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쩍새

 

- 윤제림

 

남이 노래할 땐
잠자코 들어주는 거라,
끝날 때까지.


소쩍. . . . 쩍
쩍. . . . 소ㅎ쩍. . . .
ㅎ쩍
. . . . 훌쩍. . . .


누군가 울 땐
가만있는 거라
그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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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6-06-09 2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시를 읽으니... 울고 싶어지네..
...훌쩍...

느티나무 2006-06-13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담에 울고 싶을 때 이 시를 떠올려 봐야 겠네요...

2006-06-15 02: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어제는 우리 학교 미술선생님의 작품 전시회(개인전)가 마지막 날이었다. 다른 선생님들은 이미 며칠 전에 다 다녀오셨고, 나만 못 가고 있어서 어제 가기로 마음 먹었다. 그런데 생각과는 달리 집에서 하루 종일 뒹굴거리다가 오후 늦게서야 집을 나서게 되었다.

   일단 전시회에 들고 갈 화분을 하나 사기로 하고 가까운 꽃집에 들렀으나,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문을 닫았다. 할 수  없이 근처의 대형 마트까지 걸어가서 그 안에서 있는 꽃집에서 화분을 샀다. 처음부터 어떤 목표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아주머니가 권유하는 대로 사다보니 생각보다 큰 화분을 사게 되었다. 그런데다 아무 생각도 없이 주황색 비닐 봉지까지 씌웠으니 들고 나오면서도 좀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걸 들고 걸어가기는 뭣해서 택시를 탔다. 전시회장에 금방 닿았다. 화분을 들고 전시회장을 걸어가니 다행스럽게도(?) 미술선생님은 보이지 않았다. 슬그머니 들어가서 화분을 전시장 가운데다가 아무도 몰래 놓았다. 그리고는 천천히 그림을 감상하기 시작했다. 그림의 색깔들이 참 따뜻하게 느껴진 게 인상적이었다. 천천히 그림을 보면 한 걸음씩 걷고 있는데, 어디선가 약간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미술선생님께서는 올해 전근오셔서 나와 몇 마디 나누지도 못한 상태였다. 게다가 어찌나 과묵하신지... 말 붙이기가 쉽지 않다.) 미술선생님께서 친구분과 말씀을 나누고 계신 듯했다. 나는 눈치를 슬글슬금 보면서 옆으로 걸었다.

   결국 미술선생님의 눈길을 피해다니느라 그림은 그림대로 편안히 못 보고 말았다. 대신 방명록에다 다녀간 흔적만 남겼다.(화분 이야기는 쓰지도 못했다.) 나올 때 보니까 미술선생님께서 밖으로 나오시는 게 보였다. 얼른 옆 공간의 유물전시관으로 들어갔다. 전시물을 좀 둘러보는 동안, '내가 왜 이러나'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조금 있다가 전시관을 나와 근처의 서점으로 가는 지름길로 가려다가 거기서 미술선생님과 친분이 있는 듯한 분들과 말씀을 나누고 계시길래 바로 뒤돌아서 다른 길로 가 버렸다.

   동네 서점에 들렀다. 만원 짜리 도서상품권이 생긴 덕에 모처럼 동네 서점에 들른 거였다. 서점 안에서 책을 고르면서도 내내 오늘 일을 곱씹어 보았다. 내가 생각해도 정말 어이가 없는 행동이었다. 책도 잘 골라지지 않아서 시집 두 권 고르는데 한 시간도 넘게 걸렸다. (한 권은 선물용으로, 외롭고 높고 쓸쓸한을 골랐고, 다른 한 권은 내가 읽으려고 토종닭 연구소라는 시집을 샀다.)

   집에 돌아오니 또 피로가 몰려왔다. 만사를 제쳐두고 잠을 잤다. 저녁 늦게 깨니 또 그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평소에 약간 수줍음을 타고, 부끄러움도 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오늘은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근데 우스운 일은 이런 일을 다른 사람들에게 잘도 떠벌리고 다닌다는 것이다. 이게 부끄러움이 많은 사람이 맞는지?) 아내와 오늘 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니, 역시 황당해 한다.

   가끔씩 이런 날이 있다. 바보 짓 하는 날! 어제가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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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its 2006-06-07 2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보짓이 아니라 예쁜짓 같은데요, 미술 선생님이 그 마음 아셨음 좋겠어요..^^

아영엄마 2006-06-08 0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셨으면 인사라도 나누시지 그렇게 피해서 다니셨어요. ^^

425000

느티나무 2006-06-08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어릴때님, 아니에요. 후회막급~! 이젠 안 그래야죠. ^^
아영엄마님, 고맙습니다. 센스가 대단하세요. ㅎ 25000을 지났네요. 별 것도 아닌 숫자인데... 저게 사람으로 생각하면 두렵지요. ^^;;
 

생솔

 

- 박성우

 

눈은 언제나 치매밭골이 먼저 녹았다

구슬치기에 소질이 없던 나는

춘란이 유난히 많은 그곳에 올라 겨울방학을 보냈다

빨치산들이 살았다 하여 아이들은

내 뒤를 따르지 않았지만

꼭, 엄마 치맛자락처럼 생긴 그곳은 혼자 가도 좋았다

 

아버지는 빚 때문에

그해 겨울도 돌아오지 못했다

우리집엔 여느 집처럼 외양간 옆에

장작더미가 없었고 낯익은 얼굴들이

아버지의 소식을 묻곤 했다

정지에서 시래깃국 끓이던 셋째 누나는 가끔

생솔가지를 아궁이에 넣고 움츠려 있었다

한번은 연기가 맵다고 투덜거리는

내 등을 한참 동안이나 안고 있었는데

불에 던져진 생솔보다 더 끈적이는 송진을 흘렸다

 

성냥개비가 되어가는 줄 모르는 어머니는

베틀에 앉아 삼베 품을 팔고 늦은 밤에 돌아오셨다

그런 이유로 우리들은

남의 집 반찬에 익숙해져갔다

국민교육헌장 외우기에 좋았던 치매밭골,

그곳에선 솔방울 반 포대 줍는 동안

외우지 못할 것이 없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갈퀴나무를 하기 위해 그곳에 올랐다

갈퀴나무 흩어지지 않게 생솔가지 꺾어

칡넝쿨로 묶어오곤 했다

 

서울로 돈벌러 갔던 큰누나 내려오던 날

성적표를 본 누나는 부지깽일 들었지만 나는

따순 물 끓이며 생솔에 묶여진 갈퀴나무

아끼지 않았다, 밥 안치던

큰누나는 눈 속에 생솔을 태우고 있었다

 

박성우, 거미, 창작과비평사,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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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에 읽은 책을 이제야 정리하게 되었다.

   5월에는 우리 학교의 거의 모든 행사가 한꺼번에 열렸다. 첫 시작은 나흘동안 있었던 중간고사, 한다 못한다 말이 많았던 체육대회와 아이들이 정신력으로 버텼다고 말하던 학급소풍, 휴무 여부를 놓고 갈등을 빚다 결국 등교한 스승의 날까지. 게다가 지방선거까지 겹쳐서 정신 없이 바쁘게 지나갔다. 그 와중에 나는 문학 수행평가로 소설 읽기를 해서 책을 좀 읽은 거 같다.

   사람살이 어느 때고 근심걱정 없는 때가 없다지만, 요즘 들어 사는 것이 위태위태하다는 생각을 새삼 하게 된다. 마음을 다 잡아도 별 수 없는 문제들이 마치 오래전에 예정된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말간 얼굴로 다가와 앉아 있다. 근심과 걱정으로 돌아보면 어느 순간 사라져 버릴 때도 있지만, 한 번 그 얼굴을 본 사람은 사는 게 만만치 않다는 걸 깨닫게 되나 보다.

 

 

 

 

 

 

 

 

 

  • 헐크바지는 왜 안 찢어질까 - 와, 이 책 읽다가 웃겨 죽는 줄 알았다. 개나 소나 다 쓴다고 겸손해 하지만, 이렇게 박학다식하면서 상상력이 풍부한 내용에다 재치있는 글쓰기를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려나? 아무튼 영화에 대해 관심이 좀 있는 사람이라면 강추함.
  • 습지생태보고서 - 맞은 편 자리에 계신 선생님의 추천으로 사게 되었는데, 우리 사회의 '습지'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책이었다.(생물학 책인 줄 알았음) 이 작가는 '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라는 책의 작가이기도 한데, 마니아들을 열광시킬 수 있는 책이다. 작가의 전작을 재미있게 읽은 사람이라면 강추함.
  • 순이 삼촌 - 어릴 때 읽은 순이삼촌이 생각이 안 나 다시 읽게 되었다. 문학 수행평가가 여러 편의 단편을 읽고난 후 독서평가 같은 것이었는데... 이것도 그 작품 중의 하나였다. 제주도의 숨겨진, 아픈 속살을 알고 싶다면 강추함.
  • 길에서 만난 세상 - 이 책은 리뷰를 써서 더 의미가 있는 책이다. 아이들과 함께 읽고 싶은 책으로 선정하였다. 인권 문제에 관심 있는 사람에게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
  • 아주 특별한 과학에세이 - 읽다가 흥이 덜 나서 그만 둔 책이다. 확실히 과학 분야엔 흥미가 떨어진다. 제대로 읽은 책이 너무 드물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좋은 책이라고 추천해 주었는데... 아이들에게 읽으라고 권해 준 책이기도 함.
  •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 황만근 책도 참 재미있었다. 약간 공허한 느낌도 들었는데... 그래도 재미있는 소설을 찾는 사람이라면 읽어도 유감은 없을 듯!
  • 왜 이렇게 살기가 힘든 거예요 - 요즘 왜 이렇게 웃긴 책들이 많을까, 택시기사로 일하는 전직 건축가의 좌충우돌 세상살이 보고서인데, 글쓴이 특유의 말투와 재치가 돋보이는데... 읽고 나면 찐한 감동이 느껴지는 책이다. 제목도 감동적이어서 자꾸 손이 가는 책이다.
  • 나의 첫번째 사진책 - 한겨레21에서 운영하는 디카 사진을 올리고, 기자의 평을 듣는 코너가 있는데, 우연히 거기에 사진을 올렸다가 덜컥 걸린 적이 있다. 그 때 내 사진을 뽑아준 분이 곽윤섭 기자였다. 이번에 나온 기자의 사진책을 읽으면서 다시 새롭게 디카 사진을 잘 찍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나은 사진을 찍고 싶은 사람에게 강추함.
  • 그래도 희망은 노동운동 - 내 돈을 내서라도 주변 사람들에게 사 주고 싶은 책이다. 자세한 건 리뷰에다 다 썼다. (모처럼 이주의 마이리뷰에 당선된 글이다.)

 

[아이들과 2006년 5월에 함께 읽은 책]

 

 

 

 

 

  •  [열 네 번째] 전태일 평전 (2006년 5월 12일) - 열 네 번째 모임의 숙제는 전태일 평전을 읽고 허삼관 매혈기와 비교해서 생각해 보기, 전태일이 선택한 방법에 대해서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말하기, 부모님의 평전 쓰기
  • [열 다섯 번째] 얼어붙은 눈물 (2006년 5월 26일) - 열 다섯 번째 모임은 거의 모두 모였다. 얼어붙은 눈물을 읽고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 말하기, 자유를 위해 목숨을 거는 일은 가치로운 일인지, 각자의 생각을 써 보고 발표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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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수요일, 그러니까 전국 동시지방선거가 있는 날에 금정산을 다녀왔다. 며칠 전부터 우리 반 녀석들에게 같이 등산 가자고 여러 번 제안을 했건만, 같이 가겠다고 나선 녀석은 달랑 네 명! 정작 당일에는 그 중에서 한 명은 무슨 일 때문에 못 오고, 그래서 세 녀석들과 나 이렇게 넷이서 금정산 상계봉을 올랐다.

   투표는 아파트 틈에 끼여있는 초등학교에서 채 5분도 걸리지 않았고, 아이들과 같이 먹을 토마토를 묵직하게 들고 버스에 타서 산행을 시작할 수 있는 종점에 닿았다. 옹기종기 모여있는 녀석들!이 녀석들은 작년에도 우리 반이었던 녀석이 둘이라 역시 작년에도 나를 따라 금정산에 갔었다. 전에는 아무 것도 챙겨오지 않더니만, 이번에는 제법 간식이며 물을 챙겨온 게 역시 경험해 본 사람은 달랐다.

   동문에서 출발해서 남문을 거쳐서 망미봉, 상계봉에 올랐다. 역시 상계봉에서 바라본 금정산 경치는 '부산에도 이런 곳이?' 하면서 감탄할 만했다. 아이들도 말없이 멋진 풍경에 푹 빠졌다. 한참을 상계봉 바위 위에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하산길로 접어들었다. 그런데 그만 욕심을 부려서... 고생을 좀 했다.

   지금까지 안 다녀 본 길로 내려가 보자 싶어서 샛길로 들어선 것이 화근이었다. 처음에는 길이 잘 나 있고(물론 등산 안내 리본도 달려 있었다.) 그런데 어느 곳에서 방향을 잘못 잡았는지, 길이 점점 험해지더니 사람 다닌 자취가 적어서 거미와 거미줄 천국인 길로 들어서고 말았다. 그래도 꾹 참고, 조금 더 내려가니 이제는 아예 바위 무더기만 쌓여있고 길의 흔적은 사라졌다. 한참을 바위를 타고 내려오다가 아무래도 이상하다 싶어서 옆으로 조금 들어갔더니 멀쩡한 길이 쭉 뻗어있었다.

   허탈한 마음보다는 '다행이다' 싶었다. 녀석들과 서둘러 내려와서 근처의 수퍼에서 음료수로 목을 축이고 동네의 칼국수집으로 가서 칼국수를 먹으면서 뒷풀이를 했다. 신경이 쓰여서 꽤 피곤한 하루였는데, 집에서 계속 뒹구는 것보다는 훨씬 행복한 하루였다.

   이 기세를 몰아서 우리 반 녀석들과 지리산 원정대를 꾸리기로 했는데, 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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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its 2006-06-04 0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리산 원정대... 멋진데요~ 아직은 집에서 뒹구는 게 전 훨씬 더 좋지만, 언젠가는 산에도 한 번 가볼까 싶어지네요...^^

느티나무 2006-06-04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리산에 다녀온지도 꽤 됐네요. 그리운 그곳~!이라고 말하면 너무 상투적일까요?죽도록 고생하기만 하면서도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다시 가고 싶어지는 건 왜 그럴까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