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후, 일 년 후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최정수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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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수아즈 사강.  낯선 이름이었다.  그녀의 대표작이라는 <슬픔이여 안녕>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역시 읽어보지 못했지만 이 책의 제목은 귀익은데 반해 작가의 이름은 무척 생경했다.  표지에 사용된 사진이 그녀, 프랑수아즈 사강이란다.  왠지 무성영화의 주인공과 같은 그녀.  참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는 작가다.  책을 읽기 전, 그리고 읽고난 후에는 더더욱. 

  이누도 잇신 감독의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2004)> 이라는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를 기억한다.  너무나도 인상적인 영화였고 또한 좋아하는 영화 중의 하나다.  그 영화의 여주인공 '조제' 가 사랑하는 작가가 바로 프랑수아즈 사강이며 그녀의 '조제' 라는 이름도 이 <한 달 후 일 년 후>의 '조제' 에서 따온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이 책을 읽기로 했다.  '조제, 그녀는 이 책을 왜 좋아했을까?'  그것이 궁금해서 말이다.

  프랑스 예술은 그들만의 냄새가 있다.  영화나 문학이나....  낯설고 난해하고 또 무척이나 따사롭고 몽환적으로 다가오는 그 무엇.  이렇게 말하면 마치 프랑스 작품들을 모조리 간파하고 있는 듯한 뉘앙스이나 사실 그렇지는 않다.  그러나 내가 좋아하는 프랑스 영화들이 대개 그런 느낌들이었다.  <베티블루 37.2> 나 <아멜리에>....  그리고 <타임 투 리브> 등등.  이 책 역시 마찬가지였다.  굳이 프랑스아즈 사강이 프랑스 국적의 작가인지 알지 못했다 하더라도 '이 작품은 프랑스 작품이구나' 하는 느낌이 분명하게 들었으니 말이다.

  이 책 역시 한 마디로 뭐라 꼬집어 말하기 애매한 그런 느낌이다.  나이를 초월한 우정과 교류, 그리고 그들의 소통.  그러나 그들은 모두 외로운 사람들이다.  조제를 사랑하는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나르의 사랑을 받는 젊은 조제, 조제가 사랑하는 자크, 베르나르의 아내 니콜, 말리그라스 노부부 알랭과 파니, 야심찬 배우 베아트리스, 에두아르와 졸리오.  이 아홉사람들을 한 눈에 들여다 봐도 무척 복잡하다.  그들은 사랑은 죄다 빗나가고 어긋나 있다.  또 사랑했던 연인의 식은 열정 뒤에 남은 싸늘함을 잘 표현하고 있는 작품이다. 

  이 책을 읽다보니 사랑이 무엇인지 헤어짐이 무엇인지 서로를 갈망하는 마음은 대체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사랑의 본질에 대해 인간과 인간의 관계 사이의 괴리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모든 사랑이 그렇듯 시작은 뜨겁다.  설레는 감정들....  그러나 그것들이 사라지고 났을 때 찾아오는 무미건조함.  그렇다면 그것은 사랑이 식은 것일까?  변한 것일까?  아니면 그런 그 자체도 사랑의 본질 그 자체일까?  역시 사랑이라는 것.  그리고 사람과 사람의 관계란 참으로 오묘하고 애매한 것인 듯 싶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조제가 이 책의 '조제'를 따 자신의 이름으로 삼기로 한 것처럼 조제는 매력적이었을까?  글쎄.  솔직히 나는 잘 모르겠다.  이 작품은 참 많은 의문을 던져주었지만 역시 그것들의 답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영영히 답을 찾을 수는 없을지도 모르겠다.  독특한 캐릭터들과 세대를 초월한 사랑, 불륜, 사랑을 이용하는 모습등....  이해하기 어려운 설정들....  솔직히 이 작품은 난해했다.  그러나 프랑수아즈 사강이라는 여자에게 좀 더 다가가고 싶게끔 하는 매력은 분명 있는 책이다.  그것은 왜일까?  당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그 어떤 것을 만났을 때 이끌리는 지적인 결핍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다시 한 번 더, 제대로 읽고픈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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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서 여행을 멈추다 - 멈추는 순간 시작된 메이의 진짜 여행기
메이 지음 / 삼성출판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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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인도에 관심을 갖게 된 건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인 것 같다.  그 첫 번째는 중학교 2학년때 처음 사귄 나의 첫 해외펜팔이 인도친구였다.  당시 마드라스(현, 첸나이 지방)에 살았고 서로 생일이 같다는 이유로 친구가 되어 꽤 오랫동안 편지를 교환했다.  그리고 두 번째는 강석경씨의 <인도기행>을 읽고나서인 것 같다.  어떤 내용이었는지는 이미 오래라 기억 나지 않지만 나에게는 아주 깊이 와닿았던 책인 것 같다.  인도에 관한 몇 권의 책들을 읽었지만 내용도 기억나지 않는 그 책이 지금도 가장 강한 인상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인도.  한 번도 가본 적은 없지만 나에게는 줄곧 그리움의 땅이다.  왜일까?  막연한 인도를 향한 나의 끌림은....  그저 그 땅이 이국적이고 신비롭기 때문일까?  아니면 갠지스강에서 몸을 씻는 그 짙은 피부와 그윽한 눈매에 매료당해서일까?  (실제로 나는 인도사람들의 눈을 좋아한다)  잘은 모르겠다.  아무튼 나에게 인도는 생경한 땅이지만 무한히 그리운 땅이다.  인도를 생각하면 '언젠가는 이 곳에 가볼꺼야' 하고 다짐하게 된다.

  이 책은 기존의 여행기들과는 조금 달랐던 것 같다.  대개 여행기들이 여행과정과 그 곳 지역의 문화 및 건물탐방이라면 이 책은 그 보다는 몇 인도인들과 지은이 메이와의 우정을 중점적으로 담은 책이 아닐까 싶다.  메이의 재미난 그림과 이야기가 어우러진 책이었는데 여행기는 뭐니뭐니 해도 그 곳의 정경과 모습들이 잘 담긴 사진을 보는 재미 또한 빼놓을 수 없지 않을까?  메이의 화려한 삽화 그리고 책의 현란한(?) 편집.  물론 이것은 '민무늬 니트냐, 앙증맞은 프린트 티셔츠냐?'  하는 책을 든 독자 개인의 취향의 문제일 것이다.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점이 있다면, 사진들이 많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진이 있어야 할 자리에 대신 메이의 정겨운 그림들이 있긴 했지만 말이다.  심훈의 <상록수>를 연상시키는 이야기들 그리고 사람들.  단연 그 주인공으로 꼽을 수 있을 '람' 그리고 '메이'와 '지니' 가 궁금하단 말이야.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같은가 보다.  속이는 사람도 있고 돕는 사람도 있고 사랑하는 사람도 있고 고민하는 사람도 있고....  인도도 다르지 않았다.  지구 어디를 가본들 사람이 사는 곳이 '이 곳만은 특별해' 라고 할만한 곳이 있을까?  그 생활 속으로 깊이 들어가보면 모두가 같은 삶이고 생활이다.  낙후한 도시, 빈민들이 많은 도시라고 하지만 온기가 있고 잘 살아보려는 사람들이 가득한 땅이다.  그런 삶의 사람들, 나와 다르지 않은 그 사람들을 만나고 확인하고 비추어 보는 것이 여행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곳 저 곳을 돌아보고 눈에 담아오는 것은 '관광' 이고 그 생활 속에 하나가 되어가는 것이 비로서 '여행' 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보자면 이 책이야말로 진정한 여행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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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를 만나다
빈센트 반 고흐 그림, 메릴린 챈들러 맥엔타이어 시, 문지혁 옮김, 노경실 글 / 가치창조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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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센트 반 고흐.  나는 그의 그림을 알기도 전에 그의 전기를 읽고 처음 만났다.  자신의 귀를 잘라버린 미치광이 화가에게 뜻모를 동정과 함께 호기심이 일었다고 해야할까?  그 이후부터 그의 그림들을 눈여겨 보기 시작했던 것이 그를 좋아하게 된 계기가 된 것 같다.  그리고 생각해보면 꽤 절묘한 순간에 그를 알았다.  그림하면 맑디 맑은 수채화를 쉽게 떠올리던 그 때, 왠지 모를 투박함과 거칠게 칠해진 물감의 유화들이 슬금슬금 매력적으로 다가오던 그 때, 그의 그림을 보았다.  무언가에 관심을 갖고(그것이 호감이든 호기심이든) 그것을 가까이 하면 친해지듯 나도 고흐와 그렇게 친해졌던 것 같다.  그림을 알지도 못했던 내게 두터운 캔버스를 들이댔던 한 미친 남자가 나는 좋았다.  단순히 그가 미치광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를 알면 알수록 그는 내 가슴을 아리게 만들었다.  언제나 혼자였던 남자.  아니 그는 스스로를 고립시킨 것일까?  부모의 따뜻한 사랑을 느끼지 못했고, 막역한 동생 테오에게마져 씁쓸한 형이 되어야 했고, 유일한 벗이던 고갱과의 큰 싸움으로 절교했으며 압생트에 취해 시력장애를 얻어야 했으며 화상들에게마져 외면당한 화가였다.  그림을 팔지 못하는 화가라는 애달픈 넋두리같은 인생을 살았던 남자다.  그러나 그림은 그를 좌절케하지 못했다.  오히려 그는 '그림' 으로 그 진저리 나는 인생을 살았던 사람이다.  더 안타까운 것은 고흐, 그는 그림으로 명성을 단 한 번도 누려보지 못하고 세상을 떴다는 것이다.  당대에는 아무도 돌아봐주지 않던 외로운 화가였다.  어쩌면 나는 그의 그림보다 그의 기구한 일생이 더욱 안쓰러웠는지도 모르겠다.  마치 소년소녀가장의 눈물겨운 수기를 읽고 마음에 잔물결이 이는 것처럼.

  그의 그림 '밤의 테라스(1899)' 가 표지를 장식한 이 책 <고흐를 만나다>는 색다른 미술서적이었다.  고흐와 그의 작품에 관한 책은 적잖이 봐왔지만 대개 당시 작품을 만들던 때의 그의 일화나 그림의 감상과 이해를 돕는 책들이었다.  그런데 이 책은 그와는 아주 다른 느낌의 책이었다.  메릴린 챈들러 맥엔타이어의 고흐에 관한 시와 고흐 자신이 했던 말들....  그리고 노경실씨의 단상들이 기록된 책이었다.  이 책은 그의 그림을 어떻게 감상해야 하는지, 고흐가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지 않는다.  음....  뭐랄까?  고흐의 그림이 걸린 작은 방 안에서 커피를 홀짝이며 한 편의 시를 읽는 느낌?  여느 책들이 고흐와 그의 작품에 대해 백과사전같은 객관화된 정보를 주려한다면 이 책은 지극히 주관적인 감상을 허용하는 책이다.  그림에 관한 정보라고는 소장처와 시기, 작품 사이즈뿐이다.  이런 점으로 보자면 고흐에 대해 알고자 하는 이들보다는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조용하게 그를 추모할 수 있는 시간을 갖는데 더 적합한 책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이 책의 좋았던 점은 수록된 그림들의 색채가 선명했다는 것이다.  고흐 작품의 매력이라면 색채들의 어우러짐과 붓의 터치 아닐까?  그런데 그것이 잘 살아있어 코앞에 대고 보면 마치 물감냄새가 나는 듯했다.  그리고 그림을 비교적 크게 실어 조금 더 자세히 감상할 수 있었다.  하나 더 앞서 말한 것처럼, 고흐 자신이 직접했던 말들을 통해 그의 그림 열정과 인생관을 엿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지금 서울 시립미술관에서는 '반 고흐' 전이 성황리에 열리고 있다.  이 책을 덮고난 지금, 어서 그곳에 가서 그를 보고 싶어진다.  그는 불멸의 그림으로 남았다.  얼마나 많은 외로운 가슴을 달랠까?  무언가에 미친자들에게 결코 절망은 없노라 말할까?  생을 살게하는 단 하나를 열망하라고 말할까?  그는 그가 낳은 사각의 화폭 안에 절대 사그라지지 않는 고귀한 한 줄기 빛으로, 영원한 노란빛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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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대지
생 텍쥐페리 지음, 최복현 옮김 / 이른아침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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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쌩떽쥐베리의 작품이라 읽었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쌩떽쥐베리가 쓴 작품이라 반드시 읽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쌩떽쥐베리의 대표작이자 그를 기억하게 하는 단 하나의 작품이 있다.  바로 '어린왕자' 다.  '쌩떽쥐베리 =(이퀄) 어린왕자' 라는 공식이 성립될 정도로 그와 함께 떠오르는 대표작이다.  나 역시 그의 작품으로는 '어린왕자' 밖에 읽지 못했었다.  실은 그의 다른 작품이 존재할 것이라는 생각도 해 본적 없는 듯하고 무관심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 책을 보고서야 비로소 '아, 그에게도 어린왕자 말고 다른 작품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번뜩 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읽게 된 이 책.

  비행사였던 쌩떽쥐베리의 사진이 표지에 담겨있는데 나는 그의 얼굴을 한참이나 들여다 봤다.  '이 사람이 어린왕자를 지은 사람이구나'.  표지를 들여다 볼때만 해도 그는 나에게 '어린왕자를 있게 한 사람' 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책을 다 읽은 지금....  나는 왜 이제서야 쌩떽쥐베리를 만났을까 하는 아쉬운 마음이다.  한 편으로는 더 늦지 않은 지금에라도 그를 만난 것은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고.... 

   <인간의 대지>는 내게 삶, 죽음, 갈증, 사랑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쉽지 않은 책이었다.  그렇다고 어려운 책도 분명 아니었다.  음....  어떻게 말해야 할까?  흔히들 '어린왕자'를 두고 철학동화라고들 한다.  그런데 이 작품이야 말로 지극히 철학적이다.  비행사로서의 경험이 고스란히 투영된 작품이기도 하지만 단순히 비행에 관한 이야기거로만 이해해서는 안 될 것이다.  비행을 통해 삶을 바라보는 비행사(쌩떽쥐베리 자신일 것이라고 생각한다)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던 작품이 아닌가 싶다.  읽는 내내 삶에 대해 무한히 많은 질문을 갖게 했다.  그가 지은 문장 속에 든 철학적인 의미들과 한 편의 서정적인 시와 같은 느낌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꽤 오랫동안 신경을 곤두세워(?) 읽어야 했던 작품이다.  멍하니 활자들을 주워담곤 하다가 다시 번뜩 정신을 차리고 돌아가서 읽기를 몇 번이나 한 듯하다.  그렇지만 충분히 되새기고 되새길만한 가치가 있었던 작품이다. 이 책은 한 편의 소설이기도 했고 에세이이기도 했다.  그리고 또 한 편의 탈무드를 읽는 듯 했다.

  어디선가 이런 이야기를 들은 일이 있다.  비행사들이 광활한 바다의 한 가운데를 비행하다보면 그것이 바다인지 하늘인지 헷갈리는 일이 종종 생긴다고.  그러면서 나도 그런 아찔한 체험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구름을 뚫고 무수히 많은 별들을 지나 산맥이 눈 앞에 다가오고 마당 뒷 뜰의 거대한 나무 한 그루는 이 넓디 넓은 대지 위에 하나의 점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아름다운 비행을 해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또 그가 갈증을 느끼며 쓰러지던 그 사막 가운데 홀연히 서 있어 보고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왜 일까?  죽음의 공포가 엄습하고 인간의 의지의 끝을 볼 수 있었던 그 곳에 나는 왜 가보고 싶은 걸까?  왜 그와 같이 목이 타들어 가보고 싶은걸까?  물 한 방울에 갈증을 느끼던 그.  과연 나는 무엇에 이토록 목숨을 내걸만큼의 갈증을 느끼고 있을까?  무언가를 소망하다 못해 열망하고 그것이 '생' 자체라고 단언할 만한 그 무언가가 내게 있는지.  

  이 책, 생떽쥐베리에게 완전 반해버리게 했다.  그와 비행을 함께 하면서, 그와 물 한방울을 찾아 몇 킬로를 걷고 새벽이슬을 받아마시면서, 그 옆에 누워 갈증을 느끼면서....  나는 이 남자, 쌩떽쥐베리에게 빠져버렸다.  이제서야 나는 어린왕자 없이 그를 본 듯 하다.  쌩떽쥐베리, 당신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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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가는 길
이스마엘 베아 지음, 송은주 옮김 / 북스코프(아카넷)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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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슴이 아팠다.  이 책을 읽는 내내.  그리고 지금까지도 가슴이 한 구석이 아리한 아프고 슬픈 이야기들에 몇 번이나 눈물을 흘렸는지 모르겠다.  소년병에 대해 처음 접하는 것은 아니었다.  올 초였나?  디카프리오 주연의 영화 <블러드 다이아몬드> 에서 그들을 처음 보았다.  약을 먹고 반미치광이 상태에서 총을 난사하던 소년들, 인간이라 부를 수 없는 그저 병기일 뿐인 소년들....  그들의 분노는 뜨거웠고 무자비했다.  한창 뛰어놀고 해맑게 웃어야 할 아이들에게는 책과 연필 대신 총이 들렸고 그들의 발 앞에는 공 대신 또래들의 처참한 시신들에 절척했던 그 영상들을 기억한다.  그 곳 역시 이스마엘 베아의 나라, 시에라리온을 배경으로 한 영화였다.  수많은 이스마엘 베아를 만났던 그때의 충격을 나는 이 책에서 다시금 느껴야 했다.

  어릴때부터 어른이 된 지금까지.  여전히 내게 가장 두렵고 무서운 것은 '전쟁' 이다.  나는 전쟁을 직접 겪어 본 일은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동족끼리의 무참한 전쟁끝에 남과 북으로 나뉜 휴전상태라는 것을 처음 알았을 때 심한 충격에 빠져 몇 일을 울었던 기억이 있다.  엄마를 잃은 아이, 남편을 잃은 아내, 부상당한 사람들....  전쟁이 쓸고간 끔찍한 잔재들을 훗 날 흑백사진 속에서 더 볼 수 있었고 급기야 부모님께 전쟁이 나서 우리가 이산가족이 되면 만날 곳을 미리 정해둬야 한다며 부산을 떨던 기억도 난다.  어린시절부터 내게는 전쟁이란 막연한 두려움이었다.  눈 깜짝할 사이 어마어마한 소리와 동시에 모두 한 번에 죽어버린다는 전쟁은 내게 귀신보다도 더 무서운 대상이었다.  전쟁이 주는 막연한 공포와 두려움에 떨었던 어린시절을 나는 생생히 기억한다. 

  이 책에서 만난 아이들 역시 나와 같은 그런 어린 아이들이었다.  나처럼 전쟁이 두렵고 무서울 뿐인 아이들이었다.  그런데 그런 아이들이 '누군가를 죽이는 일이 물 한잔 마시는 일처럼 쉬웠다' 고 고백한다.  정말 끔찍하다 못해 가슴 쓰라린 고백이 아닐 수 없다.  전쟁은 이처럼 모든 것을 쓸어가고 부수어 버림과 동시에 사람의 마음까지도 허물어 버리고 정신까지도 앗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처참한 전장에서 아이들이 총을 들고 싸워야 한다니.  무엇이 그들을 그토록 분노케 했으며 무엇이 그들에게 총을 줄 수 밖에 없었을까?  그들은 왜 약으로 두려움을 떨쳐내야만 했을까?  무엇이 친구가 될 수 있을 그들을 머리띠 색으로, 몸에 새겨진 문신만으로 단죄하도록 한 것일까?  이스마엘 베아와 함께 보았다.  끔찍한 전장의 유혈과 처참한 시신들의 울부짖는 소리를....  어찌나 생생하게 담았는지 한 글자 한 글자 놓치지 않고 읽는 동안은 구역질이 나기까지 했다.  그런 모든 일을 겪고 미치지 않을 재간이 있을까?   

  그렇다면, 과연 전쟁은 우리에게 무엇을 쫓아주고 무엇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것일까?  온 나라와 온 마을과 온 가슴에 차있던 그 어떤 것을 꺼내고 다른 어떤 것으로 바꿔 넣어주려고 그토록 잔혹하고 비인간적인 만행을 저지르게 하는 것일까?  결국 더 큰 분노와 복수를 부르고 목적도 없이 누군가를 죽이고 피에 굶주린 짐승처럼 인간들을 미쳐가게 하는 것이 아닐까?  나는 극렬한 전쟁반대론자는 아니다.  내 조국과 가족이 위험에 처하게 된다면 무력으로라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전쟁이라는 것이 약한 자에게서 무언가를 강탈하기 위한 것이나 어떤 의식이나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 일어나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가능한 한 전쟁은 방어의 마지막 수단이어야 하리라 생각한다.  종교가 다르고 인종이 다르고 사는 곳이 다르다고 우리는 서로 다를까?  전 인류를 전쟁에서 구원하는 일은 '우리는 하나' 라는 의식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소년병이었던 한 소년이 소년병을 구호하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는 일은 그야말로 헤피엔딩이었다.  이 책이 시에라리온이라는 아프리카의 한 땅덩어리에서 일어나는 전쟁의 참상만을 그렸다면 훨씬 더 오랫동안 가슴이 아팠을 것이다.  그러나 희망의 씨앗으로 일어서는 한 소년을 보았다.  그 소년은 평생 가슴이 느껴야만 했던 공포와 두려움 또 눈으로 보았던 것들과 귀로 들었던 것들 그리고 볼을 적셨던 눈물을 지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희망으로 일어서는 그 소년의 잔혹했던 기억들을 덮을 수 있을만큼의 행복이 있어주길 간절히 바란다.  그리고 전쟁으로 피바다가 되어버린 그 곳에도 한 송이 꽃이 다시 피어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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