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삿갓 시집 범우문고 44
김병연(김삿갓) 지음 / 범우사 / 198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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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삿갓.  참 귀익은 이름이다.  어린 시절, TV에서는 많은 소녀팬들에게 오빠라 불리우던 홍서범씨가 '김삿갓~  김삿갓~  나는 좋아~  김삿갓~' 하며 그를 노래했었고 그 때의 나도 이 노래를 흥얼거리곤 했었다.  당시에는 그의 이름과 삿갓을 쓴 한 남자라는 것 외에는 아는게 없었다.  오랜 동무처럼 친근한 이름의 이 남자가 무엇을 했던 사람인지, 어떤 사람인지 보다는 흥겨운 리듬의 노래를 따라부르는 것만 중요했던 시절이 있었다.  학창시절을 보내며 그가 시인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 때 역시 그는 나에게 독특한 별칭을 가진 한 남자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김삿갓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다.  이청의  <바람처럼 흐르는 구름처럼>을 읽고서 였는데 이 책은 김삿갓의 일생을 소설화한 작품이었다.  다름 아닌 이 책에서 처음 읽은 그의 시는 나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아 버렸다.  그 시는 바로 김삿갓이 주막에서 지은 시로 '죽 한 그릇' 이라고 알려진 시다.

  四脚松盤粥一器 사각송반죽일기 네 다리 소나무 밥상에 올려놓은 죽 한 그릇 
  天光雲影共徘徊 천광운영공배회 하늘빛과 구름 그림자가 오락가락하는구나 
  主人莫道無顔色 주인막도무안색 주인 양반 무안해하지 마오 
  吾愛靑山到水來 오애청산도수래 청산이 물에 비치니 그 아니 좋소 

  이 시는 나에게 김삿갓이 누구인지 모조리 고해주는 한 편의 시였다.  죽에 어찌 하늘 빛과 구름 그림자가 오락가락했을까?  이는 필시 주인이 내 놓은 사발에는 건더기도 없거니와 무르기가 국과 같은 멀건 죽이었을 것이다.  제대로 든 것도 없는 것을 죽이라고 내어 놓은 주인에게 '무안해 하지 마세요.  죽에 푸른 산이 비치니 좋은걸요' 하며 주인양반을 위로하는 장면이다.  가진 것 없지만 차려 내놓은 주인 양반의 따스한 인정, 그것을 감사하게 받아드는 소박하고 따스한 김삿갓의 모습.  그리고 '죽 그릇에 청산이 비치는 좋기만 하다' 는 유유자적한 삶의 태도와 자연을 벗삼아 살며 그것을 발견하고 느낄 줄 아는 풍요로운 마음에 크게 감동 했었다.  그게 김삿갓과 나의 첫 만남이었다.  <바람처럼 흐르는 구름처럼>을 읽고나서 '곧장 김삿갓의 시들을 읽어보아야지' 했던 것이 이제서야 되었다.  참 오래도 걸렸다.

  이 시집을 읽고, 나는 정말이지 행복했다.  다른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김삿갓이라는 시인을 알 수 있어서 , 그의 시를 읽을 수가 있다는게 정말 행복했다.  김삿갓의 시는 풍자와 해학이 살아있다.  그리고 자연을 떠도는 방랑객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나는 이 시인 김삿갓이 천하를 집삼아 떠돌아 다닌 걸인이었기에 이런 시들을 지을 수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팔도강산을 떠돌며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나누는 대화에서 재치와 유머를 익혔을 것이고 달 보고 산 보고 흐르는 물을 보고 자연을 노래하는 시심이 일었던게 아닐까 생각한다.  또한 김삿갓은 영민하다.  기생과 또 스님과 주거니 받거니 겨룬 시에서 그의 순발력과 재치를 알 수 있었고 정해진 시제나 즉흥시와 하나의 운으로 지은 시들의 빼어난 솜씨에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훈장에게 시로 응수하는 장면에서는 자신만만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가 가슴시린 삶, 배고픈 방랑시절을 견뎌왔던 것은 조상에 대한 속죄의 의미였으리라.  하지만 여자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나로서는 처자식을 버리고 천하를 유랑하는 모습이 야속하기도 하였다.  이 얼마나 기구한 운명인가?  반역자 김익순을 꾸짖는 시로 장원 급제했으나 그 김익순이라는 자가 자신의 조부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 충격으로 천하를 집삼아 떠도는 신세가 되다니.  자신의 조상의 얼굴에 먹칠을 하고 영예로운 이름을 얻으나 그것을 뿌리칠 수 밖에 없는 운명이라니.  마치 한 편의 통속소설같은 삶을 살다간 방랑시인, 김삿갓.

  가슴의 한이 그를 떠돌이로 만들었고 밤 하늘의 달과 별, 푸른 숲과 나무와 바람이 그에게 시를 발견하게 했으며 마주 대하는 사람들로 하여 시를 지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들이 끝내 김삿갓, 김병연을 지탱케 했으리라.  내 가능만 하다면 그와 만나 술상을 봐놓고 오랜 벗처럼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라.  삿갓쓴 방랑시인 김삿갓에게 시 한 수 바친다.  

  삿갓시인, 김병연

   바람따라 
   물길따라 
   산길따라 
   떠돌다 

   발 닿는 곳에서 
   밥 한 숟갈 얻어먹고 
   눈 닿는 곳에서 
   눌 자리 찾누나. 

   배고픔이 컸으련만 
   주리지 않았고 
   가슴 한이 깊었건만 
   넘어지지 않았도다. 

   달빛에 몸을 씻고 
   청산에 맘을 씻어 
   술 한 상 받아놓고 
   별들을 올라 보니 
   찬란한 그 빛깔  
   고웁기도 하구나.

   삼킬 것은 술 뿐이오 
   뱉을 것은 시 뿐이니 
   천하를 떠돌던 
   그 기운이 예 서려 
   마음 한 올 쉼 모른채
   이 곳 저 곳 누비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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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여행자 - 손미나의 도쿄 에세이
손미나 지음 / 삼성출판사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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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페인 너는 자유다> 에 이어 또 한 권의 여행기를 우리 앞에 펼쳐놓은 여행가가 있다.  바로 손미나다.  '손미나가 여행가라고?  누가 그래?  그 여자는 아나운서지.'  그래, 그 여자는 아나운서다.  그러나 나는 이제 그녀를 여행가라고 부르고 싶다.  사실 나는 명성 있는 사람들의 성공담이나 그들의 자서전과 같은 저서는 그다지 반기지 않는 편이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대개 '훌륭한 어른' 이 되어 있는 자신을 PR하고 '역시 대단한 사람인걸?' 하는 동경의 눈빛과 칭찬을 기대한다.  그들의 이야기엔 '나'라는 인간보다 '국회의원 XXX', 'XX그룹 회장 XXX' 와 같이 이름 앞의 직함이 더욱 비중 있게 존재한다.  그러나 여기 아나운서라는 이름은 던져둔채 한 여행자의 눈으로 담은 따뜻한 이야기가 있다.  한 배낭여행객의 느긋한 발길을 담은 이야기가 여기 있다.     

  손미나, 그녀가 좋아한다는 노란빛깔 표지.  싱그러운 웃음이 담긴 책을 집어 들었다.  나에게 있어 여행기는 여느 책들과 읽는 법이 다르다.  거의 모든 책들은 휘리릭 한 번 쓸어본 후, 첫 장을 읽기 시작한다.  그러나 여행기만은(그것도 사진이 가득한 여행기라면 더더욱) 책장을 훑어보는 일 따위는 절대로 하지 않는다.  첫장부터 차분히 차분히 살금살금 넘겨간다.  마치 여행지에 한 발 한 발 내딛는 것처럼....  여행기는 내 발로 떠나는 여행과도 같다.  낯선 곳에 발을 딛기 전, 연연한 설레임과 조심스러운 두려움을 마주하게 되듯이 여행기를 읽을때도 그같은 기분을 간직한 채 읽고 싶다.  묘한 떨림과 기분좋은 설레임들....  행여나 책장을 훑어보다 마음에 드는 사진에 눈길이 머물러 친숙해져 버리는 일이 없도록.  낯선 곳을 닿는 그 느낌을 내내 간직한 채 읽고 싶어서.  그래서 나는 여행기만은 절대 훑어보지 않는다.  이 책도 그랬다.  미지의 나라, 미지의 공간이 성급히 열려지지 않도록 처음서부터 차근차근.

  이 여행기는 특별했다.  '무엇을 타고 어디로 가 몇 번 도로로 들어가면 쇼핑가가 있고 이름난 식당이 있고 그 곳에서 식사를 하려면 몇 불이 필요하다' 하는 식의 여행기가 아니었다.  손미나, 그녀가 만난 따스한 사람들의 이야기만 가득한 글이다.  일본이라는 나라가 궁금해서 떠나려는 사람이 아닌 가슴 따스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의 추억을 가슴 한 켠에 담고싶어 떠나려는 사람에게 어울리는 책이다.  인간을 향한 훈훈한 정이 푸근하게 느껴지는 여행기였다.  손미나의 글은 따스하다.  희망차고 온기가 있다.  밑줄 긋고 싶은 부분은 또 왜 그리도 많던지.  무언지 모를 가슴 뿌듯함과 용기와 희망이 새록새록 솟아나고 살그머니 미소를 머금은 채 볼 수 있는 책이었다.

  그렇다고 사람 이야기만 하다가 마치는 여행기?  그건 아니다.  그녀가 가보았던 그 곳을 부록처럼 담아두었다.  그 곳에 대한 정보는 여행 가이드북 구실을 톡톡히 해 낼 것 같다.  모자를 좋아하는 내가 꼭 가보아야 할 곳, 역시나 탐나는 도라에몽 기타.  꼭 한 번 먹어보고픈 초초초초 매운 고추장과 과자.  언제일런지 모르겠지만 일본, 특히 동경을 여행할 계획이 생긴다면 반드시 이 책부터 펼치게 될 것 같다.  

  여행이란게 무엇일까?  왜 떠나는가?  그 나라의 풍경을 돌아보고 유적지를 둘러 보고 이름난 음식을 먹어보는 것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겉모습을 구경하는 일만이 아니라 그 속에 한데 어우러져 보고 소통하고 마음과 미소를 나누는 일.  머무르는동안 서로의 체온을 느끼고 사람사는 냄새를 맡아보는 일.  니와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한 그들을 발견하고 진정으로 나를 찾는 일.  그 곳에 들렀다 오는게 아니라 그 곳에 잠시 살다 오는 일.  이것이 진짜 여행이 아닐까?  떠나고 싶어졌다.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진다.  귀퉁이를 돌아서면 어디서든 쉽게 마주칠 것만 같은 그들.  내 마음을 온통 흔들어버린 사랑스러운 그들과 마주하고 싶다.  그리고 말보다는 몸짓으로 눈빛으로 따뜻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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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등 이펙트 - 지금 누군가 나를 조종하고 있다!
로빈 스턴 지음, 신준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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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스등 이펙트라는 제목과 '지금 누군가 나를 조종하고 있다!' 는 문구때문일까?  나는 이 책이 스릴러 소설인 줄 알았다.  소개를 읽어보고 그제서야 인간심리에 관해 다룬 책이라는 것을 알았는데 이 책이 소설이 아닌 심리에 관련된 책이라는 것은 내게 더 강렬한 인상으로 다가왔다.  '나도 모르게 누군가가 나를 조종하다니?  그게 어떻게 해서 가능하다는거야?' 하는 의문과 함께 이 책을 펼쳤다.

  가스등 이펙트가 무엇일까?  '가스등 이펙트'란 저자인 로빈스턴 박사가 <가스등(1944)> 이라는 영화에서 착안한 것으로 인간관계의 현상을 명명하는 말인데 자기도 모르게 남에게 조종당하는 현상을 뜻한다.  <가스등>이라는 영화의 내용을 잠시 살펴보면, 한 남자가 아내의 유산을 빼앗기 위해 아내를 정신병자로 몰아간다.  그가 보석을 찾기 위해 다락방에 불을 켜면 그로 인해 아내 방의 가스등이 희미해지곤 하는데 아내가 가스등이 흐릿해진다고 할 때면 그는 아내가 미쳐서 환각을 보게 되는 거라며 미친 여자 취급을 한다.  결국 아내는 자신을 잃고 남편이 주입한 대로 미친 여자로 살아가게 되는 이야기란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타인에게 영향을 받는다.   사회나 집단에 속해 있는 이상.  엄밀히 말해, 둘 이상의 인간관계에 속해 있는 이상 그들의 영향을 받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다.  설사 그가 의도적으로 은둔이나 칩거를 통해 스스로에게서 사회와 타인을 단절시켜 고립을 꾀할 수는 있지만 이 또한 인간이 얼마나 사회적으로, 환경적으로 영향을 받는지, 관계에 속한 존재인지 하는 것을 역으로 증명하는 것이리라.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책에서는 타인의 기대와 사고와 생활방식을 통해 자신을 점검하고 수정해나가는 건설적인 영향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게 좋은 사람으로 인정받기 위해 자신의 생각과 관점을 버리고 상대에게 무조건적으로 맞추려 하는데서 오는 갈등과 고통을 겪는 사람들과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타인의 기대와 요구에 영향을 입어 자신의 소신대로 행동하거나 생활하지 못하고 심리적으로 피폐해진 사람들의 사례를 통해 가스등 이펙트를 경고하고 스스로 진단해 보고 그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안들을 제시하고 있다. 

  는 내내 이 책은, 나를 위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나는 타인으로 인해 소신없이 살거나 그로인해 고통을 겪는 등 삶이 피폐해지는 일을 겪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적어도 나는 가스등 이펙트에 빠지기 쉬운 사람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고 나의 주변 인간관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는 귀한 시간을 주었음에 분명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사례들에 큰 공감이 갔다.  그 중 몇 몇 사례들은 내게 일어났거나 혹은 일어나고 있는, 일어날 수 있을 법한 일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또 그들의 대화가 참으로 현실적이었고 충분히 이해가능한(공감가능한) 범주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것이 저자의 연구생활동안의 조종자와 피조종자의 실례이기도 하니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르겠지만.  

  이 책은 무조건적인 사랑이야 말로 가스등 이펙트에 빠지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 대목에서 나는 실지 뜨끔했는데, 나 역시 인간관계에 있어 무조건적인 사랑을 전제로 한 양보, 배려, 인내가 가장 값진 것이라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참으면 돼', '내가 맞추면 돼', '나보다는 당신을 먼저 생각하면 돼', '당신을 위해서는 내가 원치 않는 것도 할 수 있어' 라는 태도야말로 언쟁을 잠재울 수 있고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시키는 바람직한 자세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자칫 잘못하면 관계속에서 오로지 상대방만 존재하게 되거나 그로 인한 갈등과 고통에 빠지기 쉽다는 설명이었다.  이로 인해, 인간관계에 있어 타협이나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전하는 일이 참으로 중요하구나 하는 생각을 새삼 해보게 되었다.  또 타인에게 혹은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상대에게 좋은 사람으로 보여지기를 위해 혹은 그의 이해범주 안에 머무르기 위해 아니면 아량이 넓고 이해심이 넓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내 생각은 달라' 라는 목밖으로 끄집어 내지 않는 일을 헤아려 보게 되었다.  그리고 바람직한 인간관계를 위해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좋을지 생각해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면에서 이 책은 내게 참으로 훌륭했다.  

  그러나 아쉬운 점도 있었다.  

  첫째, 가스등 이펙트에 벗어나기(혹은 빠지지 않기) 위한 대안들이 효과적인지 하는 것은 의문이다.  사실 예문으로 제시해 놓은대로 자신을 주장하는 것이 타인에게 더한 불쾌감을 줄 수도 있고 그로 인해 관계가 더 악화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현상의 특성상 관계의 악화는 피해자에게는 더 큰 절망감을 줄 것이다.  

  둘째, 인간관계에 따르는 갈등들 속에서 어느 한 쪽을 가해자로 어느 쪽은 피해자로 단정짓는다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  책대로라면 나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상은 모두 가해자가 되는 것이다.  책에서 말한 가해자에게는 피해자가 도리어 가해자일 수 있다는 사실이다.  서로 다르기에 몰이해와 불용, 행동과 의견의 차이를 지닌 관계를 굳이 피해를 주는 자 받는자의 개념으로 이해해야 할까 말이다.  도리어 책에서 밝혔듯이 조종자, 피조종자 정도로 표현하는 것이 온당하게 아닐까?

  셋째, '나는 소중해' 가 아니라 '나만 소중해'를 심어주고 있지는 않는가?  이 책의 포커스는 분명 '나는 소중해' 이다.  그것은 너무나도 자명하다.  그러나 이 책은 완전히 자아를 상실해 그것이 삶에서 고통으로 여겨지는 사람들에게 자아존중감을 심어주는데만 급급하다 보니 '나만 소중해' 가 되어버리지 않았나 싶다.  그런데 우리들의 일반적인 인간관계를 생각해 보라.  나에게 불편한 감정을 주는 대상이라고 하여 무조건 '나'만을 주장해서는 안될 일이다.  도리어 역지사지의 순간이 더욱 많아야 할 것이다.  이 책이 타인으로 인하여 심하게 고통받아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운 자들에게 치료를 목적으로 한 책이라면 다르게 볼 수 있겠지만 말이다.  내용 역시 타인과의 견해와 입장차이를 조율 조정하여 윤택한 인간관계를 위한 조언보다는 타인의 요구와 강요에 끌려가지 않고 항상 내가 옳다는 신념을 갖게하는 등, 진단과 치료의 기능이 컸던 것 같다.

  몇 몇가지 아쉬운 점을 짚어보았지만 역시 이 책은 읽을만했고 인간관계에 절망한 자들에게, 자아존중감이 필요한 자들에게 꼭 한 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자신이 얼마나 가치로운 존재이며 타인으로 하여금 함부로 취급받아서는 안될 귀한 사람인지 생각해 보라!  진정으로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을 위해 그동안 숨겨왔던 목소리를 내보라!  더 이상 그 상처 속에서 머물러 있지 말고 당당히 박차고 나와 자신을 누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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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그림자의 책 뫼비우스 서재
마이클 그루버 지음, 박미영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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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셰익스피어의 미발표작에 관한 이야기?  400년간 감춰졌던 진실?  셰익스피어의 미발표작을 파헤친 소설이라는 점은 나의 환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영국의 자존심이라는 셰익스피어.  아마 셰익스피어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의 4대 비극 《로미오와 줄리엣》,《베니스의 상인》,《햄릿》,《맥베스》 역시 전세계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작품들이다.  그런 그에 대해 좀 더 알 수 있게 되리라는 기대감에 선택한 책이었다.

  정말 오랜 시간을 어렵게 읽었다.  책을 처음 받고 두께에 놀라기도 했었지만 스토리에 집중하기 힘들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 한 순간 이야기의 끈을 놓아버리면 그걸 다시 잡기가 참으로 힘든 책이었다.  내게는 유난히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되었던 책이다.  '어찌해서 이리도 더디 읽히나' 싶을 정도였다.  물론 집중력 혹은 흡입력 따위로 이 책을 논할 수는 없겠지만 나에게는 몹시 현기증 나는 책이었다.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 하다.  개성이 뚜렷한 인물들....  그리고 장면이 전환되는 두 개의 교차화면.  이 책에서는 리처드 브레이스거들의 서신이 그 중 하나요,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쫓는 과정이 또 다른 화면인 셈이다.  이 둘이 절묘하게 만나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다.  순차적으로 교차되는 이 이야기 구성은 이야기에 자신을 몽땅 빠드린 사람에게는 긴장감을을 더하고 나같이 허덕이는 독자에게는 잠시 쉬어갈 수 있도록 해준 것 같다.  

  이 책은 셰익스피어의 가치와 위상을 드높이는 책이다.  셰익스피어를 사모하는 자들은 '지구상 어딘가에 그의 미발표작이 숨겨져 있을지 모른다' 고 믿고 싶을 것이다.  이는 간절한 소망이자 열렬한 애정이다.  이 작품의 저자인 마이클 그루버 역시 같은 입장이 아닐까?  셰익스피어를 추앙하는 자들 그리고 저자 뿐 아니라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쫓는 스토리 속 인물들 역시 셰익스피어의 가치를 인정하고 있다.  이런면에서 이 책은 셰익스피어를 향한 큰 애정을 담은 책임에 분명하다.  그리고 셰익스피어와 그의 작품에 좀 더 들여다 보기를 원하는 책이리라.  사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몇 작품 접해 보았으나 그에 대해서는 이리 무지했나 싶을 정도로 아는 바가 없었다.  이 책은 그에 대해, 그의 작품에 대해 좀 더 알도록 독자를 선동하고 있다.  책을 다 읽고 난 후, 나 역시 셰익스피어라는 인물과 그의 작품에 전과 다른 깊이의 관심을 갖게 된 걸 느낀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모호한 부분을 가지고 있다.  어찌 생각하면, 셰익스피어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밝혀내지 않고 있는지도.  왜냐면 한 시대를 살다간 실존인물과 역사적 배경을 다루었기 때문인데 우리는 이런 부류의 글들을 접할 때 어느 부분까지를 진실로 믿어야 할지 혼란해진다.  실존인물이거나 사실에 기반을 둔 소설이나 영화 따위를 접할 때는 일단 모두 픽션이라고 생각하고 읽는 편이 차라리 편하다.  이는 잘못된 정보를 차단하는데 있어서는 도리어 안전할 수 있다.  그런데 어찌보면 이 책의 매력이 바로 이 점일지다.  실존인물을 다루었다는 점, 이 모든 것이 픽션이겠지만 왠지 논픽션일 것만 같은 기대감을 갖게 한다는 것을 보면 이 소설은 소설의 의무를 충실히 하고 있다.  그리고 역시 많은 독자들에게 읽힐 수 있는 조건을 가지고 있다.  

  셰익스피어.  이 책 <바람과 그림자의 책> 뿐 아니라 비슷한 시기에 그를 다룬 또 다른 소설이 출간된 것으로 알고 있다.  왜 그토록 그와 그의 작품을 찬양하는 것일까?  그는 영원한 시대의 화두이자 인류의 자랑이 아닐까?  그런 그런 기리는 이런 기념비적 작품이 계속 이어지기를 소망한다.  아, 하나 더!  조금 더 욕심을 내보자면, 정말 어딘가에 그의 미발표된 희곡이 존재한다면, 아니 존재하기를.... 그리고 그것이 발견되어 세상의 빛을 보기를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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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싱
넬라 라슨 지음, 서숙 옮김 / 글빛(이화여자대학교출판문화원)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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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패싱?  제 1회 유영번역상 수상작?  국내 최초로 번역되는 할렘 르네상스 문학?  '번역에 있어서는 남다른 책' 이리라는 기대감에 이 책을 집어들었고 넬라 라슨이라는 생소한 작가를 만나게 되었다.  이로인해 나와는 무관하게 느껴지던 인종문제를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패싱-백인 행세하기.  이 책은 1929년 작이다.  그런데 무려 77년만에 국내에 번역 소개된 작품인데 이 작품이 쓰여진 시기는 책을 이해하는데 아주 중요한 구실을 한다.  인종차별을 소재로 하고 있는 이 책은 흑인이 천대받고 터부시 되던 당시에 쓰여졌기 때문이다.  이같은 역사와 이 작품의 시대적 배경을 연결짓노라면 더 긴 부연설명이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그에 대해서는 각설하고 책으로 들어가보자.

  흑인혼혈이지만 자신의 인종을 거스르고 백인으로 행세하는 클레어.  클레어를 통해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유색인의 내적, 외적 갈등들을 엿볼 수 있었다.  무엇이 그녀를 죽음으로 몰았을까?  아니 무엇이 그녀에게 자신을 버리고 살게끔 한 것일까?  클레어가 백인으로 사는 것은 외줄타기처럼 아슬아슬했고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 보다 더 위험해 보이는 것은 바로 백인인 그녀의 남편 존 벨루.  백인은 우월하며 완전하다는 불손한 선민사상은 정말 역겨웠다.  이 때문이었을까?  책을 읽는 내내 가슴이 답답했고 화가 났다.  아니 책을 다 읽는 후에도 한 동안 우울한 기분이었다.

  인종문제.  과연 과거사일뿐일까?  생각기에는 예전과 많이 달라진 듯 하다.  하지만 이는 제도나 법률상의 문제처럼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문제에 국한된 변화가 아닐까?  인류의 의식 속에서는 여전히 유색인에 대한 천대와 괄시가 만연하다.  뿐만 아니라 백인과 유색인의 문제는 세계 각지에서 여전히 적잖은 이슈들을 낳고 있다.  이렇게 말하고 있는 나와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또한 어쩌면 크게 다르지 않을지 모른다.  푸른 눈의 금발을 한 남자가 다가와 안타까운 표정으로 경복궁을 물으면 손발을 써서라도 호의를 베풀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손가락이 잘렸어요, 임금을 못받고 쫓겨났어요' 하는 동남아시아쪽 노동자들이 무리지어 서있는 그 곳을 지나며 그들에게도 한 치도 다르지 않은 호의를 베풀 수 있는가?  언제나 그러하다고 단언할 수 있는가?  (물론 이런 태도는 인종차이로만 국한하기에는 어패가 있다.  이는 국가 경제력 우위에 따른 차별문제에 더 가까울지도)  여전히 인종차별은 그 맥을 이어오고 있다.  이 시대를 사는 나와 당신 또한 그 맥을 이어주고 있을런지도 모를 일이다.

  우스개 이야기 하나를 들면,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했는데 좀 덜 익힌 것이 백인, 좀 과하게 익힌 것이 흑인, 적당히 잘 굽혀진 것이 황인이라는 이야기다.  이는 필시 황인종의 입에서 나온 말일 것이다.  극악무도한 어불성설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인종을 평등하고 동등하게 보지 못하고 어느 쪽은 우등하고 혹은 어느 쪽이 그보다 열등하다 여기는 의식부터 타파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 학생들은 아직도 단일민족을 우리나라 고유성의 하나로, 자랑거리의 하나로 배우고 있다.  (그마저도 얼마지 않아 더 이상 내세우지 못할 것이다.  실로 농촌총각들의 많은 수가 국제결혼을 하고 있으며 국제연애도 점점 증가하고 있다.)  아직도 이런 것을 거들먹거리다니 참으로 시대착오적이고 우스운 일이다.  무슨 애견센터의 강아지도 아니고 오리지널이니 순수혈통이니를 따지고 있는가?  단일민족을 자랑으로 내세우는 것이야말로 위험하고 편협한 반인종적인 태도가 아닐까?  

  이 책 <패싱> 잘 읽히지 않았다.  그래, 어려웠다.  그러나 책을 덮고 나서야 왜 번역상을 수상한 책인지 알 것만 같다.  클레어의 삶 그 안에서의 갈등....  이것들을 이렇게 가슴 갑갑하게 옮겨냈다는 것은 외국어를 풀어 자국어로 옮긴 일, 그 이상일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훌륭한 번역은 '언어를 아는 사람의 손에서가 아닌 문학을 아는 사람의 가슴에서 옮겨지는 것' 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보자면 이 작품은 훌륭하게 그 임무를 다했다.  절절하고 절박한 삶 앞에 치닫은 한 여성을 이리도 가슴 뻐근하게 우리 앞에 데려다 놓았다.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힘있고 기고만장한 그 어떤 세력 앞에 힘없이 고개 숙인 또 다른 모습의 클레어는 아닐까?  

  나와 다른 것을 거부하고 다양함과 서로 다름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아집.  그것이 만연한 시대 속에서 살아가기란 정말 쉽지 않았을 것이다.  좀 더 편하게, 좀 더 가치로운 존재로 살기위해 자연스러운 삶을 포기했던 여성.  패싱은 차별없이 자신의 삶을 누리고자 하는 유색인들의 몸부림이었다.  클레어는 유색인들과 혼혈들의 슬픈 삶을 대변하는 이름이자 본태를 거부하고 동경하고 추앙하는 대상과 같아지고자 하는 안타까운 몸부림이자 인류의 슬픈 역사의 이름이었다.

  지금, 미국은 인종문제에 있어 역사적인 순간 앞에 서있다.  바로 미국 최초 흑인 대통령이 세워지는가의 문제다.  국제 정세를 선두하다 시피하는 미국이란 나라에 흑인 대통령이 세워진다면 아마도 인종문제에 있어 큰 획을 긋는 일이 아닐까 싶다.  흑인의 대통령 당선으로 그 깊었던 설움의 역사를 다시 세웠으면, 흑인과 유색인의 입지를 좀 더 넓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싶다.  

  <패싱> 이 책은 인류의 뼈아픈 과거를 들추어낸 이야기이자 우리가 걸어온 발자취이다.  또 다시 인간이라는 종들끼리 생김새와 모습으로 편을 가르고 시대와 사회가 어느 한 쪽의 군림과 천대를 인정하는 이런 비극적인 만행은 없어야 할 것이다.  과오를 지우고 씻는 일, 그것은 어느 인종뿐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인류가 진정으로 화해하고 수용하고 용서함을 통해 가능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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