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 1.
학원가려고 집을 나섰는데 경비아저씨가 부르셨다. 따우님이 보내주신 팔찌와 네버랜드에서 산 티셔츠가 와 있었고, 학원갔다 오면서 찾을까도 생각했지만 얼른 뜯어보고 싶은 마음에 그냥 받았다. 게으름부리느라 늦게 나와서 할 수 없이 택시를 잡아 탔는데, 도저히 안에 들어있는 물건이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결국 택시 뒷좌석에서 봉투를 뜯기 시작했다. 우선 팔찌부터 뜯어서 팔에 걸고 흐뭇한 눈길로 한번 바라봐 준 후 티셔츠도 뜯었다. 박혀있는 그림을 보느라고 티셔츠를 다 펼쳤을 때 행복에 한번 젖어준 다음 깨끗이 개고 있자니 앞좌석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아이고 아가씨 좋겠네~ 선물인가 봐요?"
"(아가씨?) 예... 뭐, 그렇죠."
"선물도 다~ 때가 있다니까요. 이십대 때나 그리 선물하지 서른 넘고 마흔 넘으면 그것도 못해요~ 허허허..."
"(덩달아) 아하하하;;"
저기, 저 이십대 아녜요ㅜㅜ;
사례 2.
오늘은 늦잠을 자서 택시를 타야만 했다. 헤롱헤롱 비틀비틀 하면서 길가에 나가 택시를 잡았는데, 기사 아저씨는 잠시도 말을 안 하면 못 견디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아침에 학원에서 단어시험칠 걸 외우고 싶고, 아침시간이라 정신이 하나도 없는데 어찌나 말을 붙이는지... 하지만 그놈의 말 좀 그만하라고 소리치고 싶은 걸 꾹 참고 그냥 맞장구치며 웃고 있었다. 이런저런 말을 하는데, 말끝마다 아가씨 아가씨였다. 그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라 택시기사는 원래 아가씨란 표현을 잘 쓰나, 했는데 적어도 이분은 정말로 날 아가씨로 보고 있는 거였다.
"이쁜 아가씨는 이번 여름에 뭐 휴가 계획 다 잡았습니꺼?"
"아뇨, 아직 모르겠네요." (속으로 '지금 이 시간에 학원가고 있구만 휴가는 무슨!' 이라고 생각했다.)
"에이 아직까지 그런 것도 모릅니까~ 여름인데 함 놀러 가야지예?"
"예에, 시원한 데 가아죠... 하하하..."
"(방금 생각났다는 듯이) 아, 애인이 어디 가자고는 안 해요?"
"예? 아하하... 없는데요."
"예쁘니까 좀 있음 생길겁니다. 하하하."
"그럼 좋겠죠. 호호호..."
대체... 열여섯인 내가 애인이랑 같이 휴가를 떠나란 말이냐ㅜㅜ
사례 3.
목요일이니까 새 영화들이 들어왔을테니 나에게 애매한 시간으로만 짜여져서 아주 속을 아프게 했던 시간표도 바뀌었으리라는 희망을 품고 영화관에 전화를 걸었다. 여느 때와 같이 자동안내 시스템이 날 반겼고 나는 나에게 딱 좋은 시간으로 바뀐 영화들이 많다는 걸 알았다. 가진 돈 다 털어서 <킹 아더>를 보기로 했다. 영화를 보려면 표를 끊어야지.
"2시 25분 킹 아더요."
"예, 한분이시죠?"
"네."
"(앗, 깜빡했다.) 아, 학생표로 주세요."
"(무지 놀랐다는 듯) 네? 학생표요? 학생증 좀 보여주시겠어요?"
"여기요."
"네, 2시 25분 킹아더, 6관입니다. 즐거운 시간 되십시오."
"안녕히 계세요."
그러니까... 내가 학생표 달라는 게 못마땅하단 거요?ㅜㅜ
최근 일주일동안 위의 사례들을 겪으며, 나는 궁금해졌다. 나는 대체 몇 살로 보이는 걸까? 대충 이십대 초반일까? 153cm의 키로 원래 나이에서 다섯살은 더 먹은 취급을 받다니. 보통 겉늙은 게 아닌갑다.
나도 내 나이에 맞게, 택시에 타면 학생 소리 듣고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십대로 보여도 내가 좋다. 어설픈 화장을 하고 돌아다니며 중학생 티를 팍팍 내는 친구들보다 그냥 스킨 로션 선크림만 바르고 깔끔한 내가 좋다. (어설픈 중학생 화장을 하면 화장을 했음에도 온 얼굴에서 나 어려요, 하는 외침이 들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