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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겠습니다 - 일본군 위안부가 된 남한과 북한의 여성들
이토 다카시 지음, 안해룡.이은 옮김 / 알마 / 2017년 3월
평점 :
2017년 4월 4일 위안부 피해자 중 최고령 이순덕 할머니(100세)가 생을 마감했다. 등록된 위안부 피해 할머니 238명 중 이제 38명만 생존해 있다. 이들은 전체 피해자에 비하면 아직도 극소수에 불과하다.
저자 이토 다카시(伊藤隆) 씨는 1991년 10월 고(故) 김학순 할머니를 처음 만났다. 같은 해 8월 13일 김학순 할머니는 실명을 드러내고 자신이 피해자임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역사의 암흑 속에 묻혀 사라져가던 일제에 의한 중대 범죄가 용기 있는 고발로 서서히 폭로되기 시작한 것이다. 증언의 봇물은 한국을 비롯하여 북한, 필리핀, 대만, 인도네시아 각국에서 터져 나와 2만 명 이상에 이르렀다.
이 책의 원제 《無窮花(ムグンファ)の哀しみ》는 "무궁화의 슬픔"이란 뜻이다. 옮긴이 안해룡 감독과 출판사 알마 측은 이 책을 기획, 번역하면서 스토리펀딩을 했었다, 타이틀은 원제와 같이 “무궁화의 슬픔”.
저자는 “이름처럼 아름답고 소박한 꽃을 끊임없이 피우는 무궁화”에서 “주변 대국으로부터 끊임없는 침략을 받으면서도 저항을 계속해온 역사를 읽는다”고 소회를 밝힌다. 그는 “가련한 무궁화처럼 피해 여성들의 깊은 슬픔과 생각을 그들의 ‘유언’으로 이 책에 담”았다.
이토 씨는 취미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가 바로 다큐멘터리 사진에 관심을 기울였다. 1981년 원자폭탄의 피해 실태를 취재하다가 약 7만 명에 달하는 조선인이 피폭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엄청난 충격을 받은 그는 일본의 식민지 지배로 피해를 보았던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기록으로 남기기 시작했다.
“일본에서는 가해의 역사를 소홀히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아시아태평양전쟁의 기억이 희박해지고 있다. 이는 남한이나 북한에서도 마찬가지다. 식민지 지배에 의한 피해의 기억은 급속히 풍화해가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이미 피해자 대부분이 사망했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를 침략하고 지배하지 않는 세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여러 피해자의 경험을 기록해서 후세에 남겨야 할 것이다. 이 책이 이런 일을 조금이나마 할 수 있다면 좋겠다.” - 작가의 말 중에서
안해룡 감독은 프리랜서 사진작가로 활동하던 무렵 도쿄에서 저자를 처음 만났다. 당시 그는 왜 한국 사진작가들은 이런 문제로 작업하지 않는지 부끄러움이 앞섰다. 이후 그는 오키나와에서 규슈, 본토를 넘어 훗카이도, 사할린까지 일본 전국을 돌면서 강제 징용·징병, 일본군 위안부, 유골 등 조선인 강제동원의 흔적들을 기록했다.
어쩌면 역사를 기록한다는 것은 소명의식에서 비롯됨일까? 안 감독은 세월호 참사로 스러져간 생명들과 그 유족들의 이야기도 생생히 담고 있다.
이토 씨는 아시아태평양 각국에서 지금까지 피해자 800여 명을 취재했다. 이중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는 90여 명이다. 그는 과거 식민지 지배로 피해를 보았던 사람들의 목소리를 많은 사람에게 전하고자 지금도 카메라를 들고 현장으로 달려간다.
▲자신의 모습(맨오른쪽)이 담긴 사진을 들고 있는 박용심 할머니
이귀분 할머니(2004년 작고)가 운영하던 식당 모습은 어찌나 정겨운지 진작 찾아뵙고 막걸리 한 잔 따라드렸으면 어땠을까. 눈에 익은 사진 속 주인공도 등장한다. 당시 미군이 촬영한 사진에서 임신한 여성은 북한이 고향인 박영심 할머니(2006년 작고)다.
‘목소리 소설(Novels of Voices)’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노벨문학상을 받은 것도 기록 문화의 중요성을 널리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자못 뜻 깊다. 바로잡아야할 역사와의 싸움은 오랜 수고와 지난한 시간을 필요로 한다. 세대를 이어 갈 싸움일 수도 있다. 기억하기 위해서는 우선 기록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