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 시간이 끝나는 종이 울렸다. 5교시 수업이 있어서 도서실 문을 막 나서려고 하는데 누가 고개를 빼고 도서실을 삐끔 들여다 본다. 낯선 얼굴... 아니, 낯익은 얼굴! 상민이와 기수다! 모두 환한 얼굴들... 기수는 군대 있을 때 몇 번 찾아왔었지만 상민이는 입대해서는 거의 처음이었다. 반갑게 인사를 했으나 수업시간이 되어서 교실로 올라가야 했다. 서둘러 저녁에 만나기로 하고 약속 시간과 장소를 정했다.

   오늘 저녁 도서실 문도 열어야 했기에 약속 시간은 저녁 7시 30분. 아름이에게 도서실 대출 업무를 맡기고 7시에 나섰다. 약속 장소에 도착하니 낮에 학교에 왔던 상민이와 기수, 그리고 선웅이도 같이 나와 있었다. 넷이서 푸짐한 저녁을 먹었다.

   기수는 제대한 지 이틀이 지났다고 한다. 제대를 기다릴 때는 기분이 좋았는데, 이제 제대를 했으니 제 앞가림을 해야겠는데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벌써부터 한숨이었다. 그래도 기수는 착하고 마음이 따뜻한 녀석이다. 부지런하고 다정한 성격이니 곧 제자리를 찾을 것이다. (기수네 집은 낙동강 둔치에서 농사를 짓는다. 어느날 조례하러 들어갔더니 교탁에 소담하게 올려진 삶은 감자, 그 날은 참 마음이 푸근했던 것 같다.)

   상민이는 해군에 복무중이다. 이제 병장 3호봉이니 5개월이 남았다고 한다. 처음에는 서해에서 군함을 탔는데 이제는 포항에서 근무하고 있다. 상민이는 학교 다닐 때도 성실한 학생으로 널리 이름이 났었다. 부산에서 기능대회에도 출전해서 입상 경력이 있다. 기능 대회에 출전하려면 매일 학교에 남아서 똑같은 일을 반복적으로 해야한다. 그럴만큼 상민이는 성실하고 맡은 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해내는 녀석이니 앞으로 남은 군생활도 별 문제 없이 해내고 복학할 수 있을 것이다. 상민이의 손등을 보니 흉터가 여전하다. 졸업하고 취업나갔다가 기계에 찢겨진 자국이다. 그걸 보고 어찌나 내 속이 상하던지...

   선웅이는 지금 '백수'다. 아마도 지난해 12월달부터 줄곧 놀았을 것이다. 자기도 나름대로 계획은 있었지만 그게 잘 안 풀린단다. 선웅이의 계획은 해군 부사관으로 입대하는 것이다. 부사관은 직업군인으로 가는 것이라 필기 시험을 보는데 계속 떨어졌단다. 지난 학기를 끝으로 전문대학은 휴학을 했고, 두 달에 한 번씩 시험을 보았으니 단순한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 말고는 다른 일을 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다른 두 녀석이 선웅이를 놀려도 선웅이는 말없이 빙그레 웃기만 한다. 선웅이는 원래 말이 없는 친구였다. 그 만큼 속정이 깊은 녀석이기도 하다. 그러니 지금껏 군대간 친구들의 연락처가 되어 왔다. 이번에 발표가 나면 입대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세 녀석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짜하다. 그냥 세상에 내동댕이쳐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도 녀석들, 아직은 세상을 잘 모르는 것인지, 아니면 저희들의 선생인 나보다도 더 세상의 속살들을 알고 있는지, 걱정이 많은 내 앞에서 씩씩하기만 하다. 녀석들의 건투를 빈다.

   오늘, 행복한 저녁식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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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9-02 20:2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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