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꽃도 활짝 피었지만, 어제는 화사한 봄빛 대신 짙은 황사 때문에 뿌옇기만 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사람 몸을 망치는 이 먼지에 몸도 마음도 힘드시지 않으셨는지요?

   학부모님, 안녕하십니까? 저는 올해 댁의 귀한 자녀의 담임을 맡은 3학년 4반 담임교사 느티나무라고 합니다. 저번에 학부모 간담회에 오셨던 부모님들께는 짧게나마 인사를 드렸는데, 제가 아직 한 번도 인사를 못 드린 분이 더 많지요? 저는 국어 과목을 담당하고 있고 올해 경력 9년차 젊은 교사입니다. 제가 매를 잘 들지는 않지만, 성격은 꼼꼼하고 진지해서 아이들이 조금 힘들어할 때도 있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덕천동에서 쭉 자랐고, 지금도 화명동에 살고 있는지라 이 동네가 아주 친숙하게 느껴집니다. 전임지인 화명고에서 낙동고등학교에 온 지는 3년이 되었고, 지금 우리 반 아이들이 1학년 때부터 3년 동안 함께 생활해 와서 아이들과는 조금 친숙한 편입니다.

   해마다 아이들을 만나는 기분이야 늘 설레고 기쁜 일이지만, 올해는 3학년을 맡아 마음이 좀 무겁고 책임감이 느껴져서 걱정도 많았습니다. 부모님들께서 생각하시는 것처럼 입시성적이 중요한 시기인데, 우리 학교 학생들의 성적이 그리 뛰어난 편이 아니라서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아이들도 2학년 때와는 달리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으니, 지금보다는 나아지리라는 희망을 가져봅니다. 조금 더 일찍 철들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지금이라도 마음을 다잡으면 못할 것도 없다고 봅니다. 아이들이 지난 3월에 굳게 먹었던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담임으로서 최선을 다해 학급을 운영해 볼 계획입니다.

   저는 늘 아이들이 학교에서 행복하게 생활하는 꿈을 꿉니다. 미래를 위해 현재가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라 즐거운 현재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제일 중요한 공부도 스스로 즐겁게 할 수 있어야 가장 효과가 크고 의미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반은 모두 45명인데, 그 중 세 명은 다른 학교에서 위탁교육을 받기 때문에 교실에는 42명이 늘 같이 생활합니다. 대체로 ‘순둥이’들이라 별로 큰 탈 없이 제 시간에 오고 아침 영어듣기부터 정상 수업, 보충수업, 방송수업, 자율학습을 잘 해오고 있습니다. 보충수업은 하루에 두 시간씩 해서 모두 10시간을 듣고, 화요일과 목요일은 EBS방송수업을 시청합니다. 자율학습은 10시에 끝나는데, 우리 반에서는 학원 수강, 독서실, 가정 학습 등의 사정으로 자율학습에 10명 정도가 불참하고, 교실에는 대략 서른 명 정도가 남아 꾸준히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11시까지 남아서 할 학생들은 개인별 자리를 부여받아 정독실을 이용합니다.) 토요일에도 휴무일 없이 학교에 나와서 방송수업과 자율학습을 오후 5시까지 합니다. 

   지난 3월 2일에 진급해서 3학년이 된 녀석들에게 가장 중요했던 일은 3월 14일에 친 학력평가였습니다.(성적표는 지난 30일에 학생 편으로 보냈습니다.) 생각만큼 성적이 잘 안 나온 듯합니다. 원래 공부가 단기간에 금방 성적이 오르는 게 아니니까 지금은 다른 생각은 하지 말고, 일단 최선을 다해서 공부하는 것에 집중하는 게 필요하다고 이야기를 해 줬습니다. 아이들이 동요 없이 공부에 집중할 수 있도록 가정에서도 많이 격려를 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4월에도 학력평가가 있고(18일), 4월 30일부터 5월 3일까지는 3학년 내신 성적에 중요한 중간고사 기간입니다. 노력한 만큼의 결과가 나오는 것이니까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가정에서도 함께 애쓰시면 좋겠습니다.

   이후로도 학교의 중요한 연락 사항이나 학생의 개별 신상에 관한 내용은 휴대전화기 문자메시지를 이용해서 자주 연락드리겠습니다. 부모님께서는 담임인 저에게 하실 말씀이 있으시면 언제든 전화해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제 연락처는 010-OOOO-0000입니다. 학교전화는 337-0000로 하시고 연결번호는 000번입니다.

  중간고사 후에 다시 편지로 연락드리겠습니다. 그 동안 저는 아이들과 행복하게 지낼 테니 학부모님들께서도 가정에서 건강하고 평안하시기를 빌겠습니다.

지금까지 3-4반 담임 느티나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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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7-04-03 2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부모가 아닌데도 감동 먹었어요. 감사해서요.

느티나무 2007-04-03 2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님은 선생님이시잖아요^^ 그냥, 올해는 가정통신문을 좀 열심히 써보려고 생각했거든요~!
 

산을 오르며


- 도종환


산을 오르기 전에 공연한 자신감으로 들뜨지 않고

오르막길에서 가파른 숨 몰아쉬다 주저앉지 않고

내리막길에서 자만의 잰걸음으로 달려가지 않고

평탄한 길에서 게으르지 않게 하소서


잠시 무거운 다리를 그루터기에 걸치고 쉴 때마다 계획하고

고갯마루에 올라서서는 걸어온 길 뒤돌아보며

두 갈래 길 중 어느 곳으로 가야 할지 모를 때도 당황하지 않고

나뭇가지 하나도 세심히 살펴 길 찾아가게 하소서


늘 같은 보폭으로 걷고 언제나 여유 잃지 않으며

등에 진 짐 무거우나 땀 흘리는 일 기쁨으로 받아들여

정상에 오르는 일에만 매여 있지 않고

오르는 길 굽이굽이 아름다운 것들 보고 느끼어


우리가 오른 봉우리도 많은 봉우리 중의 하나임을 알게 하소서

가장 높이 올라설수록 가장 외로운 바람과 만나게 되며

올라온 곳에서는 반드시 내려와야 함을 겸손하게 받아들여

산 내려와서도 산을 하찮게 여기지 않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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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2007-03-28 2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런 마음으로 살고 싶다^^
 

   교무실이란 좁은 공간에서 거의 열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아침부터 밤까지 일상을 보낸다. 오랜 시간을 같은 공간에 있지만, 나는 그들을 잘 모른다. 그러나 가끔 그들을 잘 안다고 '착각'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늘 쓰는 말 때문이다. 그들의 말을 통해 그들이 어떤 사람이라고 알고 있는 내가 착각하는 것인가? 아니면, 말이 곧 그 사람인가? 요즘 가끔씩, 귀를 닫고 싶은 말이 들려 괴롭다.

 - 근데 이런 우문에 상관 없이 내 말은 내 생각을 정확하게 담도록 애쓰는 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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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학교 노교사, 교육 희망을 보다 - 이원구 선생님의 교육에세이
이원구 지음 / 우리교육 / 2006년 11월
평점 :
절판


 1. 안준철 선생님의 <들풀>

들풀

- 안준철

들풀을 보면 생각난다.

이름으로 불러 준 적 없는 아이들

마음으로 읽고

눈빛으로 알고

따스히 흘러

빗장을 열게 하는 사랑

나눠 준 적 없는 아이들

그런 사랑 받아 본 적 없어

더 가슴 태웠을 것을

더 다가오고 싶었을 것을

들풀을 보니 생각난다.

화사하지 못하여

키에 가리워

먼발치로만 서성이던 아이들

한 번 더 다가섰으면

꽃이 되었을 우리 아이들


안준철,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한동안 이 시가 좋았다. 그래서 좋아하는 여러 선생님들께 나눠주기도 했다. 들풀 같은 우리 아이들, 많이 사랑해 주십사는 의미였다. 어느 순간, 산에 들에 피어난 들꽃의 이름을 외우려고 애쓰는 내가 부끄럽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들꽃의 이름을 알려는 노력을 아이들의 삶을 이해하는데 쏟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이제는 그 강박관념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다.

   그런데 시간이 다시 한참이나 지난 후, 지금은 이 시가 참 좋다. 이 시를 쓴 안준철 선생님을 직접 만나 뵌 게 이유기도 하지만,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시인이 그런 것처럼, 들풀의 아름다움을 아는 사람이 들풀 같은 우리 아이들의 아름다움을 모를 리가 없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것을 사랑하는 것은 사람의 본성이 아닐까? 이 시를 읽을 때 마음의 울림이 오는 사람이라면 들꽃의 아름다움만 취하지 않고 우리 아이들의 참모습에도 따스한 눈길을 전하는 감성이 함께 있다고 믿는다.

   들꽃 학교 노교사, 교육희망을 보다, 라는 책은 들풀의 아름다움에 빠진 한 교사의 교단생활 이야기다. 아니, 들꽃 같은 우리 아이들의 풋풋한 아름다움에 취해 살아온 세월에 대한 이야기기라고 말해야 의미가 더 정확하게 전달될 듯 싶다. 생각은 많지만 행동은 머뭇거리는 교사가 아니라,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은 그대로 행동으로 옮기며 살아온 ‘교육운동가’답게, 아름다운 들풀을 학교 구석구석에 옮겨 심고 가꾸는 과정을 통해 다른 교사들과 아이들에게 들풀의, 교육의, 나아가 인생의 새로운 의미를 조근 조근 말해주고 있는 책이다. 새 학기가 되면 새 학교로 옮겨 온 새싹 같은 아이들과 한 평생을 살아온 이야기가 넉넉하게 담겨있으니 지금 아이들과 함께 하는, 함께 하고픈 모든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책이리라고 믿는다.

2. 주말 농사 실패하다.

   한 4년 전인가 보다. 그 때는 나도 여러 선생님들 틈에 끼여서 노조 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 선생님 중에 한 분이 부산에서 가까운 김해에 노는 땅을 얻으셨고, 그 때 노조에서 함께 일하던 사람들끼리 주말 농사를 지어보자며 희망하는 분들에게 그 밭을 두 고랑씩 분양해 주신다기에 앞 뒤 재보지도 않고 덜컥 분양을 받았다. 아마도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보낸  사람이 느끼는, 도시 생활에 대한 어떤 결핍감 같은 게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 밭은 대중교통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곳이라 자가용이 없는 나는 여간 불편하지 않았다. 그래도 한동안은 들뜨고 기쁜 마음이 계속되었다. 밭에는 종묘상에서 산 상추와 쑥갓의 씨를 심었고, 고추와 방울토마토는 어린 모종을 옮겨다 심었다. 씨와 어린 모종에다가 거름도 주고, 물을 흠뻑 뿌려 주면서 나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서너 달 후에 제대로 수확을 하면,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 웃으며 내가 키운 고추라며 한 봉지를 슬쩍 내놓을 수 있으리라는!

   그러나, 해도 해도 끝이 없던 학교 업무와 노조의 일에 밀려서 겨우 주말에나 가서 얼굴만 내밀던 일도 점점 뜸해지고 말았다. 나중에는 내 고랑의 어린 새싹들이 어떤 상태로 있을 지 뻔히 눈앞에 보이는 듯 해서 밭을 찾는 발걸음이 더욱 무거워졌다. 당연히 그해 주말농사는 완전 망했다. 무참하게도 다른 건 한 번도 수확하지 못 했고, 물만 주면 자란다는 상추만 겨우 두어 번 뜯어서 집에 가져왔을 뿐이다.

   다음해엔 텃밭을 분양받지 않았지만, 이후에도 미련이 남아서 조금 넓었던 아파트 베란다에 고추와 상추를 다시 심었으나, 그것도 제대로 수확 한 번 못했다. 아내에게 큰소리를 쳤던 나는 다시 무안했다.

   텃밭을 일구려고 했던 나는 안다, 들꽃 학교의 텃밭에서 채소를 심고 그것을 가꾸는 일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님을! 그리고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나는 안다, 아이들이 잘 자라려면 교사의 온 정성과 사랑이 필요하다는 것을! 실패를 해 보니 더욱 잘 알겠다. 농사나 교육은 농부나 교사의 꾸준한 관심을 거름 삼아 그 대상이 본바탕을 꽃피운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은 것이다. 이 자명한 진리를 이 책에서 다시 배운다.

3. 나도 아름답게 늙을 수 있을까?

   2007년 3월, 올해로 학교에 들어온 지 9년차이다. 아직도 많은 것이 서툴기만 한데 벌써 꽤 시간이 지나버렸다. 처음 발령을 받고 학교에 출근하던 날의 기억도 또렷한데, 내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십년의 세월이 흐르는 것이다. 이럴 때 ‘시간, 참 빠르다’라고 하는가 보다. 그러나 나는 시간이 갈수록 경험이 쌓여 안정감이 드는 것이 아니라 늘 무엇인가에 쫓기는 듯 불안함이 든다.

   교사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는 다양한 답이 나올 수 있지만, 나는 요즘에 인간이라는 존재의 중요하고도 특별한 한 시기(‘질풍노도기’라는 말이 정확하다는 생각이 든다.)에 있는 인간과 소통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 전문가라고 말하고 싶다.

   그런데, 이 불안함의 원인은 바로 이 소통의 문제 때문에 온다. 교사의 나이가 적을 때는 전문성에 대한 훈련만으로도 특별한 노력 없이 자연스럽게 학생들과 소통이 가능하지만, 물리적인 나이가 들고, 경험을 통한 자신의 생각이 굳어지기 시작하면서 아이들과 소통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것을 많이 보았다. 심지어는 아이들과 수업하기 힘들어서 승진 준비를 한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떠도는 것이 학교의 현실이기도 하다.

   아직 과문한 탓이겠지만, 후배 교사가 보기엔 참 아름답게 늙어가는 선배 교사를 그리 많이 보지 못 했다. 승진 욕심에 물불을 가리지 않으니까 머릿속에서 ‘교육’이라는 단어를 지워버린 사람들도 많고, 무욕(無慾)한 듯 보이는 분들도 따분한 일상에 무기력하게 반응하거나, 모든 일들에 오직 자신의 ‘나이 먹었음’만이 논리의 모든 근거가 되어 학생들은 고사하고 후배 교사와의 소통마저 힘든 경우도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시간이 갈수록 나는 불안하다. 나도 저렇게 늙어갈까 봐 말이다. 지금 내가 싫어하는 모습을 보이는 분들도 내 나이 때는 선배 교사를 보면서 나처럼 생각했을 테니까.

   누구나 초임 교사 시절에는 아이들의 삶을 이해하기 어려워질 때 교단에서 내려오기를 꿈꾼다. 그러나 세월은 살 같이 흐르고, 또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그 꿈을 실천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런데 나는 이상하게도 처음부터 그런 마음이 들지 않았다. 대신 정년 때까지 평교사로, 교실을 지키는 이름 없는 노병(老兵)으로 사는 꿈을 꾸었다.(늙으면 천덕꾸러기가 되는 것은 아닐까, 싶은 두려움이 아직도 많다.)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달라질지 모르지만, 오늘 나는 거기에 다른 꿈을 새로 꾼다. 내가 학교에서 늙은 교사가 되었을 때 후배 교사가 스스럼없이 찾아와 도와달라고 부탁할 수 있는 그런 교사가 되고 싶다는 꿈 말이다. 모든 것이 순식간에 변하는 세상의 흐름을 볼 때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싶다만, 꿈조차 꿀 수 없는 것은 아니니까 마음속에 오롯이 큰 꿈을 품어 본다.

  그런데, 나는 요즘 내 큰 꿈에 등불을 밝혀 준 이를 책에서 만났다. 그 분이 바로 들꽃 학교 노교사, 이원구 선생님이시다.

  정녕 아름답게 늙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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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2007-03-11 0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제목과 본문의 내용은 별로 관계가 없어요. 글만 써 넣고 올리려니까 제목을 넣으라는 안내 메시지가 나왔고, 요즘 개인적인 고민 때문에 일주일이 넘게 학교를 안 나오고 있는 OO이가 생각 났어요. 빨리 힘내고 기운 차려서 학교에 다시 나왔으면 좋겠다는 의미로 제목을 붙였습니다.

2007-03-11 01: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글샘님이 내 서재 방명록에 짧은 글을 올리셨기에 거기에 댓글을 달다가 우연히 밑에 달린 글들도 쭉 한 번 읽었다. 20페이지까지 있는 방명록을 읽으며 지난 학교에서 만난 아이들을 생각했다. 그 때는 내 서재의 주소를 알려줬으니, 관심 있는 몇 녀석은 꾸준히 들어와서 놀았다. 차곡차곡 쌓여진 글을 읽으니 마음이 약간 흥분이 되었다. 그리고, 학교는 잔인했지만, 신기하게도 그 속에서 맑게 핀 아이들이 떠올랐다. 오늘, 그 녀석들은 어디에 있을까?

   대체로 첫발령을 받은 교사들은 자기가 몇 살까지 교직에 있어야겠다는 '순진한' 생각들을 한다. 보통은 물리적인 나이를 정하는 경우도 있지만, 가끔은 호기롭게도 '아이들의 생각을 이해하기 힘들 때 그만두겠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한 해 두 해 지나면 자신의 생각이 무척 단순했음을 깨닫는 경우가 많다. 나 역시도 그런 생각을 안 해 본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솔직히 말하면 좀 오래전 일이라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그러나 경험상으로 볼 때 나이가 많아지면 아이들과 소통하는 것이 점점 힘들어진다.

   오늘 3년 전에 만난 아이들의 흔적을 보면서 내 미래의 모습을 생각하면 약간 서글퍼진다. 나는 곱게 늙을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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