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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트
이시다 이라 지음, 최선임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7년 6월
평점 :
품절
이시다 이라의 <잠들지 않는 진주> 를 읽은 뒤로 두 번째 읽은 그의 소설이다. <잠들지 않는 진주>를 읽기 전, '다소 선정적' 일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고 이 책 <렌트>를 읽기 전, '아주 선정적' 일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잠들지 않는 진주>에서 적나라한 성행위가 묘사되었다면 이 책 <렌트>는 변태적인 성행위를 묘사한 책이다. 오로지 그 부분에 대해서만 보자면 <잠들지 않는 진주>는 <렌트>에게 게임이 안된다. 살다 살다 이런 책은 또 처음이다. (아, 처음은 아니군. 에헴) 좀 다르긴 했지만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읽고 가학적이고 변태적인 섹스에 경악한 일이 있으며 슈카와 미나토의 <새빨간 사랑>의 '내 이름은 프랜시스'를 읽고 역시 충격을 받은 일이 있다. 그런데 모두 일본소설이라는 공통점이 있군그래. 일본의 성문화는 정말 이리도 난잡하고 지저분한지. 역시 야동의 교과서같은 나라답다. 뭐 그건 그렇고, 이 책의 수위(?)를 보자면, 절대 절대 비닐포장용이다.
음.... 왜 이 책을 두고 그리를 떨었는지, 이 책을 읽고나니 알 것 같다. 책을 읽기 전에는 '에이~ 뭐 얼마나 그럴라구' 하는 마음 반, '대체 어떤 내용이길래' 하는 마음 반이었다. 뭐 그저 적나라한 묘사라면 그러려니 할 수도 있었을 것 같은 기분? 그런데 이 책은 완전 그간의 상식(?)을 뒤엎었다.
<렌트>와 <잠들지 않는 진주>와 닮은 구석이 있었다. 인간에게 잠재되어 있는 욕망과 감정을 일깨운다는 점에서 두 작품은 닮았다. 두 작품에서 그 점을 살펴보자면, 모두 다 남녀가 호텔 로비에서 식사를 한다. 그리고 상대의 체취가 씻기지 않은 상태를 원하는 점, 마지막으로 '노년에도 성욕(사랑)은 있다.' 하는 이시다 이라의 목소리다. 역자 후기를 보면 이시다 이라는 베드신 묘사를 좋아한단다. 그의 이런 면이 훌륭해보인다거나 멋져보이지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그거야 뭐, 개인취향일수도 있지. 그치만 개인취향이라고 보기에는 <렌트>는 너무나 비정상적이고 난잡한게 아닌지 싶다. 이시다 이라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사람에게는 각기 다르고 다양한 형태로의 욕망이 존재한다는 것, 여성 또한 남성과 같이 성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입장이 될 수 있다는 것. 그것들을 말하고자 한게 아닌가 싶다. 그렇지만 단순히 그런 메세지를 전하기 위해서라면 이 소설은 너무나도 비도덕적이고 비상식적이다. 관전(누군가의 행위를 지켜보거나 자신들의 행위를 타인에게 보게 하므로 쾌락을 얻는 것), 동성애, 쓰리썸, 성매매, 가학행위.... 많이도 나오는군 그래.
나는 이시다 이라의 섬세하고 여성스런 감성과 문체, 그리고 그의 표현력을 좋아한다. <잠들지 않는 진주>가 마음에 들었던 이유도 이런 점들 때문이다. 그리고 <렌트> 역시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여전했다. 그러나 이시다 이라는 왜 이런 글을 쓰는 것일까? 어떤 글을 쓰든 가장 솔직하고 정직한 이유는 작가 자신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시다 이라가 단지,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적나라한 글을 써내는 재미에 하는 짓거리라면 언젠가는 그의 글은 쓰레기 이상이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값비싸고 좋은 그릇이라 한들 쓰레기를 담으면 쓰레기통 이상일 수 없듯이. 솔직히, <렌트>를 읽고 이시다 이라의 성적 취향 또한 의심스럽다. 속된 말로 '이 작가 변태 아니야?' 싶었다.
예술이냐? 외설이냐? 의 문제는 어제, 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가까운 예로, 마광수의 <즐거운 사라>, 장정일의 <내게 거짓말을 해봐>, 장선우의 <거짓말>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선례이다. 혹자는 외설로 단정하고 판정함으로 인해 예술의 자율성과 창의성이 존중되지 못하며 질이 떨어지게 되며 예술가의 사기를 저하시킨다 하고 혹자는 예술을 빙자한 건전하지 못하고 온건하지 못한 것이야 말로 예술의 수준을 떨어뜨리고 수요자(관객 내지는 독자가 되겠지)를 교란시키는 일이라고 말한다. 이 책 <렌트> 역시 일본에서는 나오키상 후보작이었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작품이라 일컫고 또 다른 곳에서는 쓰레기로 칭해지는 이렇게 양분되는 창작물을 판가름할 수 있는 명확한 기준이 없다. 그러니 여전히 풀 수 없는 문제일 수 밖에 없다. 오로지 자각에 의해, 지극히 주관적으로 판가름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책 <렌트>는 인간에게 감추어진 근본적인 욕망, 그리고 그 욕망의 다양성을 꺼내어 보이는 일에는 매우 친절했다. 듣도 보도 못한 다양한 욕망들이 어찌나 많던지. 그리고 이시다 이라만의 섬세한 필치로 써내려간 작품이라 반갑기는 했다. 그러나 여전히 <렌트>에 대한 당혹감과 일본인들의 성의식에 대한 의문은 지울 수 없을 듯 싶다. 끝으로, 이 책을 내게 건넨 이는 '어떻게 읽어야 할지' 에 대해 말해달라고 부탁했지만 나 역시 이렇게 응수할 수 밖에 없을 듯 하다. '그러게요.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