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셨습니까? 선생님! 지난 한 주 어떻게 보내셨는지요? 새로운 학교에 와서 담임을 맡은 지 겨우 두 달 조금 지난 저는, 한없이 쑥스러운 '스승의 날'이었습니다. 정말, 스승의 날을 2월로 옮기든지, 아예 형식적인 기념식을 폐지하든지 빨리 결정을 내려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선생님, 저는 매년 '스승의 날'에는 아이들과 함께 사진을 찍는 재미가 있어 조금은 견딜만 합니다. 디지털사진기가 없었을 때는 필름사진기로, 몇 년 전부터는 디지털사진기로 교실에서 저희반 학생 한 명 한 명과 제가 나란히 사진을 찍었습니다. 아이들은 모두 자기반 교실에서 담임과 함께 찍은 자기 사진을 가지게 되는 셈이지요. 재미있는 장면을 연출해서 찍는데요, 제가 업히기도, 녀석이 제 등에 업히기도 하고, 어깨동무도 하고, 팔장도 끼고, 어색한 폼을 잡기도 하고... 사진을 찍을 때 꼭 이렇게 말합니다. (또 유달리 사진을 찍기 싫어하는 학생이 있는데 이 날만은 스승의 날이니까, 제 말을 좀 들어줍니다.)

   먼 훗날 이 사진 한 장이 너희들의 고등학교 생활을 기억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그럴 리는 없겠지만 나를 찾아올 일이 있으면 이 사진을 꼭 들고와야 내가 네 담임이었다는 사실이 증명될 것이라고 말이지요.ㅎㅎ

   올해 찍은 사진은 게을러서 아직 인화해서 나눠주지는 않았습니다. 얼른 해야겠네요. 혹시나 우리반 학생 중에 제 담임과 찍은 사진 한 장을 자기집 책상의 유리 밑에 고이 끼워두는 녀석이 생길지도 모르겠습니다.

   '스승의 날'이 하도 뻘쭘해서 이렇게 해 오고 있는데, 옳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제가 해 본 게 이런 거 밖에 없으니 참고라도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5월 18일에는 좋은 말씀해 주셨는지요? 17일 밤 늦게 '5/18 동영상 CD' 구하신다고 저희 집을 다녀가신 선생님이 계셨습니다. 제가 속으로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릅니다. 그 CD를 집에, 학교에, 이제는 한 구석에 밀쳐두고, 먼지만 마시고 하고 있던 제가 참 무심한 교사란 생각이 들었거든요. 아이들에게 4.19에, 노동절에, 5.18에 한 마디라도 하고 지나가야하는데...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5.18이면 떠오르는 시 한 편 보냅니다. 사실, 5.18과 별로 관련은 없지만 저는 이맘 때는 늘 이 시가 떠오릅니다. 아마도 늘 교실에서 겪게 되는 일이라 그런가 봅니다.

 

  교실 풍경


 - 신현수


(너무나 감격스러운 어조로, 약간 눈물도 글썽이며)

너희들이 태어나던 해에 우리나라 남쪽에서

아주 불행한 일이 있었단다.

어떤 욕심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게 위해서

아무런 죄도 없는 많은 사람들을 총으로 칼로 죽였단다.

그 후에도 그 일을 다른 곳에 알리고자 한 사람

그 일이 잘못되었다고 말한 사람들이

계속 피를 흘리면서 죽어갔단다

그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아

이제 정부에서 그 공로를 인정하고

그날 이후의 희생된 넋들을 기리기 위해

오늘부터 기념일로 제정하기로 했단다, 얘들아


(멀뚱멀뚱한 표정으로)

선생님! 그럼 내년부터 5월 18일날 놀아요?

 

   좋은 글 놔두고 앞에 쓸데없는 말이 너무 길었습니다. '생태기행'(5월 22일) 잘 다녀오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부탁 말씀 드릴 일이 있습니다. 이 메일 열어보시는 선생님, 읽어주셔서 너무 고맙습니다만, 옆에 앉으신 다른 선생님들께 읽/을/ 만/한/ 메일이 가끔씩 오더라고, 넌지시 한 말씀만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답장과 좋은 글도 언제나 환영합니다. 학교에서 힘차게 지내시기 바랍니다. 진우도에 다녀와서 곧 소식 전하겠습니다.

나를 키우는 말


 - 이 해 인

 

행복하다고 말하는 동안은

나도 정말 행복해서

마음에 맑은 샘이 흐르고


고맙다고 말하는 동안은

고마운 마음 새로이 솟아올라

내 마음도 더욱 순해지고


아름답다고 말하는 동안은

나도 잠시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

마음 한 자락이 환해지고


좋은 말이 나를 키우는 걸

나는 말하면서

다시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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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 오늘은 화요일이다.  여전히 가야할 곳이 있고, 준비도 해야 하는데 오늘은 학교에서도 바쁘다. 그렇지만 이렇게 컴퓨터 앞에 앉아서 글을 쓰기도 한다.

   매일 매일 일기를 쓰자면야 시시콜콜한 일들까지 다 들춰내겠지만, 요즘처럼 조금 나른한 날은 그냥 아무 것도 하지 않고, 흐르는 시간에 잠시 몸을 맡기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생각해 보면 보름쯤 지난 5월달에 제법 일이 많았던 것 같다. 메이데이 집회를 가자는데 안 간 것 빼고는 어린이날에는 공부방 어린이날 행사에 가서 아이들이랑 놀았지- 마침 그 날은 어머니 생신이셔서 한바탕 소동이 있었다. 그리고 그 며칠 뒤에 있었던 어버이날에는 부모님과 함께 사촌동생 결혼식에 갔었고, 그 다음날은 처이모님께서 미국에서 오셨기에 처가에 인사드리러 갔었다.

   지난 주는 시험기간이라 오후에 시간적 여유가 좀 있었지만 공부방에 가고, 학교 선생님들과 연수 한 번 갔고, 오랜만에 보고 싶은 샘이랑 연락해서 만났다. 그리고 지난 금요일(13일)은 우리 학교 소풍! 물론 준비를 안 해 갔기 때문에 썰렁하기 짝이 없었다. (그런 날은 참담한 기분이 든다.) 원치 않는 식사자리에 끌려갔다가 모두아 체육대회에 갔었다.

   모라중에서 열린 모두아 체육대회는 여섯 명이서 농구와 축구를 하고, 학교 안에서는 놀이 연수도 받았다. 역시나 즐거운 시간. 그러나 나는 학교 안으로 들어온 뒤에는 배가 아파서 별로 뛰지 못했다. 이어진 뒷풀이는 11시가 거의 다 되어서야 끝났다.

   다시 주말이 되었다. 학교는 공허한 메아리처럼 '스승의 은혜'를 부르는 노래가 넘쳐나고 이날만은 귀한 꽃들도 흔해빠져서 대접받지 못하지만, 학교, 학생 어디에서도 '스승'이 무엇인지 말하지 않았다. 그냥 촌지에 관한 기분 나쁜-자존심이 상하는- 이야기만 떠돈다. 나는 학교에 있는 내내 우울했다.

   아이들에게 스승의 날은 어떤 날일까? (스승의 날이 없어지면 가장 섭섭해 할 집단은 학생들이 아닐까 싶다. 하루 놀 기회가 줄어드니까!) 졸업한 두 녀석이 없는 돈을 털어산 것이 분명한 음료수를 들고 아침부터 찾아왔었다.  자꾸 녀석들의 나이를 곱씹게 된다. 23살. 참 좋은 나이라고 말이다.

   학교에서의 우울과 피곤이 겹쳐서 그랬겠지만, 집에서는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토요일 저녁은 공부방 교사모임이 있는 날이었다. 모처럼 통도사 근처에서 숙박을 하며 여름캠프 계획을 잡는다고 하는데, 나는 맨 마지막에 갔다. 9시가 다 되어 도착해도 여전히 반갑게 맞아주는 공부방 식구들. 선생님들이 잘 차려주신 저녁을 먹었다.

   어찌보면 아주 사소할, 여름캠프의 자잘한 내용들에 대해 계속 토론이 이어졌다. 그래서 회의가 대충 마무리된 시간이 새벽 3시. 다른 선생님들은 슬슬 잠자리로 드시는데, 나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집으로 왔다. 일요일에 중요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다어쩌다 중요한 일은 취소가 되었고, 덕분에 잠은 쏟아졌다. 오후에는 도서부 아이들이 놀러왔다가 갔고, 나는 모처럼 목욕탕에 갔었다. 근데, 거기서도 애들을 만났다. 돌아보면 참 멀리 온 한 주라는 느낌이다.

(이런 자질구레하면서도 숨가쁜 일상을 쓰려는게 아니었는데,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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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 교실 안팎의 의사소통 통로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꽃이 되고 싶다

 

김명희(경북 안동여중 교사)



 사람과 사람이 만나 관계를 만들어가는 데에 가장 근본이 되는 것은 의사소통이다. 아이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보다 나은 학급운영을 고민하고, 좀 더 괜찮은 수업을 고민하는 교사라면 한 번쯤, 아니 시시때때로 고민해 보았을 아이들과의 의사소통 문제. 아이들과 잘 소통하기 위해 교사인 나는 어떠해야 하는지, 먼저 나로부터 고민해 보자. 나는 과연 아이들에게 잘 다가가고 있는지, 나의 미숙함이 아이들과의 의사소통을 방해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는 데서부터 보다 원활한 의사소통은 가능해질 것이다. 교사는 훈시자도, 전달자도 아니다. 동등한 인간 대 인간의 만남으로서 의사소통을 고민한다면 나의 언어 방식부터 되돌아보자. 자신을 객관적으로 돌아볼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상대의 모습도 진정 보일 것이다.


그 옛날 나빴던 경험이 지금 가장 좋은 교훈

 선생님들은 학생들에게 한 마디 이유라도 물어보면 안 되는 걸까? 선생님들은 자기가 왜 기분이 안 좋은지를 차근차근 말 좀 해 주면 안 되나? 지금의 아이들도 선생님께 불만과 의아심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내 학생 시절의 억울하고 속상했던 경험이 그대로 나의 학생들에게 되돌려져 되풀이되고 있지는 않은지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중학교 1학년, 서울로 유학을 가 낯설게 3월을 보내고 있던 때였다. 영어선생님이 들어오셔서 교과서를 읽는데, 안 그래도 얼굴이 고와 홀려 있는 터에 생전 처음으로 유창한 외국어를 들으니 앞에 서 있는 선생님이 황홀하도록 예쁘고 신기하였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헤에~' 하며 웃게 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선생님께서 책 읽는 것을 멈추고는 "너, 나와!" 하시더니, 나의 뺨을 힘껏 날리는 것이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데다가 변명할 틈도 없이 복도에 나가 서 있으라는 바람에 나는 그저 추운 복도에서 한 시간 동안 수치감 속에 떨기만 했다. 그러나 추위와 수치감보다도 더한 것은 '대체 내가 왜 맞았을까?' 하는 궁금함이었다. 감히 그 이유를 물어볼 수는 없었지만…. 지금 교사가 되어 생각하니 선생님이 그때 "너 왜 웃었니?" 한 마디만 물었어도, 아니 "얘, 책을 읽는데 네가 웃으니까 마치 나를 무시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안 좋다"라고 한 마디만 하셨다면, 적어도 변명이나 해명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랬다면 이후 영어 시간이 얼마나 즐거웠을까!


비언어적 행동을 읽어 내는 마음의 여유와 사랑

 오래 전 밤 11시까지 야간 자습을 하던 고등학교 3학년 교실에서 있었던 일이다. 피로와 어두운 침묵으로 가득찬 교실, 이 한 시간만 지나면 드디어 집에 갈 수 있다는 생각에 마지막 힘을 쏟으며 들어선 순간, 이 밤늦은 시간에 유난히 교실이 깨끗하고 교탁 위에는 분필통이 단정하게 놓여 있어 기분이 유쾌해졌다. 게다가 그 안에는 예쁜 껌종이로 옷을 입힌 분필들이 한 상자 가득한 게 아닌가. 낭만도 사랑스러움도 사라져 가던 고3 교실에서 모처럼 따사로운 인간 냄새를 맡아서 기분이 좋아졌다.

그런데 마음과는 달리 무심결에 내 입에서 나온 소리는 "뭐야 이거, 고3이! 시간이 얼마나 걸릴 텐데!" 그리고는 돌아서서 무심히 칠판에 제목을 적고 있는데, 갑자기 뒷자리에서 후다닥 하는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린다. 순간 '아차!' 싶었지만, 차마 뒤를 돌아볼 수가 없었다. 뒤를 돌아봤을 때는 이미 늦었다. 저 뒷자리에 앉아 있던 늘 말 없고 공부를 잘하던 한 아이가 그 넓은 교복치마를 한껏 펄럭이면서 쿵쿵 소리를 내며 앞으로 나왔다. 그리고는 휘익 분필통을 집어들고선 다시 쿵쿵 제자리로 돌아가는데, 그런 무례한 모습을 아이들도 처음 보았는지 교실은 죽은 듯 조용하였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수업이 끝날 때까지는 사과해야지.' '교실을 나갈 때까지는 사과해야지.' '스쿨버스를 탈 때까지는 사과해야지.' … '졸업할 때까지는 사과해야지.'

 그러나 결국 사과를 못했다. 지금까지도 못했다. 그 아이의 이름조차 모른다. 굵은 테의 안경을 쓰고 말수가 없던, 지금은 엄마가 되고도 남았을 아주 오래된 제자. 지금도 그때의 일을 생각하면 부끄러움과 죄책감으로 마음이 무겁다. 회복이 안 된다. 그런데 찾을 길이 없다. 어떻게 사과하나.

 학생의 말없이 바라보는 표정이나 사소한 몸짓 하나, 그리고 목소리에 담긴 빛깔과 냄새, 감정, 분위기… 같은 비언어적인 행동을 섬세하게 읽어 내기에는 교사로서 나이가 너무 어린 27세였다고 하면 자위가 될까? 아니다. 아직 인간을 제대로 사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말과 행동이 무엇을 담고 있는 것인지를 알아내는 데에는 뛰어난 시각이나 청각이 필요한 게 아니다.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와 사랑이 필요할 뿐. '마음'만 있으면 된다. 마음으로 바라보고 다가갈 때 비로소 우리 아이들을 포함하여 모든 인간과의 진정한 의사소통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정답이 없는 대답으로 말하기의 두려움 없애기

   요즘 아이들, 흔히 어른을 능가하는 것처럼 굴기도 하고, 또 우습게 여기는 모습도 보이지만, 정작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말할 자리에서는 의외로 부끄러워하며 쑥스러워서 몸을 비틀거나 입을 꼭 다물고 있기가 예사다. 게다가 여전히 사회적 관념이 남아 있어서 '선생님은 어른인데 뭐 이런 게 문제되겠나?' 하며 아직도 선생님과 어른들에 대해 환상에 가까운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으레 자기들만이 잘못하고 또 용서받는 미숙한 인간들인 양 생각하기도 한다. 그래서 간혹 교사가 아이들 때문에 기분이 상하고 마음의 상처를 받거나 또 행복과 기쁨을 느낀다는 사실을 잘 모르기도 한다. 또한 교사들 역시 '교사는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교육신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자신이 인간임을 제쳐놓고서 오직 교사로서의 책임을 다하고자 나 아닌 다른 자의 모습으로 아이들 앞에 서곤 한다. 그럴 때면 어쩔 수 없이 거짓이 나오고 자기 기만이 나와 결국 스스로 해방되지 못한 삶을 사는 것이다. 그래서 조․종례 시간이나 교과 시간, 틈만 나면 집단상담을 통해 정답이 따로 없는, 즉 자기 느낌을 정직하게 드러내는 훈련을 하여 자신의 마음을 정직하게 읽고 인정하며 자신감을 키워 볼 일이다.


  * 어떤 때 나는 기분이 좋아지는가/나빠지는가?

* 최근에 즐거웠던/속상했던 일은 무엇인가?

* 내가 잘하는/못하는 것은? …

* 전에는 잘/못했는데 지금은 못하는/잘하는 것은?

  * 최근에 실천하고 있는 새로운 일이 있다면?


 어느 날인가 공교롭게도 들어가는 학급마다 속상한 일이 있어 종일토록 열이 가득 올라 있었다. 종례를 들어갔는데도 아이들이 쳐다보지도 않기에 "선생님이 왔는데 본 척도 안 하고! 나 무시당하는 것 같아 기분 나쁘다. 나는 오늘 아침부터 애들이 말을 안 들어 너무나 화가 나 있고 지금도 기분이 안 좋아. 우리 반에 왔으니 너희들이 나 좀 기분 좋게 해 줘 봐." 그러자 아이들은 한꺼번에 쏟아지듯 말을 내 붓는다.

 "할미꽃을 꺾어 드린다." (-평소에 늘 들꽃을 좋아한다고 했다.)

 "명희 선생님!" (-나는 '명희 선생님'이라고 불리면 언제나 기분이 좋다고 한 적이 있다.)

 "억척이가 참 잘생겼어요!" (-억척이는 내 짚차의 이름으로, 나를 칭찬하려면 억척이를 칭찬하면 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산에 불을 지른다아!"

 엉, 뭐라고? 산에 불을 질러? "아니 얘들아, 산에 불은 왜?" "선생님이 나뭇잎 타는 냄새가 좋다고 하셨잖아요! 산에 불을 지르면 하루종일 타니까 선생님 기분이 좋아지실 거잖아요." 아, 세상에! 그로부터 나는 약 5분간 배를 부여잡으며 웃을 수 있었다. 그리곤 언제 기분이 나빴더냐는 듯 날아갈 듯 즐겁고 행복해졌다. 이후에도 오랫동안 아이들이 미워지고 교단이 지겨워질 때면 이 말을 생각하곤 웃음지으며 옷깃을 다시 여민다.


적극적인 경청이 주는 놀라운 효과

 청각장애인은 상대의 입을 주시한다. 최대의 집중력으로 잘 보기 위해 상대방을 손으로 툭툭 건드린 뒤에 말이다. 자기의 말을 잘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 앞에서 말하는 기쁨은 대단히 크다. 마치 내가 굉장히 인격적인 대우를 받고 있는 듯이 생각되어서 말이다.


  3학년 지도부 학생들이 화가 난 채 교무실로 1학년 담임선생님을 찾아와 항의를 한다. 옆에서 보아하니 1학년들에게 실외화를 신고 교실이나 복도를 다니지 말라고 했는데도, 교실이 현관 옆에 있어 편하다는 이유로 그냥 실외화를 신고 다니며 도무지 고칠 기미를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 사연을 씩씩거리며 길게 이야기하는 것을 내내 듣고 있던 1학년 담임선생님이, "아, 1학년들이 형들을 우습게 알고 말을 안 들어서 화가 났구나. 형인데 동생들이 권위를 안 세워 줘서 되게 자존심이 상했겠구나!" 그러자 그 펄펄거리며 열을 내던 그 학생이 "예, 맞아요. 그럼 안녕히 계세요" 하며 꾸벅 인사를 하며 나가는 것이 아닌가! 교무실에서 그 풍경을 지켜보고 있던 나와 선생님들은 모두 한바탕 크게 웃었다.


  압력솥의 밥도 잔뜩 김이 차 오르면 그 김을 빼 주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사람이 극도로 흥분하거나 이성을 잃게 되면 평소 지능의 30%가 떨어진다고 한다. 이 정도는 아니더라도 내 이야기를 잘 듣고 맞장구를 쳐 주며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그 마음을 정확히 읽어 주고 알아 주는 이가 있을 때, 그 '이해받는다'는 느낌은 곧 '사랑받는다'는 느낌으로 다가와 한 인간을 긍정적으로 바꾸어 주는 역할을 할 것이다.


나전달법의 적절한 사용으로 바른 전달법 익히기

 우리 중세 국어에 '갋다'라는 말이 있다. '나란히 하다, 맞서다, 대결하다'라는 뜻이다. 어린 시절에 어른과 아이가 말다툼 혹은 말씨름을 하는 걸 보는 노인들이 "철없는 아이를 타이르지 않고 같이 고 있다"라 하시며 혀를 끌끌 차는 것을 자주 보았다. 동료들이 학생과 대립관계를 보일 때 그들 간에 오가는 언어를 보고 있으면 마치 탁구를 치는 것처럼 '탁-탁-탁-탁' 한 치의 물러남도 없이 팽팽하게 왔다갔다하는 모습에 바로 그 '애를 갋고 있다'라는 말이 절로 떠오른다.


 "야, 너 왜 선생님(어른)을 보고도 인사도 안 해?" "했는데요." "언제 했어? 못 본 척하고 지나갔잖아!" "했어요." "이게, 얻다 대고 말대꾸야. 손들고 무릎 꿇어." "내가 뭘 잘못했는데요?" "대체 너 이름이 뭐야?" "그건 왜 묻는데요?"


  뭐 이런 풍경은 학교에서나 가정에서 흔히 본다. 이 경우에 그저 쉽고도 간단하게 왜 마음이 상했는지를 투명하고 정직하게 전달해 보자. 즉, "얘, 네가 선생님을 보고 인사도 없이 지나가니 내가 선생 같지 않아 보여서 그러나 하고 생각돼서 기분이 안 좋구나" 혹은 "너 뭐 기분 나쁜 일이라도 있었니? 날 보고 인사도 안 하니 내가 조금 기분이 안 좋구나"라고 말할 수는 없을까? 그러면 이 말을 받는 아이는 어떻게 나오겠는가? 적어도 "그건 왜 묻는데요?" 보다 "아, 예. 죄송합니다"로 나오는 경우가 더 많지 않을까? 우선 나부터 변화하고 나부터 마음의 문을 열고 아이들을 동등한 사람으로 정직하게 대할 일이다. 그러면 절로 그 광명은 우리 학생들에게로 가게 될 수밖에 없다.

   우리는 흔히 ‘나를 몰라준다’며 아이들에게 곧잘 서러워하고 속상해 한다. 그렇게 겪었으면서도 내 마음 내 기분을 몰라도 이렇게 모르냐고 말이다. 그런데 아이들은 선생님의 기분을 잘 모를 뿐더러 도무지 선생님 개인에 대하여 그다지 아는 게 없다. 그저 선생님들은 으레 공부 잘하고 예의바른 아이들을 좋아하겠지 하는 짐작이 있을 뿐이다.

  스승의 날이 다가오는 어느 날 종례시간에 ‘지금 내가 가장 바라는 것’에 대하여 말하면서 동시에 친구들의 바람을 귀 기울여 들으며 생활에 반영할 것을 덧붙였다. 물론 담임인 나도 참여하면서 내 차례가 되어서 이렇게 말했다.

 "난 스승의 날에 너희들의 편지를 받고 싶어. 그것도 1번부터 끝번까지 전부 다 써서 파일에다가 번호대로 다 끼워서 말이야. 들꽃 한 다발과 함께라면 더 좋고. 그러면 난 참 행복할 거야."

그랬더니 정말로 스승의 날 아침에 반장이 편지가 가득 든 파일과 들꽃 한 묶음을 내미는 것이었다. 편지 속에는 이런 구절이 있었다.

 <스승의 날에 선생님께 무얼 드릴까 고민했는데, 마침 선생님이 편지와 꽃을 받고 싶다 하셔서 더 이상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니 참 편했어요. 또 돈이 안 드는 것들이라 더 좋았구요. 선생님, 고마워요.>


표현교육은 목숨을 살리는 교육

   인간에게 있어서 진정한 표현이라 하는 것은 어떤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서 '제 때'에 ‘자기’를 '제대로' 드러내도록 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주 위험하거나 부적절한 인간관계에 빠지게 되고, 마침내는 왜곡된 역사를 만들기 때문이다. 사람이 이러한 표현의 길을 못 찾거나 차단 당하면 결국 이 사회는 병든 사회로 가게 될 것이다. 아이들의 인간다운 성장과 앞날에 모든 가능성을 피어나게 하는 것은 자유로운 표현을 가르치는 교육에서 비롯된다. 때의 자유로움이란 다분히 더불어 사는 데 필요한 덕목인 이성과 절제와 조화가 전제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주어진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아이들의 생명을 꽃피우는 표현 교육을 통해 행복은 물론이요 생명을 지키고 키우는 일까지도 모두 우리 교육자들에게 놓인 엄숙한 과제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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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 알라딘에 써두지는 않는다.

   하기야 또 다시 책 읽는데 슬럼프에 빠져버렸다. 보통 일주일에 한 사나흘은 늦게 들어가는 날이 있고, 또 한 사나흘은 제법 일찍 들어가는 날도 있다. 늦게 들어가는 날이야 책 읽을 시간이 없는 건 당연한 거고, 문제는 일찍 들어가는 날이다.

   어제만 해도 7시쯤에 들어갔다. 안해가 저녁을 차리는 동안,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아서 놀았다. 야구 중계를 볼 예정이었으나, 비가 와서 경기가 아예 취소된 듯하다. 안해가 만든 김치찌개로 맛난 저녁을 먹었다. 잠시 자리에 누웠다가 깨니, 어느새 11시가 훌쩍 넘었다. 거의 요즘은 이렇다.

   잠깐 정신을 차린 후에 안해가 준비한 커피도 한 잔. 이제부터 설거지. 제법 밀린 설거지가 많았다. 컴퓨터로 노래를 켜놓고, 설거지를 하는 시간도 그리 나쁘지는 않다. 게다가 깔끔하게 정리된 주방을 보고 있으면 흐뭇하다. 그리고 화단에 나가 심어둔 고추를 살폈다. 한 보름 전에 심은 고추가 처음에는 비실비실하더니 요즘은 제 꼴을 잡아가는 것 같아 역시 기분이 좋다.

   비가 오는데 어쩐가 싶어서 화단을 나가 보니 고추는 점점 실해지는데, 고추 진딧물이 제법 달려있다. 다시 인터넷으로 진딧물 퇴치 방법을 검색해 본 결과, 우유를 뿌려주면 좋다고 해서 우유를 분무기에 넣어서 뿌려주었다.

   지금은 한참이 지난 날이다.

   우유를 뿌려준 이후로 우리집 고춧잎은 호흡을 못해 비실대다가 겨우 살아났다. 진딧물은 그대로여서 괜히 손해 본 느낌이다. 며칠 전에는 무당벌레가 천적이라고 해서 무당벌레도 한 마리 구해 놓았는데, 이틀 사이에 어디를 갔는지 없어져버렸다. 결국, 진딧물은 가장 원시적이지만 확실한 방법으로 족집게로 잡았다. 처음엔 좀 징그럽더니 이젠 거의 무감각하다.

   일주일 전에는 5일장에서 사 온 상추씨도 뿌리고 물도 듬뚝 주면서 기다렸는데, 여태껏 애를 태우더니, 오늘에서야 겨우 싹을 틔워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끝까지 화학 비료나 농약 한 번 주지 않고 잘 키울 수 있을지 걱정이긴 하다만 하는데까지는 해봐야겠다는 투지가 생겼다. (지난 일요일에 놀러온 아이들이 '농부샘'답다며 웃었다.)

   한창 무더운 여름, 내가 정성껏 키운 고추를 사람들과 나눠먹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생각해 보면 그 아파트 좁은 화단에서 고추가 얼마나 나오겠느냐만, 적더라도 좋은 사람들과 나누는 기쁨이 얼마나 클까를 상상하면 마음이 흐뭇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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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굼 2005-05-07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유가 진딧물에 좋군요. 그런데 거름으로 쓸 땐 썩혀야 하는 건 아시죠?:)

해콩 2005-05-09 2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후'는 언제 계속 되나요? 시험 무사히 치고 돌아왔슴돠! 에고..사는 게 고되군요. 그래도.. 재밌어요. 이렇게 소박하게 살아가는 이야기도 기대하고, 조르고..... ㅋㅋ

해콩 2005-05-09 2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안해'님께 안부 꼭! 그 깊을 '우울'은 극복이 되셨는지.. 가끔 그 상황의 그 아이에게 감정이입이 되어서 오소소 한기가 돋을 만큼 참담한 기분이 되기도 해요. 모든 걸 그렇게 한 순간 내려놓을 수도 있는데 우리는 왜 절대로 죽지 않을 것처럼 빠득빠득 하는 걸까요? 하나씩 내려놓아야겠어요. 이젠 우울도 내려놓을 때가 아닐까? 전해주세요~ 건강하시라고...
 

소풍

 

- 나희덕

 

얘들아, 소풍 가자.

해 지는 들판으로 나가

넓은 바위에 상을 차리자꾸나.

붉은 노을에 밥 말아 먹고

빈 밥그릇에 별도 달도 놀러오게 하자.

살면서 잊지 못할 몇 개의 밥상을 받았던 내가

이제는 그런 밥상을

너희에게 차려줄 때가 되었나보다.

가자, 얘들아, 저 들판으로 가자.

오갈 데 없이 서러운 마음은

정육점에 들러 고기 한 근을 사고

그걸 싸서 입에 넣어줄 채소도 뜯어왔단다.

한 잎 한 잎 뜯을 때마다

비명처럼 흰 진액이 배어 나왔지.

그리고 이 포도주가 왜 이리 붉은지 아니?

그건 대지가 흘린 땀으로 바닷물이 짠 것처럼

엄마가 흘린 피를 한 방울씩 모은 거란다.

그러니 얘들아, 꼭꼭 씹어 삼켜라.

그게 엄마의 인창살이라는 걸 몰라도 좋으니,

오늘은 하루살이떼처럼 잉잉거리며 먹자.

언젠가 오랜 되새김질 끝에

네가 먹고 자란 게 무엇인지 알게 된다면

너도 네 몸으로 밥상을 차릴 때가 되었다는 뜻이란다.

그때까지, 그때까지는

저 노을빛을 이해하지 않아도 괜찮다.

다만 이 바위에 둘러앉아 먹는 밥을

잊지 말아, 그 기억만이 네 허기를 달래줄 것이기에.

 

-<사라진 손바닥>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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