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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게이츠의 인생수업 - 빌 게이츠의 아버지가 들려주는 20가지 인생 이야기
푸허녠 지음, 고보혜 옮김 / 이스트북스 / 2007년 6월
평점 :
절판
빌 게이츠. 음... 아마, 이 양반을 모르는 사람 없을 것이다. 나 역시 그가 'Micro Soft' 라는 친숙한(?) 회사의 사장이자 어마어마한 세계적인 갑부라는 사실에 대해 익히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그에게 큰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내가 왜 이 책을 선택하여 읽은 것일까? 빌 게이츠. 그의 이름은 이미 세계적인 브랜드가 되었으며 무엇보다 자명한 사실은 인류에게 편리함을 가져다 줌으로 인해 지구상에 위대한 업적 하나를 남겼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 책은 그런 그에게도 한 아버지가 존재함을 일깨워주는 책이었다. 뭐라고? 빌 게이츠의 아버지가 들려주는 20가지의 인생 이야기라고? 솔직히 나는 빌 게이츠가 어떤 사람인지는 궁금하지 않았다. 그러나 항상, 위대한 사람 뒤에는 그를 지원해주고 그것이 가능하도록 일깨워주거나 뒷받침을 해 준 사람이 있게 마련. 나는 이 책을 처음 보았을 때 '빌에게 그런 사람은 바로 아버지였나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가 아들인 빌 게이츠에게 대체 무엇을, 어떻게 했길래 그의 성공 뒤에 있는 아버지를 조명하고 있는 것일까 궁금했다.
그런데 이 책. 나는 빌 게이츠나 적어도 빌 게이츠의 아버지가 쓴 책이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저자는 '푸허녠' 이라는 제 3자였다. 뭐 저자야 어찌되었건 빌 게이츠 아버지만의 자식교육 노하우(?)가 대체 무엇인지. 나는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이 책은 빌 게이츠의 어린 시절 혹은 젊은 시절에 대한 이야기다. 더 크게 보자면, 지금의 그가 되기까지의 모습을 담고 있다. 빌 게이츠의 성장과정에서 일어난 재미있는 일화들. 거기엔 그림자처럼 존재하는 아버지가 있었다. 빌이 고민할 때, 자만할 때, 선택의 기로에 서있을 때, 심지어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을 때도. 마치 슈퍼맨처럼 등장하여 그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그의 아버지이다. 나는 그의 아버지가 들려준 이야기들의 방대함에 실로 놀라게 되었는데 그 이야기들은 어디서건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우화들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기록들은 하나의 이야기 형식으로 되어 읽기가 쉬웠다. 그러면서 자꾸 머리를 쳐드는 생각 하나. 푸허녠은 이 모든 사실들을 어찌 알고 이 책을 쓰게 된 것일까? 그의 성장에 관한 소소한 기록과 행동 묘사는 그나 그의 아버지가 아니고서는 알 수 없을법한 것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뭐 빌 게이츠 가문과 잘 아는 사람이었나 보지.' 음.... 저자 푸허녠에 대해서는 조금 있다 이야기 하자.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책 속의 우화들은 교훈적이었고 재미있었다. 더구나 나에게 낯설었기에 신선한 이야기들이었다. 만약 누구나 알고 있는 뻔하고 진부한 이야기들이었다면 읽는 내내 지루함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빌 게이츠의 아버지는 이런 동서양을 막론한 수많은 우화들을 어디서 들었을지 궁금했다. 책에서 만난 그의 아버지는 무릎에 앉혀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우리네 할아버지의 모습과 닮아 있었다. 사실 책 안에서 그가 하는 것이라곤 적시적소에 빌에게 필요한 교훈적인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용기, 창조, 열정, 슬기, 부, 신용, 인내, 관용, 예의, 운명, 박식, 경청, 잠재능력, 겸손, 신중, 도전, 성실, 우정, 기회, 집념. 이렇게 스무가지. 그것들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고 스스로 알아가도록 하는 조력자의 모습으로 있었다. "아빠 말대로만 해. 시키는대로 하면 다 되게 되있어" "어른 말 들어! 어른들은 네게 옳지 않은걸 하라고 하지 않아" "내가 이렇게 말하는건 다 너 잘되라고 그러는거지" 하는 식으로 존중과 조언의 뒤에 빼꼼히 숨어있을 법한 강압적인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어린아이에 불과한 빌에게 이야기의 해답을 찾아보도록 했고 그것으로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주었다. 빌 역시 똑똑한 아이였기에 아버지가 뜻하는 바를 쉽게 알아 내었다. 그런 모습에서 한 편으로는 '이거이거 애가 아닌데? 아무리 똑똑하다손치더라도'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책장을 좀 더 넘기면서 급기야 나는 어린 빌 게이츠가 불쌍히 여기게 되었다. 자고 일어나도 나이트캡이 흐트러져서는 안되었고 누운 자세 그대로 단정하게 일어나야 했다니.... 이게 어디 애한테 가능할법한 일인가? 이것은 예의범절의 문제를 떠나서 어린 아이에겐 너무 혹독한 제제가 아니었을까?
책을 읽는 내내 여전히 드는 생각. 그렇다면 이토록 소상하게 빌과 그의 아버지의 일화를 기록한 푸허녠. 당신은 뉘신지요? 나는 왼쪽에 넘어온 페이지보다 오른쪽에 남은 페이지수가 점점 적어질수록 과연 그, 푸허녠은 누구이길래, 빌 게이츠 가문과 얼마나 친분이 있는 자였기에 이런 것들을 기록하게 되었을지 너무나도 궁금했다. 모든 책장이 왼쪽으로 넘어갔다. 맺음말을 보고 적잖이 당황했다. 다음은 역자의 이야기다. '실제 발생한 일도 있고 저자가 사실에 입각해 재구성한 내용도 있으며 빌과 아버지, 부자 사이에 발생했을 법한, 그러나 실제로는 발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이야기들을 소개했다' 결국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저자의 상상으로 인해 쓰여진 것인지 알 턱이 없다는 얘기다. 쉽게 말하면, 저자는 유년시절의 몇 가지 일화나 그의 업적이나 약력, 경력에 대한 자료로 글짓기를 했다는 이야기다. 저자 푸허녠은 빌 게이츠의 지인도 아니고 그냥 그의 위대한 성공을 훌륭히 여겨 그의 성품이나 자라온 배경을 가지고 글을 썼다는 얘기다. 혼란스러웠다. 모르긴 몰라도, 내가 알기로는 실존인물(생존했던 인물에 대해도 마찬가지) 에 대해서는 충분한 자료가 뒷받침되어야 하며(고로 명확해야 한다는 것이다.) 객관적이어야 하며, 오로지 사실만을 기록한 것이어야 하지 않나 싶다.
이 책에서 보았듯 (빌 게이츠라는 유명인사를 떠나) 작고 연약한 한 아이를 대하는 아버지의 태도는 훌륭했다. 그리고 성공철학이자 인생철학이기도 할 20가지 명제에 대한 고찰 또한 흥미로웠다. 그러나 역시 이 책에 기록된 모든 것이 사실과 허구를 적절히 가미한 한 편의 이야기에 지나지 않았다면. 범상찮은 인물임을 암시하기 위해 알에서 태어났다든가 하는 따위의 증명되지 않은 신화들과는 달랐었다면 좋았을 것을. '위인이기에 여느 사람들과는 뭔가 다른 유년시절을 보내며 자라왔으리라' 하는 영웅만들기가 아니었다면 좋았을 것을. 우리와 다르지 않은 한 사람으로서의 빌 게이츠와 그의 아버지를 있는 그대로만, 사실 그대로만을 기록했다면 좋았을 것을. 만약 그랬다면 이 책은 훨씬 더 좋은 대우를 받게 되었을 것이다. 책의 내용이 훌륭했기에 더 큰 아쉬움이 남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