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풍

 

- 나희덕

 

얘들아, 소풍 가자.

해 지는 들판으로 나가

넓은 바위에 상을 차리자꾸나.

붉은 노을에 밥 말아 먹고

빈 밥그릇에 별도 달도 놀러오게 하자.

살면서 잊지 못할 몇 개의 밥상을 받았던 내가

이제는 그런 밥상을

너희에게 차려줄 때가 되었나보다.

가자, 얘들아, 저 들판으로 가자.

오갈 데 없이 서러운 마음은

정육점에 들러 고기 한 근을 사고

그걸 싸서 입에 넣어줄 채소도 뜯어왔단다.

한 잎 한 잎 뜯을 때마다

비명처럼 흰 진액이 배어 나왔지.

그리고 이 포도주가 왜 이리 붉은지 아니?

그건 대지가 흘린 땀으로 바닷물이 짠 것처럼

엄마가 흘린 피를 한 방울씩 모은 거란다.

그러니 얘들아, 꼭꼭 씹어 삼켜라.

그게 엄마의 인창살이라는 걸 몰라도 좋으니,

오늘은 하루살이떼처럼 잉잉거리며 먹자.

언젠가 오랜 되새김질 끝에

네가 먹고 자란 게 무엇인지 알게 된다면

너도 네 몸으로 밥상을 차릴 때가 되었다는 뜻이란다.

그때까지, 그때까지는

저 노을빛을 이해하지 않아도 괜찮다.

다만 이 바위에 둘러앉아 먹는 밥을

잊지 말아, 그 기억만이 네 허기를 달래줄 것이기에.

 

-<사라진 손바닥>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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