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솔

 

- 박성우

 

눈은 언제나 치매밭골이 먼저 녹았다

구슬치기에 소질이 없던 나는

춘란이 유난히 많은 그곳에 올라 겨울방학을 보냈다

빨치산들이 살았다 하여 아이들은

내 뒤를 따르지 않았지만

꼭, 엄마 치맛자락처럼 생긴 그곳은 혼자 가도 좋았다

 

아버지는 빚 때문에

그해 겨울도 돌아오지 못했다

우리집엔 여느 집처럼 외양간 옆에

장작더미가 없었고 낯익은 얼굴들이

아버지의 소식을 묻곤 했다

정지에서 시래깃국 끓이던 셋째 누나는 가끔

생솔가지를 아궁이에 넣고 움츠려 있었다

한번은 연기가 맵다고 투덜거리는

내 등을 한참 동안이나 안고 있었는데

불에 던져진 생솔보다 더 끈적이는 송진을 흘렸다

 

성냥개비가 되어가는 줄 모르는 어머니는

베틀에 앉아 삼베 품을 팔고 늦은 밤에 돌아오셨다

그런 이유로 우리들은

남의 집 반찬에 익숙해져갔다

국민교육헌장 외우기에 좋았던 치매밭골,

그곳에선 솔방울 반 포대 줍는 동안

외우지 못할 것이 없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갈퀴나무를 하기 위해 그곳에 올랐다

갈퀴나무 흩어지지 않게 생솔가지 꺾어

칡넝쿨로 묶어오곤 했다

 

서울로 돈벌러 갔던 큰누나 내려오던 날

성적표를 본 누나는 부지깽일 들었지만 나는

따순 물 끓이며 생솔에 묶여진 갈퀴나무

아끼지 않았다, 밥 안치던

큰누나는 눈 속에 생솔을 태우고 있었다

 

박성우, 거미, 창작과비평사,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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