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싱
넬라 라슨 지음, 서숙 옮김 / 글빛(이화여자대학교출판문화원) / 2006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패싱?  제 1회 유영번역상 수상작?  국내 최초로 번역되는 할렘 르네상스 문학?  '번역에 있어서는 남다른 책' 이리라는 기대감에 이 책을 집어들었고 넬라 라슨이라는 생소한 작가를 만나게 되었다.  이로인해 나와는 무관하게 느껴지던 인종문제를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패싱-백인 행세하기.  이 책은 1929년 작이다.  그런데 무려 77년만에 국내에 번역 소개된 작품인데 이 작품이 쓰여진 시기는 책을 이해하는데 아주 중요한 구실을 한다.  인종차별을 소재로 하고 있는 이 책은 흑인이 천대받고 터부시 되던 당시에 쓰여졌기 때문이다.  이같은 역사와 이 작품의 시대적 배경을 연결짓노라면 더 긴 부연설명이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그에 대해서는 각설하고 책으로 들어가보자.

  흑인혼혈이지만 자신의 인종을 거스르고 백인으로 행세하는 클레어.  클레어를 통해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유색인의 내적, 외적 갈등들을 엿볼 수 있었다.  무엇이 그녀를 죽음으로 몰았을까?  아니 무엇이 그녀에게 자신을 버리고 살게끔 한 것일까?  클레어가 백인으로 사는 것은 외줄타기처럼 아슬아슬했고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 보다 더 위험해 보이는 것은 바로 백인인 그녀의 남편 존 벨루.  백인은 우월하며 완전하다는 불손한 선민사상은 정말 역겨웠다.  이 때문이었을까?  책을 읽는 내내 가슴이 답답했고 화가 났다.  아니 책을 다 읽는 후에도 한 동안 우울한 기분이었다.

  인종문제.  과연 과거사일뿐일까?  생각기에는 예전과 많이 달라진 듯 하다.  하지만 이는 제도나 법률상의 문제처럼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문제에 국한된 변화가 아닐까?  인류의 의식 속에서는 여전히 유색인에 대한 천대와 괄시가 만연하다.  뿐만 아니라 백인과 유색인의 문제는 세계 각지에서 여전히 적잖은 이슈들을 낳고 있다.  이렇게 말하고 있는 나와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또한 어쩌면 크게 다르지 않을지 모른다.  푸른 눈의 금발을 한 남자가 다가와 안타까운 표정으로 경복궁을 물으면 손발을 써서라도 호의를 베풀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손가락이 잘렸어요, 임금을 못받고 쫓겨났어요' 하는 동남아시아쪽 노동자들이 무리지어 서있는 그 곳을 지나며 그들에게도 한 치도 다르지 않은 호의를 베풀 수 있는가?  언제나 그러하다고 단언할 수 있는가?  (물론 이런 태도는 인종차이로만 국한하기에는 어패가 있다.  이는 국가 경제력 우위에 따른 차별문제에 더 가까울지도)  여전히 인종차별은 그 맥을 이어오고 있다.  이 시대를 사는 나와 당신 또한 그 맥을 이어주고 있을런지도 모를 일이다.

  우스개 이야기 하나를 들면,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했는데 좀 덜 익힌 것이 백인, 좀 과하게 익힌 것이 흑인, 적당히 잘 굽혀진 것이 황인이라는 이야기다.  이는 필시 황인종의 입에서 나온 말일 것이다.  극악무도한 어불성설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인종을 평등하고 동등하게 보지 못하고 어느 쪽은 우등하고 혹은 어느 쪽이 그보다 열등하다 여기는 의식부터 타파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 학생들은 아직도 단일민족을 우리나라 고유성의 하나로, 자랑거리의 하나로 배우고 있다.  (그마저도 얼마지 않아 더 이상 내세우지 못할 것이다.  실로 농촌총각들의 많은 수가 국제결혼을 하고 있으며 국제연애도 점점 증가하고 있다.)  아직도 이런 것을 거들먹거리다니 참으로 시대착오적이고 우스운 일이다.  무슨 애견센터의 강아지도 아니고 오리지널이니 순수혈통이니를 따지고 있는가?  단일민족을 자랑으로 내세우는 것이야말로 위험하고 편협한 반인종적인 태도가 아닐까?  

  이 책 <패싱> 잘 읽히지 않았다.  그래, 어려웠다.  그러나 책을 덮고 나서야 왜 번역상을 수상한 책인지 알 것만 같다.  클레어의 삶 그 안에서의 갈등....  이것들을 이렇게 가슴 갑갑하게 옮겨냈다는 것은 외국어를 풀어 자국어로 옮긴 일, 그 이상일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훌륭한 번역은 '언어를 아는 사람의 손에서가 아닌 문학을 아는 사람의 가슴에서 옮겨지는 것' 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보자면 이 작품은 훌륭하게 그 임무를 다했다.  절절하고 절박한 삶 앞에 치닫은 한 여성을 이리도 가슴 뻐근하게 우리 앞에 데려다 놓았다.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힘있고 기고만장한 그 어떤 세력 앞에 힘없이 고개 숙인 또 다른 모습의 클레어는 아닐까?  

  나와 다른 것을 거부하고 다양함과 서로 다름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아집.  그것이 만연한 시대 속에서 살아가기란 정말 쉽지 않았을 것이다.  좀 더 편하게, 좀 더 가치로운 존재로 살기위해 자연스러운 삶을 포기했던 여성.  패싱은 차별없이 자신의 삶을 누리고자 하는 유색인들의 몸부림이었다.  클레어는 유색인들과 혼혈들의 슬픈 삶을 대변하는 이름이자 본태를 거부하고 동경하고 추앙하는 대상과 같아지고자 하는 안타까운 몸부림이자 인류의 슬픈 역사의 이름이었다.

  지금, 미국은 인종문제에 있어 역사적인 순간 앞에 서있다.  바로 미국 최초 흑인 대통령이 세워지는가의 문제다.  국제 정세를 선두하다 시피하는 미국이란 나라에 흑인 대통령이 세워진다면 아마도 인종문제에 있어 큰 획을 긋는 일이 아닐까 싶다.  흑인의 대통령 당선으로 그 깊었던 설움의 역사를 다시 세웠으면, 흑인과 유색인의 입지를 좀 더 넓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싶다.  

  <패싱> 이 책은 인류의 뼈아픈 과거를 들추어낸 이야기이자 우리가 걸어온 발자취이다.  또 다시 인간이라는 종들끼리 생김새와 모습으로 편을 가르고 시대와 사회가 어느 한 쪽의 군림과 천대를 인정하는 이런 비극적인 만행은 없어야 할 것이다.  과오를 지우고 씻는 일, 그것은 어느 인종뿐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인류가 진정으로 화해하고 수용하고 용서함을 통해 가능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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