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그 한사람 

- 조민하 글, 이원경 곡

                                                                                  
잊어서는 정말 안되요 소중한 사람들을

이 세상 어디에나 태양이 비추듯이

누구나 행복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길을 걷다 채이는 돌맹이라 하여도

그것 없이 어떤 집도 지을 수 없다는 걸

너무 빨리 혼자서 앞서가지 마세요

그렇게 혼자 가면은 당신도 외로울 거예요

저 뒤에 앉아서 한숨 돌리는 사람

바로 그 한 사람이 정말 소중한 사람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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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좀 안타깝다. '해방전후사의 인식5'는 1999년 판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1989년 판이었다. 그래서 표지가 너무 낡았더라. 색깔도 빛이 바래서 선뜻 내 책 같지가 않았다. 익숙한 모양인데 내게는 낯선 모습이었다. 책이 손에 닿지 않았다. 그리고 '시대를 담는 그릇'(김봉렬, 이상건축)도 내용 부분은 괜찮은데 표지가 약간 낡아 있어서 마음이 좀 쓰였다. 헌책을 산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 다음부터는 '조금 더 신중해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 본다. '해방전후사의 인식6'도 필요한데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다.

   오늘은 '즐거운 학교'에서 책을 한 권 보내왔다. '현대소설, 너를 읽어주마1' 예전에 즐거운 학교에서 설문조사에 응하면 추첨을 통해서 읽고 싶은 책을 준다고 했었는데, 이번에 당첨이 된 것이다. 역시 공짜로 받게 되는 책은 아주 기분이 좋다. 읽고 수업하는데 참고로 해야겠다. 요즘은 소소하게 책이 한 두 권씩 생겨서 더욱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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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09-04 1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방전후사의 인식 5,6은 구하기 힘든 책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책 안이 깨끗하다면 후회하지 않으셔도 될 듯 싶은데요...

느티나무 2004-09-04 1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가요? 작은 일에도 감사를... 고맙습니다. 열심히 읽어야겠네요.
 
프란츠 파농 역사 인물 찾기 13
알리스 셰르키 지음, 이세욱 옮김 / 실천문학사 / 2013년 4월
평점 :
품절


   누구 말처럼, 지금은 혁명에는 냉소적이면서도 혁명가에게는 열광하는 시대가 되어 버렸다. '체 게바라'에서부터 시작된 이 혁명가들에 대한 열광은 그들의 실천적인 삶과는 거리를 둔 관심이라는 점에서 이미 한계점이 분명하다. 또한 독자의 현실 세계 속에서의 안온한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는 순진한 미덕에도 불구하고, 탈출구가 없는 답답한 현실을 벗어나고 싶은 욕망의 대리만족으로 혁명가를 '영웅'으로 만들어 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우리 시대의  '혁명가 읽기'는 가늠할 수 없는 유행처럼 언제든 바뀔 수 있고, 또 그 유행이 일회적이라는 점에서 하나의 '상품'인 것 같다.
    책 속의 혁명가들은 그들의 꿈을 실현 여부와는 상관없이 아주 멋있는 인물로 묘사된다. 책 속에서 꿈을 이룬 혁명가는 온갖 시련을 겪으면서도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불굴의 의지로 극복하는 인물로 묘사되고, 혁명에 실패한 혁명가도 자신의 꿈을 실현하려다가 현실의 벽에 막혀 멋지게 좌절하는 인물이 된다. 책 속의 상황은 '가상'의 공간이며 멋진 인물에다가 읽는 사람의 감정과 생각을 투사해서 그와 '생각과 행동'을 함께 하다 보면 책을 읽을 때마다 책 속의 혁명가는 게임의 내가 설정해 둔 하나의 캐릭터가 되는 것 같다.

   괜히 그런 상품과 캐릭터의 이미지가 싫어서 혁명가에 관한 책을 멀리했지만, 이번에는 우연히 프란츠 파농을 읽게 되었다. 사실, 프란츠 파농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하지만 책을 다 읽은 지금도 파농에 대해서 내가 무엇을 알고 있는지 조심스럽다. 파농이라는 사람이 누구냐를 말하려고 한다면 그의 다양한 모습 중에서도 '흑인', 프랑스의 '마르티니크 출생', '작가', '정신과 의사', '혁명가'일 것이다. 
   파농은 2차 대전에 자유 프랑스를 위해 2차 대전에 참전했으며, 블리다의 정신 병원에서는 당시로서는 아주 혁명적인 정신과 치료방법이었던 '사회요법'을 실시한 정신과 의사였고,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이라는 책에서 "한 언어를 말하는 것은 한 세계와 그 문화를 수용하는 것이다.…… 백인이 되고 싶어하는 앤틸리스 사람은 언어라는 문화적 도구를 자기 것으로 만듦으로써 더욱 쉽게 스스로를 백인으로 생각하게 된다." 라며 지배자의 담론이 개인에게 영향을 미쳐 주체의 무의식 형성에까지 관여한다는 사실을 발표했는데, 이는 당시에 흑인의 문제를 흑인이 설명하려고 애썼다는 점에서 충격적인 저작이었다. '대지의 저주받은 자들'을 통해서는 알제리 해방의 의미와 해방 이후의 문제를 다루고 있으며 특히, 해방의 조건에서는 식민지배의 상처를 씻기 위해서 식민통치의 폭력을 되돌려주어야 한다고 선언해서 프랑스를 경악하게 만들었던 탁월한 작가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자신은 프랑스령 알제리의 해방을 위해서는 줄곧 프랑스와의 협상이 아니라 줄곧 무장투쟁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폈으며, 실제로 튀니스에서 무장투쟁의 대오에 합류하기도 했던 전사이자 혁명가였다.
    한편으로는 알제리의 독립투쟁의 과정을 자신이 권력을 잡을 수 있는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일부 군인들의 태도에 실망감을 나타내며, 해방 이후의 알제리 사회의 모습을 끊임없이 모색한 선구자이기도 했다. 아프리카 순회대사 시절에는 검은 대륙 아프리카의 단결을 통해서 '아프리카합중국'을 꿈꾸었던 '이상주이자'이기도 하다.
    이런 파농의 비타협적이고 이상적인 태도를 여러 사람들에게 비난을 많이 받기도 했지만, 그의 놀라운 열정과 사심 없는 태도, 그리고 탁월한 예지력 등은 알제리 해방 운동의 정파를 초월해서 신망을 받게 된다. 그는 결국 알제리의 해방을 보지 못하고 백혈병을 치료하기 위해 떠났던 미국에서 삶을 마치게 되었지만-그는 유럽의 식민주의를 아주 싫어했고, 미국은 그런 유럽보다 더 심한 식민주의 정책을 편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자신의 치료를 위해 미국으로 가는 것을 반대하기도 했다. 그의 주검은 '해방된' 알제리-당시 무장투쟁군이 차지하고 있던 지역-에 묻히게 되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나서 아쉬운 점도 좀 남는다. 무엇보다도 이 책의 약점은 파농의 모습이 읽은 이에게 구체적으로 그려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파농의 삶에 집중해서 읽을 수 없게 하는 몇 가지 요인이 있는 것 같다. 그 중에서도 서술자와 인물의 거리가 너무 가까워서 서술자의 주관적인 개입이 잦은 것 아쉽다. 예를 들면 이런 문장,-'그는 과연 그렇게 생각했던 것일까? 그 후 파농과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런 그렇지 않다고 나에게 말했다'는 식의 문장이 대표적이지 않을까? 또 '파농'의 행동 반경이 일생 동안 여러 곳에서 펼쳐지고 있는데-우리에게는 아주 낯선- 프랑스와 알제리 등의 지도가 책의 앞뒤에 소개되어 있지 않아 파농이 어디에서 어디로 갔는지를 잘 모르겠다는 점도 답답하게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지적한다면, 각주의 설명이 너무 길거나 복잡해서 본문을 읽을 때의 흐름이 자주 끊어지는 단점이 있다.
    그래도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아픔을 덜기 위해 치열하게 살았던 한 인물을 역사 속에서 만났고, 책표지에 있는 그의 서늘한 눈매는 오래도록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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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9-02 23: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해콩 2004-09-03 0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시대의 '혁명가 읽기'는 가늠할 수 없는 유행처럼 언제든 바뀔 수 있고, 또 그 유행이 일회적이라는 점에서 하나의 '상품'인 것 같다." 공감되는 말이예요. (개콘이라는 프로에서 운동권 학생을 희화화하는 것을 보며 서글퍼했던 기억!) 그치만 '유행'조차 되지 않고 역사 속에 묻혀버리는 것보다는 '상품'이라도 되는 것이 의미있지 않을런지.. '상품화'하는 사람들의 이속과는 별개로.. 그런 의미에서 '일회적 상품'은 아닌 것 같아요. 한 번 써먹고 버리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래도 여전히 마음 깊은 곳에 묻어두는 사람도 많을 테니...
혁명가들의 치열한 삶이 너무 가벼워지나요? 역시 서글프죠?
 

   점심 시간이 끝나는 종이 울렸다. 5교시 수업이 있어서 도서실 문을 막 나서려고 하는데 누가 고개를 빼고 도서실을 삐끔 들여다 본다. 낯선 얼굴... 아니, 낯익은 얼굴! 상민이와 기수다! 모두 환한 얼굴들... 기수는 군대 있을 때 몇 번 찾아왔었지만 상민이는 입대해서는 거의 처음이었다. 반갑게 인사를 했으나 수업시간이 되어서 교실로 올라가야 했다. 서둘러 저녁에 만나기로 하고 약속 시간과 장소를 정했다.

   오늘 저녁 도서실 문도 열어야 했기에 약속 시간은 저녁 7시 30분. 아름이에게 도서실 대출 업무를 맡기고 7시에 나섰다. 약속 장소에 도착하니 낮에 학교에 왔던 상민이와 기수, 그리고 선웅이도 같이 나와 있었다. 넷이서 푸짐한 저녁을 먹었다.

   기수는 제대한 지 이틀이 지났다고 한다. 제대를 기다릴 때는 기분이 좋았는데, 이제 제대를 했으니 제 앞가림을 해야겠는데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벌써부터 한숨이었다. 그래도 기수는 착하고 마음이 따뜻한 녀석이다. 부지런하고 다정한 성격이니 곧 제자리를 찾을 것이다. (기수네 집은 낙동강 둔치에서 농사를 짓는다. 어느날 조례하러 들어갔더니 교탁에 소담하게 올려진 삶은 감자, 그 날은 참 마음이 푸근했던 것 같다.)

   상민이는 해군에 복무중이다. 이제 병장 3호봉이니 5개월이 남았다고 한다. 처음에는 서해에서 군함을 탔는데 이제는 포항에서 근무하고 있다. 상민이는 학교 다닐 때도 성실한 학생으로 널리 이름이 났었다. 부산에서 기능대회에도 출전해서 입상 경력이 있다. 기능 대회에 출전하려면 매일 학교에 남아서 똑같은 일을 반복적으로 해야한다. 그럴만큼 상민이는 성실하고 맡은 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해내는 녀석이니 앞으로 남은 군생활도 별 문제 없이 해내고 복학할 수 있을 것이다. 상민이의 손등을 보니 흉터가 여전하다. 졸업하고 취업나갔다가 기계에 찢겨진 자국이다. 그걸 보고 어찌나 내 속이 상하던지...

   선웅이는 지금 '백수'다. 아마도 지난해 12월달부터 줄곧 놀았을 것이다. 자기도 나름대로 계획은 있었지만 그게 잘 안 풀린단다. 선웅이의 계획은 해군 부사관으로 입대하는 것이다. 부사관은 직업군인으로 가는 것이라 필기 시험을 보는데 계속 떨어졌단다. 지난 학기를 끝으로 전문대학은 휴학을 했고, 두 달에 한 번씩 시험을 보았으니 단순한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 말고는 다른 일을 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다른 두 녀석이 선웅이를 놀려도 선웅이는 말없이 빙그레 웃기만 한다. 선웅이는 원래 말이 없는 친구였다. 그 만큼 속정이 깊은 녀석이기도 하다. 그러니 지금껏 군대간 친구들의 연락처가 되어 왔다. 이번에 발표가 나면 입대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세 녀석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짜하다. 그냥 세상에 내동댕이쳐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도 녀석들, 아직은 세상을 잘 모르는 것인지, 아니면 저희들의 선생인 나보다도 더 세상의 속살들을 알고 있는지, 걱정이 많은 내 앞에서 씩씩하기만 하다. 녀석들의 건투를 빈다.

   오늘, 행복한 저녁식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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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9-02 20: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뭐, 꼭 시험문제만 그런 건 아니지만... 생각해보면 학교 다닐 때 숙제 같은 거 제출하는 것도 비슷했던 거 같다. 보통 대학의 숙제는 매주 나오는 과목도 있었지만, 한 학기에 두 세 개 내주는 과목이 보통이었다. 나는 숙제가 공지되면 바로 자료를 찾으러 간다. 그래도 마음이 헐렁해서 찾는 둥 마는 둥, 정리를 하는 둥 노는 둥 하기 일쑤였다. 그리고는 그대로 두고 꼭 숙제를 내기 전날 매달리는 고약한 습관이 있었다. 어쩔 때는 잠을 안 자고 숙제를 낸 경우도 있었다. 숙제가 적은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밤을 새울 정도는 아니었는데 미루다가 꼭 마지막날 얼렁뚱땅 해치우곤 했다. 그러나 대부분은 마감날을 넘기는 경우는 없었다. 숙제를 잘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못해도 마감날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학교에 와서는 시험문제를 낼 때마다 여간 고역이 아니다. 시험 문제 마감일 며칠 전부터 혼자서 끙끙대면서도 놀다가 결국 마감날을 넘겨서야 마무리를 한다. 이번 시험만 해도 그렇다. 방학 때 미리 정리를 좀 해 두었으면 마감일인 어제까지 여유있게 낼 수 있었는데... 결국 어제 못 내고 말았다. 그 탓에 어제 중요한 모임에 얼굴만 삐죽 내밀었다가 허둥지둥 돌아와야 했다. 새벽까지 문제를 다듬고, 편집도 새로 해서 오늘 학교에서 최종적으로 선생님들과 의논한 다음에 겨우 제출했다. 시험 문제 마감날에 문제를 낸 적이 6년 동안에 겨우 한 두 번 있었던가? (이런 내도 MBTI 검사를 해 보면 거의 완벽한 J형으로 나온다. 신기한 일이지.) 시험문제를 내고 나면 막상 시험문제에 오류가 있을까봐 시험 당일까지 꽤 조심스럽다.

   그래도 이번 시험문제도 출제했으니, 이제부터 본격적인 2학기 수업에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좋다. 내일은 간단한 공문 처리와 2005학년도 교과서 집계해서 주문하면 될 것 같다. 내일까지만 조금 바쁘면 될 것 같다. 조금만 더 기운을 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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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영엄마 2004-09-02 0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학 때도 바쁘셔서 정리를 못해두셨을 겁니다! 시험이란 건 푸는 사람도 골머리를 앓는데, 내는 사람의 골머리도 아프게 하는 것이군요.... 아, 시험이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느티나무 2004-09-03 0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험문제가 잘 안 내어지면 아이고, 그냥 내가 시험치고 말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ㅋㅋ (막상 시험치기는 싫겠지만...) 시험은 냉정하게 말하면 본질적으로 필요한 겁니다. 무엇을 어떻게 평가하느냐가 문제겠지만요... 따뜻한 관심, 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