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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공주를 위하여 9 - 완결
이미라 지음 / 시공사(만화) / 2001년 4월
평점 :
품절
이미라의 <인어공주를 위하여> 현재 삼십대 초반의 여자라면 누구나 이 만화를 기억하지 않을까 싶다. 내가 중학생이었을 당시 아주 인기가 있었던 만화 중 하나이자 내가 읽은 몇 안되는 만화 중의 하나다. 실은, 만화를 읽고 서평을 써보기는 처음이다. 만화책을 즐겨 읽지는 않지만 이 책 '인어공주를 위하여'는 내게 아주 각별하다. 앞서 말한 것처럼 중학교 시절 이 순정만화는 또래 친구들에게 아주 인기였고 나도 그때 처음으로 읽었다. 이 만화때문에 얼마나 가슴이 먹먹했던지. 그리고 '이슬비' 라는 이름은 당시 내 절친한 친구로부터 한 때 애칭처럼 불리웠던 이름이기도 하다. 그녀가 내게 보낸 편지의 첫머리에는 항상 '슬비에게' 라고 적혀 있었으니 말이다. 그 친구의 말로는 캐릭터가 닮았다나 어쨌다나.
<인어공주를 위하여>는 내게 감동을 준 유일한 만화책이기도 하다. 첫느낌은 쉽사리 잊혀지지 않는 것인지 시간이 흐른 뒤에도 때때로 이 책이 생각나곤 했었다. 다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에 여러 번 이 책을 찾았다. 서점에서는 이미 절판이고 헌책방에서 역시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 후에도 가끔 도서검색창에 '인어공주를 위하여'를 입력해보곤 했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어느 날, 이 만화책이 검색 목록에 올라 있었다. 그것도 낱권이 아닌 9권 완결판으로. 누가 채갈새라 얼른 장바구니에 담고 책이 오기까지 얼마나 설레었는지.
중학교 시절 읽었던 그 느낌과 아주 같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훌쩍 나이가 든 지금에서야 처음 읽었다 할지라도 꽤 인상깊게 느꼈을 것 같았다. 서지원, 이슬비, 푸르매, 백장미, 조휘인, 조종인 등.... 당시 나의 우상이었던 그들은 주름 하나 없는 팽팽한 얼굴 그대로였다. 서지원의 카르스마, 이슬비의 밝고 쾌활함, 백장미의 쓸쓸함, 슬비의 기억 속 푸르매의 따사로움, 조휘인*종인 형제의 깔끔한 마스크. 모든게 그대로였다. 만화를 읽고 가슴 뛰던 그 때의 나 역시 그대로였다. 오래 전을 추억하는 일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옛노래처럼 나의 지난 날을 회상하게 했다. 그리고 다시 이 책을 집어 들 수 있다는게 얼마나 재미난 즐거움이었는지.
혹자는 만화책은 수준 낮은 것이며, 문학과 달리 저질이며, 그저 오락을 목적으로 할 뿐이라고 말한다. 그렇기에 가급적 멀리, 멀리 해야 한다고. 그러나 나는 조금 다르다. 물론 저속하고 유해한 만화도 있다. (물론 문학이나 그 밖의 도서들도 예외는 아닐게다. 그것들 역시 더러는 저속하고 유해하니 말이다.) 그러나 만화라는 자체가 본디 그런 것은 아닐게다.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학습만화들이 많은것만을 봐도 그렇다. 그것들이 장문의 글이 아닌 만화로 존재하는 이유가 필시 있을 것이다. 만화는 한 컷 한 컷의 그림과 상황을 통해 더 쉽게 정보를 전달하고 보다 쉽게 각인시킨다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종이 만화는 애니매이션처럼 움직이지는 않지만 그 모든 컷 하나 하나에 찰나와 느낌과 상황들이 담겨있다. 마치 소설가가 한 문장 속에 주인공의 심경과 주변 상황을 담아두는 것처럼. 그런 모든 것들을 펜의 선만으로 표현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리 보자면 만화 역시 문학에 비할만큼의 고등예술이 아닐까? 이 역시 이야기를 짓는 일이지만 작가로도 인정받지 못하고 그림을 그려도 화가에는 더더욱 낄 수 없는 만화가들. 게다가 만화를 바라보는 시선까지 차가우니 참 힘들겠다는 생각이 새삼 든다. 다른 책은 거들더도 안보고 오로지 만화책만 들여다본다면 문제겠지만 그렇지 않고 가끔 만화라는 것을 통해 정신을 좀 느슨히 한다면 이 역시 훌륭한 한 권의 책을 읽는 것만큼 좋은 게 아닐까. 순정만화 속에서는 사춘기적 달콤한 사랑의 감정을, 무협만화에서는 바람에 펄럭이는 옷자락 소리를 좀 듣는 것도 좋지 않을까 말이다.
어린시절 곁에 있었던 만화. 그것을 오랫만에 들추어 보고 그 속에서 한 때 동경하고 흠모하던 주인공들을 보며 이렇게 나이들어감을 잠시 잊는다는 것도 즐거운 일 아닐까? 가슴 깊이 좋아하던 만화책을 들추어 그 장면들을 다시 보게 되니 참 즐겁다. 그나저나 이미라씨는 지금도 만화를 그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