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 알라딘에 써두지는 않는다.
하기야 또 다시 책 읽는데 슬럼프에 빠져버렸다. 보통 일주일에 한 사나흘은 늦게 들어가는 날이 있고, 또 한 사나흘은 제법 일찍 들어가는 날도 있다. 늦게 들어가는 날이야 책 읽을 시간이 없는 건 당연한 거고, 문제는 일찍 들어가는 날이다.
어제만 해도 7시쯤에 들어갔다. 안해가 저녁을 차리는 동안,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아서 놀았다. 야구 중계를 볼 예정이었으나, 비가 와서 경기가 아예 취소된 듯하다. 안해가 만든 김치찌개로 맛난 저녁을 먹었다. 잠시 자리에 누웠다가 깨니, 어느새 11시가 훌쩍 넘었다. 거의 요즘은 이렇다.
잠깐 정신을 차린 후에 안해가 준비한 커피도 한 잔. 이제부터 설거지. 제법 밀린 설거지가 많았다. 컴퓨터로 노래를 켜놓고, 설거지를 하는 시간도 그리 나쁘지는 않다. 게다가 깔끔하게 정리된 주방을 보고 있으면 흐뭇하다. 그리고 화단에 나가 심어둔 고추를 살폈다. 한 보름 전에 심은 고추가 처음에는 비실비실하더니 요즘은 제 꼴을 잡아가는 것 같아 역시 기분이 좋다.
비가 오는데 어쩐가 싶어서 화단을 나가 보니 고추는 점점 실해지는데, 고추 진딧물이 제법 달려있다. 다시 인터넷으로 진딧물 퇴치 방법을 검색해 본 결과, 우유를 뿌려주면 좋다고 해서 우유를 분무기에 넣어서 뿌려주었다.
지금은 한참이 지난 날이다.
우유를 뿌려준 이후로 우리집 고춧잎은 호흡을 못해 비실대다가 겨우 살아났다. 진딧물은 그대로여서 괜히 손해 본 느낌이다. 며칠 전에는 무당벌레가 천적이라고 해서 무당벌레도 한 마리 구해 놓았는데, 이틀 사이에 어디를 갔는지 없어져버렸다. 결국, 진딧물은 가장 원시적이지만 확실한 방법으로 족집게로 잡았다. 처음엔 좀 징그럽더니 이젠 거의 무감각하다.
일주일 전에는 5일장에서 사 온 상추씨도 뿌리고 물도 듬뚝 주면서 기다렸는데, 여태껏 애를 태우더니, 오늘에서야 겨우 싹을 틔워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끝까지 화학 비료나 농약 한 번 주지 않고 잘 키울 수 있을지 걱정이긴 하다만 하는데까지는 해봐야겠다는 투지가 생겼다. (지난 일요일에 놀러온 아이들이 '농부샘'답다며 웃었다.)
한창 무더운 여름, 내가 정성껏 키운 고추를 사람들과 나눠먹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생각해 보면 그 아파트 좁은 화단에서 고추가 얼마나 나오겠느냐만, 적더라도 좋은 사람들과 나누는 기쁨이 얼마나 클까를 상상하면 마음이 흐뭇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