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오늘, ‘안해’와 함께 주왕산을 다녀왔다. 일박 이일이라고 말하기가 미안할 만큼의 짧은 시간이었다. 오늘 본 주왕산은 지난 월요일에 수리를 맡긴 사진기가 못내 아쉬움만큼 멋진 모습이었다. 720미터의 그리 높지 않은 산을 왜 국립공원으로 지정해 놓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집에서 시외버스 타는 곳까지는 한 시간도 넘게 걸린다. 아침에 일어나 이것저것을 하다 보니 벌써 시간이 훌쩍 갔고, 그때서야 서둘러 아침 겸 점심을 먹고 나서서 겨우 청송으로 가는 13시 20분 버스를 탔다. 청송까지는 3시간 10분이 걸린다고 했다. 한숨 푹 잘 수 있겠다 싶어서 마음 놓고 있었는데 영천버스터미널 닿자마자 옆의 차로 옮겨 타라고 한다. 내가 탄 차는 30분 후에 출발하고,(영천터미널에서 출발하는 시간표가 있으니까) 바로 옆에 있던 차는 지금 출발한다고 했다. 좀 떨떠름했지만, 그냥 옆의 차로 옮겼다.

   본격적인 멀미가 시작되었다. 중학교 때 이후로 거의 차멀미를 해 본 적이 거의 없는데, 구불구불한 산길을 내달리는 버스를 타고 가자니 속이 울렁거려서 좀 힘들었다. 그래도 겨울산 중턱을 넘어갈 때 보이는 경치는 참 좋았다. 겨울 산의 휑한 모습이 마치 실컷 울고 난 다음에 돌아보게 되는 자기 자신의 모습 같았다. 영천에서 청송까지는 그야말로 꼬부랑길이었다. 도로를 달리는 차들도 드물고, 사람은 더군다나 드물었다.

  마지막 10분은 몹시 힘들었으나, 겨우 참아서 청송읍에 내렸다. 얼굴을 훑고 가는 공기부터가 달랐다. 차고 맵싸한 게 피부를 팽팽하게 당겼다. 내리자마자 근처의 가게에서 주산지로 가는 버스를 물었으나, 버스로는 가기 힘들 거라는 답이 돌아왔지만, 괘념치 않고 마침 도착한 버스를 냉큼 탔다. 청송에서도 한참을 달려 도착한 곳은 부동이라는 동네. 알고 보니 주산지까지 걸어가려면 40분이 걸린단다. 더군다나 부동에서 청송 가는 막차는 5시 40분이라고 했다. (그 때가 4시 40분이었다.)

  좀 가다보면 주산지 가는 사람도 있겠지, 그럼 얻어 타고 갔다 오지, 뭐! 하고 찬바람 쌩쌩 부는 길을 ‘안해’와 걷기 시작했다. 옷을 단단히 챙겨 입고 오길 정말 잘 했다며 조금만 걸어보자며 주산지를 향했다.(사실, 주산지를 가야겠다는 계획은 없었으나, 예상보다 빠른 오후 4시에 청송에 도착한 바람에 시간이 좀 남아서 아까우니까 뭐라도 좀 보자는 심산이었다.) 그러나 30분을 걸어도 지나가는 사람은커녕 차 한 대도 없었다. 시간은 다섯 시를 넘겼는데, 아직도 주산지까지는 20분이 걸린다고 해서 그냥 돌아 나오고 말았다.(그래도 지나다니는 차 한 대 구경할 수 없었다.)

   부동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청송읍으로 나왔다. 이번에는 달기약수탕을 찾아가기로 했다. 시내버스 타는 곳을 여쭤 보고 다시, 시내버스를 탔다. 기사님께 달기약수탕 앞에 좀 내려달라고 해서 내렸다. 근데 어두워서 어디가 어딘지 알 수가 없었다. 아저씨께서 괜히 먼 곳에 내려준 것 같다며, 버스를 타고 오다가 보았던 뒤쪽으로 다시 돌아갔다. 인터넷에서 본 식당이 있어서 달기 약수로 끓인 걸쭉한 백숙을 먹었다.

  근처에 숙소가 없어서 깜깜한 도로를 10분 정도 걸어 나왔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 코와 볼은 이미 얼어붙어 종종걸음만 걸으면 숙소를 찾아 다녔다. 그러나 어렵게 찾은 숙소에 들어오자마자 이내 실망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방안은 온기도 없고, 지저분한데다가 이불은 다양한 종류의 머리카락들! 말씀을 드렸더니 심야전기를 이용하기 때문에 11시에나 보일러가 작동된다고 한다. 따라서 당연히 그 때까지 씻지도 못했다. 10시쯤에 마실 물을 사러 10분도 넘게 걸어야하는 곳까지 다녀오다 알게 되었는데, 사실은 보일러가 고장이 난 것이었다. 조금만 기다려보라는 주인의 말에 다시 올라가서 기다렸으나 11시 반을 넘겨도 찬물만 나오고 온기도 없었다. 더 있을 수 없어 나가겠다고 말씀을 드리니, 말없이 돈을 돌려주셨다. 처음엔 어디로 갈지 막막했지만, 2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서 숙소를 구했다. 우리가 제일 먼저 한 질문은 당연히-“방 따뜻해요, 뜨거운 물 나오죠?”였다.

  다음날 아침 숙소를 나섰는데, 찬바람이 더 세게 불었다. 어제 어두워서 못 본 달기 약수를 찾아 다시 버스에서 내린 곳으로 되돌아가니 과연 달기약수탕이 있었다. 차라리 버스에서 내린 곳에서 저녁과 숙소를 구했더라면 훨씬 더 좋을 뻔했다.

  사이다처럼 톡 쏘는 첫맛에다 쌉싸래한 뒷맛이 강한 약수는 신기하고, 혹 몸에 좋은지 모르겠으나 많이 먹을 수는 없었다. 돌아서서 오늘의 중심 일정인 주왕산으로 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렸으나 이 동네는 정말 버스가 안 다닌다. 얼마를 기다려야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인지라 얻어 타려고 해도 지나다니는 차를 보기도 그리 쉽지 않았다.

  어렵게 얻어 탄 차가 마침 주왕산까지 간다고 하기에 염치없이 눌러앉아서 주왕산 입구에서 내렸다. 꽤 늦은 시간. 여행지에 그 흔한 비빔밥으로 점심을 먹고, 주왕산국립공원에 들어섰다. 산행보다는 가벼운 산책 수준이었는데, 사실 주왕산의 볼거리를 그걸로 충분한 듯  싶었다. 대전사에서 출발해서 주왕암과 주왕굴, 그리고 1,2,3폭포를 둘러보고 돌아오는 길은 힘들이지 않고, 동행과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다녀올 수 있는 곳이었다. 찬바람을 맞으며 내려온 탓에 공원 입구의 가게에서 어묵과 파전으로 허한 속도 달랬다.

  그러나 버스 정류장에 와 보니 청송으로 가는 버스는 방금 떠나버렸고, 부산 가는 버스는 2시간 반이나 지나야 있다고 했다. 할 수 없이 다시 도로를 걸어가며 지나가는 차를 세웠다. 다행스럽게도 청송까지 가는 분의 차를 얻어 탈 수 있었다. 청송에서 영천까지만 가면 부산으로 가는 버스가 있을 것 같아서 망설이는데, 갑자기 대구로 가는 버스가 온다고 해서 엉겁결에 대구까지 버스를 타고 말았다.

  한숨 자고 일어났는데 바로 영천이었다. 그것도 기사님이 깨워서 일어났다. 표를 확인하는 중이었다. 대구로 가는 버스를 타자마자 영천까지만 가는 표를 살 걸 하는 후회가 들었는데, 역시나 영천에 오니 부산으로 가는 버스가 제법 있었다. 그냥 내리자니 돈도 아깝다. 영천에서 부산까지는 1시간 30분이 걸린다는데, 우리는 다시 영천에서 대구까지 50분이 더 걸리는 거리를 달려가서 다시 부산으로 가는 기차를 타야한다. 그러니 시간도 더 많이 걸리고 돈도 더 많이 드는 셈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기차역이 버스터미널보다 우리 집에서 훨씬 가깝다는 것이다.

  이왕 이렇게 된 것 모처럼 기차여행 한다고 마음먹기로 했다. 영천에서 대구까지는 기사님의 무한질주로 빨리 왔다. 거기서 다시, 택시를 타고 동대구역으로 와 기차를 타고 부산에 닿았다. 연결이 잘 되어서 버스를 타고 올 때의 시간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었다.

  안해와 내가 어디 갔다가 집에 돌아오면 이구동성으로 하는 첫 마디는 ‘우리 집이 젤 좋아!’ 그 말이 절로 나왔다. 예전 같으면 밖에서 저녁까지 먹고 들어왔겠지만, 오늘은 집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울렁거리는 속도 달랠 겸해서 김치국밥을 끓여 맛있게 먹었다.

  모처럼의 여행은 여러 가지 황당한 사건과 미숙한 판단력이 빚어져서 엉망이 될 수도 있었으나, 결국 어떤 마음으로 벌어진 일을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마음은 좋은 사람과 함께 할 때, 좋은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것을 느끼게 한 의미 있는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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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2006-01-06 14: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06년 1월 3일-4일의 여행 기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