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방학 계획은 아주 단순하다.

  • 7월 19일부터 8월 17일까지는 보충수업이다.

   보충수업은 매일 13시 10분에 끝난다. 나는 13시 10분부터 14시 10분까지 점심시간에 도서실 문을 열 것이다. 우리 학교는 전문사서선생님은 없다. 학부모님들께서 돌아가며 도서실 운영 업무를 도와주신다. 그리고 도서부 아이들 몇 명. 그리고, 나. 나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점심시간에 도서실에서 아이들과 쓸데없는 이야기 하는 것을 즐긴다.

  • 7월 26일부터 7월 30일까지는 공부방수업이다.

   공부방 수업은 19시 30분부터 시작이다. 1시간 정도 영어 수업을 하고, 30분 정도는 간식을 먹거나 아이들과 청소지도, 생활이야기를 하는 시간이다. 그래서 21시 정도에는 학생들이 모두 돌아간다. 평소에 공부방 수업과는 달리 방학수업이라고 해서 일종의 보충수업이다. 그러나 학교와는 전혀 다른 보충수업이다. 그 좁은 동네의 아이들은 방학이어도 특별히 할 일이 없다. 늘 공부방 근처에서 놀기 마련이다. 그래서 아이들이 심심하지 않게 방학 중 수업을 하는 것이다. 나는 이번에 중학교 1학년들을 데리고 일주일 동안 영어수업을 하겠다고 신청했다. 지난 학기 영어수업이 많이 부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과는 신통치 않은 것 같다. 그것도 내일이면 끝난다. 무엇이 남았을까?

  • 8월 7일과 8월 8일은 청소년여름캠프에 참여한다.

   8월 7일 보충수업 시간을 좀 조절해서 금련산수련원에서 주변의 중/고등학생과 학급운영모임 모두 아름다운 아이들의 선생님들과 함께 여름캠프에 참여한다. 실무적인 준비와 기획, 홍보는 물론 다른 선생님들이 다 맡아서 해 주시고, 나는 1박 2일 동안 처음 만나는 아이들과 한 모둠에 참여하기로 되었다. 처음 만나는 아이들과의 어색함을 극복하는 것이 가장 중오한 일인 것 같지만, 나도 수줍음과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데 걱정이다. 그래도 다른 선생님들이 맡은 일에 비하면 신경쓸 일은 적은 것 같아서 다행이라고 여기고 있다.

  • 8월 9일에서 8월 11일은 공부방여름캠프에 참여한다.

   청소년캠프가 끝나는 다음날 나는 공부방캠프를 떠난다. 청소년캠프야 토-일요일이라 보충 수업에 지장이 없지만, 공부방캠프는 평일이라 방학 전부터 시간표를 미리 조정해 둔 터다.(그래서 평소 수업이 다른 선생님들 보다 조금 더 많은 편이다.) 작년까지는 공부방선생님들이 직접 프로그램 운영과 실무를 맡아서 했지만 올해는 위탁 캠프를 떠나기로 했다. 장소는 부안의 새만금 갯벌이다. '시선'이라는 환경 전문 캠프 운영단체이다.  그래서 선생님이라고 따라 가지만 사실은 별로 할 일이 없을 것 같다. 시간이 된다면 부안 주변을 둘러볼 김치국을 마시고 있다.

  • 8월 18일에서 8월 20일은 여행을 떠날 것이다.

   이제부터는 온전한 내 시간이다. 나는 가능하면 아무의 방해도 받지 않고, 아무 생각도 없이 보내고 싶다. 이건 확정된 계획이 아니지만 17일에 보충수업이 끝나면 짧은 나만의 시간을 위해 어딘가로 떠날 것이다. 지금 생각은 서산의 마애불이 너무 보고 싶다. 아마도 충청도 근처로 떠날 것 같다. 아주 한적하고, 고요하면서도 평화로운 여행이 되었으면 좋겠다.

  • 8월 22에서 8월 24일은 산에 올라보고 싶다.

   이것도 역시 큰 계획만 잡고 있는 셈이다. 지금 나는 지리산 종주를 꿈꾸고 있지만, 지리산 종주는 이미 몇 차례 해 본 터라... 그래도 산은 지리산! 가장 큰 문제는 산장 예약일 것이다. 지금 빨리 산장을 알아보고 산장이 힘들다면 다른 산으로라도 다녀오고 싶다. 힘들게 산에 오르면서 2학기에는 어떻게 살아야 할 지 생각도 좀 더 가다듬고, 지금껏 내가 너무 편하게 살아온 것은 아닌지, 살면서 쉬운 길만 골라 딛지 않았는지 되짚어 보려 한다.

  • 8월 26일 개학이다.

   아이들을 다시 만난 기쁨에 반갑게 인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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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10시부터 수업이 있는 날이라 느긋하게 일어나려고 했으나, 아침부터 학교에서 전화가 왔다. 도서실 좀 빌릴 수 없겠냐는 전화였다. 괜찮다는 말씀드리고 일어나 밍기적거리다가 학교에 왔다. 3교시 수업은 거의 최악이었다. 잔소리가 거의 목구멍까지 올라왔으나  내 표정만 약간 굳어졌고, 겨우 수업을 마칠 수 있었다. 아무래도 지금 하고 있는 교재에 문제가 좀 있는 것 같다. 또 이젠 지칠대로 지친 아이들이기도 하다.

   오늘은 이틀 전에 도서실 청소를 하기로 약속한 날이다. 도서실 청소당번 학생들이랑 같이 점심을 먹고 3시부터 청소를 하기로 했다.(14-15시까지는 3학년들이 교육방송을 보기 때문에 청소는 어렵다.) 2시에 학교를 나가 점심을 먹으러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놀았다. 그리고 3시부터는 도서실 대청소! ㅋㅋ 잘 먹고 열심히 청소를 했다. 우선 긴 책상을 뒤로 밀어놓고, 바닥을 깨끗하게 쓸었다. 중간에는 진공청소기를 빌려와 바닥을 훑었다. 그리고, 마루바닥에 왁스를 칠한 후에 막대걸레로 깨끗하게 밀었다.그랬더니 도서실이 깔끔해졌다. 왁스 냄새가 많이 났지만, 그래도 좋았다.

   아이들은 돌아가고 나는 도서실에 앉아 책을 읽었다. 차윤정의 '숲의 생활사'. 요즘엔 잘 읽히는 것만 읽어 그런지 글이 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아무래도 적응기간이 좀 필요한 것 같다. 4시에 청소가 끝났으니 1시간 정도 책을 뒤적이며 보냈다. 5시에는 공부방으로 출발해야할 시간이다. 나는 밤무대라고 부르지만! 5시가 넘어도 도시는 여전히 덥다. 신호등에서 OO이를 만났다. 신호등 건너편에서 손을 흔들어 인사한다. 나도 고맙게 인사했다. 오늘 첫수업 시간이 끝나고 따로 불러서 나의 답답한 마음을 전해 준 친구였다. 그리고 네 얘기도 듣고 싶다고 나중에 시간이 나면 도서실에 들러달라고 했는데 찾아오지 않았다. 그런데 건너편에서 인사를 했다. 나는 건널목을 건너가지 않고 기다려서 OO이와 잠시 이야기를 잠시 했다. 교실 밖에서 만나는 아이는 정말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한 번 더 들었다.

   공부방은 오늘로 4일째 계속 출근인데, 나에게 중학교 1학년 학생들이 버겁기만 하다. 중학교 1학년!-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나는 녀석들이 웃는 웃음에 공감할 수가 없어 답답하다. 몇 년 동안이나 이 공부방에서 보낸 나는 요즘 더욱 답답해 진다. 아이들과의 공유하는 부분이 너무 적은 것 같다. 나는 학교에서 중학생들을 가르쳐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더욱 그렇다. 내 생각은 여기에 머물러 있다.

   지하철을 타고 집에 오니 날은 더욱 덥다. 오늘은 어찌 살았나? 이젠 컴퓨터를 끄고 자러 가야할 시간이다. 그래야 내일도, 오늘과 같은 생활을 반복할 수 있지 않겠나!! 이런 생각을 하니 더욱 덥다. 아무튼 더운 날씨다. 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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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에 아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이벤트-서재주인장들의 이벤트에서 힌트를 얻어-를 했더니 당연히 반응이 좋았다. 요즘에는 아주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13시쯤에 수업이 끝나면 한 두시간 책을 보거나 잠깐 눈을 붙인다. 그리고 저녁에는 일주일동안 공부방 수업이 있다. 공부방에서 돌아오면 꼭 리뷰를 쓰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책도 열심히 읽으려고 한다.

   그리고 요즘 내가 빠져있는 책은 : 존재의 거짓말(상)(중)(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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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영엄마 2004-07-28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기서도 이벤트 해요~~ 서재인들이 얼마나 좋아한다구요!

조선인 2004-07-28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보니 아영엄마님도 이벤트 부추김 족. ㅋㅎㅎㅎㅎ

느티나무 2004-07-28 1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는 분들이야 책 사드리면 되니까, 리뷰 당선되었던 걸로 원하는 책 드리면 되었는데... 서재 주인들께는 뭘 드릴 게 있어야지요.. 아는 것도 없고, 잘 하는 것도 딱히 없어서요.

kimji 2004-07-29 0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존재의 거짓말(상)(중)(하),는 다 읽으셨나요? 이 무더위를 순식간에 식힐 수 있는 책을 고르셨군요. ^>^

느티나무 2004-07-29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존재의 거짓말 '단숨에' 다 읽었는데... 읽고 나니 머리 속이 복잡하네요. 어려워요 ^^;;;
 
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
서현 지음 / 효형출판 / 2004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근무하는 직장은 흔히 말하는 '새도시' 가운데에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거기는 낙동강 주변의 평범한 논밭이었으나 얼마 전부터 어느새 아파트가 한 채 두 채 들어서더니 여기 저기에 아직도 아파트가 지어지고 있어, 이제는 아파트가 숲을 이루어버렸다. 그러니까 이 '새도시'에는 10차선의 주도로를 중심으로 교차형 도로가 만들어졌고, 이 도로변을 중심으로 하나도 예외 없이 사각형의 빌딩들이 매끈한 얼굴을 하고 줄지어 서 있다.

   내 하루 일과의 거의 대부분은 이 반듯한 공간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출근할 때는 늘 이 낯선 '새도시' 아파트 숲을 지나면서, '이 아파트는 건물의 공간을 넓히고 큰 나무를 제법 많이 심어서 아침엔 새소리도 들리네? 역시, 돈이 좋기는 좋구나. 이렇게 새들까지 아파트 숲으로 불러모으고……. 이 아파트는 이런 새소리 때문에 더 비싸겠군, 건축가의-혹은 건물주-작전이 좋은 걸', '이 동네 상가 건물들은 왜 이렇게 모두 네모난 거야? 좀 다양하게 만들면 안 되나? 이러니 이 동네 지리를 낯선 사람들에게 설명하기 힘들지. 모두 똑같이 생겼으니...', '우와, 저 건물들에 달린 간판들은 참! 알록달록하게 화장한 피에로처럼 생겨 먹었네. 그나마 멀쩡한 건물 다 망쳐놓고 있군' 나도 누구나 이 '새도시'의 아파트와 상가들을 보았으면 던질 것 같은 한 마디 불평을 빼놓지 않고 던지곤 한다. 이번에 '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를 읽고 나서, 나는 이런 하나마나한 불평을 하지 않기로 했다.

   이 책을 시작하는 말에는 "감상은 정확한 눈을 필요로 한다. 이 정확한 눈은 적극적인 관심에 의해 갖추어진다. (중략) 우리가 건물을 보고 좋다, 혹은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할 수 있기 위해서도 우리의 머리 속에 판단 기준이 들어 있어야 한다. 그 기준은 많은 건물을 주의 깊게 들여다보는 것을 통해 길러질 것이다. 꼼꼼히 들여다보는 작업의 단초를 제공하기 위하여 이 책을 쓰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또 "건물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우리 사회의 모든 속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현실 그 자체이다. 그러나 건축가들이 이 현실적 도구를 통하여 만들어 내려는 '결과치'들은 벽돌과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구조물이 아니다. 건축가들이 진정으로 가치를 부여하는 부분은 그 너머에 있다. 건축은 인간의 정신을 담는 그릇을 만드는 작업임을 알리기 위하여 이 책은 쓰여졌다. 건축은 벽돌과 콘크리트가 아니라 인간의 정신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 이 책에서 이야기할 결론이다.(20쪽)"이라며 건축의 의미를 밝히고 있다.

   건축(행위)은 글쓴이의 말처럼 정확한 그림을 그리거나 음악을 연주하는 것과는 다르다. '건축은 엄청난 양의 물리적 자원과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사회적 이해관계가 연관되어 진행되는' 현실적인 작업인 것이다. 따라서 건물에 대한 책임(찬사까지도)은 온전히 건축가의 것만이 아닌 것이다. 한 건물은 건축가와 건물주, 실제로 건물을 지은 노동자뿐만 아니라 건물의 재료와 자원, 그 건물이 들어설 공간적 배경, 더 넓게는 좋은 건물을 판단하는 문화적(건축적) 잣대까지도 한 건물의 책임과 찬사를 함께 나누어지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내 직장 근처의 건물들을 보며 내 책임-동시대인으로서-도 있는 것은 아닌지 되물어 보려고 한다. 아니, 스스로에게 이런 못난 건물에 대한 불평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내가 건물에 대해 아는 것이 무엇인지 자문해 보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은 책을 쓰는 목적에 맞게 읽는 이가 건물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게 쓰여졌다. 글은 건물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따라 점>선>비례>상자(원통)>공간으로 확대되고 있고, 흔히 쓰이는 건축 재료인 벽돌, 돌, 콘크리트, 유리, 철, 나무, 유리에 따라 건물의 느낌이 달라진다는 점을 사진과 함께 보여주고 있어서 독자들이 이 책을 꼼꼼하게 살펴보면 건물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볼 수 있는' 연습을 할 수 있다.

   이렇듯 감상은 정확한 눈이 필요하고, 정확한 눈은 대상(건물)을 주의 깊게 들여다보는 것을 통해서 길러지는 것이라는데 나는 내 주변의 건물들을 얼마나 주의 깊게 들여다보았나를 물으면 부끄러울 따름이다. 속된 말로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건물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면서 '이렇다 저렇다' 어줍잖게 떠들었던 것은 아니었던지……. 조금 더 빨리 이 책을 만났더라면 좀 더 애정을 가지고 건물들을 살펴보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내가 늘 출퇴근하는 것은 여전히 '새도시'이다. 지금도 그곳에는 새 아파트가 지어지고 있고, 오늘도 콘크리트 상가 건물은 올라가고 있으니 내가 이 도시의 건물을 주의 깊게 살펴보는 일만 남은 셈이다. 내일부터 이 도시의 건물은 나에게 다른 의미로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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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꽃 피는 마을
임의진 지음 / 이레 / 2000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강진 남녘교회 임의진 목사님의 참수필집 '참꽃 피는 마을'을 읽었다.

   '직녀에게'는 남녘교회에서 예배 때마다 부르는 입당송이다. 강진과 광주에서 하늘날마다 통일을 염원하며 '직녀에게'를 부른다는 것은, 1995년부터 지금까지 한 주일도 거른 일 없이 부르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장하고 대견하고 아름다운 일이다. 비단 남녘 북녘의 통일뿐만 아니라 모든 인류의 평화와 일치, 천지만유 모든 생명의 합일과 조화로운 상생을 빌려 우리는 '직녀에게'를 소리 높여 부르고 있다. (180쪽)

   교회 입당송으로 부르는 '직녀에게'는 어떤 느낌일까? 매일 예배 때 신도들과 함께 입당송을 부르는 목사님은 어떤 분일까? 이런 저런 궁금증이 일만도 하고, 나름대로 상상도 해 본다. 음, 아마도 갈걍갈걍한 외모에다 성격은 조용하며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을 하며 세상을 관조하는 선한 눈을 가진 사람 정도.(더구나 목사님이니!)

   그러나 임의진 목사님의 성격을 똑 닮은 것 같은 이 글을 보면 먼저 흐뭇한 웃음이 나온다. 부러 쓰는 것이 아니라 '고향말'이기 때문에 몸에서 자연스럽게 흘러 나오는 것 같은 싱싱한 글은 물고기가 익숙한 물에서 노는 것처럼 상쾌하다. 또 그의 글처럼 그 분의 삶도 읽는 이의 마음을 푸근하는 한다. 어떻게 하면 똥 푸는 일을 피할 수 있을까 궁리도 하고, 우체부를 위해 <일 포스티노>의 OST도 들려 주고, 살림살이도 내남 것 없고. 특별하지 않아서 특별한 목사님? 하지만 사람에 대한 정을 뚝뚝 나눠주시는 것은 이 목사님이 아니면 어떻게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퍼낼수록 더 맑은 물이 차는 샘처럼 목사님의 人情도 더욱 더 깊어질 것이다.

   그렇지만 목사님의 구수한 사투리가 전하는 농촌의 현실은 웃음 뒤에 마음을 짠하게 한다. 농촌에는 점점 빈집만 늘어가는, 부모 없이 크는 아이들도 있다는, 알코올 중독으로 살아가는 사람도 산다는, 명절이 되어도 오는 이가 없어 밤새도록 켜진 외등을 켠 집이 있다는, 사별한 가족을 그리워하며 술로 보내는 사람의 안타까운 소식들을 전한다. 그래서 '오지게' 맛난 전라도 사투리 끝에 짜한 마음이 들어 눈을 들어 읽던 책을 멈추고 잠깐 마음을 가다듬게 된다.

  이 수필집을 읽는 내내, 오래 전에 친구가 해 주었던 말이 생각났다. 내가 부산에서 해남 땅끝마을까지 도보여행을 하려고 준비중이었을 때 친구가 기회가 되면 강진에서 백련사로 가는 길에 꼭 남녘교회에 들르라고 했던 적이 있다. 그 때 얼핏 목사님의 성함도 들어두었던 것 같다. 지금 이 책을 읽으니 내가 왜 그 때 남녘교회를 찾아가지 않았던고 후회막급이다. 책에다 이렇게 자기가 일하는 교회 자랑(?)을 잔뜩 늘어놓으셨는데... 아쉽다. 

   나는 조금 다른 시각을 갖고 강진의 명소를 소개하고 싶다.

   첫째로 내가 사는 남녘교회 예배당을 꼽고 싶다. 가난하고 초라한 예배당에 깃든 초랑초랑한 역사의식만큼 소중한 게 없을 것이란 생각에 이렇게 첫손에 꼽는 것이다. 아담한 남녘교회 예배당은 온통 하얀 색깔이고 사랑방엔 참꽃이 흩날리는 벽화가 그려져 있다.

  종탑은 색깔이 벗겨지고 새똥이 묻어 있지만 예쁜 종이 걸려 있다. 그리고 지금도 새벽과 저물녘이면 종을 친다.

   또한 사상의 자유가 실질적으로 주어지게끔 국가 보안법을 없애자고 플래카드가 밖으로 내걸려 있다.

   예배당 안에 걸린 십자가는 그대가 이제까지 본 십자가 가운데 가장 슬픈 형상의 십자가일 것이다. 뒤틀릴 대로 뒤틀린 대추나 무로 엮어 만든 십자가는 보는 이마다 성호를 긋게 만든다.

   예배당 뜨락은 봄이면 수선화와 참꽃 진달래가 가득 피어나고 여름에는 감나무 잎이 무성하며 가을에는 홍시들이 주렁주렁 달리고 겨울에는 하얀 눈 덮인 전나무와 하얀 예배당이 그렇게 어울릴 수가 없다. (127-128쪽)

   글이 쉽다고 깨달음의 깊이가 얕은 건 아니다. 이렇게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쉬운 우리말을 쓰면서도 생활에서 겪은 작은 일상을 깊이 성찰할 줄 아는 자세로 읽는 사람의 마음을 짠하게 하는 글을 쓰시는 걸 보면, 외람되지만 목사님의 고등학교 때 꿈인 '사람'이라는 장래희망이 제대로 이루어진 것이 아닐까 싶다. 이제 해빈(임의진 목사님의 아들)이의 장래희망-지구를 지키는 용사 벡터맨-을 위해 노력해야 할까?

- 남녘교회에 가 보고 싶다. 눈이 펄펄 내리는 날, 그토록 좋아하신다던 모과차 한 잔 얻을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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