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련님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2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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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책이 백 년도 더 된 때인 1906년에 써졌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소설적 구성도 완벽하고 한 학교를 둘러싼 다양한 인간 군상(群像)들의 묘사도 가히 일품이었다. 한 마디로 평하자면 백가흠 작가의 해설 마냥 '체험적 소재를 통한 사실주의적 기법'이 그야말로 탁월했다.

 

▲소세키가《도련님》을 집필한 집(1903~1906년 거주)


그렇다면 나쓰메 소세키가 이 소설의 직접적 모태가 된 '체험'은 어느 때였을까? 연보를 보면 소세키가 대학을 졸업하고 도쿄고등사범학교 교사를 거쳐 심한 신경쇠약 증세 때문에 잠시 시코쿠에 있는 마쓰야마 중학교로 전근했을 무렵의 일로 보인다. 이 때가 1895년이었으니 작품이 발표되기까지 근 10여 년이 걸린 셈이다.


▲마쓰야마에서 소세키가 살던 집(1895)


일본이나 우리 소설의 태동을 보면 영국이나 프랑스 등 서양에 뒤처지는 것이 사실이다. 가령 오늘날까지 널리 읽히는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이 발표된 해가 1813년이니, 이광수의 첫 소설《무정》(1917)보다 무려 백 여 년이나 앞선다.《외제니 그랑데》(1833),《고리오 영감》(1834~35)을 보듯 사실주의 소설의 선구자 발자크가 활약하던 시기도 19세기 초반 무렵이었다.

어쨌든 늦었긴 해도, 소세키의 소설은 한 세기를 넘어 지금 읽어도 여전히 유효하다. 왜 그럴까? 무엇보다 백 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변함없는 인간의 속성이 세월을 초월하여 공감을 주기 때문이다. 게다가 당시 일본 시대상과 풍물을 알 수 있는 대목이 많아 사료적 가치가 높아 읽는 재미도 솔솔하다.

가령 밀가루 반죽을 얇게 펴서 팥소를 넣고 둥글거나 네모난 모양으로 납작하게 구운 과자 '긴쓰바', 1900년대 초 일본에서 판매되던 고급 담배 '시키시마', 일본의 설날 음식 중 떡을 주요 재료로 하는 국물 요리 '오조니', 따로 굽을 달지 않고 통나무를 깎아 만든 나막신 '고마게다', 무릎께를 끈으로 묶어 아랫도리를 가든하게 한 하카마 '닷쓰게바카마', 이마리(伊万里)시에서 만들어지는 도자기의 총칭 '이마리', 으깬 생선살을 대꼬챙이에 말아 굽거나 찐 다음 대꼬챙이를 뺀 관(管)모양의 어묵 '지쿠와(竹輪)', 술자리 등에서 바둑돌이나 조약돌 등을 쥐고 내밀어 서로 그 숫자를 맞추는 놀이 '난코', 에도 시대에 추던 사자춤·접시돌리기 등 곡예 '다이가쿠라(太神樂)' 등등 나는 오호~하고 내내 감탄하며 읽기에 바빴다.

게다가 제일 좋은 요릿집 가신테이(花晨停)에서 치른 고가 선생의 송별회, 러일 전쟁 승전기념식도 재미있었다. 특히 송별회에서 게이샤가 샤미센을 탈 때 '갓포레, 갓포레'하며 익살스럽게 춤을 추는 장면은 마치 그 옆에서 이를 지켜보는 듯 생생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책의 백미 중 하나는 부록으로 덧붙여진 당시 기록 사진이다. 나는 이 것을 눈여겨보면서-혹자는 소설적 상상력이 반감된다고 불평할지도 모르겠지만, 당시 정경을 쉽게 그려 볼 수 있어 소설의 느낌을 따라가는데 많은 도움을 얻었다.

가령 11쪽에 있는 사진〈도련님에 등장하는 열차(1930)〉을 보면 소설 속에서 다음과 같이 서술된 묘사를 생생하게 상상할 수 있었다.

 

▲《도련님》에 등장하는 열차(1930)

출발하는 날, 기요는 아침부터 와서 여러 가지로 애를 써주었다. 오는 길에 잡화상에서 사온 칫솔과 이쑤시개와 수건을 천가방에 넣어주었다. 그런 건 필요 없다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나란히 인력거로 역에 도착하여 플랫폼으로 나갔을 때 기요는 기차에 오른 내 얼굴을 지그시 바라보며 나직한 소리로 말했다.
"이게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겠네요. 부디 몸조심하세요."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나는 울지 않았다. 하지만 하마터면 울 뻔했다. 기차가 어느 정도 움직이고 나서, 이젠 괜찮겠지, 하고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돌아보니, 아니나 다를까 기요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어쩐지 무척 작아 보였다.(27쪽)

▲《도련님》에 등장하는 도고 온천의 풍경(1984)

나는 이곳에 온 뒤로 매일 스미타의 온천에 다니고 있다. 다른 곳은 뭘 보나 도쿄의 발뒤꿈치에도 따라가지 못하지만, 스미타의 온천만은 근사하다. 모처럼 온 것이니 매일 다녀야겠다는 생각으로 저녁식사 전에 운동 삼아 다녀오곤 한다. 그런데 갈 때는 반드시 큼직한 서양 수건을 들고 간다. 빨간 줄무늬가 있는 수건이라 물에 젖으면 언뜻 선홍색으로 보인다. 나는 이 수건을 오가는 길에, 기차를 탈 때도 걸어갈 때도 늘 들고 다닌다. 그래서 학생들이 나를 '빨간 수건, 빨간 수건'하고 부른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좁은 곳에 살다 보니 조용한 날이 없다(48쪽)

또 하나 내가 재미있게 읽었던 부분은 화자인 '나'(이하 도련님)의 주위에 대한 인물평이었다. 이는 어쩌면 소세키식의 평가일지도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그의 체험과 무관하지 않기에 소세키의 성격과 됨됨이을 엿볼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그 평가는 의외로 신랄하다. 특히 동료인 선생들에 대해서도 예외가 없다. 다음을 보자.

세상에는 '알랑쇠'처럼 나서지 말아야 할 자리에 꼬박꼬박 얼굴을 내미는 건방진 자도 있고, '산미치광이'처럼 자기가 없으면 일본이 곤란할 거라는 듯한 상판을 어깨 위에 올려놓고 있는자도 있다. 그런가 하면 '빨간 셔츠'처럼 포마드와 호색한의 도매상을 자처하는 자도 있고, 교육이 살아 있는 사람처럼 포록코트를 입으면 바로 자신이 된다고 말하는 듯한 '너구리'도 있다. 다들 그 나름대로 뽐내고 있지만 ‘끝물호박’처럼 있는 듯 없는 듯 마치 볼모로 잡혀온 인형처럼 얌전히 있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107쪽, 작은 따옴표는 인용자)

도련님에게 알랑쇠는 "단무지 누름돌에 매달아 바다 밑에 가라앉혀버리는 것이 일본을 위하는 길"인 것처럼 보이고, 교감 빨간 셔츠는 "기분 나쁠 정도로 목소리가 나긋나긋한"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다.

한편 끝물호박 고가 선생에게는 약혼녀 마돈나가 있다. 빨간 셔츠는 마돈나에게 눈독을 들이며 작업 중이다. 그는 도야마라는 여자와 친하게 지내고, 고스즈라는 게이샤와도 몰래 만난다. 그러면서 겉으로는 도덕적 훈계를 일삼는 이중적인 성격의 소유자.

결국 말미에 이르면 도련님과 산미치광이는 빨간 셔츠와 알랑쇠에게 통쾌한 복수를 한다. 이는 소세키 식으로 세상의 모든 속물들을 향한 작은 응징이리라.

▲《도련님》수제본 책(1919)


▲《도련님》자필 원고


하지만 도련님에게는 정감이 가는 인물도 없잖아 있다. 가령 "일본 전역을 찾아다녀도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마음씨 좋은" 여자 '기요', "구두쇠에다 욕심쟁이인 것은 틀림없지만 거짓말을 하지 않는" 하숙집 '하기노' 할머니. 이 두 사람은 소설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기요는《도련님》의 도입과 대미를 장식하고 있는데 이는 도련님이 가장 신뢰하고 의지하는 사람의 표본이다. 한편 하기노 할머니는 도련님에게 사건의 내막이나 진실에 대해 중요한 단서 등을 제공하는 해설자 역할을 한다. 이 두 사람을 관통하는 열쇠말은 '정직'이다.

도련님은 그 만큼 거짓과 위선으로 가득찬 세상에 대해 환멸을 느끼고 조롱하거나 저항하기도 하지만, 그 분출은 주로 산미치광이 홋타 선생을 통해서다. 이런 면에서 '도련님'이 갖고 있는 이미지와 위상의 한계가 결정된다. 즉 한때 부자였으나 지금은 몰락한 집안 출신이지만, '도쿄 토박이'의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샌님 이미지 딱 그대로다! 그래서 그는 돈보다는 도덕이나 체면을 더 중요시하면서 주위 사람들을 가차 없이 난도질하듯 평가한다. 싹뚝!

나는 도련님에게서 소세키의 인간적인 면을 엿볼 수 있었다. 그가 신경쇠약과 이로 위한 위장염에 평생 고생했듯이. 소설에서도 도련님은 바늘 하나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이 냉정하다. 하지만 바로 이런 도련님을 통해 나는 여전히 우리 주위에 판치는 위선과 아부에 대해 응징하는 대리만족을 얻는다. 차마 용기가 없어 직접 나서지 못하지만 누군가 일어서면 박수칠 준비가 되어 있는 바로 그런….

소세키는 도련님을 통해 다음과 같이 일갈한다.

"세상은 온통 사기꾼들뿐으로 서로 속고 속이며 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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