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의 배신 - 긍정적 사고는 어떻게 우리의 발등을 찍는가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배신 시리즈
바버라 에런라이크 지음, 전미영 옮김 / 부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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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바버라 에런라이크는 어느 날 유방암에 걸린다. 이제 모든 것이 달라졌다!

그녀는 미국인들이 실제로는 세계에서 가장 행복하지도 않고 가장 부유한 것도 아닌데 그토록 긍정적인 자아상을 갖고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라는 물음으로 시작한다. 마치 켈 콜먼의 '원 퀘스천'과도 같다.
이 물음에 관해서 그녀가 찾은 답은 "실은 긍정성이 실제 상태나 기분이 아니라, 세상을 설명하고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을 결정하는 이데올로기의 일부라는 것"이다. 그 이데올로기란 바로 '긍정적 사고'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고 한다. 하나는 지금 이대로 아주 좋다는 긍정적인 생각 그 자체를 뜻한다. 또 하나는 연습과 훈련을 통해 긍정적인 방식으로 생각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책 제목 '긍정의 배신'에서 알아챌 수 있듯 긍정적 사고에 대해 부정적이다. 그녀는 긍정적 사고의 핵심에 ‘불안’이 놓여 있다고 진단한다. 우주가 행복과 충만함으로 향하고 있다면 굳이 긍정적 사고 훈련을 할 필요가 있겠느냐면서, 이는 수많은 모순적인 중거에 직면한 상황에서 믿음을 주입하기 위한 것이라고 항변한다.

그녀는 미국인들에게 긍정적 사고가 뿌리내리게 된 데 대한 사적 고찰을 통해 '미국의 국가적 자부심을 강화해 나가는 과정에서 자본주의와 일종의 상징적인 관계를 맺게' 되었다고 결론 내린다. 이에 시장경제의 잔인함이 더해졌다. 즉 낙천성이 물질적 상징의 열쇠이고 긍정적 사고 훈련을 통해 누구나 갖출 수 있는 덕목이라면, 실패한 사람에게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대범하게도 '긍정적인 사고는 경제의 과잉을 변호해 주고 잘못을 덮어 주는 역할'을 강화한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자본주의의 발전과 더불어 긍정적 사고를 장려하는 것이 그 자체로 하나의 산업이 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그녀는 과감히 긍정적 사고라는 대중적 환상에서 깨어나려고 이 책을 쓰기 시작했다.

그녀는 유방암 진단을 받고 항암제 치료를 시작하던 즈음, 다음과 같은 컬럼을 보게 된다.

"내가 느끼는 행복의 근원은 다름 아닌 암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 인생의 좋은 부분이 얼마나 좋은지를 암이 알게 해 주었다."

그녀의 반응은? 셰인 J 로페즈식으로 말하자면 '그녀를 짜증나게 하고 화나게 했다.'

작가이자 운동가인 바버라 에런라이크는 일상적인 건강검진을 받았다가 뜻밖에 유방암 판정을 받고 ‘암의 왕국’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 이 점을 절실하게 경험했다. 몇 년 후 그녀는 끔찍한 화학 치료를 포함해 다양한 항암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마주친 모든 형태의 긍정적인 생각에 격렬한 비난을 퍼부었다. 그녀가 쓴《희망의 병리학(The pathologies of Hope)》이란 글은 이렇게 시작된다.

"나는 희망을 혐오한다. 몇 년 전 유방암 진단을 받은 후 나는 이 희망이라고 하는 것을 갖도록 끊임없이 강요당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세요! 희망을 버리지 마세요. 자랑스럽게 핑크 리본을 달고 다니세요.’ 2~3년 후 내가 암 추적 치료를 받은 시설의 이름이 ‘희망센터’란 사실을 발견했다. 희망이라고? 치료는 어떡하고? 희망은 무슨, 엿이나 드시지. 희망 타령하지 말고 살려나 달라고."

이런 글을 읽는 것은 고통스럽다. 하지만 누가 그녀를 비난할 수 있을까? 그녀가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시기를 지나는 동안 의도는 좋았지만 방향을 잘못 잡은 사람들이 인도한 방식이 그녀의 정신건강을 해치고 말았다(이 사람들의 말대로라면 만약 병이 낫지 않으면 그건 충분히 ‘긍정적’으로 희망하지 않아서인가?). 이 사람들은 그녀에게 희망을 갖기 보다는 소망할 것을 요구했다. 이들은 소망과 희망의 차이를 알지 못했다. 흥미로운 것은 암 치료 시설에서 환자들을 돌봐주는 사람들의 ‘소망’이 그녀를 짜증나게 하고 화나게 했다는 사실이다. 희망 수준이 높은 사람들은 압박감을 느끼면 이런 반응을 보이는 특징이 있다.(《희망과 함께 가라》112~113쪽)


의사와 간호사들도 암 환자의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태도는 면역 체계 개선을 통해 암의 위험을 줄일 수 있다고 입에 달고 살았다. 그녀는 과연 긍정적 사고가 그렇게 할 수 있는지 다양한 문헌을 검토하면서 고찰한다. 그녀의 긍정적 배신에 대한 분노를 느낄 수 있는 대목이었다.

이어 스펜서 존슨의《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론다 번의《The Secret 시크릿》과 조엘 오스틴의《긍정의 힘: 믿는 대로 된다》등 에 대해서 신랄하게 메스를 들이댄다.

가령《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의 경우 많은 기업들이 직원들에게 무료로 나눠 주면서 해고되어도 불평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불평불만하지 말고 얼른 다른 '치즈'를 찾아 옮겨가라는 식으로 말이다. 헐~

여튼 긍정적 사고는 널리 확산되어 갔다. 긍정적 사고에는 이론적 지도자와 대변인, 전도사, 판매원이 존재한다. 자기계발서 저자와 동기 유발 강사, 코치, 트레이너도 있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 중에 초대형 교회를 운영하는 긍정신학의 대부 오스틴 부부가 있다. 오스틴 목사는 우리나라에서도 히트를 쳤던《긍정의 힘》저자이다. 그녀는 2008년 여름 직접 오스틴 목사의 교회가 있는 레이크우드까지 찾아갔다고 한다.

오스틴 목사는 1999년 휴스턴 로켓 농구팀 홈구장을 사들여 1만 6천 석 규모의 초대형 교회로 개조했다. 예배 모습은 생음악이 쾅쾅 울리고 3~5분씩 짧은 설교를 하는 동안 대형 스크린에 얼굴이 확대되어 비쳤다. 설교 사이에 합창단과 리드 싱어가 무대로 나오고 신도들은 가벼운 율동으로 리듬을 맞춰 주었다. 일종의 거대한 쇼였고, 신도들은 청중이었다. 녹화된 장면은 700만이 시청하는 케이블을 통해 전파된다고 한다. 그녀의 기분은 어땠을까? "오스틴의 세계에서는 하느님마저 지자자의 역할을 할 뿐 필수적인 존재가 결코 아니었다"고 평한다. 또 헐~

저자는 긍정심리학 분야, 금융위기 등 경제 불황에 대해서도 다룬다. 그녀에 의하면 대공황 시절 자기 기만의 고전인 나폴레온 힐의 《생각하라! 그러면 부자가 되리라》를 낳았던 사례를 들면서, 시장 근본주의는 그 탐욕을 감추기 위해 긍정적 사고를 이용해 왔다.

그렇다면 긍정적 사고의 대안은 무엇일까?  그녀는 결코 '절망'은 아니라고 단언하면서 오늘의 위험을 직시할 수 있는 현실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금융 위기가 오면 그 자체로 불안하고 위험을 초래한다. 이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현실을 바꿀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긍정심리학이니 긍정적 사고니 해 봐야 다 긍정 산업에만 이익을 안겨줄 뿐이다! 또또 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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