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학교 노교사, 교육 희망을 보다 - 이원구 선생님의 교육에세이
이원구 지음 / 우리교육 / 2006년 11월
평점 :
절판


 1. 안준철 선생님의 <들풀>

들풀

- 안준철

들풀을 보면 생각난다.

이름으로 불러 준 적 없는 아이들

마음으로 읽고

눈빛으로 알고

따스히 흘러

빗장을 열게 하는 사랑

나눠 준 적 없는 아이들

그런 사랑 받아 본 적 없어

더 가슴 태웠을 것을

더 다가오고 싶었을 것을

들풀을 보니 생각난다.

화사하지 못하여

키에 가리워

먼발치로만 서성이던 아이들

한 번 더 다가섰으면

꽃이 되었을 우리 아이들


안준철,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한동안 이 시가 좋았다. 그래서 좋아하는 여러 선생님들께 나눠주기도 했다. 들풀 같은 우리 아이들, 많이 사랑해 주십사는 의미였다. 어느 순간, 산에 들에 피어난 들꽃의 이름을 외우려고 애쓰는 내가 부끄럽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들꽃의 이름을 알려는 노력을 아이들의 삶을 이해하는데 쏟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이제는 그 강박관념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다.

   그런데 시간이 다시 한참이나 지난 후, 지금은 이 시가 참 좋다. 이 시를 쓴 안준철 선생님을 직접 만나 뵌 게 이유기도 하지만,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시인이 그런 것처럼, 들풀의 아름다움을 아는 사람이 들풀 같은 우리 아이들의 아름다움을 모를 리가 없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것을 사랑하는 것은 사람의 본성이 아닐까? 이 시를 읽을 때 마음의 울림이 오는 사람이라면 들꽃의 아름다움만 취하지 않고 우리 아이들의 참모습에도 따스한 눈길을 전하는 감성이 함께 있다고 믿는다.

   들꽃 학교 노교사, 교육희망을 보다, 라는 책은 들풀의 아름다움에 빠진 한 교사의 교단생활 이야기다. 아니, 들꽃 같은 우리 아이들의 풋풋한 아름다움에 취해 살아온 세월에 대한 이야기기라고 말해야 의미가 더 정확하게 전달될 듯 싶다. 생각은 많지만 행동은 머뭇거리는 교사가 아니라,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은 그대로 행동으로 옮기며 살아온 ‘교육운동가’답게, 아름다운 들풀을 학교 구석구석에 옮겨 심고 가꾸는 과정을 통해 다른 교사들과 아이들에게 들풀의, 교육의, 나아가 인생의 새로운 의미를 조근 조근 말해주고 있는 책이다. 새 학기가 되면 새 학교로 옮겨 온 새싹 같은 아이들과 한 평생을 살아온 이야기가 넉넉하게 담겨있으니 지금 아이들과 함께 하는, 함께 하고픈 모든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책이리라고 믿는다.

2. 주말 농사 실패하다.

   한 4년 전인가 보다. 그 때는 나도 여러 선생님들 틈에 끼여서 노조 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 선생님 중에 한 분이 부산에서 가까운 김해에 노는 땅을 얻으셨고, 그 때 노조에서 함께 일하던 사람들끼리 주말 농사를 지어보자며 희망하는 분들에게 그 밭을 두 고랑씩 분양해 주신다기에 앞 뒤 재보지도 않고 덜컥 분양을 받았다. 아마도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보낸  사람이 느끼는, 도시 생활에 대한 어떤 결핍감 같은 게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 밭은 대중교통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곳이라 자가용이 없는 나는 여간 불편하지 않았다. 그래도 한동안은 들뜨고 기쁜 마음이 계속되었다. 밭에는 종묘상에서 산 상추와 쑥갓의 씨를 심었고, 고추와 방울토마토는 어린 모종을 옮겨다 심었다. 씨와 어린 모종에다가 거름도 주고, 물을 흠뻑 뿌려 주면서 나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서너 달 후에 제대로 수확을 하면,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 웃으며 내가 키운 고추라며 한 봉지를 슬쩍 내놓을 수 있으리라는!

   그러나, 해도 해도 끝이 없던 학교 업무와 노조의 일에 밀려서 겨우 주말에나 가서 얼굴만 내밀던 일도 점점 뜸해지고 말았다. 나중에는 내 고랑의 어린 새싹들이 어떤 상태로 있을 지 뻔히 눈앞에 보이는 듯 해서 밭을 찾는 발걸음이 더욱 무거워졌다. 당연히 그해 주말농사는 완전 망했다. 무참하게도 다른 건 한 번도 수확하지 못 했고, 물만 주면 자란다는 상추만 겨우 두어 번 뜯어서 집에 가져왔을 뿐이다.

   다음해엔 텃밭을 분양받지 않았지만, 이후에도 미련이 남아서 조금 넓었던 아파트 베란다에 고추와 상추를 다시 심었으나, 그것도 제대로 수확 한 번 못했다. 아내에게 큰소리를 쳤던 나는 다시 무안했다.

   텃밭을 일구려고 했던 나는 안다, 들꽃 학교의 텃밭에서 채소를 심고 그것을 가꾸는 일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님을! 그리고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나는 안다, 아이들이 잘 자라려면 교사의 온 정성과 사랑이 필요하다는 것을! 실패를 해 보니 더욱 잘 알겠다. 농사나 교육은 농부나 교사의 꾸준한 관심을 거름 삼아 그 대상이 본바탕을 꽃피운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은 것이다. 이 자명한 진리를 이 책에서 다시 배운다.

3. 나도 아름답게 늙을 수 있을까?

   2007년 3월, 올해로 학교에 들어온 지 9년차이다. 아직도 많은 것이 서툴기만 한데 벌써 꽤 시간이 지나버렸다. 처음 발령을 받고 학교에 출근하던 날의 기억도 또렷한데, 내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십년의 세월이 흐르는 것이다. 이럴 때 ‘시간, 참 빠르다’라고 하는가 보다. 그러나 나는 시간이 갈수록 경험이 쌓여 안정감이 드는 것이 아니라 늘 무엇인가에 쫓기는 듯 불안함이 든다.

   교사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는 다양한 답이 나올 수 있지만, 나는 요즘에 인간이라는 존재의 중요하고도 특별한 한 시기(‘질풍노도기’라는 말이 정확하다는 생각이 든다.)에 있는 인간과 소통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 전문가라고 말하고 싶다.

   그런데, 이 불안함의 원인은 바로 이 소통의 문제 때문에 온다. 교사의 나이가 적을 때는 전문성에 대한 훈련만으로도 특별한 노력 없이 자연스럽게 학생들과 소통이 가능하지만, 물리적인 나이가 들고, 경험을 통한 자신의 생각이 굳어지기 시작하면서 아이들과 소통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것을 많이 보았다. 심지어는 아이들과 수업하기 힘들어서 승진 준비를 한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떠도는 것이 학교의 현실이기도 하다.

   아직 과문한 탓이겠지만, 후배 교사가 보기엔 참 아름답게 늙어가는 선배 교사를 그리 많이 보지 못 했다. 승진 욕심에 물불을 가리지 않으니까 머릿속에서 ‘교육’이라는 단어를 지워버린 사람들도 많고, 무욕(無慾)한 듯 보이는 분들도 따분한 일상에 무기력하게 반응하거나, 모든 일들에 오직 자신의 ‘나이 먹었음’만이 논리의 모든 근거가 되어 학생들은 고사하고 후배 교사와의 소통마저 힘든 경우도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시간이 갈수록 나는 불안하다. 나도 저렇게 늙어갈까 봐 말이다. 지금 내가 싫어하는 모습을 보이는 분들도 내 나이 때는 선배 교사를 보면서 나처럼 생각했을 테니까.

   누구나 초임 교사 시절에는 아이들의 삶을 이해하기 어려워질 때 교단에서 내려오기를 꿈꾼다. 그러나 세월은 살 같이 흐르고, 또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그 꿈을 실천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런데 나는 이상하게도 처음부터 그런 마음이 들지 않았다. 대신 정년 때까지 평교사로, 교실을 지키는 이름 없는 노병(老兵)으로 사는 꿈을 꾸었다.(늙으면 천덕꾸러기가 되는 것은 아닐까, 싶은 두려움이 아직도 많다.)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달라질지 모르지만, 오늘 나는 거기에 다른 꿈을 새로 꾼다. 내가 학교에서 늙은 교사가 되었을 때 후배 교사가 스스럼없이 찾아와 도와달라고 부탁할 수 있는 그런 교사가 되고 싶다는 꿈 말이다. 모든 것이 순식간에 변하는 세상의 흐름을 볼 때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싶다만, 꿈조차 꿀 수 없는 것은 아니니까 마음속에 오롯이 큰 꿈을 품어 본다.

  그런데, 나는 요즘 내 큰 꿈에 등불을 밝혀 준 이를 책에서 만났다. 그 분이 바로 들꽃 학교 노교사, 이원구 선생님이시다.

  정녕 아름답게 늙고 싶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느티나무 2007-03-11 0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제목과 본문의 내용은 별로 관계가 없어요. 글만 써 넣고 올리려니까 제목을 넣으라는 안내 메시지가 나왔고, 요즘 개인적인 고민 때문에 일주일이 넘게 학교를 안 나오고 있는 OO이가 생각 났어요. 빨리 힘내고 기운 차려서 학교에 다시 나왔으면 좋겠다는 의미로 제목을 붙였습니다.

2007-03-11 01:1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