표를 보거나, 조용히 허공을 응시하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 응시는 아주 오래 이어졌다. 이 교수는 접촉하기가 어려웠다. 트위터를 쓰지 않고, 모르는 사람의 이메일은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2015년에 그는 논문 열여섯 편을 발표했다.

 

칼 뉴포트(Cal Newport)

 

이미 박사과정 시절부터 저자는 몰입을 위한 노력에 빠졌다. 블로그 외에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계정 혹은 다른 SNS 계정을 연 적이 없다. 웹 서핑을 하지 않으며 주중에 5~6시 이후에는 일도 거의 하지 않는다. 저자는 결과적으로 하루에 서너 시간, 일주일에 5일을 방해받지 않고 신중하게 방향을 설정하여 집중함으로써 수많은 가치를 창출해 냈다.

 

영향력 있는 인물 중 딥 워크에 헌신했던 예는 많다. 가령 카를 융의 볼링겐 타워, 몽테뉴의 돌담 탑의 서재, 우디 앨런의 독일제 올림피아 SM3 타자기, 피터 힉스의 단절된 연구실, 마크 트웨인의 동떨어진 오두막 그리고 조앤 롤링의 밸모럴 호텔의 스위트룸 등이 그렇다.

 

이 책은 저자가 피상성보다 심층성에 이끌린 이유와 그에 따라 행동하도록 도와준 전략들을 설명한다. 그는 이미 학습과 관련된 여러 편의 논문과 책을 냈다. 학습 관련 블로그 “Study Hacks”(http://calnewport.com)도 운영한다. 블로그에 올린 딥 워크 관련 글이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키자, 고무된 그는 좀 더 연구하고 보완하여 책으로 펴냈다.

 

저자는 딥 워크를 위한 4가지 원칙을 제시한다. 이 방법론은 크리스 맥체스니와 숀 코비가 성과를 내고 싶으면 실행하라에서 제시한 4가지 실행 원칙을 응용한 것이다.

 

원칙 1 : 가장 중요한 목표를 수립하라.

원칙 2 : 목표를 위해 딥 워크에 들인 시간을 지표로 삼아라.

원칙 3 : 딥 워크에 들인 시간을 눈으로 확인하라.

원칙 4 : 성과를 정기적으로 점검하는 자리를 만들어라.

 

그리고 일과가 끝나면 일에 신경을 끄고, 무료함을 받아들이라고 조언한다.

 

한편 데이비드 드웨인의 에우다이모니아 머신(Eudaimonia Machine)”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에우다이모니아 머신은 잠재력을 온전히 발휘하는 상태를 가리키는 고대 그리스의 개념에서 이름을 따온 건물이다. 에우다이모니아 머신의 목표는 사용자들이 몰입 상태로 들어가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창출하는 것이다.

 

 에우다이모니아 머신의 구조도

 

건물은 방 다섯 개가 나란히 늘어선 좁은 직사각형 구조로 되어 있다. 복도는 없다. 첫 번째 방은 갤러리다. 이 방에는 딥 워크의 성공 사례들이 놓인다. 다음에는 살롱이다. 여기에는 고급 커피나 제대로 바를 즐길 수 있다. 소파와 와이파이도 있다. 논쟁을 벌이고 숙고하며 아이디어를 구상하는 곳이다.

 

살롱 다음은 도서관이다. 모든 작업물 뿐만 아니라 이전 작업에 사용된 책과 기타 자료들을 보존한다. 복사기와 스캐너도 설치된다. 다음 방은 사무실이다. 사무실에는 화이트보드를 설치한 일반적인 회의실과 큐비클로 분리된 책상들이 놓인다.

 

마지막 방은 심층적 작업실이 모인 공간이다. 각 작업실은 가로 1.8미터에 세로 3미터이며, 두꺼운 방음벽으로 보호한다. 이 방의 목적은 온전히 몰입한 상태에서 방해받지 않고 일의흐름을 이어가도록 해 주는 것이다. 두뇌가 집중력의 한계에 이를 때까지 90분 동안 작업하고 90분 동안 휴식하는 과정을 두세 번 반복한다. 실로 딥 워크를 위한 건물이 아닐 수 없다.

 

저자가 말하는 바는 어쩌면 칙센트미하이가 말한 몰입의 다른 버전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분명한 차이점도 있다. 딥 워크는 만성적인 산만함의 위기에 처한 사람들이 주의를 흐트러뜨리는 요소를 원천 차단하고 진정으로 중요한 일에 몰입할 수 있도록 이끄는 방법론이다.

 

저자에 따르면 진정한 보상은 페이스북을 잘 쓰는(따라하기 쉬운 피상적 작업) 사람이 아니라 혁신적으로 분산된 시스템을 잘 구축하는(따라하기 어려운 딥 워크) 사람에게 주어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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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7-04-12 2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좋은 정리 잘 보고 갑니다. ^^
 
꼭 한번 보고 싶은 중국 옛 그림 - 중국 회화 명품 30선
이성희 지음 / 로고폴리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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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이는 그림으로 유명한 전자판 청명상하도(淸明上河圖)는 본래 북송 말기의 화원 장택단(張擇端)이 그린 것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것이다.

 

원작의 크기는 세로는 손 한 뼘 크기에 불과하지만, 가로는 무려 5.3미터에 이른다. 청명상하도는 원의 황공망(黃公望)이 그린 부춘산거도(富春山居圖)와 중국 회화의 쌍벽을 이루는 명작 중 명작이다.

 

 

그림을 펼치면 팔백여 명의 인물들, 팔십 여 마리의 가축, 스무 대가 넘는 수레와 가마, 이십여 척의 배 그리고 백여 호의 집과 서른 네 개의 점포까지 당시 수도 변량의 번영했던 상업 활동을 파노라마처럼생생하게 보여준다.

 

장택단은 당시 그림 애호가였던 송 휘종(조길)에게 청명상하도를 바쳤다. 휘종은 이 그림을 보고 맘에 들어 무척 아꼈으나, 금에 나라가 망하면서 그림도 빼앗기고 말았다. 여러 우여곡절 끝에 기적 같이 살아남아 현재 북경 고궁박물원에 소장되어 있다. 중국 제일의 국보로 숭상되고 있다.

 

황공망의 부춘산거도

 

황공망의 부춘산거도는 남종화의 대표작이다. 그는 한때 하급 관리를 지내다가 탐관 장려와 연루되어 옥살이를 치른 후 세속에 대한 야심을 내려놓고 부춘산의 오두막에 은둔했다.

 

어느 날 황공망은 부춘강가를 거닐다가 영감이 떠올라 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단박에 그리지는 않고 흥이 날 때마다 두루마리를 꺼내어 끊임없이 가필하여 3년 만에 완성했다고 전한다. 부춘산거도를 보면 인위적인 꾸밈이 없고 속기가 없는 담당함의 풍격, 평담(平淡)”을 느낄 수 있다.

 

한편 장택단이 자신의 그림을 바쳤던 휘종(조길)은 비록 정치에 지극히 무능했던 황제였으나, 대신 뛰어난 화가였다. 조길은 관찰에 의한 사실적 묘사가 주를 이루는 화조화(花鳥畵)의 대가였다. 그가 그린 서학도(瑞鶴圖)를 보면, 두 마리가 지붕 끝에 서 있고, “열여덟 마리의 학들이 절묘하게 상응하면서 유기적인 리듬을 이루고 있다.

 

송 휘종(조길)서학도

 

저자 이성희 씨는 부산대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문예중앙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장자에 관한 박사 학위를 받으면서 동아시아 예술과 미학으로 관심을 쏟았다. 이 책은 중국 각 시대의 삶과 욕망을 치열하게 담으려 했던 화가들과 그들의 그림 속으로 들어가 오랫동안 헤맨저자의 실존적 체험의 흔적들이다.

 

책은 크게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한 시대의 전형을 이룬 불후의 작품들이 아홉 점 소개된다. 2부에서는 다양한 시대와 삶을 증언하고 있는 작품들 일곱 점을 만난다. 3부는 주류 화풍의 한계에 저항하면서 새로운 미학을 제시했던 일곱 점이 등장한다. 마지막 4부에서는 형상을 넘어서 모종의 정신 경계를 여는 일품(逸品) 일곱 점이 펼쳐진다. 저자는 이렇듯 네 주제로 나누어 독자에게 꼭 한 번 보여주고 싶은 중국 옛 그림 서른 점을 고르고 골랐다.

 

오위의 어락도

 

내 마음에 와 닿았던 그림도 있었다. 오위의 어락도(漁樂圖)와 심주의 장려원조도(杖藜遠眺圖). 오위와 심주는 명 때 활약했던 화가였다. 어락도어떠한 양식에도 얽매이지 않은 자유분방"하고 유유자적한 모습이 보기 좋았다.

 

한편 장려원조도를 보노라면 무심한 평단함 속에 자유롭고 맑은 정신의 기운, 청량한 일기(逸氣)”를 느낄 수 있다. 특히 심주는 황공망의 화풍을 계승했다. 그는 황공망의 부춘산거도진품을 소장했다고 전한다.

 

심주의장려원조도

 

白雲如帶束山腰 (백운여대속산요)

띠 같은 흰 구름 산허리를 에워싸고

 

石磴飛空細路遙 (석등비공세로요)

바윗길은 허공으로 날아올라 오솔길이 아득한데

 

獨倚杖藜舒眺望 (독의장려서조망)

홀로 지팡이에 의지해 먼 곳을 바라보며

 

欲因鳴澗答吹簫 (욕인명간답취소)

계곡 물소리에 응해 피리를 불고 싶어라.

 

저자의 그림 보는 눈이 능준하고, 글 솜씨 또한 함함하다. 저자의 안내에 따라 여정을 나서면 한 인간의 삶과 그 삶에 스며든 역사 그리고 위대한 작품들이 탄생하는 과정을 지켜보게 된다. 그 속에서 우리는 오늘날의 성정(性情)을 읽고, 고단한 삶의 결을 고르며, 살아갈 위안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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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
김민철.김승은 외 지음, 민족문제연구소 기획 / 생각정원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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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지금까지도 청산되지 않은 한일 과거사, 일제 강제동원 피해의 진상규명과 보상을 위해 싸워온 피해자·유족 그리고 한·일 양국의 양심적인 목소리를 담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기획하고 소속 연구원, 유족이자 활동가 이희자 대표, 일본의 시민운동가, 한국의 변호사까지 모두 18명의 필자가 집필에 참여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파에 의해 와해된 반민특위의 정신과 친일문제 연구에 평생을 바친 고 임종국 선생의 유지를 이어 1991년에 설립되었다. 지난 2015년 식민지 시기 강제동원 진상규명을 위한 두 차례의 스토리펀딩에서 2천만 원 넘게 모금하는 등 강제징용 실상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집필진은 수 년에 걸쳐 피해자와 유족들과 함께 수많은 현장을 답사하고, 외지의 유해를 발굴하고, 값진 사진·자료 등을 수집했다. 일본 시민과 단체의 도움도 있었다. 유린된 인권을 회복하고 역사를 바로잡는 일은 가해자와 피해자 구분 없는 인류애의 발상이 아닐까.

책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군함도'를 다뤘다. 직접 현장에 가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각지의 조선인들이 이곳까지 어떻게 끌려왔는지, 어떤 환경에서 지내고 어떤 노동을 했는지 살폈다. 군함도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면서까지 전쟁을 정당화하려는 일본의 속내에 대해서도 소상히 밝혔다.

 

▲군함도는 나가사키에서 서쪽으로 18㎞떨어진 곳에 있는 무인도로 일본말로 ‘하시마’(端島)다. 침략 전쟁 탓에 급성장한 미쓰비시가 좁은 땅을 최대로 활용하기 위해 7층, 10층 짜리 철근콘크리트 아파트(당시 일본 최초)를 지어 멀리서 보면 마치 군함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하지마 탄광 내에서 누운 자세로 탄을 캐는 징용자

 

2부에서는 훗카이도에서 오키나와까지, 일본 전역에 걸쳐 강제징용되어 일본의 군수품 조달에 동원됐던 피해자들의 이야기다. 어린 나이에 끌려가 강도 높은 노동을 감내해야 했던 여자근로정신대는 조국에 살아 돌아와서도 오해와 편견에 시달렸다.

 

 전라북도 여성근로정신대 귀환 사진. 하카타 항에서 미군 촬영(1945.10.19)

 

3부에서는 중국에서 시베리아까지 아시아·태평양 각지에 강제징용된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BC급 전범, 군인·군속, 포로, 군 '위안부' 등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다양한 얼굴의 조선인이 승산 없는 전쟁터에 보내졌고, 죽임당했고, 살아남아서도 어떠한 사과나 배상을 받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4부에서는 강제동원 진상규명, 일본정부의 공식적 책임 인정과 사죄, 피해자와 유족에 대한 배상 등 식민지시기 강제동원으로부터 시작된 여러 가지 과업과 관련 소송 등을 살폈다.

강제동원 100년의 문제를 해결할 가장 근본적인 노력은 진실을 기록하고 과거를 기억하는 데 있다. 재일조선인 1세대 고 박경식 선생에 따르면 일제는 침략전쟁을 위해 1939~1945년에만 탄광과 토건에 백만 명이 넘은 동포를 강제 연행했다. 군인·군속으로 37만, 조선 내에서 동원한 485만 등을 합치면 모두 6백만이 넘었다.

일본은 강제징용의 역사를 감추기에 급급하다. 지난 2015년 군함도를 포함한 강제징용 현장 23개 시설을 한데 묶어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유산’으로 세계유산에 등재시켰다. 해당 기간도 1850~1910년으로 잔꾀를 써 한일합방에 의한 강제징용을 은폐했다. 일본은 유네스코가 등재를 결정하면서 일제 강제동원 시설의 ‘역사 전체’를 반영하도록 한 권고 역시 잘 지키지 않고 있다.

또한 일제 시기에 작성된 「유수명부」 「임시군인군속제」 「군속선원명표」 「해군군속자명부」 등 다양한 명부들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다. 피해자들 스스로 강제동원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기록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해야만 했다. 책에 실린 생생한 사진과 자료는 이들의 노력과 헌신에 힘입은 바 크다.

 

“해방 후 7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은 어느 누구도 일본정부나 전범기업으로부터 자신들의 침략 행위 및 반인도적 불법행위에 관해 진정한 사과를 받지 못했다. 고노 담화 등 일본정부의 몇 차례 사과를 들어 일본이 얼마나 더 사과를 해야 하느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경우 일본정부가 ‘강제성’이나 ‘불법성’을 인정하고 사과한 것이 아니다. 강제성이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은 사과를 두고,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사과의 진정성을 받아들여야 한다거나 용서를 해주어야 한다고 강요해서는 안 된다. 이는 또 다른 폭력이다.

우리는 일본, 일본인과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일제 침략 및 일제 강제동원의 ‘강제성’이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는, 역사의 진실을 외면하는 세력과 싸우고 있는 것이다. 과거에 대한 진정한 사과와 용서 없이 역사 청산을 이룰 수 없다. 이 문제를 다음 세대로 미루어서는 안 된다. 이는 우리 세대에서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 404~405쪽

 

 

 

한편 류승완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 〈군함도〉는 한수산 작가가 쓴 동명의 원작을 모티브로 했다. 출연진과 배역을 보면 원작이 대폭 수정될 것으로 보인다. 캐스팅 면에서 황정민, 소지섭, 송중기 등 쟁쟁한 배우가 출연한다. 우선 황정민은 경성 호텔 악단장 이강옥 역을, 소지섭은 경성 최고의 주먹 최칠성 역을, 그리고 송중기는 군함도에 잠입하는 독립군 박무영 역을 맡았다. 세 캐릭터 모두 원작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원작은 지상, 우석 그리고 길남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술집 여자 금화도 빼놓을 수 없다.

영화는 총 제작비 250억 원이 투입된다. 자칫 원작에서 다룬 조선 징용자들의 애환 보다는 블록버스터에 가까운 액션이 주를 이루지 않을까 우려된다. 위안부로 끌려간 한국·중국·필리핀 세 할머니의 인생 여정을 차분하게 그린 작품, 티파니 슝 감독의 〈어폴로지〉(The Apology) 같은 영화가 오히려 더 큰 감동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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