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오늘, ‘안해’와 함께 주왕산을 다녀왔다. 일박 이일이라고 말하기가 미안할 만큼의 짧은 시간이었다. 오늘 본 주왕산은 지난 월요일에 수리를 맡긴 사진기가 못내 아쉬움만큼 멋진 모습이었다. 720미터의 그리 높지 않은 산을 왜 국립공원으로 지정해 놓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집에서 시외버스 타는 곳까지는 한 시간도 넘게 걸린다. 아침에 일어나 이것저것을 하다 보니 벌써 시간이 훌쩍 갔고, 그때서야 서둘러 아침 겸 점심을 먹고 나서서 겨우 청송으로 가는 13시 20분 버스를 탔다. 청송까지는 3시간 10분이 걸린다고 했다. 한숨 푹 잘 수 있겠다 싶어서 마음 놓고 있었는데 영천버스터미널 닿자마자 옆의 차로 옮겨 타라고 한다. 내가 탄 차는 30분 후에 출발하고,(영천터미널에서 출발하는 시간표가 있으니까) 바로 옆에 있던 차는 지금 출발한다고 했다. 좀 떨떠름했지만, 그냥 옆의 차로 옮겼다.

   본격적인 멀미가 시작되었다. 중학교 때 이후로 거의 차멀미를 해 본 적이 거의 없는데, 구불구불한 산길을 내달리는 버스를 타고 가자니 속이 울렁거려서 좀 힘들었다. 그래도 겨울산 중턱을 넘어갈 때 보이는 경치는 참 좋았다. 겨울 산의 휑한 모습이 마치 실컷 울고 난 다음에 돌아보게 되는 자기 자신의 모습 같았다. 영천에서 청송까지는 그야말로 꼬부랑길이었다. 도로를 달리는 차들도 드물고, 사람은 더군다나 드물었다.

  마지막 10분은 몹시 힘들었으나, 겨우 참아서 청송읍에 내렸다. 얼굴을 훑고 가는 공기부터가 달랐다. 차고 맵싸한 게 피부를 팽팽하게 당겼다. 내리자마자 근처의 가게에서 주산지로 가는 버스를 물었으나, 버스로는 가기 힘들 거라는 답이 돌아왔지만, 괘념치 않고 마침 도착한 버스를 냉큼 탔다. 청송에서도 한참을 달려 도착한 곳은 부동이라는 동네. 알고 보니 주산지까지 걸어가려면 40분이 걸린단다. 더군다나 부동에서 청송 가는 막차는 5시 40분이라고 했다. (그 때가 4시 40분이었다.)

  좀 가다보면 주산지 가는 사람도 있겠지, 그럼 얻어 타고 갔다 오지, 뭐! 하고 찬바람 쌩쌩 부는 길을 ‘안해’와 걷기 시작했다. 옷을 단단히 챙겨 입고 오길 정말 잘 했다며 조금만 걸어보자며 주산지를 향했다.(사실, 주산지를 가야겠다는 계획은 없었으나, 예상보다 빠른 오후 4시에 청송에 도착한 바람에 시간이 좀 남아서 아까우니까 뭐라도 좀 보자는 심산이었다.) 그러나 30분을 걸어도 지나가는 사람은커녕 차 한 대도 없었다. 시간은 다섯 시를 넘겼는데, 아직도 주산지까지는 20분이 걸린다고 해서 그냥 돌아 나오고 말았다.(그래도 지나다니는 차 한 대 구경할 수 없었다.)

   부동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청송읍으로 나왔다. 이번에는 달기약수탕을 찾아가기로 했다. 시내버스 타는 곳을 여쭤 보고 다시, 시내버스를 탔다. 기사님께 달기약수탕 앞에 좀 내려달라고 해서 내렸다. 근데 어두워서 어디가 어딘지 알 수가 없었다. 아저씨께서 괜히 먼 곳에 내려준 것 같다며, 버스를 타고 오다가 보았던 뒤쪽으로 다시 돌아갔다. 인터넷에서 본 식당이 있어서 달기 약수로 끓인 걸쭉한 백숙을 먹었다.

  근처에 숙소가 없어서 깜깜한 도로를 10분 정도 걸어 나왔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 코와 볼은 이미 얼어붙어 종종걸음만 걸으면 숙소를 찾아 다녔다. 그러나 어렵게 찾은 숙소에 들어오자마자 이내 실망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방안은 온기도 없고, 지저분한데다가 이불은 다양한 종류의 머리카락들! 말씀을 드렸더니 심야전기를 이용하기 때문에 11시에나 보일러가 작동된다고 한다. 따라서 당연히 그 때까지 씻지도 못했다. 10시쯤에 마실 물을 사러 10분도 넘게 걸어야하는 곳까지 다녀오다 알게 되었는데, 사실은 보일러가 고장이 난 것이었다. 조금만 기다려보라는 주인의 말에 다시 올라가서 기다렸으나 11시 반을 넘겨도 찬물만 나오고 온기도 없었다. 더 있을 수 없어 나가겠다고 말씀을 드리니, 말없이 돈을 돌려주셨다. 처음엔 어디로 갈지 막막했지만, 2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서 숙소를 구했다. 우리가 제일 먼저 한 질문은 당연히-“방 따뜻해요, 뜨거운 물 나오죠?”였다.

  다음날 아침 숙소를 나섰는데, 찬바람이 더 세게 불었다. 어제 어두워서 못 본 달기 약수를 찾아 다시 버스에서 내린 곳으로 되돌아가니 과연 달기약수탕이 있었다. 차라리 버스에서 내린 곳에서 저녁과 숙소를 구했더라면 훨씬 더 좋을 뻔했다.

  사이다처럼 톡 쏘는 첫맛에다 쌉싸래한 뒷맛이 강한 약수는 신기하고, 혹 몸에 좋은지 모르겠으나 많이 먹을 수는 없었다. 돌아서서 오늘의 중심 일정인 주왕산으로 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렸으나 이 동네는 정말 버스가 안 다닌다. 얼마를 기다려야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인지라 얻어 타려고 해도 지나다니는 차를 보기도 그리 쉽지 않았다.

  어렵게 얻어 탄 차가 마침 주왕산까지 간다고 하기에 염치없이 눌러앉아서 주왕산 입구에서 내렸다. 꽤 늦은 시간. 여행지에 그 흔한 비빔밥으로 점심을 먹고, 주왕산국립공원에 들어섰다. 산행보다는 가벼운 산책 수준이었는데, 사실 주왕산의 볼거리를 그걸로 충분한 듯  싶었다. 대전사에서 출발해서 주왕암과 주왕굴, 그리고 1,2,3폭포를 둘러보고 돌아오는 길은 힘들이지 않고, 동행과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다녀올 수 있는 곳이었다. 찬바람을 맞으며 내려온 탓에 공원 입구의 가게에서 어묵과 파전으로 허한 속도 달랬다.

  그러나 버스 정류장에 와 보니 청송으로 가는 버스는 방금 떠나버렸고, 부산 가는 버스는 2시간 반이나 지나야 있다고 했다. 할 수 없이 다시 도로를 걸어가며 지나가는 차를 세웠다. 다행스럽게도 청송까지 가는 분의 차를 얻어 탈 수 있었다. 청송에서 영천까지만 가면 부산으로 가는 버스가 있을 것 같아서 망설이는데, 갑자기 대구로 가는 버스가 온다고 해서 엉겁결에 대구까지 버스를 타고 말았다.

  한숨 자고 일어났는데 바로 영천이었다. 그것도 기사님이 깨워서 일어났다. 표를 확인하는 중이었다. 대구로 가는 버스를 타자마자 영천까지만 가는 표를 살 걸 하는 후회가 들었는데, 역시나 영천에 오니 부산으로 가는 버스가 제법 있었다. 그냥 내리자니 돈도 아깝다. 영천에서 부산까지는 1시간 30분이 걸린다는데, 우리는 다시 영천에서 대구까지 50분이 더 걸리는 거리를 달려가서 다시 부산으로 가는 기차를 타야한다. 그러니 시간도 더 많이 걸리고 돈도 더 많이 드는 셈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기차역이 버스터미널보다 우리 집에서 훨씬 가깝다는 것이다.

  이왕 이렇게 된 것 모처럼 기차여행 한다고 마음먹기로 했다. 영천에서 대구까지는 기사님의 무한질주로 빨리 왔다. 거기서 다시, 택시를 타고 동대구역으로 와 기차를 타고 부산에 닿았다. 연결이 잘 되어서 버스를 타고 올 때의 시간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었다.

  안해와 내가 어디 갔다가 집에 돌아오면 이구동성으로 하는 첫 마디는 ‘우리 집이 젤 좋아!’ 그 말이 절로 나왔다. 예전 같으면 밖에서 저녁까지 먹고 들어왔겠지만, 오늘은 집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울렁거리는 속도 달랠 겸해서 김치국밥을 끓여 맛있게 먹었다.

  모처럼의 여행은 여러 가지 황당한 사건과 미숙한 판단력이 빚어져서 엉망이 될 수도 있었으나, 결국 어떤 마음으로 벌어진 일을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마음은 좋은 사람과 함께 할 때, 좋은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것을 느끼게 한 의미 있는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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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2006-01-06 14: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06년 1월 3일-4일의 여행 기록 ^^
 

 

내 어린 ‘친구’들에게 띄우는 편지


OO고등학교 교사 느티나무


1. 연어, 강으로 돌아왔어요.


  참, 묘하더군요. 2월 찬바람이 쌩쌩 불던 날, 새롭게 일하게 될 학교를 알게 되던 날의 기분 말입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설레기도 했고, 두렵기도 했어요. 새 부임지로 정해진 곳이 지금의, 우리 학교인 OO고등학교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말이지요. 그러나 이 기분은 누구나 겪는 낯선 환경에 대한 설렘과 두려움은 아니었어요.

   그 날의 마음을 다시 떠올려 본다면, 우선 약간 기분이 좋았던 것 같기도 해요. 저에게 우리 학교는 그리 낯선 곳만은 아니었거든요. 어렴풋하게나마 제가 여러분들을 좋아하게 되리라는 걸 그 때 이미 알았다고 할까요? 두려움에 대한 느낌도 이런 것이었지요. 아직 제 자신이 준비가 덜 되었다는 불안감, 그런 제 자신을 제가 좋아하게 될 여러분들 앞에 온전히 드러내야 한다는 곤혹스러움이 마음을 눌렀어요. 

  아무튼 전보발령을 받던 날은 제가 한 마리의 연어가 된 날이었어요. 오랜 바다 여행을 끝내고 다시 그 바다로 나가기 전에 살던 강의 상류로 되돌아가는 한 마리 연어 말이지요.


  우리 학교에 온 첫 날, 제 눈길을 가장 먼저 잡아끈 것은 운동장에서 볼 때 중앙 현관 왼쪽에 있는 목련입니다. 제가 어쩌다 우리 학교를 생각할 때면 늘 그 목련이 잘 있을까, 지금쯤 목련꽃은 하얗게 피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 목련을 떠올리면 어느 선생님이 생각납니다. 아주 오래 전일인데도 무척 기억이 또렷해요. 그 때가 아마 사월쯤이었을 겁니다.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 끝에 창밖에 활짝 핀 목련꽃을 무연(憮然)한 표정으로 내다보시며 ‘그 때도 저 목련은 저렇게 피었을 테지……’하셨습니다. 이상하게도 그 때 하신 말씀의 내용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이 말씀을 하신 것과 그 때 선생님의 표정은 또렷하게 기억이 납니다.

  제가 마음속으로 존경했던 분이셨거든요. 엄혹했던 시대, 눈물과 고난이 필요했던 시절을 외면하지 않고, 몸으로 견뎌 오면서도 학생들을 대하는 마음은 참 따사로운 선생님을 보면서 나도 닮고 싶다는 생각이, 저 교탁에 서서 반짝거리는 눈빛을 가진 아이들의 ‘좋은 선생’이 되고 싶다고 마음먹었거든요.

  저는 예전에 그 선생님께서 서 계셨던 교실에서 창문 밖으로 목련을 건너다 봤지요. 무엇이 좋은 것인지는 아직도 분명하지 않지만,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열망으로 가득했던 내 학창 시절이 떠올리며, 학생들을 사랑하겠다는 것, 좋은 사람이 되어야한다는 것, 최선을 다해 일해야 한다는 것, 기쁜 마음으로 살아야한다는 것 등의 첫 마음의 떠올리며 다시 한 번 다짐해 보았습니다.


2. 사랑에 빠진 사람을 위한 ‘해명’


  저는 여러분들을 만나던 첫날부터 여러분들이 좋았습니다. 그냥, 좋았어요. 왜 그런 거 있잖아요. 딱! 내 스타일이구나 싶은 거. 사람은 누구라도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노력하는 법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저의 능력이 부족함이 아니라, 저의 게으름을 지적할까 싶어 늘 조심했습니다. 저의 지난 1년의 삶을 여러분들이 보고 겪어서 느낀 대로 받아들이는 건 여러분들의 자유지만, 제 행동 너머에 담긴 의미까지 읽어낼 수 있는 여러분들의 혜안을 기대해 봅니다.

  내가 좋아하는 여러분들의 행동에 따라서 제가 모질게 야단을 쳤을 수도 있고, 부드럽게 타일렀을 수도 있고, 틀에 박힌 잔소리를 퍼부었을 수도 있고, 짐짓 무심한 척 지나쳤을 수도 있겠지요. 그렇지만, 어느 순간에도 여러분들을 이해하려고 사랑하려고 애쓰지 않은 적은 없었다고 감히 말하고 싶어요.

  가끔 저의 잔소리 같은 꾸지람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들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은 어쩔 수 없이 커집니다. 저의 진심을 몰라주는 야속한 친구들에게 이 자리를 빌어서 이런 이야기를 꼭 들려주고 싶습니다.


  옛날에 동네에서 온갖 나쁜 짓을 일삼던 어느 양반의 아들이 있었는데요, 동네 사람들은 그 아버지의 위엄 때문에 아들의 ‘못된 짓’을 나무라지 않고 모두들 참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늘 아들의 장래를 걱정하던 아버지만이 그 아들을 불러다가 타이르고 가르치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아들이 이런 말을 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르다고 하지 않고 아버지만 그르다고 하시는데, 대체로 소원1)한 자는 공정하고 친한 자는 사정을 두는 법입니다. 어째서 남들은 그르다고 하지 않는데 아버님께서는 도리어 저를 나무라신단 말입니까?"


  그러자 그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아들에게 말합니다.


   "공정하기 때문에 네가 그른 행동을 하는 것을 보고는 사람 취급을 안 해 아무도 나무라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그 기미2)가 너무도 참혹하지 않느냐. 사사로운 정이 있기 때문에 네가 그른 행동을 하는 것을 보고는 마음이 아파서 행여나 뉘우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그러니 그 정상이 너무도 애처롭지 않느냐. 네가 한번 생각해보아라. 세상에 부모 없는 자에게는 훈계해주는 사람이 없는 법이다. 내가 죽은 뒤에는 내 말뜻을 알게 될 것이다."3)


  그래서 어떻게 되었냐구요?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동네 사람들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그 아들의 못된 버릇을 혼내 주었다지요. 그때서야 아들은 뒤늦게 아버지의 가르침을 이해하고 후회했다고 하네요.


  이 글을 통해서 여러분들이 저의 따끔한 꾸중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 주셨으면 합니다.


3. …… 그리고 나의 남은 이야기


  가끔씩 저는 여러분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여러분들은 무한한 가능성으로 아름다운 존재라고. 그 때마다 여러분들은 이구동성으로, 오히려 ‘선생’인 제가 부럽다고 했지요. 그냥 해 본 말이 아니라 저는 정말로 여러분들이 부러워요. 한줌도 되지 않는 내가 가진 것이 혹시 여러분들의 부러움을 샀는지 알 듯 말 듯 하지만, 여러분이 가진 가능성에 비하면 사실 그런 건 아무것도 아닐지 모릅니다. 여러분은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또,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아름다운 것이거든요. 가능성은 불안정이라고요? 두렵다구요? 맞아요, 그래요. 그런데요, 그래서 더 아름다워요. 부디 여러분들이 가진 그 가능성을 하찮게 생각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여러분에게, 흔하디흔한 ‘잔소리’ 같은 당부를 드리고 싶어요. 이 ‘잔소리’를 내가 2005학년도에 만난 여러분과의 짧은 인연을 소중하고 아름답게 생각하고 있다는 증거로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어요. 

   아마도 여러분들은 ‘리차드 바크(Richard Bach)’가 쓴 ‘갈매기의 꿈’이라는 책에 나오는 갈매기 조나단 리빙스턴의 이야기는 여러 번 들었을 테지요? 우리는 그 책에 나오는 갈매기 조나단의 놀라운 용기에 찬사를 보내며, 우리도 더 멀리 날수 있다는 꿈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다짐하고는 했습니다, 그렇지요? 조나단이 겪게 되는 시련과 따돌림마저도 높이 날게 된 결과 앞에서 얼마나 멋있어 보이잖아요. 거기에 반해서 조나단을 비웃고 배척하는 다른 무리의 갈매기들을 여러분들이 비웃어 주게 되지요.

   그러나 현실에서 조나단처럼 살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모를 거예요, 아니 우리는 어쩌면 조나단처럼은 아니더라도 조나단을 핍박했던 갈매기의 무리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항상 되짚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끊임없이 자기의 삶을 지켜보는 눈을 여러분들의 마음속에 가지고 있지 않다면 여러분들과 저는 금세 조나단을 비웃는 갈매기로 살아가기 쉽거든요.

  또, 우리는 괴롭더라도 항상 꿈을 가져야 합니다. 꿈은 오늘 우리가 어디에 서 있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별과 같은 존재거든요.(수업 시간에 제가 항상 강조하는 ‘학습목표’와 같다면 이해가 빠를까요?) 비록 마음속에 꿈을 가지고, 그 꿈을 향해 살아간다는 것은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결국 그 고통과 시련이 우리를 인간다운 인간으로 살아가게 하는 힘이고, 진실로 인간됨의 괴로움을 알고 살아가게 하는 힘입니다. 오래도록 자기 마음에 선한 꿈을 품고 희망의 끈을 놓치지 않는 사람, 학교라는 존재가 여러분들이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시․공간이었으면 좋겠고, 그래서 여러분들이 그런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시 한 편 같이 읽으면서 내 마음을 담은 짧은 글을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이 시를 읽을 때마다, 한때나마 지천으로 피어있는 들꽃의 아름다움에 취해서 내가 좋아하는 ‘친구’인 여러분들의 이름과 존재에는 오히려 둔감하지 않았는지 되짚어 보고 반성하게 됩니다.

  방학 잘 보내세요. 새 학년에, 다시, 맑은 얼굴로 봅시다.


들풀4) 


들풀을 보면 생각난다.

이름으로 불러 준 적 없는 아이들


마음으로 읽고

눈빛으로 알고

따스히 흘러

빗장을 열게 하는 사랑

나눠 준 적 없는 아이들


그런 사랑 받아 본 적 없어

더 가슴 태웠을 것을

더 다가오고 싶었을 것을


들풀을 보니 생각난다.

화사하지 못하여

키에 가리워

먼발치로만 서성이던 아이들


한 번 더 다가섰으면

꽃이 되었을 우리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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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2006-01-06 0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해도 교지에 담을 글 한 편을 썼다.(엄연히 원고 청탁이다.ㅎㅎ) 작년에 썼던 내용을 좀 보태고 깁고 해서 쓰다보니 내용도 스타일도 항상 좀 비슷하다. (그게 좀 불만이다.)

* 참고로 연어 이야기는 지금 내가 근무하는 학교가 내가 다닌 고등학교이기 때문이다. 공립학교에서는 흔하지 않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해콩 2006-01-06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늘 느낍니다. 한/수/위!! 아마도 영원히 그렇지 않을까? 글 쓰는 폼새가 예사롭지 않으세요. 저는 도저히 진짜~ 진심으로 저런 마음이 될 수는 없던데... 비결이???

해콩 2006-01-06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퍼갑니다. 혹시나 저도 나중에 저런 마음이 될 날이 있을까... 하여..

BRINY 2006-01-06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졸업한 학교에 교사로 돌아가시다니!

느티나무 2006-01-06 1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콩님, 그렇게 말씀하시면 섭섭하지요. 한 수 위라니요? 아이들에 대한 선생님의 그 정성을 어떻게 따라갈 수 있을까 싶은데... 제가 많이 배워야 하는데요, 뭘!
BRINY님, 그래도 정말 좋기도 하고, 싫기도 해요.
 

   방학하고 나서 하루도 집에 온전히 있었던 날이 없었는데, 오늘도 밖에 나가봐야 할 일이 생겼다. 우선, 말썽꾸러기 사진기를 일단 맡겨야한다. 남포동까지 가야하니까, 단단히 차리고 나서야 하는 길이다. 이번에도 수리비가 많이 나온다면 심각하게 고민을 해 봐야겠다.

   돌아오는 길에는 목욕을 할 생각이다. 새해도 맞이했으니 기쁜 마음으로 목욕탕에 들러 묵은 때를 좀 밀어야겠다. 깔끔한 모습으로 변신하고 싶다. 그리고 바로 집에 들어가기는 그러니까, 어제 보려다가 오늘로 미룬 영화, '왕의 남자'를 보는 게 좋겠다. 본 사람들의 평이 좋아서 기대가 크다. 재미가 있었으면 좋겠다.

   지난해부터에 읽어 오던 '미국에 대해 알고 싶은 모든 것, 미국사'는 새해가 시작하고 한 시간이 지나서 다 읽었다. 내가 미국인이었으면 훨씬 더 재미있었겠다 싶은 책이었다. 읽으면서 내가 이런 거까지 알아야 하나?하는 생각이 제법 들었다. 그리고 이어서 읽기 시작한 책이, 공지영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었다. 처음 몇 쪽이 읽기 힘들었지만, 다음부터는 술술 읽혔는데, 너무 잘 읽히는 게 좀 미안했다. 새해 첫 날 새벽은 그 책을 읽는 것으로 끝냈다.

   오늘 읽고 있는 책은 탁석산의 '한국의 정체성'인데, 아이들과 함께 읽고 이야기하기로 한 책이다. 며칠 전에 온 집을 다 뒤져도 전에 사 둔 이 책이 보이지 않아서 눈물을 머금고 또 사고야 말았다. 지금 거의 다 읽어 가는데, 약간 걱정이다. 고등학교 1학년 짜리들이 이걸 읽어낼 수 있을까, 하고 말이다.

   어제 아내와 여행 계획을 세웠다. 내일 눈 덮힌 주왕산을 보러 가기로 했다. 버스로 이동하면 시간이 꽤 걸리긴 하지만, 마음은 편할 것이다. 원래는 2박 3일로 다녀오려고 했는데, 여행지를 못 정하는 바람에 하루 짧아진 일정이다. ^^;;

   이크~ 늦었다. 이제 나서야겠다. 우선 사진기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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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2006-01-03 0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 사진기를 맡겼다. 저번에 수리한 부분이 고장났기 때문에 이번에는 공짜로 해 준다고 한다. 맡기러 간 보람이 있다.
2. 목욕도 했다. 돌아오는 길에 우리 동네에선 꽤 큰 서점에 들러서 책 구경을 하다가 집으로 오는 길에 목욕탕에 들러 때목욕을 했다. 기분이 상쾌했다.
3. 집에서 저녁을 먹고 곧 바로 '왕의 남자'를 보러 갔다. 볼 만은 했으나, 그닥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지는 않은 영화였다.
 

   지난 여름 도보여행을 가기 전에 수리했던 사진기가 또 LCD 화면이 안 나온다. 부산에 있는 지정 A/S 센터는 우리집에서 한참이나 멀고, 수리 비용도 만만치 않게 나왔는데... 이번에는 어떻게 될까나? 그렇다고 있는 사진기를 그냥 내버려둘 수도 없고, 가끔은 필요할 때가 꼭 있기도 하다.

   방학을 하고 나니, 이래저래 자잘한 일거리가 생기는구나! 요즘은 또 책도 잘 안 읽는다. 그냥 시간이 쑥쑥 빠져나가는 느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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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페이퍼에 글을 쓰고 마음이 정해지면 책을 살까 한다.  어제 지금껏 쓴 신용카드 결재 금액(따라서 다음 달에 청구서가 나올)을 보고 약간 움찔했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일까? (물론 남들보다야 적게 쓰는 게 확실하지만, 중요한 것은 스스로가 정한 기준과 판단이니까!) 그래서 며칠 전부터 장바구니에 넣어 두었던 책을 확 사지도 못 하고, 이렇게 밍기적거리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4만원의 주문 금액을 넘겨 2천원의 적립금을 받고 싶지만, 이번에 다 사기는 좀 그러니까, 한 권이라도 먼저 사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사고 싶은 책은, 아직 리뷰에도, 페이퍼에도, 리스트에도 이름을 올린 적이 없는(그래서 thanks to를 할 수 없는) 책이다. 예전에 인디고 서원에 대한 페이퍼를 올린 적이 있는데, 며칠 전에는 인디고 서원에 대한 책이 한 권 나온 걸 봤다.

   바로 요기에 있는 책이다.

  

   오늘 방학식을 했다. 방학은 언제나 그렇지만 특히나 겨울방학은 상쾌함과 허탈함을 동시에 준다. 그리고, 내 마음의 검은 그림자를 훤히 드러내게 만들었던 우리 반 아이들과도 헤어짐을 준비해야 한다. 마음 아픈 일도 참 많았었는데... 이번에도 역시 아쉬움이 많다.

   이번 방학에도 보충수업을 하게 되었다. 참,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내가 잘 한 짓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번 방학에는 특별한 '과외'를 해 볼 계획도 있다. 희망자를 중심으로 '독서논술반'을 한 번 해 보기로 했다.(뭐, 이름은 거창하지만, 실제로는 정해 준 책을 읽어 와서 토론하고, 특정한 주제를 바탕으로 논술 글쓰기를 해보고 싶은 정도이다. 아직 얼개만 있고 구체적인 내용은 없다.)  비공식적인 보충수업인 셈이다.(물론 수업료는 없다! 보충수업도 비공적으로 하다니, 참!! 그냥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다.) 이런 형태의 수업에 대해 제대로 교육받은 적이 없어서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나에게도 공부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리라고 믿는다.

   자세한 과정은 나 자신과 또 다른 누군가를 위해 꼼꼼하게 기록을 남겨두고 싶다. 참, 첫 모임은 다음주 목요일 오후 2시다. (모임 이름도 지어야 하겠군!) 이번에 읽을 책은, 시작하는 거니까 <한국의 정체성, 탁석산, 책세상>이다. 유혹거리가 너무도 많은 세상에서 아이들이 진지한 책을 잘 읽어 올까? 사려는 책에 독서 논술에 대한 예시 과정이 들어있다면 좋을텐데 말이다.

   하기로 결정했으면서도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 - 잘 한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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