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요일, 그러니까 전국 동시지방선거가 있는 날에 금정산을 다녀왔다. 며칠 전부터 우리 반 녀석들에게 같이 등산 가자고 여러 번 제안을 했건만, 같이 가겠다고 나선 녀석은 달랑 네 명! 정작 당일에는 그 중에서 한 명은 무슨 일 때문에 못 오고, 그래서 세 녀석들과 나 이렇게 넷이서 금정산 상계봉을 올랐다.

   투표는 아파트 틈에 끼여있는 초등학교에서 채 5분도 걸리지 않았고, 아이들과 같이 먹을 토마토를 묵직하게 들고 버스에 타서 산행을 시작할 수 있는 종점에 닿았다. 옹기종기 모여있는 녀석들!이 녀석들은 작년에도 우리 반이었던 녀석이 둘이라 역시 작년에도 나를 따라 금정산에 갔었다. 전에는 아무 것도 챙겨오지 않더니만, 이번에는 제법 간식이며 물을 챙겨온 게 역시 경험해 본 사람은 달랐다.

   동문에서 출발해서 남문을 거쳐서 망미봉, 상계봉에 올랐다. 역시 상계봉에서 바라본 금정산 경치는 '부산에도 이런 곳이?' 하면서 감탄할 만했다. 아이들도 말없이 멋진 풍경에 푹 빠졌다. 한참을 상계봉 바위 위에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하산길로 접어들었다. 그런데 그만 욕심을 부려서... 고생을 좀 했다.

   지금까지 안 다녀 본 길로 내려가 보자 싶어서 샛길로 들어선 것이 화근이었다. 처음에는 길이 잘 나 있고(물론 등산 안내 리본도 달려 있었다.) 그런데 어느 곳에서 방향을 잘못 잡았는지, 길이 점점 험해지더니 사람 다닌 자취가 적어서 거미와 거미줄 천국인 길로 들어서고 말았다. 그래도 꾹 참고, 조금 더 내려가니 이제는 아예 바위 무더기만 쌓여있고 길의 흔적은 사라졌다. 한참을 바위를 타고 내려오다가 아무래도 이상하다 싶어서 옆으로 조금 들어갔더니 멀쩡한 길이 쭉 뻗어있었다.

   허탈한 마음보다는 '다행이다' 싶었다. 녀석들과 서둘러 내려와서 근처의 수퍼에서 음료수로 목을 축이고 동네의 칼국수집으로 가서 칼국수를 먹으면서 뒷풀이를 했다. 신경이 쓰여서 꽤 피곤한 하루였는데, 집에서 계속 뒹구는 것보다는 훨씬 행복한 하루였다.

   이 기세를 몰아서 우리 반 녀석들과 지리산 원정대를 꾸리기로 했는데, 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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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its 2006-06-04 0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리산 원정대... 멋진데요~ 아직은 집에서 뒹구는 게 전 훨씬 더 좋지만, 언젠가는 산에도 한 번 가볼까 싶어지네요...^^

느티나무 2006-06-04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리산에 다녀온지도 꽤 됐네요. 그리운 그곳~!이라고 말하면 너무 상투적일까요?죽도록 고생하기만 하면서도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다시 가고 싶어지는 건 왜 그럴까요? ㅎㅎ
 

   올해는 모두 아름다운 아이들, 에서 강사를 섭외해서 세미나 형태의 다양한 모임을 많이 하기로 했는데, 실천을 잘 안 되었다. 무엇보다도 강사를 구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다가 이번 6월에 이상석선생님께 이야기를 좀 해 주십사 하고 부탁을 드렸는데, 아마 성사가 될 듯 하다. (이상석선생님은 '사랑으로 매긴 성적표', '못난 것도 힘이 된다1,2'의 저자이며 교육운동가로 지역에서 이름이 높다.)

   예전에 한 번 부탁드렸다가 거절당한 경험이 있어서 못내 조심스럽게 말씀드렸는데, 의외로 쉽게 허락해 주신 터라 고맙다. 전화를 하는 게 더 부담스러워서 메일을 보냈다.

   일단, 이상석 선생님께 보낸 메일


   이상석 선생님, 안녕하세요!

   오늘 날씨, 참 좋지요? 적당한 햇살에다 바람도 살랑살랑! 누군가가 어려운 부탁을 해 온다고 해도 혹해서 다 들어주도록 만드는 날씨입니다. 이 날씨의 힘을 빌어 선생님께 청을 드려봅니다.

   저는 OO고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아이들에게 배우는 느티나무라고 합니다. (낯선 이름이시죠?) 워낙 유명하신 분이라 저는 선생님과의 만남(또는 스침, 거의 보는 수준이었지만)이 선명한 탓에 이런 제 주관적인 심정으로 얼마 전에 염치 없는 부탁도 드렸는데 기억하시는지요?

   한 두어달 전에 대뜸 전화로 북부지역의 학급운영모임, 모두 아름다운 아이들 선생님들께 귀한 말씀을 들려주십사 하는 부탁을 드렸던 적이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4,5월은 가정방문 때문에 시간을 내기가 힘들다고 하시면서 6월에나 보자고 하셨지요. 사실, 저희들은 어서 4,5월이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모두 아름다운 아이들은 5년 전에 북부지회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학급운영모임입니다. 새내기 선생님부터 8년차까지 비교적 젊은 선생님들 예닐곱명(원래는 15명 정도였으나, 여러가지 사정으로 정기모임에 참여하는 분이 줄었습니다.) 모여서 학교, 학급, 학생에 대해서 진지하고 행복한 자기 성찰을 계속해 가고 있습니다.

   이번 정기 모임이 6월 13일인데, 이때쯤에 선생님을 꼭 뵙고 귀한 말씀을 들을수 있었으면 합니다. 젊은 교사들은 지금 어떤 고민을 하며 학교 생활을 하고 학생들을 만나야 할까요? 하는 주제로 중심으로 해 주셔도 좋고, 다른 주제로 해 주셔도 좋은데... 시간을 비롯한 여러 여건이 어떠신지 몹시 궁금합니다. (장소는 북부지회 사무실(구남역 근처), 시간은 저녁 7시에 시작합니다.)

   같이 근무하고 있는 OOO선생님께 메일 주소를 얻어서 연락드립니다. 답신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시고, 언제나 멋진 모습으로 지내시기를 빌겠습니다.

 2006년 5월 25일

   학급운영모임 모두 아름다운 아이들의 느티나무(OO고) 드립니다.  

 

* 이상석 선생님은 날짜를 그 근처의 다른 날로 옮기면 더 좋겠고, 굳이 힘들다면 상관 없다고 하셨고, 시작 시간을 조금 당기면 문제 없다는 답신을 보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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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이렇게 흥이 안 나는 것일까? 그냥, 모든 게 시큰둥한 것처럼 느껴진다. 정말 최근에 가르친 사설시조처럼 '이 내 가슴에 창을 내었다가 하 답답할 때면 열어 보고 싶'다.

   그냥 학교관리자와 그의 하수인들에게서 나는 '짜증'이야 이미 포기한지 오래다.(그냥 내 학교 생활에 간섭이나 하지 말았으면 하는데, 가끔씩 속에서 부글부글 끓을 때가 있다.) 수업시간엔 반응이 좀 더 있었으면 좋겠는데, 이 녀석들은 다들 무엇을 감추고 말갛게 앉아 있는지... 어느 순간 보면 혼자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아 문득 놀랜다. 이게 옳은 수업일까? 하는 생각이 끊임 없이 든다.

   독서교환일기장도 세 녀석과 함께 쓰고 있는데, 그것도 잘 챙겨주지 못하고 있다. (시작부터 이러면 안 되는데...) 일기를 쓰듯 차분히 앉아서 생각을 전하고 싶은데, 그냥 전에 써 둔 글이나 뽑아서 붙여주고 만다.

   다른 학교 선생님들과 공부하는 모임도 요즘 잘 안 모여서 좀 힘들다.(이건 어제 다른 페이퍼에 글을 올렸고) 아이들과 함께 하는 학습동아리인 '글밭 나래 우주인'도 녀석들이 시큰둥해 한다. 나는 이런 상황은 힘든데... 나는 무엇이든 대충대충 하는 게 싫다. 따끔하게 충고를 할까, 싶기도 하다만, 녀석들이 어떻게 반응할까 몰라 조심스럽다.

   그래도 좀 희망적인 요소를 찾아보라면, 우리반의 귀여운 녀석들! 아직까지는 올해 담임이 다른 일로 고전(苦戰)하고 있는 상황을 아는지 별다른 말썽도 피우지 않고, 비교적 웃으면서 하루를 보내고 관계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뭐, 물론 뒤에서야 열심히 욕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오래 전부터 해 온 '공부방'! 거기서 만나고 있는 녀석과도 마음이 조금은 통하는 사이가 되었다. 처음엔 아주 힘든 녀석이라고 알고 마음을 다잡았었는데, 녀석이 조금씩 마음을 열리고 있는 상황이라 조금은 보람을 느낀다.

   기억을 떠올려보니 지난 주도 참 바빴다.

   일요일은 공부방 아이들을 데리고 소풍을 갔고, 월요일은 나를 찾아온 졸업생들과 점심을 먹고, 아내와 영화를 보았다. 화요일에는 글밭 나래 우주인 모임을 했었다. 수요일은 공부방에 갔고, 목요일은 자율학습 감독을 했다. 금요일은 다른 학교 선생님들과 함께 공부를 했고, 토요일인 오늘은 밀양까지 결혼식에 다녀왔다.

   이러니 집에 들어가는 시간이 아주 늦어지고, 조용히 책 읽을 시간이 부족하고(이런 날이 반복되면 슬슬 저기압이 된다.), 몸이 힘들어져서 사는 것도 시큰둥해지는가 보다. (글을 쓰다 보니 기분이 조금은 나아지는군!) 아, 그리고 아직 글로 쓰기는 어렵지만, 집안의 큰 걱정덩어리가 덜컥 생겼다. 당분간은 걱정거리를 안고 살아야 할 듯하다.

   에잇! 우울한 생각은 접고 지금 읽으려던 책이나 다시 읽어야겠다. 지금 읽고 있는 책!-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옆자리에 앉아 계신 선생님께서 추천해 주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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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달만이었다. 아니 더 됐을지도 모른다. 거의 한 달 전에 모인 모임도 결혼식 축가 준비로, 제대로 이야기를 못 나눴으니 말이다. 그래서 더 기다려지고 반가워야 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이 무거워졌다. 아마, 나 뿐만 아니라 모두 기운이 조금씩은 빠진 듯 보였다.

   오늘 모두아름다운아이들 모임이다. 그런데 마침, 부산의 개성고등학교에 홍세화 선생님의 강연이 있다는데, 거기에 가 보고 싶은 생각도 많이 들었으나 미루기로 했다. 여덟 명의 선생님이 오셨다. 선생님들을 보면 무거운 마음이 싹 걷힌다. 그래서 딱 찝어 하는 일은 없어도 모임에 오게 되나 보다.

   오랜만에 새로운 선생님이 오셨다. 올해 새롭게 발령받은 02학번의 영어선생님이시다. 이런 모임을 스스로 찾아오신 게 대단하게 보였다. 잘 가르치고 싶은데, 아이들이 공부도 잘 못하고, 수업도 안 듣는 게 속상해서 방법을 찾다가 같은 학교에 계신 선생님의 소개로 오셨다고 했다. 말씀을 듣고 있자니, 모두들 자신의 초임 시절을 떠올리며 흐뭇해해서 모임의 활기가 돌았다.(부디 이 선생님께서 우리 모임에 정을 붙이고 오래 나오셨으면 좋겠다.)

   학교에 있다보면 무슨 모임을 꾸리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학교 바깥으로 나가서 사람들을 만나고, 공부를 한다는 건 더욱 그렇다. 그러나, 우리는 벌써 5년째 함께 하고 있다. 요즘 주변의 여러 모임들이 침체기를 맞고 있는 것 같다. 이 삭막한 세상에도 그래도 무엇인가를 나누고자 애쓰는 사람들은 있다. 이 사람들과 함께 묵묵히 한 길을 걷기로 한 번 더 결심한 날이다.

   나는 우리 모임을 처음 시작했던 사람 중의 한명이다. 나는 망할 때까지 내가 가고 싶은 길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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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적인 선행은 구원받을 수 있는가?

 : 감독은 안타깝지만 개인적인 선행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고 말하는 듯 하다.

   아, 이런 한심한 질문 말고, 케냐의 그 아름다운 풍광과 사람살이의 고달픔이 묘하게 대조되어 있는 것만으로도 콘스탄트 가드너는 볼만한 영화다.(더구나,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저 질문과도 별로 상관이 없다.) 그냥, 영화 속의 몇 장면이 이 질문을 던지는 것 같아서 해 본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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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5-17 09:1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