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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한번 보고 싶은 중국 옛 그림 - 중국 회화 명품 30선
이성희 지음 / 로고폴리스 / 2017년 3월
평점 :

움직이는 그림으로 유명한 전자판 〈청명상하도(淸明上河圖)〉는 본래 북송 말기의 화원 장택단(張擇端)이 그린 것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것이다.
원작의 크기는 세로는 손 한 뼘 크기에 불과하지만, 가로는 무려 5.3미터에 이른다. 〈청명상하도〉는 원의 황공망(黃公望)이 그린 〈부춘산거도(富春山居圖)〉와 중국 회화의 쌍벽을 이루는 명작 중 명작이다.
그림을 펼치면 팔백여 명의 인물들, 팔십 여 마리의 가축, 스무 대가 넘는 수레와 가마, 이십여 척의 배 그리고 백여 호의 집과 서른 네 개의 점포까지 “당시 수도 변량의 번영했던 상업 활동을 파노라마처럼” 생생하게 보여준다.
장택단은 당시 그림 애호가였던 송 휘종(조길)에게 〈청명상하도〉를 바쳤다. 휘종은 이 그림을 보고 맘에 들어 무척 아꼈으나, 금에 나라가 망하면서 그림도 빼앗기고 말았다. 여러 우여곡절 끝에 기적 같이 살아남아 현재 북경 고궁박물원에 소장되어 있다. 중국 제일의 국보로 숭상되고 있다.

▲황공망의 〈부춘산거도〉
황공망의 〈부춘산거도〉는 남종화의 대표작이다. 그는 한때 하급 관리를 지내다가 탐관 장려와 연루되어 옥살이를 치른 후 세속에 대한 야심을 내려놓고 부춘산의 오두막에 은둔했다.
어느 날 황공망은 부춘강가를 거닐다가 영감이 떠올라 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단박에 그리지는 않고 흥이 날 때마다 두루마리를 꺼내어 끊임없이 가필하여 3년 만에 완성했다고 전한다. 〈부춘산거도〉를 보면 “인위적인 꾸밈이 없고 속기가 없는 담당함의 풍격, 평담(平淡)”을 느낄 수 있다.
한편 장택단이 자신의 그림을 바쳤던 휘종(조길)은 비록 정치에 지극히 무능했던 황제였으나, 대신 뛰어난 화가였다. 조길은 관찰에 의한 사실적 묘사가 주를 이루는 화조화(花鳥畵)의 대가였다. 그가 그린 〈서학도(瑞鶴圖)〉를 보면, 두 마리가 지붕 끝에 서 있고, “열여덟 마리의 학들이 절묘하게 상응하면서 유기적인 리듬”을 이루고 있다.

▲송 휘종(조길)의 〈서학도〉
저자 이성희 씨는 부산대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문예중앙》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장자에 관한 박사 학위를 받으면서 동아시아 예술과 미학으로 관심을 쏟았다. 이 책은 “중국 각 시대의 삶과 욕망을 치열하게 담으려 했던 화가들과 그들의 그림 속으로 들어가 오랫동안 헤맨” 저자의 “실존적 체험의 흔적들”이다.
책은 크게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한 시대의 전형을 이룬 불후의 작품들이 아홉 점 소개된다. 2부에서는 다양한 시대와 삶을 증언하고 있는 작품들 일곱 점을 만난다. 3부는 주류 화풍의 한계에 저항하면서 새로운 미학을 제시했던 일곱 점이 등장한다. 마지막 4부에서는 형상을 넘어서 모종의 정신 경계를 여는 일품(逸品) 일곱 점이 펼쳐진다. 저자는 이렇듯 네 주제로 나누어 독자에게 꼭 한 번 보여주고 싶은 중국 옛 그림 서른 점을 고르고 골랐다.

▲오위의 〈어락도〉
내 마음에 와 닿았던 그림도 있었다. 오위의 〈어락도(漁樂圖)〉와 심주의 〈장려원조도(杖藜遠眺圖)〉다. 오위와 심주는 명 때 활약했던 화가였다. 〈어락도〉는 “어떠한 양식에도 얽매이지 않은 자유분방"하고 유유자적한 모습이 보기 좋았다.
한편 〈장려원조도〉를 보노라면 “무심한 평단함 속에 자유롭고 맑은 정신의 기운, 청량한 일기(逸氣)”를 느낄 수 있다. 특히 심주는 황공망의 화풍을 계승했다. 그는 황공망의 〈부춘산거도〉 진품을 소장했다고 전한다.

▲심주의〈장려원조도〉
白雲如帶束山腰 (백운여대속산요)
띠 같은 흰 구름 산허리를 에워싸고
石磴飛空細路遙 (석등비공세로요)
바윗길은 허공으로 날아올라 오솔길이 아득한데
獨倚杖藜舒眺望 (독의장려서조망)
홀로 지팡이에 의지해 먼 곳을 바라보며
欲因鳴澗答吹簫 (욕인명간답취소)
계곡 물소리에 응해 피리를 불고 싶어라.
저자의 그림 보는 눈이 능준하고, 글 솜씨 또한 함함하다. 저자의 안내에 따라 여정을 나서면 한 인간의 삶과 그 삶에 스며든 역사 그리고 위대한 작품들이 탄생하는 과정을 지켜보게 된다. 그 속에서 우리는 오늘날의 성정(性情)을 읽고, 고단한 삶의 결을 고르며, 살아갈 위안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