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룡산

* 지금까지는 사진에 어떤 인위적인 효과를 준 적이 없었으나 이 사진은 세 장을 붙인 사진입니다.

 


관룡사 입구의 돌문

 

관룡사 입구의 범종루

 

 

관룡사 경내와 관룡산


 


용선대 아래에서


 

관룡사 용선대(龍船臺)

 

 

용선대 아래의 사바(?) 세계

 

항마촉지인을 하고 계신 용선대 부처님


 

관룡사(창녕) 석장승


관룡사(창녕) 석장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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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its 2007-01-12 0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돌 너무 오랜만에 봐요. 좋으네요. 뜬금없이 부석사라도 다녀오고 싶은. ^^

느티나무 2007-01-12 0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관룡사도 호젓한 게 멋진 절인데... 이름이야 부석사가 훨씬 더 많이 났지만요. 그 근처에선 창녕까지 꽤 먼 절이지요? ㅎㅎ 부석사가 낫겠네요. 부석사, 저도 가고 싶어요. ㅋ

글샘 2007-01-12 1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관룡사 함 가야겠습니다. 창녕이면 가깝고 좋네요. ^^

느티나무 2007-01-12 2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창녕은 관룡사 아니더라도 진짜 볼 게 많은 곳이지요.^^ 가족 여행으로 딱, 좋은 곳!(분회 답사 코스로도 참 좋아요.) 시내는 걸어서 진흥왕순수비, 창녕 석빙고, 창녕 박물관, 고분군, 술정리동3층석탑, 하병수가옥까지 진짜 풀코스로 답사 다닐 수 있는 곳입니다. 영남지역의 답사코스로는 환상적이지요!
 

   며칠 전부터 아내랑 가야산 남산제일봉으로 산행을 다녀오기로 했다. 남산제일봉 입구에 있는 청량사에서 시작해서 남산제일봉에 오르고, 해안사 아래에서 하룻밤을 자고, 다음날은 해인사와 주변 암자를 여유있게 둘러 보고 올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1박을 하는 건 우리 어머니의 반대로 무산(진복이를 돌봐 주시기로 했기 때문에 허락이 있어야 한다.)되어서 당일 산행으로 바뀌었다. 대신 아침 일찍 출발하기로 했다. 남산제일봉은 부산에서 대중교통으로 가기가 무척 힘든 곳이라 부모님께 하루만 낡은 자가용도 빌렸다.

   산행 준비물을 대충 다 챙겨두었고, 미리 사전 조사도 좀 해 두어서 가는 길에 현풍나들목에서 나와 유명한 곰탕집에서 아침을 먹고, 남산제일봉 산행을 한 다음 산채비빔밥으로 늦은 점심을 먹기로 했다. 완벽하게 준비해서 뻥 뚫린 고속도로를 달렸고 현풍 나들목을 나왔다.

   그런데 갑자기 자동차가 하얀 연기를 뿜으며 초록색 액체(부동액)를 내뱉고 있었다. 예감은 안 좋았지만, 보험사에 연락을 해서 일단 견인 조치를 했다. 현풍에 있는 정비센터에서 여러가지 점검을 해 보더니,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며 한 세 시간 정도 수리를 해야한다고 했다. (얼굴에 성실이라고 써 붙여놓은 사장님이 믿음직스럽게 말씀하셔서 좋았다.)

   세 시간이라... 좀 난감했다. 현풍은 그냥 늦은 아침을 먹기 위한 곳이었는데, 그곳에서 세 시간을 보내고도 예정대로 산행을 한다는 건 불가능했다. 우리가 여행가고 있다는 걸 아신 사장님이 정비센터 차를 빌려 주겠다고 했다. 멀리 가는 건 어렵고 가까운 곳에서 일단 아침 먹고, 근처의 비슬산 휴양림에나 다녀오라고 하셨다. 뾰족한 수가 없었기에 일단 차를 빌리고, 읍내의 곰탕집을 찾아갔다.

   곰탕 치고는 비쌌지만, 국물 맛이 진하고 부드러워 아내는 꽤 만족했다. 그래도 시간이 꽤 남았는지라 사진기 챙겨 들고, 예전부터 현풍에 오면 꼭 가보고 싶었던 도동서원으로 향했다. 도동서원으로 가는 길은 꽤 멀었다. 재를 넘고 나니 안온한 시골 마을이 펼쳐지고, 마을 앞으로 흐르는 강이 잘 내려다 보이는 곳에 도동서원이 자리잡고 있었다. 

   조선의 5대 유학자인 김굉필을 기리는 사당과 함께 근처의 유생들이 공부했던 서원으로 사액서원이었다. 서원 앞에 400년 된 은행나무도 장관이었고 특히, 건물을 올리기 위한 석축의 기단부를 짜 맞춘 솜씨가 기가 막히게 자연스러웠다.햇볕이 들어 따뜻하고, 사람 없어 한적한 도동서원에 앉아 사진을 몇 장 찍고 있는데, 그런데 갑자기 사진기의 배터리가 나갔다. 아내와 둘이서 한참을 웃었다. (최근에 우리집의 가전제품이 모조리 고장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텔레비전, 컴퓨터, 김치냉장고가 고장이 났었고, 오늘 자가용에다 사진기까지 ^^)

   도동서원에서 나와 이번에는 유가사와 비슬산으로 향했다. 비슬산에는 휴양림의 얼음공원이 볼 만하다는 정비센터 직원의 말 때문을 들른 곳인데, 실망 그 자체였다. 거기까지 차를 몰고 간 시간과 주차료, 입장료 모든 게 아깝더라. 얼른 방향을 유가사 쪽으로 향했으나 유가사 입구에서 그냥 차를 돌리고 말았다.

   정비센터에 들르기 전에 우리가 쓴 기름을 채워넣고 돌아왔다. 그러나 차는 한창 조립하는 중이었다. 그냥 서 있기 뭐해서 이번에는 마을 구경을 나섰다. 마침, 당당한 고가(古家)가 눈에 띄어 그 쪽으로 천천히 걸었다. 여느 평범한 시골 마을이었다. 동네를 한 바퀴 돌아서 내려왔다. 돌아오니 오후 3시 30분 수리가 얼추 끝났다. 차를 건네 받고 진짜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해가 곧 질테니 시간이 별로 없었다. 돌아오는 길, 거기서 가까운 관룡사 아래의 쌈밥으로 저녁을 먹기로 했다. 창녕과 영산 사이, 화왕산 아래에 고즈넉히 자리잡은 관룡사는 아내와 가끔 갔던 곳이다. 관룡사에 닿으니 해가 곧 지려고 했다. 절에는 답사를 나온 듯한 대학생 일행들 밖에 없었다. 우리는 절을 휑하니 둘러 보고, 용선대로 향했다. 이른 아침, 해가 뜰 때의 용선대는 진짜 장관이지만, 해가 다 기울어가는 때도 온 하늘에 붉으스름한 기운이 퍼져 멋있었다. 우리 뒤를 이어 절에서 본 학생들이 올라왔다. 내가 단체사진을 찍어줬더니, 답례로 관룡산을 배경으로 해서 아내와 나의 즉석사진을 찍어줬다.

   용선대를 내려와 절 입구에 서 있는 창녕 석장승을 살펴 보았다. 매번 관룡사에 올 때마다 제대로 못 보고 그냥 지나친 경우가 많아서 이번에 꼭 보리라고 마음 먹고 있었는데, 보게 되어 다행이다. 잘 생겼다는 소문대로 깔끔한 모습이다.

   드디어 해는 완전히 졌고, 저녁을 먹기로 한 곳에 도착했다. 갓 지은 밥을 온갖 쌈과 집된장, 산나물을 반찬으로 해서 맛나게 먹었다. 배가 불러도 숭늉까지 다 마시고, 일어섰다. 돌아오는 길도 별로 막히지 않아 예상한 대로 도착했다.

   차 고치러 떠난 여행인 셈이 되고 말았나? 그랬을 수도 있었지만, 그래도 맛있는 거 먹고, 함께 다니면서 행복한 추억거리를 만들었으니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이래저래 또 한 번 잊을 수 없는 여행이었던 듯 하다.

 * 아내는 남산제일봉의 그 멋진 경치가 못내 그리운가 보다. 공부하는 선생님들이랑 함께 갔으면 좋겠다고 오늘도 얘기를 꺼낸다. 언젠가 그런 날이 다시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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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10월 공부방 20주년 기념식 무렵이었을 거다. 사진 찍을 일이 있어 사진기를 가지고 갔다가 공부방 옥상에서 시내 야경을 찍었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경치! 공부방에서 공부를 끝내고 집으로 내려가는 길에 늘 보는 모습이다. 음, 저 경치 때문에 아직도 공부방에 계속 발을 담그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부산항 야경1

 

부산항 야경2

 

부산항 야경 3

 

부산항 야경4

  사진 보니, 역시 사진을 찍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야경 사진은 정말 엉망으로 나왔네. 삼각대도 없어서 그냥 마구 찍었더니 겨우, 흔적만 알아 볼 수준이다.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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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품을 닮은 지리산, 그 속에 아름다운 절을 찾아서

  왜 지리산인가? 지리산의 모습은 한국인의 속으로 정 많은 심성과 닮았다. 그 깊이와 폭을 가늠할 수 없으면서도, 언제나 후덕하고 시련을 꿋꿋하게 이겨나가는 우리의 모습이 바로 지리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지리산에도 그 속에 품은 절이 없다면, 그 절과 함께 오랜 세월을 살아 온 사람들의 흔적이 없다면, 지리산도 우리나라 사람의 참모습을 닮았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지리산과 그 품안의 절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살아온 삶의 자취와 오늘의 모습, 그리고 미래까지도 오롯이 보여주는 곳이다. 이 땅에 사람이 살기 시작하면서 생겨난 지리산 성모설화의 배경인 노고단, 삼국시대와 신라시대에 지어진 쌍계사, 연곡사, 화엄사, 천은사, 실상사. 그 절의 속살을 채운 고려와 조선의 유적들이 과거의 모습이라면, 물 맑은 섬진강, 쌍계사의 벚꽃 길, 연곡사의 계단식 논밭, 천은사의 석축은 현재를 일구어 가는 우리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 지를 보여준다. 실상사 주변의 생태 논밭과 그 절에서 수행 정진하는 스님들의 모습은 우리나라의 밝은 미래를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하동 쌍계사의 벚꽃과 쌍계 - 지리산의 계곡이 품은 절

  봄날, 쌍계사로 들어가는 입구는 사람들로 장사진이다. ‘전라도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섬진강’ 끝의 화개 장터에서 시작된 벚꽃이 말 그대로 십리. 벚꽃 길의 벚꽃만큼이나 사람도 많다. 모두 어우러져 장관이다. 그러나 어느 때 가도 기본은 갖춘 절이 쌍계사이다. 쌍계사는 계곡으로 이름난 절이다. 쌍계사는 최치원이 '쌍계'라는 석문을 써서도, 섬진강 그림자를 본 딴 팔영루 때문도, 절집이 우아하거나 아름다워서 이름이 높은 게 아니다. 오직 쌍계사의 그 이름처럼 절을 깊게 두르고 있는 두 계곡(=쌍계)이 이름값을 한다.
  심지어 나라에서 국보로 지정한 "진감선사 부도비"도 보통의 관광객에겐 별로 의미가 없다. 오히려 담장에 기와 조각을 넣어 만든 소박한 꽃문양이 우리나라 사람의 소탈하고 자연스러운 것을 좋아하는 성품과 더 닮았다.
  쌍계사가 이름 높은 이유는 지리산이 품고 있는 비경인 불일폭포 때문이기도 하고, 그 물을 받아 잘 자라는 녹차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니 번잡한 것을 싫어한다면 쌍계사는 들르지 않아도 좋다. 다만 벚꽃이 핀다면, 그 어떤 수고를 하더라도 벚꽃 길을 걸어보는 맛도 있다. 차로 휙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벚꽃 길을 걸으면 산 중턱에 드문드문 자리 잡은 차밭도 눈에 들어올 것이다.
  참, 그리고 범종각 앞에 소담스럽게 핀 연보랏빛 수국과 절집 담장을 따라 핀 천리향, 분홍 꽃빛이 든든한 배롱나무, 그리고 흔하디흔한 나리꽃도 좋은 물과 함께 해서 그런지 참 예쁘다.

 

구례 연곡사의 부도 - 나라 안 최고 작품 두 가지

  연곡사와 관련하여 우리나라 안 최고 작품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피아골에 펼쳐진 계단식 논밭이고, 다른 하나는 이름난 승려들의 사리를 보관하기 위해 만든 돌조각품인 부도이다. 
  지리산 중에서도 가장 단풍이 곱다는 피아골을 따라 깊숙이 들어가다 보면 산 중턱에 어떻게 저런 곳에도 밭을 일구었을까 싶은 산중턱의 밭들이 나온다. 층이 많은 곳은 100여 층도 넘는다고 하니 농부들의 지혜가 사뭇 놀라울 따름이다.  
  쌍계사가 계곡의 절이라면 연곡사는 부도(이름난 승려들의 사리를 넣어둔 돌조각)의 고향 같은 절이다. 우리나라 모든 부도의 아름다움이 이곳 연곡사에서 나와 다시 이곳에 모인다. 지리산 피아골에 사는 사람들의 억센 기운을 보여주는 계단식 논밭을 거슬러 올라 피아골 적당한 중턱에 자리 잡은 연곡사는 공간이 넓지 않음에도 규모가 굉장히 크게 느껴진다. 아마도 담장이나 번잡한 무엇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중심 건물인 대적광전 앞 꽃밭이 정갈하게 가꿔져서 절 주인의 정갈한 솜씨가 배어난다.
  우리나라의 최고 수준의 부도는 대적광전의 산기슭에 앉아 절을 내려다보고 있다. 이름은 건물의 동쪽에 있어 동부도. 연곡사 동부도는 아마도 탑으로 치면 불국사 석가탑의 엄정함과 단아함, 다보탑의 화려함과 산뜻함을 절묘하게 섞어 놓은 것 같다. 차갑고 시커먼 돌덩이에 이렇게 환상적이고 멋진 옷을 입혀놓을 수가 있을까 싶다. 연곡사 동부도만으로도 한국 전통 예술의 자랑스러움을 설명할 수 있다. 돌에다 생명력을 불어넣는다는 것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동부도의 아름다움은 바로 위의 북부도와 반대편의 서부도, 그리고 주인을 알 수 없는 다양한 부도들과 비교해 보면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다른 부도들은 줄을 잘 못 서서 괜히 억울할 것 같다. 이들도 다른 곳에 있었으면 그래도 꽤 괜찮은 평을 들었을 텐데, 사람들이 연곡사 동부도를 보고 난 후에는 아무래도 (눈이 높아져서) 평가가 박하다. 

 

구례 천은사 - 아름다운 전설과 우아하고 정갈한 분위기

  천은사(泉隱寺-샘이 숨은 절이라는 뜻이다.)는 분위기의 절이다. 그리고 자리 잡음의 절이기도 하다. 이 절집의 분위기는 절집 앞에 내려다보이는 커다란 호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절을 둘러싸고 있는 지리산의 분위기에서 느껴지는 것이다. 지리산의 끝자락인 노고단 아래에 푹 둘러친 곳에 앉은 것도 그렇고, 절집의 공간을 끌어당기기 위해 일주문 옆에 헛담(담의 기능을 하지 않는 담)을 세운 것도 그렇다.
  천은사에서는 입구의 감로수(甘露水)를 반드시 마셔야 한다. 한숨 돌리고 감로수를 마시며 천은사의 전설을 들어야 절이 새롭게 보이기 때문이다. 천은사의 원래 이름이 감로사였다. 그 감로수 때문에 절이 세워진 것인데, 그 물에서 뱀이 나왔다고 한다. 그래서 절에 사는 스님들이 그 뱀을 잡아서 죽였더니 이제는 절에 화기가 일어 불이 자주 났다. 이 때 조선시대의 명필 원교 이광사가 "지리산 천은사" 라는 편액을 마치 물이 흘러가는 듯한 글자체로 쓴 이후부터는 절에 불이 한 번도 나지 않았다고 한다.
  천은사에 들어서면 눈에 잘 띄는 것이 자연석을 아주 잘 써서 건물의 터를 잡고, 공간 배체에 활용했다는 것이다. 천은사의 돌담과 돌계단이 오랜 세월에 잘 갈린 것처럼 둥글둥글하며 적당히 색이 바랬고(사실 은행잎이 노란 가을엔 천왕문 뒤에 선 은행나무 때문에-지천이 노란색이다- 정말 장관이다.) 알맞게 높으며 또 곧다.
  천왕문 앞에서 바라본 ‘보제루’의 기둥 쓰는 법은 사람들에게 자연스러움이란 무엇인지를 말없이 가르쳐준다. 스님들 넉넉한 마음 씀씀이 덕에 보제루에 앉아서 현판을 쓴 호남 명필 "창암 이삼만"을 떠올리며 지리산을 바라보면 좋다. 아픈 몸으로도 평생 벼루 10개를 붓으로 뚫고 천 개의 붓을 사용했다는 사람이 이삼만이라는 사람이다. 그러니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이 보여도 저 정도의 글씨가 나오려면 보통 내공으로는 할 수 없는 것이다. 천은사 담벼락에 곱게 핀 능소화가 천은사 분위기를 닮아 유달리 우아하고 정갈하다. 

 

남원 실상사 - 현재보다 미래가 더욱 기대되는 희망의 공동체

  천은사에서, 우리나라에서 차가 가장 높이 올라갈 수 있는 곳이라는 성삼재에 차를 두고 잠시 야생화의 천국인 노고단을 올라보는 것도 좋다. 10년도 넘게 걸린 야생화 복원 프로그램 덕에 겨우 본래의 모습을 회복하고 있는 한 노고단에서 지리산 10경 중의 하나인 운해를 볼 수 있으면 더 좋을 것이다.
 성삼재를 지나 도로를 달리면 전라북도 남원이다. 남원은 그 유명한 춘향이의 고향이고, 이곳 남원과 이웃 동네 함양 어름엔 흥부/놀부 형제가 살았다는 곳으로 우리 문학에 자주 등장한다. 남원읍에서는 꽤 떨어진 한적한 시골 마을, 지리산의 맨 끝자락에 실상사가 있다. 실상사 앞 계곡을 건너는 다리를 지나면 바로 돌장승이 서 있다. 힘들고 어려운 현실을 웃음으로 극복해 온 삶의 모습 그대로, 익살이 잔뜩 묻어나는 웃음을 터트리고 있다.
  실상사 주변의 논과 밭은 한국 농업의 미래를 좌우할 실험실이다. 실상사에서 운영해 온 귀농학교 출신들이 이곳에 터를 잡고 다양한 생태 농업을 연구하고, 실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상사에서 눈여겨 볼 보물은 보광전 앞의 동서 3층 석탑이다. 우리나라 최고의 탑인 석가탑과 다보탑의 상륜부(탑의 맨 꼭대기를 해당하는 부분)를 복원할 때 그 원형을 자세히 알 수 없어서, 이곳 실상사의 동서 3층 석탑 상륜부를 본 따서 만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보면 볼수록 석가탑의 모습과 닮았다는 느낌이 든다.
  실상사에도 멋진 유물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 절에는 ‘이것을 봐야 한다.’는 무엇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도 실상사를 찾는 이유는 절에 살고 있는 사람의 마음씨가 좋기 때문이다. 세상 만물은 생명체의 한 그물로 얽혀있어 서로 존중해야 한다는 ‘인드라망’ 공동체 운동의 중심인 실상사답게 수행자만을 위한 절이 아니라 낯선 타인을 배려할 줄 아는 절이다. 그런 마음들은 생태 뒷간을 비롯해서 절집 곳곳에서 묻어 나온다.
  미래의 한국 불교를 이끌어 갈 젊은 스님들이 치열하게 고뇌하는 절! 작은 배려로 사람을 흐뭇하게 만들 줄 아는 절! 절도 이웃들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실천하는 절! 아직은 겉멋이 들지 않아 풋풋한 사람 냄새가 나는 절이 바로 실상사이다. 
그래도 실상사에서 볼거리를 찾아 두리번거리다 실망한 사람은 실상사에 속한 실상사 백장암으로 가면 된다. 백장암은 실상사로부터 약 6-7킬로미터 떨어진 산 속에 있는데 우리나라 조상들이 얼마나 돌을 기막히게 다루었는지를 실증한 탑이 있다. 깊은 산 중에 제대로 기단(탑의 밑받침)도 갖추지 못한 탑이 국보 제 10호! 이 탑의 화려하면서도 섬세한 조각은 연곡사 동부도에나 비길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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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7-01-06 2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글을 보니 지리산의 모습이 맘속에 환히 더오릅니다. 그러고 보니 연곡사는 가본지 꽤 됐네요. 퍼갈게요.

마노아 2007-01-06 2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답사여행을 많이 가보진 못했지만 가장 인상적으로 가보았던 지리산 일대의 사찰이네요. 유독 반갑습니다. 저도 바람돌이님처럼 퍼갈게요. 정리를 아주 잘 해주셨어요^^

느티나무 2007-01-06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마노아님 퍼 가신다니 부끄럽구요. 연곡사 동부도는 진짜 최고지요.^^ 아는 분이 외국인에게 소개할 경우가 있다고 하셔서, 그냥 써 봤어요~!!

2007-01-07 20: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느티나무 2007-01-07 2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여 주신 님, 좋은 글이라고 말씀해 주시니 고맙습니다. 저 곳으로 여행 다녀 보시면 제 글이 실상에 턱 없이 못 미친다는 걸 아시게 될 겁니다. ^^;;
 

 

  이곳을 찾는 모든 분들과 함께, 기쁜 성탄을 축하합니다.

  

  온 세상에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러 오신 분이시기에

  더욱 더 아기 예수님의 탄생의 의미를 되새겨보게 됩니다.

 

  모든 이들에게 즐겁고 기쁜 '크리스마스'도 좋지만,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에게 작은 '위로'가 되는 '예수의 탄생'이었으면 좋겠습니다.

 

 

 * 원래 크리스마스의 의미는 '그리스도의 미사'라는 뜻이었다고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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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6-12-24 0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느티나무님. 크리스마스에 그런 의미가 담겨 있군요. 덕분에 배우고 갑니다. 느티나무님도 행복한 성탄절 보내셔요~ 모든 이에게 작은 위로가 되는 아름다운 시간을 기원해요~

느티나무 2006-12-24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마노아님도^^ 아마도 그런 뜻으로 들은 기억이 납니다. Christ+mass(미사)라는 말이 그 기원이라던데... 어디가서 이걸로 내기하시면 그건 제가 보증은 못합니다. ^^;; 성탄절을 알라딘과 보내시나 봅니다. 뭐, 무엇이든 자기가 좋은 일이면 다 좋은 거죠~! 만나서(?) 반가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