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0일 새벽, 광주터미널


8월 10일, 목포터미널


8월 10일, 목포 시내에서



무안의 백련회산지


회산지(回山池)의 백련


무안군 청계면 청천리 느티나무, 개서어나무 군락(천연기념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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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요일. 밖이 환하다. 실눈을 뜨고 보니 동행이었던 김OO 선생님이 없다. 화장실에 있나? 다시 쏟아지는 잠. 얼마나 잤을까? 다시, 동행자들의 말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니 돌아왔나 보다. 가까운 피시방에서 돌아갈 기차표를 예매하고 왔다는 것 같다. 나도 완전히 정신을 차렸다.

   평소보다 어질러 놓은 짐이 많다. 아침을 먹어야 하는데, 발가락에 잡힌 물집 때문에 나가기가 싫다. 두 분에게 간단한 아침을 사 와서 해결하자고 부탁해서 나가 있는 사이, 나는 숙소를 대충이나마 치웠다. 아침은 역시 빵과 우유. 이 정도면 아주 괜찮은 편이다. 일요일 아침, 느긋하게 텔레비전을 보면서 빵을 씹었고 짐을 꾸렸다.

   오늘은 서산마애삼존불을 보고 천안으로 가서 기차를 타기로 했다. 버스터미널까지는 꽤 먼 거리. 그래도 서산시의 중심지인 시장을 가로지르는 길이라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시장도 엄청나게 클뿐만 아니라, 아무래도 서해안 가까이에 있는 시장이라 그런지 생선과 해산물이 풍부했다. 이 시장도 일요일을 맞아 활기가 돌았다.

   여느 터미널과 비슷한 광경. 마애삼존불 입구까지 가는 시내버스를 탔다. 엄청나게 빠른 속도다. 들판과 하늘은 막 비가 갠 맑은 모습이라 나는 사진기를 계속 만지작거린다. 사진을 찍어 두면 좋겠지만 차 안이라 원하는 대로, 이 느낌대로 사진을 담을 수 없을 것 같아서 찍지는 않고 속으로 '아름답다'는 감탄만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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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름다운 정원
심윤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02년 7월
구판절판


나의 간지럽고 아픈 부분을 이렇게나 간결하게 짚어준 사람이 내 인생에 또 있었으랴. 공부 못하는 죄를 추궁당하는 것이 아니라 공부 못하는 서러움을 이해 받는 것은 생애 처음 있는 일이었다. 안 그래도 물러터진 내 마음은 완전히 물에 만 휴지처럼 흐물흐물해져서, 예쁘고 멋진 데다 현명하기까지 한 박 선생님 앞에서 때아닌 눈물까지 한 방울 선을 보일 뻔했다.-058쪽쪽

선생님이 물으시는 대로 조심스럽게 대답을 하면서 나는 뜻밖에도 후련한 감정을 느꼈다. 나에게 이런 이야기들을 물오본 사람은 일찍이 없었다. 다들 착하고 똑똑한 영주, 미련 맞고 덜렁대는 동구라고만 생각했다. 커튼을 젖히고 무대 뒤편으로 가보면 그곳에는 아직 어리고 미숙한 영주, 생각 깊고 마음 넓은 동구가 있었다. 선생님이 지금 처음으로, 어두운 무대 뒤편에 쪼그리고 있는 착하고 멋진 나를 무대 위로 불러내려는 순간이었다.-097쪽쪽

하지만 앞으로 우리 나라 민주화의 여정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권력은 정부나 여당이 아니라 군부라구. 이 나라의 18년 군부독재가 박정희 일개인의 똥배짱 하나로 유지되었겠어? 그 긴 세월 동안 사람들은 독재의 질서에 익숙해졌어. 박정희가 죽고 나서 부모를 잃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통곡하는 사람들을 봐. 그들은 민주주의를 원치 않고 있어. 누구든 강력한 권위를 행사하는 독재자에게 자신의 정치적 의지를 의탁하고 싶어한단 말이야. 이런 사람들은 민주주의와 맞닥뜨리게 되면 무능하다느니, 권위가 없다느니, 산만하다느니 하면 불평을 늘어놓게 되지.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은 문제라구? 그들도 역사의 수레바퀴 앞에서 저항할 수 없을 거라구? 아니야, 독재에 잘 길들여진 사람들은 또 다른 독재가 자라날 수 있는 가장 비옥한 밑거름이야. 이렇게 기름진 밭이 있는데 독재라는 질길 덩굴이 왜 성장을 멈추겠어?-216쪽쪽

어른들은 어른들의 방식으로 살아간단다. 네 힘으로 당장 고칠 수는 없어. 중요한 건 네게 나중에 그런 일이 생겼을 때 잘 하는 거야.-298쪽쪽

할머니처럼 세상을 단순하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편할까. 나는 마음 한편으로 할머니가 부러워졌다. 하지만 세상을 편하게 사는 사람이 있다면 한편 그 사람에 맞춰서 좀더 불편하게 살아야 하는 다른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306쪽쪽

우리 나라의 모든 좁은 길과 넓은 길을 누비는 강건한 트럭 운전사가 될 것이다. 트럭 운전사가 되어 첫 월급을 탄다면 제일 먼저 선생님의 향수를 사야겠다. 선생님이 남겨주신 손수건에, 내 뇌수 가장 깊은 곳에 새겨진 그 향기를 더해서 아주 오랫동안이라도 선생님을 기다릴 언제나 신선한 힘을 얻을 것이다. 선생님과 나는 어느 모퉁이, 어느 골목길에서 마주치게 될까. 세상의 어느 알지 못할 모퉁이에서 선생님을 만날 때, 선생님이 눈빛만으로도 나를 알아보고 두 팔을 벌리실 그 순간을 생각하기만 해도 나는 가슴이 뛰었다.-313쪽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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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마애삼존불을 찾아 오른 태안읍의 백화산에서 다시 한 번 감동받았다. 그리 크지도 높지도 않은 동네 뒷산 같은 산이었는데, 그 산이 품고 있는 폭은 무한이리만치 넓고 아득했다. 백화산의 정상은 지금 군부대와 동거를 하며 몸살을 앓고 있었지만, 산에 오른 우리들에게 자신이 품고 있던 비경, 모두를 선/명/하게 보여주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어제 내린 비 덕에 더욱 또렷했다. 티 없이 맑은 풍경 앞에 마음이 숙연해졌다.

   어쨌든 여유가 있었던 일정이라 오늘은 느긋하게 잠을 깼다. 셋 중에서 내가 제일 늦게 일어난다. 강OO 선생님 덕분에 푸짐한 아침을 먹게 되었다. 갓 구운 빵과 우유, 그리고 얼굴만큼 커다란 복숭아까지. 숙소까지 아침을 사 들고 들어와 느긋하게 아침을 먹으며 오늘 일정을 의논해 본 결과, 오전에는 읍내에 가까이 있다는 태안마애삼존불을 보고, 오후에 도보를 시작해서 서산까지 가기로 했다. 서산마애삼존불은 내일 마지막 일정으로 남겨두기로 했다.

   아무리 여유가 있어도 10시면 이제 나서야 할 시간이다. 태안마애삼존불은 읍내 숙소에서 바로 보이는 가까운 곳에 백화산 중턱에 있다고 했다. 산아래에 있는 태안초등학교 뒷문으로 올라가면 그리 멀지 않다고 해서 그곳으로 갔다. 어차피 돌아올 길이라면 짐을 맡기고 다녀오자 싶어서 읍사무소에 들렀다. 친절한 직원 덕분에 한결 몸이 가벼워졌다. 커피 한 잔을 마시고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했다.

   동네 뒷산이 대부분 그런 것처럼 산 아래 마을의 맨 끝집을 지나자 간이 체육공원이 나왔다. 야트막한 산은 온통 바위투성이, 골산(骨山)이다. 도로를 걸어가는 것과는 다른 느낌, 다른 기분이다. 조금 헉허거리며 산을 오르니 어느새 산 중턱. 산은 생각보다 빨리, 품고 있는 풍경을 우리에게 내어주었다. 바로 암자가 나오고, 가까운 곳에 마애삼존불이 있었다.

   우리나라 마애불의 시원(始原)인 태안마애불. 모든 것들의 처음이 대부분 그러하듯 소박하고 엉성한 모습으로 멀리 동쪽을 바라보며 그 자리에 천 오백년을 서 있었다고 한다. 아직도, 한창 연구가 진행되고 있어서 이 마애불을 두고 다양한 이론(異論)들이 많다고 했다. 서산의 마애불은 후덕하고 온화한 인품이 풍기는 인상이지만, 이 곳의 마애불의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씨익 웃으며 서 있는 것 같아서 보는 사람을 즐겁게 했다.

   당시의 사람들이 이렇게 마애불이 새기면서까지 간절히 기원해야 할 일은 무엇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 쯤,  해설사께서 태안반도의 물살이 세서 당시 백제와 중국을 오가는 배가 자주 이 곳에서 난파되었는데, 이 마애불을 통해 이 배들의 무사와 안녕을 기원하려던 것이 아닐까 추측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럴 듯한 설명이었다. 그러면 이 마애불들이 바다 쪽을 향해 있어야 더 적당한 것이 아닐까 싶은데, 이 마애불도 여느 불상처럼 동쪽을 향해 싱긋 웃고 있을 뿐이다.

   마애불에 대한 설명을 꽤 오래 들었다. 아무런 대가도 지불하지 않고, 이렇게 좋은 말씀을 얻어가기만 하는 것이 좀 무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더욱 읍사무소에 두고 온 가방과 그 속에 있을 내 지갑 생각이 간절했다. 진심으로 잘 들었다는 인사를 드리는 우리에게, 이렇게 '잘 들어 줄' 사람이 있어 존재의 의의를 느끼신다는 할아버지의 말씀이 돌아왔다. 한참이나 높은 경지!

   백화산 정상은 거기서 다시 100m 정도 올라가야 나온다. 너른 땅, 군데군데 박혔어야 할 돌들이 백화산에만 모여든 듯, 온 사방은 막힌 것 없이 시원하다. 동쪽으로는 서산과 당진이, 서쪽은 바다가, 남쪽으로는 아름다운 천수만과 안면도, 그리고 북쪽은 다시 바다가 모두 보였다. 우리의 눈을, 기억을 믿지 못하는지, 혹은 누군가에게 이 광경을 말하려는지 서둘러 사진을 찍었다.

   내려오는 길도 금방이었다. 읍사무소에 들러 '관폐'를 좀 더 끼치기로 했다. 할랑한 읍사무소 한켠에서 자장면을 시켜먹기로 하고 허럭을 받았다. 나는 자장면이 오는 동안, 좀 지쳐서 의자에 멍하게 앉아 있었는데, 강OO 선생님과 김OO 선생님은 아까부터 컴퓨터에 앉아 있는, 여자 아이랑 대화를 나누었다. 그 사이에 점심이 왔고, 어제 저녁에 집에서 쫓겨나 지금껏 굶었다는 이 아이와 함께 자장면을 나눠 먹으며 이것저것 묻기도 하고 집으로 가야한다고 달래기도 했다.

   서산으로 가기 위해 읍사무소를 나선 시간이 1시 40분이었다. 시간이 이렇게 지체되다 보다 18km의 거리도 꽤 부담스러웠다. 빡빡하게 걸어도 4시간 30분 정도는 걸어야 닿을 수 있는 거리니까. 슬금슬금 빗방울을 뿌릴 것 같다. 태안 읍내를 한 바퀴 빙 둘러 서산으로 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특별히 서산가는 길이 편했는데, 새로 난 4차선 국도 옆으로 한적한 옛날 도로가 그대로 살아 있어서 우리는 그 길을 따라 쭉 걸었다. 복숭아를, 특히 좋아하는 강OO 선생님 덕분에 도로에서 먹음직스럽게 생긴 복숭아도 사 먹고, 흥얼흥얼 콧노래도 부르면서 편안하게 걸을 수 있었다.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가운데, 우리가 서산 외곽 지역을 걸을 때 쯤, 길 왼편으로 거짓말처럼 무지개가 선명하게 떠 올랐다. 야, 무지개다. 가벼운 탄성! 무지개는 이제 우리의 시선을 붙잡고, 우리를 흥분시셨던 것 같다. 우리가 길을 떠난 게 이 무지개를 보기 위해서 였을까? 저 무지개는 우리 눈에는 가까운 곳에 있는 것처럼 보여도 절대로 우리가 닿을 수는 없다. 허상! 허상, 그래서 더욱 사람의 마음을 끄는 지도 모르겠다.

   여행의 마지막 날 밤. 근사한 숙소를 잡았고, 여느 때처럼 똑같은 저녁 일과가 시작되었다. 차례로 씻고, 저녁을 먹고, 피시방에서 오늘의 일과를 정리했다. 다만, 하나 더 늘어난 일이 있다면, 간단한 자축 파티였다. 캔맥주, 닭 한 마리, 과자 한 봉지가 전부인 소박한 파티였으나 정겨웠다. 오늘 있었던 여러 가지 사소한 일들에 대해 즐겁게 이야기하고, 내일 일정도 의논했다. 이렇게 사소한 일상이 모여서 내 삶이 만들어지는 것이리라. 다시 한 번, 빛나는 일상의 소중함을 생각해 본다.

   이번 여행이 끝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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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5-08-21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멀고 힘들지만 멋진 길을 걷고 계시네요. 마치 우리나라 통일이 가야하는 그 길처럼 말입니다. 걷는 일. 가장 쉽고, 우리가 매일 하는 일이지만, 쉽게 하지 못하는 그 일을 보는 눈은 부럽기만 합니다. 끝까지 건강하시고 힘내세요. 화이팅!!!

해콩 2005-08-23 2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소한, 그러나.. 빛나는 일상의 소중함.... 그리고 나의 삶! 욕심 없이 한 발 한 발, 그렇게 하루 하루..

느티나무 2005-08-25 0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샘님, 여행하는 동안 피곤하기도 했지만 오감이 즐거웠던 여행이었습니다. 저는 이번이 4번째인데요, 약간 중독성이 있는 것 같더라구요. 계속 이렇게 걸으며 여행할 수 있을까요?

느티나무 2005-08-25 0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콩님, 맞아요. ^^ 빛나는 일상. 큰 무엇의 변화도 소중하지만, 교실에서 관계 맺기의 변화가 가장 실질적이고, 혁명적인 변화의 시작이자 완성이겠다는 생각이 자주 들어요. 그런 점에서 님이 부럽기도 합니다.

해콩 2005-08-26 2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관계 맺기' 이거 제가 제일 못하는 것 중 하난데..
아직도 작년 담임했던 아이들 생각하며 원망하고 상처가 덜 아물어서 힘들어하고...
그러잖아요.. 한심스럽게...
근데 오늘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금정산에 물뜨러 갔다가 내려오는 길, '나에게 넌, 너에게 난' (맞나?) 이 노래 들으면서.. 작년 아이들이 떠오르데요.. '오리 날다' 들어도 그런데.. ^^ 추억할 만한 노래, 나에게 남겨준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요. 아이들도 저 노래 들으며 작년, 우리반 한 번쯤 생각해주고 웃을 수 있다면 족하지 않을까? 뭐 그런 생각... 내가 아이들의 삶을 바꿀 수 있다는 자만은 내려놓을래요. 그건 아이들이 스스로 해야 의미 있는 것이겠지요.
'빛나고 행복한 일상'으로의 복귀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렇게 말해놓고도 다시 힘든 일 닥치면 늘 툴툴대고 궁시렁거리고 힘들어 하는 것이 제 특기입니다. 이젠 파악이 다 되셨겠지만...
 

   어제 밤,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자야했다. 오늘부터 전국적으로 쏟아질 것이라는 비 소식을 전하는 일기예보 탓이었다. 그래도 우리 일행은 세 명이고, 비가 와서 떠내려가지 않는 한 가려고 했던 곳을 갈 것이니까, 가벼운 의심-정말 비가 많이 올까- 정도였을 뿐이다.

   안면읍에서 태안반도의 중심, 태안군청까지의 거리는 30km다. 이 정도면 꽤 먼 거린데, 비까지 내린다면 걸음은 더뎌질 것이니 조금 일찍 서둘러야 했다. 여러 개의 전화기 알람에도 꿋꿋하게 누워있다가 8시에 일어났다. 동행들은 이미 일어나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나도 서둘러야 했다. 아침은 꼭 밥을 먹어야 하는 강OO 선생님의 의견을 좇아 떡으로 먹었다. 나는 떡을 좋아하니까 아주 맛있게 먹었다.

   큰 비가 온다고 말했던 텔레비전이 이번엔 틀렸는가 보다. 새벽에 비가 온 흔적만 있고, 날은 잔뜩 흐려 있었지만 다행스럽게도 금방 비가 내릴 것 같지는 않았다. 우리는 하늘을 향해 '오늘만 참아주지'를 반복하며 안면읍내를 걸어나왔다. 비가 내리지 않고, 날이 흐리니 더없이 상쾌해서 걷기에 좋은 날씨였다. 더구나 안면도는 길 양 옆은 모두 청신한 소나무 숲이 자리잡고 있어서 넓은 송림숲을 걸어나오는 느낌이었다.

   어제 다 못한 이야기들이 술술 새어나와 심심하지도 않았다. 나는 발가락에 잡힌 물집이 약간 따끔거리기 시작해서 걷는 것이 약간 불편할 뿐 모든 것이 만족스러웠다. 지나가다 안면도의 관광안내도를 보고는 안면암의 부교(浮橋)가 눈에 들어와 거기를 가 보기로 했다. 안면도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도로에서 해안으로 꽤 먼 거리여서 입구에서 차를 얻어타기로 했다. 생각보다 먼 거리라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다가 10분만 기다려보고 차를 얻어타지 못하면 태안군으로 바로 걸어가기로 결정했다.

   3분도 지나지 않아서 차 한 대를 쉽게 얻어타고 울퉁불퉁 흙길을 달려 안면암에 도착했다. 안면암 2층에서 내려다본 모습. 오래도록 잊지 못하고 마음에 담아둘 수 있는 아름다운 풍경이다. 드넓은 갯벌이 천수만 바다를 밀어내고 아득하게 펼쳐져 있고, 바다는 다시 그 갯벌의 아득함 뒤로 아스라했다. 동행들은 암자에서 부교를 건너 눈 앞의 섬까지 다녀왔지만, 나는 천수만이 한 눈에 내려다 뵈는 안면암의 2층 난간이 더 좋았다.

   워낙 외진 곳이라 쉽게 나갈 수 없겠다는 예상과는 달리 언제나 운이 좋은 우리는, 금방 나가는 차를 얻어탈 수 있었다. 처음 차를 탔던 곳까지 돌아와 다시 도보가 시작되었다. 어느새 우리는 안면섬을 빠져나오고 있었다. 안면섬과 육지는 채 100m도 안 되는 다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었어도, 섬은 섬인지라 빠져나오자마자 도로 주변의 모습이 확연히 달라진 것 같았다.

   점심시간을 훌쩍 넘기고 있었으나 마땅한 식당이 없었다. 길을 걸으면서도 어디 괜찮은 식당이 없는지를 계속 두리번거리는 우리에게 '레미콘노동자 파업 63일째'라는 천막 농성장이 눈에 확 들어왔다. 피맺힌 심정을 대변하는 듯 시커멓거나, 빨간 색으로 아무렇게나 쓴 듯한 글이 천막 곳곳에 적혀 있었다. 길 건너편에선 우리는 강OO 선생님의 주도로 '투쟁기금'을 모으기로 했다. 음료수라도 사들고 들어갔으면 했지만, 가게 한 군데 없는 길 옆이라 봉투도 없이, 3만원만 달랑 들고 주저주저하고 있었다. 그 분들은 그 분들대로 우리가 주저하는 게 '라면이라도 좀 끓여달라는 부탁'을 우리가 부끄러워서 망설이는 것으로 보셨나 보다. 손짓을 하며 건너오라고 하신다.

   길을 건너서 투쟁기금을 슬그머니 놓고 돌아서는데, 당황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계속 점심이라도 들고 가라시는 걸, '괜찮다'고 하자 우리들에게 음료수를 쥐어주셨다. 나는, 저럴 때 얼마나 힘이 나는지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다. 이런 작은 응원이 자신의 권리를 찾아나선 노동자들을 좌절하지 않고 끝까지 싸울 수 있게 하는 힘이다. 내가 편향된 시각을 가진 사람이라 그렇겠지만, 여전히 우리 나라 노동자들의 파업 현장을 볼 때마다 마음이 먹먹하고 짠하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 나의 의식이 존재를 배반하기 않기를...

    발걸음은 이제 훨씬 가볍다. 나도 가뿐한 마음으로 남면사무소가 있는 곳까지 쉬지 않고 걸을 수 있었고, 비록 3시 30분이었지만, 행복한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점심을 먹고는 맞은 편 우체국에서 쉬기로 했다. 친절한 우체국 직원 덕분에 푹 쉴 수 있는데다가 공짜로 커피까지 마실 수 있었다. 인터넷은 기본! 그러나 가야할 길이 많은 탓에 서둘러 길을 나설 수 밖에 없었다.

   한 시간쯤 걸었을까, 그 때까지 참았던 하늘이 드디어 울음을 터트렸다. 너무 오래 참아서였을까, 빗방울이 500원짜리 동전만큼 굵은 것이었다. 미처 어디로 피할 틈도 없이 쏟아지는 빗방울에 완전히 젖어버렸다. 가방이야 아침부터 미리 꽁꽁 싸둬서 짐은 안 젖겠지만, 겨우 버스정류장에 피해 쉬고 있는 우리의 몸이 물에 빠진 꼴이다. 폭우를 맞는 것도 신기한 경험인지라 연신 사진기로 기록을 남겼다.

   굵은 방울이 가는 방울로 바뀌었고, 가는 방울도 점차 뜸해지더니 비가 그쳤다. 세상은 금방 세수를 끝낸 해맑은 얼굴을 하고 있다. 비 온 후의 맑은 풍경을 보며 걷는 맛이 일품이었다. 하늘은 어느덧 가을의 표정을 짓고 있다. 초록의 바다 가운데 드문드문 붉은 색 점이 찍힌 고추밭은 잘 자랐고, 고추밭 너머로 훌쩍 자란 수숫대, 그 너머엔 방금 씻은 가을 하늘이 손에 잡힐 듯 맑고 파랬다. 이런 풍경과 함께 걷는 길은, 마치 오랜 여행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행복한 저녁길이었다.

   오늘도 역시, 운 좋게도 값이 싸면서도 시설도 꽤 괜찮은 숙소를 구했다. 비에 젖은 옷을 입고 있는 꾀죄죄한 옷차림 덕분인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얼른 씻고 저녁을 먹었다. 저녁을 먹고 나면 항상 피시방에 들러서 오늘 일과를 기록해 둔다. (매일 하지 않으면 이번 여행에 대한 기록을 남기지 못할 것 같기 때문에, 힘들고 피곤해도 꼭 기록하려고 애쓴다. 그래서 더욱 첫날의 여행기가 날아간 게 속상하다.)

   방으로 오는데, 가을 바람 같이 서늘한 바람이 분다. 곧 가을이 오려나 보다. 숙소에서 내일 일정을 의논했으나 뾰족한 수가 없다. 내일 일은 내일 하잔다. 그러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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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5-08-23 2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가을 바람처럼 살랑살랑 행복한 글이네요.. 그 날의 모습들이 눈에 선~해요.. ^^
참!! 사진은 없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