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직딩 틈나는 대로 떠나라
유상은 지음 / 미르북스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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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이다.  휴가다.  막연히 떠나고 싶고 또 행동으로 옮기기도 가장 좋은 때다.  그러나 슬픈 이름, 나는 직딩이다.  직장인의 비애를 꼽아보라면 틀림없이 여가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이 높은 순위를 차지할게다.  정말 그렇다.  여행은 커녕 퇴근 후에 뭐하나 해보고 싶어도 그것마져 힘들다.  그런데 나같은 직딩을 위한 여행지침서라....  직딩만을 위한 여행서적이 따로 나올 마당이라면, 아무래도 대한민국 직딩들이 여행을 하기 어려운 여건에 놓여있다는 말이리라.  왜 그럴까?  역시 이 책에서 짚어주듯 시간, 돈이 문제다.  그러면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 어디 한 번 살펴볼까?  

  이번 여름, 필리핀으로 여행을 가려고 했었다.  아주 상세하게 계획했고 비행기표와 숙소 예약만 마치면 되는 찰나.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항공권 구입이 늦어지는 바람에 제대로 좌절됐다.  무엇보다 '정말 떠날 마음이 있는가?' 가 급선무인 것 같다.  그 다음이 시간, 그리고 그 다음이 여행경비가 아닐까 싶다.  직장인의 여행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틀림없이 불가능 한 것은 아니다.  떠나기로 마음 먹었으면 제대로 추진해야 하는데 그저 생각이나 계획에 그치기 십상이다.  그리고 휴가가 일 년 통틀어 2주 밖에 안된다는 불쌍한 대한민국 직딩으로서는 휴가기간을 여행에 올인하기도 쉬운 일은 아니다.  워크샵, 연수 등이 있기도 하고 지친 육신을 쉬게 하기에도 빠듯하니 말이다.  다음이 역시 경비.  국내여행이든 해외 여행이든 역시 무시 못 할 여행경비.  나야 해외여행을 갈때는 한 달 직장에서 봉사활동 한다치고 월급을 올인한다.  그런데 내 친구의 경우는 여행경비 마련 통장에 매 달 저축을 한단다.  여행 경비를 차곡차곡 모으는 일은 단순히 손쉬운 경비마련 뿐 아니라 여행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물론 강한 동기유발을 가능케 하는게 아닐가 싶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새로이 안 사실.  남산타워에 가면 철망에 걸린 사랑의 자물쇠들을 보며 '아, 참 이쁘구나.  재미있고 기발한 발상이야' 하며 흡족해 했었는데 이탈리아 피렌체의 그것을 모방한 것이라니.  음~  그렇다고 못마땅한 것은 아니고 단지 발원지, 최초의 것이 아니라는 것에 다소 기운 빠졌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  그것 역시 그 곳을 여행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되었을 것을 생각하니 한 사람이 보고 느끼는 것이 여러 사람들에게 새로운 것을 가져다주는 일이 여행이 아닌가 싶었다.

  이 책은 여름 휴가 길에 차 안에서 읽은 책이다.  '대한민국 직딩'을 위한 여행서적이라지만 저자가 대한민국 직딩이라는 점을 빼면 굳이 직딩을 위한 책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각 국의 여행Tip들을 제대로 안내한 꼼꼼한 책이었다.  여행을 하려는 어느 누구에게나 좋을 책이다.  당신이 학생이건, 백수건, 노년의 인생을 즐기려 하는 사람이건.  그리고 지금 당장만 들여다 볼 책이 아니라 두고 두고 그 때 그 때 볼 수 있을 책이었다.  또 설레임으로 들여다 볼 수 밖에 없는 사진 또한 훌륭했다.  몇 번이고 되뇌이게 만드는 책 '여기 꼭 가봐야지'  이런 의미에서 이 책은 내게 마치 그 곳을 여행하는 듯한 설레임과 가슴 두근거림을 느끼게 한 책이다.  그리고 여행지침서로도 훌륭했지만 지금 당장 떠날 처지가 못되는 불쌍한(?) 직딩들에게 대리만족의 경험을 주는 책이기도 했다.  아, 정말 나도 한 번 떠나볼까봐.  천천히 시작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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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공주를 위하여 9 - 완결
이미라 지음 / 시공사(만화)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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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라의 <인어공주를 위하여>  현재 삼십대 초반의 여자라면 누구나 이 만화를 기억하지 않을까 싶다.  내가 중학생이었을 당시 아주 인기가 있었던 만화 중 하나이자 내가 읽은 몇 안되는 만화 중의 하나다.  실은, 만화를 읽고 서평을 써보기는 처음이다.  만화책을 즐겨 읽지는 않지만 이 책 '인어공주를 위하여'는 내게 아주 각별하다.  앞서 말한 것처럼 중학교 시절 이 순정만화는 또래 친구들에게 아주 인기였고 나도 그때 처음으로 읽었다.  이 만화때문에 얼마나 가슴이 먹먹했던지.  그리고 '이슬비' 라는 이름은 당시 내 절친한 친구로부터 한 때 애칭처럼 불리웠던 이름이기도 하다.  그녀가 내게 보낸 편지의 첫머리에는 항상 '슬비에게' 라고 적혀 있었으니 말이다.  그 친구의 말로는 캐릭터가 닮았다나 어쨌다나.  

  <인어공주를 위하여>는 내게 감동을 준 유일한 만화책이기도 하다.  첫느낌은 쉽사리 잊혀지지 않는 것인지 시간이 흐른 뒤에도 때때로 이 책이 생각나곤 했었다.  다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에 여러 번 이 책을 찾았다.  서점에서는 이미 절판이고 헌책방에서 역시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 후에도 가끔 도서검색창에 '인어공주를 위하여'를 입력해보곤 했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어느 날, 이 만화책이 검색 목록에 올라 있었다.  그것도 낱권이 아닌 9권 완결판으로.  누가 채갈새라 얼른 장바구니에 담고 책이 오기까지 얼마나 설레었는지.

  중학교 시절 읽었던 그 느낌과 아주 같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훌쩍 나이가 든 지금에서야 처음 읽었다 할지라도 꽤 인상깊게 느꼈을 것 같았다.  서지원, 이슬비, 푸르매, 백장미, 조휘인, 조종인 등....  당시 나의 우상이었던 그들은 주름 하나 없는 팽팽한 얼굴 그대로였다.  서지원의 카르스마, 이슬비의 밝고 쾌활함, 백장미의 쓸쓸함, 슬비의 기억 속 푸르매의 따사로움, 조휘인*종인 형제의 깔끔한 마스크.  모든게 그대로였다.  만화를 읽고 가슴 뛰던 그 때의 나 역시 그대로였다.  오래 전을 추억하는 일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옛노래처럼 나의 지난 날을 회상하게 했다.  그리고 다시 이 책을 집어 들 수 있다는게 얼마나 재미난 즐거움이었는지.

  혹자는 만화책은 수준 낮은 것이며, 문학과 달리 저질이며, 그저 오락을 목적으로 할 뿐이라고 말한다.  그렇기에 가급적 멀리, 멀리 해야 한다고.  그러나 나는 조금 다르다.  물론 저속하고 유해한 만화도 있다.  (물론 문학이나 그 밖의 도서들도 예외는 아닐게다.  그것들 역시 더러는 저속하고 유해하니 말이다.)  그러나 만화라는 자체가 본디 그런 것은 아닐게다.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학습만화들이 많은것만을 봐도 그렇다.  그것들이 장문의 글이 아닌 만화로 존재하는 이유가 필시 있을 것이다.  만화는 한 컷 한 컷의 그림과 상황을 통해 더 쉽게 정보를 전달하고 보다 쉽게 각인시킨다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종이 만화는 애니매이션처럼 움직이지는 않지만 그 모든 컷 하나 하나에 찰나와 느낌과 상황들이 담겨있다.  마치 소설가가 한 문장 속에 주인공의 심경과 주변 상황을 담아두는 것처럼.  그런 모든 것들을 펜의 선만으로 표현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리 보자면 만화 역시 문학에 비할만큼의 고등예술이 아닐까?  이 역시 이야기를 짓는 일이지만 작가로도 인정받지 못하고 그림을 그려도 화가에는 더더욱 낄 수 없는 만화가들.  게다가 만화를 바라보는 시선까지 차가우니 참 힘들겠다는 생각이 새삼 든다.  다른 책은 거들더도 안보고 오로지 만화책만 들여다본다면 문제겠지만 그렇지 않고 가끔 만화라는 것을 통해 정신을 좀 느슨히 한다면 이 역시 훌륭한 한 권의 책을 읽는 것만큼 좋은 게 아닐까.  순정만화 속에서는 사춘기적 달콤한 사랑의 감정을, 무협만화에서는 바람에 펄럭이는 옷자락 소리를 좀 듣는 것도 좋지 않을까 말이다.

  어린시절 곁에 있었던 만화.  그것을 오랫만에 들추어 보고 그 속에서 한 때 동경하고 흠모하던 주인공들을 보며 이렇게 나이들어감을 잠시 잊는다는 것도 즐거운 일 아닐까?  가슴 깊이 좋아하던 만화책을 들추어 그 장면들을 다시 보게 되니 참 즐겁다.  그나저나 이미라씨는 지금도 만화를 그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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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 니가 지겨워
배수아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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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수아의 글은 작년, <철수>를 처음으로 읽었다.  <철수>는 뭐랄까?  오만한 작가들이 흔히 그러하듯 자신의 글에 도취되어 쓴 듯한 느낌이 거북했다.  다시 말하자면, 누구도 발을 들여놓지 못하게 하는 작가 자신만의 세계를 담은 작품 같았다.  그런 혼자만의 공간을 넌즈시 보여주며 세상과 자신은 분명 다르다고 선을 긋는 작가들.  배수아의 첫느낌은 그랬다.  아니 <철수>는 그랬다.  지적 허영에 빠져있거나 자아도취에 빠져있거나 둘 중 하나라는 생각.  이렇듯 배수아와의 첫 만남은 그다지 즐거운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녀의 글은 중독성이 있는 것일까?  <철수>를 읽고서 맘에 들지 않아, 맘에 들지 않아....  중얼대면서도 나는 어느새 그녀의 책을 또 펼치고 있었다.  <내 안에 남자가 숨어 있다>를 읽었다.  그 작품을 읽고서 그녀에게 호기심이 일었다.  배수아.  이 여자 뭐지?  오만한 척 하는거야?  아님 정말 남다른거야? 

  세 번째로 <나는 이제 니가 지겨워>를 읽었다.  나는 이제 니가 지겨워?  이 얼마나 인터넷 소설틱한 제목인지.  이 얼마나 청소년기 풋사랑스러운 발언인지.  그러나 결코 가벼이 보아서는 안되는 책이었다.  마치 거울처럼 이 시대를 비추어 담은 책이었다.  감히 말하고 싶다.  비로소 배수아를 알게 한 책이라고.  배수아의 글은 그녀의 모습과 닮았다.  표정이 걷힌 얼굴에 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듯한 냉소적인 눈빛.  그녀의 글이 바로 그러하다.  그녀가 글 속에서 인간을 바라보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적나라하고 냉정하다.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세상 그대로를 투영시킨다.  이 책을 읽는동안 잠시 잠시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이 떠올랐다.  뭐랄까?  인간의 내면에 결코 들키고 싶지 않은 속내들을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까발기는 바람에 당황스러웠던.  그래서 왠지 불편했던.  

  이 책, 내 마음에 쏙 들었다.  군더더기 없이 단정한 그녀의 문체도 마음에 들었다.  모르긴 몰라도 배수아식(?) 소설을 짓기에 가장 어울리는 문체가 아닐까 싶다.  <나는 이제 니가 지겨워>는 삼십대 독신녀들의 사랑, 결혼, 일, 친구, 타인의 시선을 담고 있다.  나?  삼십대다.  독신녀냐고?  음....  독신주의자는 아니지만 어찌되었건 지금 상황은 독신녀나 하등 다를게 없지.  그렇지 뭐.  그래서일까?  책 속의 그녀들 모두가 공감이 갔다.  왠지 표독스러운 그녀들이 나같기도 하고 내 친구들 같기도 했으니 말이다.  여자들이란 참 말이 많고 분란을 쉬 일으킨다.  (여어~ 그렇다고 날보고 뭐라 하진 말라고.  나도 이런 여자니 말이야)  오죽하면 '여자 셋이 모이면 접시가 깨진다' 는 말이 있을까?  (점입가경이군.)  혹시, 당신도 뒷담화가 무서워 화장실 가는 것이 꺼려진 일이 있는가?  이 책에서의 그녀들이 딱 그러하다.  그네들의 뒷담화가 어찌나 진솔하며 어찌나 냉정하던지.  그런 여자들의 심리 묘사가 너무나도 잘 된 작품이다.  

  또 하나 내가 깊이 빠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은, 현실과 꼭 닮은 이야기라서 그러했다.  이 사회, 물질만능주의의 팽배라고 하지?  그 중 하나가 소위 말하는 '결혼의 조건' 아닐까?  '사랑만으론 못 살아.  사람을 살게 하는 건 돈이지.  그러니 결국 바닥을 드러낼 사랑을 보고 시집을 가느니 얼마나 빵빵한지를 보고 가는게 현명하지 않겠어?'  '여자는 남자를 잘 만나면 팔자를 고친다'  속물주의에 찌들 찌든 배우자 사냥의 대표적인 슬로건들....  솔직히 말해서 이런 말들, 이런 사고들....  역겹다.  이리 말하면 마치 나는 가질만큼 가진 사람이라 돈 아쉬운 줄 몰라 그런다고 하겠지?  아니 어쩌면 너무 없이 자란데서 길러진 자격지심이 아니냐 할런지도 모르겠다.  이 시대 젊음이들이 배우자를 선택하고 바라보는 시각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유경의 사촌 '금성' 의 배우자의 자격요건들을 보는 내내 현시대의 단상이 아닌가 싶어 씁쓸했다.  여담이지만, 난 좀 더 훌륭한 배우자를 선택하려는 젊은 눈이 못마땅하다는게 아니다.  단지 오로지 돈, 돈.  '돈 이상은 아이 돈 노' 라는 그런 눈이 싫은 것이다.  이리도 수용할 수 없는 이야기에 왜 매력을 느꼈냐고?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 그 치들의 속을 훤히 볼 수 있어서.  또 그것이 정당하고 타당할 수 있다는 설득이 재미있었다.  

  <나는 이제 니가 지겨워>는 현시대 젊은이들의 모습과 움직임을 살필 수 있어 즐거웠던 책이다.  배수아가 이것을 단지 보고하고자 했다면, 고발하고자 하는 글을 썼다면 매력 절감, 가치 하락이었을지도.  그러나 문학적인 기품이 살아있다.  8개의 프롤로그로 들어가는 이야기 구성도 마음에 들었다.  나에게 있어 배수아가 겉멋들린 작가에서 글을 쓸 줄 아는 작가로 바뀌었다면.  그야말로 환골탈태요!  뭐랄까?  배수아는 오만하다.  그러면서 랄하고 또 영리하다.  배수아에게 관심이 간다.  그녀의 작품을 더 읽어 볼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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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너를 선택했는가 - 낭만적 사랑에 빠진 남녀의 뒤로 숨긴 속마음을 분석한, 우리가 미쳐 몰랐던 짝짓기의 심리학
볼프강 한텔-크비트만 지음, 장혜경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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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은 무엇일까?  건강, 돈, 일, 명예, 가족, 자기 자신 등....  사람마다 각기 다를게다.  그러나 적지않은 수가 사랑을 꼽지 않을까?  나 역시 '사랑' 이 가장 가치롭다 생각한다.  사랑도 굳이 구분을 해보자면 여러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을 것인데 이 책은 그 중에서도 남녀간의 사랑에 대해 말하고 있다.  연인, 배우자, 부부간의 사랑에 대해 말이다.  

  나는 사랑을 가장 가치로운 것으로 꼽긴 했지만 사실 남녀간의 사랑을 주제로 다룬 멜로나 로맨스 따위는 좋아하지 않는다.  이 책 역시 연애지침서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우연히 책소개를 읽어보게 되었고 급작스레 호기심이 일었다.  뭐라고?  많고 많은(?) 상대 중에 하필 당신을 선택하게 되었는지 이 책이 그 답을 제시해준다고?  어머, 나도 모르는 이유를 책, 니가 알고 있다고?  상대를 선택하게 되는 이유가 있다고?  인간 군상의 심리적인 특징이 있다고?  우리가 미처 몰랐던 짝짓기의 심리라고?  내가 찾는 운명적인 사랑인지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나는 그것이 몹시 궁금했다.  내가 왜 이 사람(?)을 선택하게 된 것인지, 그 사람은 왜 나를 선택하게 된 것인지....  읽고 있던 책도 덮고 이 책을 펼쳤다.

  삽시간에 읽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이 책은 내게 그 해답을 주지 못했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고 배우자로 삼는 일도 하나의 선택이라고 볼 수 있다.  혹자는 이것이 굉장히 거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인연은 사람이 선택하는게 아니예요.  하늘이 점지해주는 것인걸요, 선택을 하다니요.  사람이 무슨 물건과 같은건가요?  할런지도.  그래, 하늘이 인연으로 맺어 주었고 운명이 그 사람을 데려다 주었다한들 역시 그 사람이 운명적인 사람이라 믿고 자신을 맡기는 것 또한 하나의 선택인 것이다.  그런데 역시 사랑이란 어떤 통계와 근거로 설명을 하기에는 불충분한 것이었을까?  이 책은 사람이 사람을 선택하게 되는 이유들을 들어주었지만 '오로지 사랑때문' 이라는 맹목적인 사랑의 이끌림이 아닌 맞선에서 상대를 재고 따져보는 시각으로 짚은게 아닌가 싶다.  결혼을 일종의 도피처로, 그 상대가 유능해서 등등은 사람을 선택하는 조건일 수는 있지만 인간이 한 인간을 선택하고 이끌리게 되는 심리적인 이유라고 보긴 힘들다.

  너무 큰 기대를 했었던 것일까?  이 책이 타로카드점이나 된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이건 이렇고 저건 저래요' 하고 감히 미래를 단언하는, 그렇게 읽어주는 점괘같은 것으로 기대한 것일까?  연애와 결혼의 궁금증을 해결해 주겠다며 당돌한 표정으로 내게 다가왔던 책의 첫 느낌과는 너무 달랐다.  익히 들어 알고 있거나 그러리라 생각되는 진부한 이야기들이었다.  한 편으로는 참 다행스럽다.  이 책이 사랑에 대해 캐밝히지 못했다는게.  사랑을 사랑 그대로 남겨두었다는게.  여전히 미지의 것으로 남겨두었다는게.  사랑이라는 그 오묘하고 기이한 감정을 어떤 식으로도 단언할 수 없었음이 되려 다행스럽다.

  그렇지만 남녀간의 사랑에 대해 한 번 생각해보고 또 그와 나에 대해, 우리 사랑에 대해, 우리 만남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책이다.  사랑은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닐지.  사랑은 믿음으로 완성되는게 아닐지.  운명적인 사랑은 다른게 아니라 상대를 나의 천생연분으로 믿는 믿음, 그것이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닐까?  그것이 비로소 운명을 거론할 수 있을만큼의 큰 사랑으로 다가오게 되는게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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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코필리아 - 뇌와 음악에 관한 이야기
올리버 색스 지음, 장호연 옮김, 김종성 감수 / 알마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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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음악이 없이 얼마동안을 살 수 있을까?  한 달, 일 년?  혹자는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깟 음악 없다고 죽기야 하겠어?'  그래.  죽지는 않을 것이다.  엄밀히 말해, 호흡히 멈추고 심장이 멎는 생물학적 죽음은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나는 현실 속 모든 음악을 완전히 제거하면 실제로 인간의 수명이 단축되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분명, 음악의 부재는 우리 삶의 질을 떨어뜨릴 것이고 강퍅해지는 결과를 초래하리라 확신한다.

  이 책은 뇌와 음악에 관한 이야기이다.  음악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청력이 가장 중요하다 생각해왔다.  아니, 다른 것이 필요할 것이라고는 생각해 본 일이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이 책은 음악을 듣는 것이 단지 우리 귀를 통해서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친절히 설명해주었다.  청력이 정상인 사람도 음악을 왜곡하여 들을 수가 있으며 선율을 전혀 인지할 수 없는 일도 있다는 사실이었다.  바로 뇌의 이상때문이란다.  그렇다면 음악을 인지하는데는 청력이상으로 정상적인 뇌기능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이 책은 갑자기 음악성을 갖게 된 사람들, 또 갑자기 음악에 둔감해진 사람들, 음의 고저를 인지할 수 없는 사람들, 종일 머릿 속에서 음이 들려오는 사람들 등 다양한 사람들의 실례를 통해 음악과 뇌의 상관관계를 풀어주고 있다.  갑자기 교통사고를 당한 뒤부터 음악적 재능이 개발되어 작곡을 하고 악기를 연주할 수 있게 된다는 게 어떻게 가능할까?  어떻게 머릿 속에서 내내 음악이 울려 퍼질 수 있다는 말일까?  이런 희귀한 일들은 '세상에 이런 일이'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가 아닐끼?  그런데 실제로 이런 사람들이 존재한단다.  이런 사례들을 보면서 음악적으로 참으로 평범한 내 자신이 얼마나 다행스러웠는지 모른다.  절대음감 따위는 없어도 고마웠다.  음악을 듣고 싶을 때 선택적으로 들을 수 있고 그 음악들을 통해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더없이 고마웠다.

  언젠가 티뷔에서 서번트에 대한 다큐를 본 적이 있다.  대개 그들은 수학과 음악에 있어 과학이라는 이름으로는 설명할 수 없을만큼의 기이한 재능을 보이고 있었다.  몇 백년 전 날짜와 요일을 맞춘다거나 한 번 들은 음악을 기억하고 연주해낸다거나 무수히 긴 수들을 연산한다거나 하는.  그것을 보면서 나는 그들의 뛰어난 재능이 신기하면서 부럽기도 했다.  다른 지능은 일반인들보다 떨어진다 하더라도 그 어느 하나만은 천재라 불리울 수 있을 만큼의 능력을 갖고 있으니 그것을 잘 개발한다면 이 시대는 또 하나의 천재를 갖게 되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 때는 그저 그들이 대단해 보이기만 했었는데 이 책을 읽고나서는 그들을 지원하고 장려할 수 있는 제도적인 시스템이 마련되어 좀 더 그들의 재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악.  사람들의 관심은 비단 어제, 오늘의 일만은 아니다.  그러나 근래 들어 음악을 단순히 유희를 위한 그 무엇 이상으로 여기게 된 것 같다.  이를테면, 음악으로 환자를 치료하는 등을 예로 들 수 있겠다.  음악이 마음 속에서 만들어내는 많은 심상들을 통해 치료의 효과를 꾀할 수 있다는 말이다.  참 신기한 일이다.  언어처럼 정보전달의 기능도 없고 선율을 눈으로 볼 수도 없는데 슬픔과 기쁨과 흥분, 희열을 느낄 수 있다니 말이다.  

  음악을 즐길 수 있는 생명체는 인간 뿐이다.  더 정확히 말해, 음악을 창조할 수 있는 것은 만물의 영장, 인간 뿐이다.  음악이 오로지 인간에게 허락된 신의 선물이라면 이것들을 어찌하면 더 풍요롭게 즐길 수 있을지 또 어떤 과정을 통해 음악을 인식할 수 있는지에 관한 뇌신경 연구는 아주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그런면에서 올리버 색스의 뮤지코필리아는 아주 중요한 일을 해낸 것 같다.  적어도 음악은 그저 귀로 듣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했던, 무지하기 짝이 없는 나같은 독자에게 음악과 뇌는 절대 떼어놓을 수 없다는 이 한 가지를 알려준 것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히 가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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