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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리안의 알약
슈테피 폰 볼프 지음, 이수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7년 6월
평점 :
절판
릴리안의 알약. 주인공 릴리안으로 생각되는 한 소녀, 그리고 그녀가 들고 있는 알약. 그리고 뒤편에는 그림자처럼 표현된 사람의 실루엣. 일러스트로 된 표지라 상큼하고 발랄해 보였다. 이 책의 뒷편에는 '역사가 이렇게 우스워도 되는 것일까?', '요절복통 역사 코미디' 라고 적혀있다. 그런데 이 책을 읽는 중에나 읽고난 후에도 웃기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러니 요절복통이라는 말은 조금 무리가 있지 않을런지.
최근에 읽은 <죽음을 연구하는 여인>도 중세시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다. 물론 이 책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책이지만 역시 '중세' 라는 면에서는 비슷하다. 그 당시 사람들은 지금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 무모하고 어리석어 보였다. 이를테면, 죄인에게 죄를 묻고 자백하도록 종용한 후 대개가 사형에 처해지는데 무죄로 밝혀지는 경우는 죄를 면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것을 판단하는 방법의 하나가 끓는 물에 손을 넣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무죄란다. 그런 손을 가진 자야 말로 우리 상식에서는 마녀가 아닐런지. 이 시대를 산 사람들의 왠지 모를 비밀스럽고 신비로운 느낌. 그런 시대에 산 사람들이라면 신비주의에 빠지는 일이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며 어딘가에 마녀가 있으리라 생각하는 것이 당연ㅎ할런지도.
역시 우리가 살지 못한 시대를 엿본다는 것은 참 재미있는 일이다. 그런 면에서라면 이 책은 분명 제 역할을 감당했다. 중세에 대한 재미난(?) 많은 사실들을 담고 있었다. 영주의 초야권이라고?? 기가 찰 노릇이다. 또한 자신의 신부를 다른 남자와의 첫날밤에 허락해야 하는 신랑들은 어떠했을까? 여러가지 잔인한 사형방법들도 참 놀라웠다. 그걸 보면 사람을 죽이는 일에 꽤나 재미를 붙인 누군가의 연구작품인 듯 싶기도 했다.
릴리안과 체칠리에가 만든 마법의(?) 알약. 그런데 그것이 그때에 왜 필요했을까? 물론 원하지 않는 많은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경제적인 문제 뿐 아니라 여러 면에서 생활의 어려움을 가져온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그런데 임신을 예방해주는 알약을, 목숨까지 내놓아가며 연구했어야 할만큼 그렇게나 간절했을까? 오히려 색을 밝히는 발레리아라는 인물을 통해 그 약은 여성들에게 부담없이 쾌락을 추구하기 위한 약인 마냥 묘사된 듯 싶었다. 물론 그 약을 개발한 것이 못마땅하다는 것은 아니다. 현대에는 그 약이 여자 뿐 아니라 남자들에게도 각광받는 약임에 틀림없을테니까. 내가 말하고자 하는건 이야기 전개에 대한 개인적인 아쉬움이다. 형리 베르트람의 손을 통해(물론 그도 하수인이었고 그럴 생각이 없는 형리였지만) 죄없는 무모한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에 포커스를 맞추다 갑자기 릴리안과 체칠리에의 알약연구 개발로 전환되었다. 형리의 죄책감과 그에 대한 부담과 불안 그리고 피임약의 연구는 서로 어울리지 않는 선긋기처럼 부자연스러웠다. 차라리, 어리석게 자행되는 사형제도에 못마땅한 릴리안과 체칠리의 마취약 개발이라면 더 재미있었을지도. 둘은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사형수들을 위한 마취약을 만들고 그것을 베르트람에게 건네주고 그는 그것을 사형집행전에 몰래 사형수에게 먹이다 발각이 되는 것이다. 약의 출처가 궁금한 교회와 영주들은 약의 제조자를 쫓게되고 그런 과정에서 도피하며 생기는 일에 이 마취약. 그리고 그것이 후에 있는 라우렌티우스의 병에도 쓰여진다. 뭐 이런..... 쩝. 나는 가끔 이야기가 매끄럽지 못한 것을 보면 내가 작가가 되어 다시 써버리는 부질없는 짓을 하기도 한다. 음, 그렇지 않았다면 피임약 개발에 몰두해야 할만큼 빈번한 출산으로 인해 고통받는 여성이나 그들의 가정에 대한 묘사가 충분했어야 했다. 그리고 베르트람과 릴리안의 해피엔딩을 바랬던 것은 나의 순애보적 소녀취향이었던 것일까? 왠지 모를 아쉬움이 드는 것을 어찌할 수 없었다. 춘향이는 반드시 이도령과 맺어져야만 하듯 나는 이 둘이 서로 사랑하게 되기를 바랬다. 후훗.
그리고 재미난 부분은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모두 익살맞은 개성을 갖고 있다. 사형집행을 두려워하는 형리, 여러가지 공포증에 걸려있는 라우렌티우스, 빗자루를 타고 날으는 비비안 할머니, 산 채로 물고기를 삼키고 뱃속에서 헤엄치는 느낌에 집중하던 브라반투스, 색을 밝히는 발레리아 등등.... 그리고 귀익은 실존 인물들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개신교를 창시하고 구교회인 카톨록을 지탄하던 루터, 로빈 훗. 이 부분들이 이 이야기를 더 익살스럽고 재미나게 만든 것이 아닐까 싶다. 물론 이런 부분들이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요절복통의 경지까지는 아니더라도 충분히 익살스럽고 유쾌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들로 인해 한 편의 재기발랄한 에니메이션과 같은 느낌이 들었다. 끝으로, 이 책은 가볍지 않은 중세의 분위기를 작가 나름의 유쾌함으로 재미있게 펼쳐보인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