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 - 정혜윤이 만난 매혹적인 독서가들
정혜윤 지음 / 푸른숲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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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그들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  랜턴 불 하나만 밝힌 채 수많은 책들이 꽂힌 책장 앞에 쪼그리고 앉아있는 소녀의 표지가 몹시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그 아래 새겨진 낯익은 이름들....  진중권, 정이현, 공지영, 김탁환, 임순례, 은희경, 이진경, 변영주, 신경숙, 문소리, 박노자.  이들 11명의 책 이야기이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12명이다.  이 책의 저자 정혜윤을 빼놓고 이야기 할 수 없을 것이다.  과연 이들은 어떤 책에서 태어났을까?

  이 책은 참 색달랐다.  인터뷰이면서 에세이면서 잡담같은.  묻는 말에 답하고 다음 질문을 하고 또 답하고 하는 그런 경직된 분위기의 인터뷰가 아니라 차 한 잔을 앞에 놓고 한 참 수다를 떨며 어린시절 이야기를 했다가 책이야기를 했다가 하는 편안한 분위기였다.  할 수만 있다면 그들의 대화에 끼어 그 반짝이는 눈빛을 바라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나의 유년과 너무나도 닮은 그들의 유년 이야기에 놀랐다.  그리고 그들의 앎의 욕구와 사유의 깊이에 또 놀랐다.  이들 모두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어린 시절, 어떤 방식으로든 그들 나름대로 책과 강한 정신적 소통을 경험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책에 씌인 적이 있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의 나 역시 그랬다.  초등학교 3학년때로 기억한다.  시장을 가다 우연히 들렀던 서점에서 엄마가 사주었던 한 권의 책.  그 책은 이슬기 저 <주근깨 소녀(지경사)> 였다.  마르고 닳도록 읽었다.  쉴 새 없이 읽었다.  그 책은 나에게 '글을 쓰는 사람' 이 되고 싶다는 소망을 갖게 한 책이다.  초등학교 3학년 이후 줄곧 나의 꿈은 작가이다.  여담이지만 그 책을 수소문하며 찾아다니던 통에 저자이신 이슬기 선생님과 연락이 닿아 알고 지내게 되었다.  이 역시 나에게는 책으로 만난 소중한 인연이다.  내가 책을 좋아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간혹 '니 삶에 있어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책은 뭐야?" 하고 묻곤 한다.  그럴때면 나는 어김없이 <주근깨 소녀> 라고 말한다.  이것이 나를 만든 책이다.  작가로서의 나는 아니지만 책을 좋아하는 나로, 글쓰는 것을 좋아하는 나로 말이다.  

  어린시절 나는 책을 좋아하긴 했지만 또래들과 어울리는 것도 몹시 좋아했다.  그래서 주로 낮에는 동네에서 놀고 밤에 책을 읽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 역시 나에게 책이 온전히 스밀 수 있었던 시간이 아닐까 싶다.  오로지 활자에만 집중할 수 있었던 시간.  그 때 나는 책을 읽었다.  지금도 낮보다는 밤에 더 잘 읽힌다.  학창시절에 한 번은 <안네의 일기>를 읽고(역시 깊은 밤이었다) 나서 기이한 행동을 해서 가족들을 놀라게 한 적이 있다.  책을 읽는 내내 유난히 목이 탔고 갑갑했다.  나치 정권 아래, 다락방에서의 삶 이야기, 그들의 숨죽인 생활.  비로소 책을 다 읽고 나는 물을 마시러 냉장고로 다가갔다.  불도 켜지 않은 채 까치발로 살금살금.  소리나지 않게 냉장고 문을 열고 조심스레 물병을 집어 들어 병째 마시고는 또 다시 곱사등으로 살금살금.  그러다 주방으로 나온 엄마와 대면했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엄마는 내게 왜 그러냐고 물었고 나는 답했다.  "방금 안네의 일기를 읽었는데 저도 모르게 아무에게도 들켜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라고.  이 책에 완전히 빠진 나머지 나는 책을 읽는 내내 가슴 졸였던 그대로 행동했던 것이다.

  그리고 학창시절, 부끄러운 고백을 하자면 나는 책과 글로 사람들을 속였다.  여름 방학 과제로 독후감을 써내야 했는데 그 도서 목록에는 내가 읽고 싶은 책이라곤 없었다.  결국 나는 책을 읽지도 않고 독후감을 썼다.  글짓기를 한 것이다.  그런데 개학이 되고 조회시간에 나는 강단으로 불려 갔다.  상을 받게 된 것이다.  그것도 우수독후감상을.  나는 그 짓을 한 번 더 했고 또 강단에서 대표로 상을 받았다.  그 당시 나는 기고만장했다.  음악감상문을 써내는 과제가 있었는데 다음 시간 음악 선생님이 실망한 표정으로 말씀 하셨다.  "어떻게 음악 감상이란 것을 이렇게들 했니.  음악을 한 번이라도 듣고 쓴 것이니?"  말씀을 마치고 이어 나의 이름을 불렀다.  앞으로 나오라고.  나의 음악공책을 집어 들고는 내게 내미셨다.  "니가 쓴 것을 읽어 봐"  나는 떨리는 가슴으로 한 줄 한 줄 읽었갔다.  내 가슴이 곧게 펴지지 않았던 이유는 그 음악감상문은 음악을 듣지 않고 곡목과 음악가 그리고 약간의 곡정보만으로 썼던 것이기 때문이었다.  나의 감상문 읽기를 마치자 음악선생님은 "음악 감상문이라는 것은 이렇게 쓰는 거야.  알겠어?" 하며 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그 때의 죄책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종이 한 장 상을 받아 내려오는 강단에서보다 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진심을 다해 칭찬을 하셨던 그 선생님을 바로 볼 수가 없었다.  그 후로 나는 결심을 했다.  '앞으로 다시는 글로 사람을 속이지는 말자'고.

  좋아하는 책은?  11명의 그들도 특히나 좋아하는 책이 있었다.  나도 사랑하는 책이 있다.  요한 볼프강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그것인데 초등학교 6학년 짝사랑 당시에 읽었던 책이라서 그랬을까?  나는 혼을 완전히 빼앗겨버린 경험을 했고 그 이후로도 그 책을 읽을 때면 번번히 울게 되었다.  급기야 그 책을 모으게 되었는데 지금은 약 40권 정도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갖고 있다.  그러나 역시 언제 읽어도 좋은 책이다.  나의 이야기를 너무 많이 했다.  그런데 이 책 <그들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는 나에게 '나와 책과의 만남' 을 아스라이 떠올리게 했다.  책과의 추억 속으로 고스란히 나를 데려다 놓았다.  그래서 읽는 내내 즐거웠고 '어머? 정말요?  나도 그랬어요' 하며 맞장구를 치고 싶게 만들었다.

  이 책을 덮고나서 또 읽고 싶은 책이 늘었다.  《전태일 평전》《공산당 선언》《미학 오디세이》《폭력과 상스러움》《너 자신을 아프게 하지 말라》《보이지 않는 도착적 폭력》《세계문학의 천재들》《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왼손을 위한 협주곡》《고독의 발명》《햄버거에 대한 명상》《내가 사랑한 침팬지》《달의 궁전》《다른 곳을 사유하자》《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마야코프스키: 사랑과 죽음의 시인》《심판》《화차》《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이 그것이다.  이 세상 모든 책을 다 읽는 것이 소원이라는 누구처럼은 바라지도 않는다.  이 책, 적어도 이 책들은 다 읽어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 나는 책을 읽고 책을 사랑하고 있는 내가 한없이 사랑스럽다.  책과 함께하고 있기에 항상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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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에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
전경린 지음 / 문학동네 / 199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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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경린의 작품으로는 <엄마의 집>, <열정의 습관> 이후 세 번째다.  이 책을 읽기 시작하고 안 일인데 영화 <밀애(2002)>의 원작소설이란다.  영화도 봤었는데, 영화보다는 책이 더 제대로가 아닌가 싶다.  영화를 보고서 드는 생각이라곤 '불륜은 왜 맨날 침대에만 눕지?' 하는 생각 밖에 안 들었으니 말이다.  '야한 영화' 한 편에 지나지 않았다.  그 영화를 2002년도에 봤고 지금이 2008년이니 그로부터 6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 때는 내가 어렸기에 그랬을까? 

  영화를 먼저 봐서인지 내 머릿 속에선 어김없이 미흔역은 김윤진이, 인규역은 이종원에게 맡겨졌다.  어찌보면 영상을 활자로 회상한 일이었을지도.  그러나 확실히 영화와는 다른 느낌이 들었다.  이 책 역시 전경린만의 문체가 도드라졌다.  <엄마의 집>을 읽었을 때도 역시 그랬다.  <엄마의 집>을 읽기 시작했을 때는 휘황찬란한 문체가 오히려 거슬리는 느낌이었다.  책을 덮고 나서는 그것이 하나의 매력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말이다.  전경린은 잔뜩 기교를 머금은 모호함과 공감각적인 표현을 즐기는 것 같다.   그녀의 필명 전경린 역시 '고 전혜린' 여사의 그것을 흉내낸 것이라는데 그렇다면 전경린은 문체에 적잖은 비중을 두고 글을 짓는다는 것은 분명하다.  (어느 작가나 그렇겠지만 그녀의 경우 좀 더)  전혜린 글의 매력 역시 그녀만의 문체에서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글이 매력적인 이유는 비단 문체때문만은 아니다.  사유의 깊이  그리고 삶에 대한 진지함, 인텔리한 시선은 더욱 훌륭하다.)  그런데 <엄마의 집> 보다 이 전에 쓰여진 <내 생에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이 훨씬 단정하고 정돈된 느낌이다.  그렇다면 그녀는 갈 수록 기교에 치중하고 있다는 것일지.  또 '이 문장을 반드시 쓰고 싶었나 보다' 라는 생각이 드는 부분들이 많았다.  이를테면, 이야기를 위해 쓰여진 문장이 아니라 이야기와는 별 상관없이 쓰여진 문장들 같은 것이다.  지나치게 시선을 끄는 문장들....  틀림없이 매력적인 문체인 것은 같은데 그것이 너무나도 의도적이 느낌이 든다.  똑같은 표현을 여러 군데에서 쓰고 있는 점도 들 수 있겠다. 

  그녀의 문체에 대한 이야기는 그만 하자.  그러나 전경린 소설에서 절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점 중 하나가 그녀의 문체일 것이다.  미흔과 인규의 게임은 사랑일까?  '사랑'  거참 유행가 가사처럼 알다가도 모르겠다.  사랑은 뭐지?  불륜.  불륜도 사랑일 수 있을까?  사랑.  그것이 아름답고 고귀한 속성을 가진 정신적인(혹은 육체적인) 활동인 것이라면 불륜은 사랑이 아닐게다.  불륜안에 진정한 사랑이 있다손 치더라도 나로서는 그것을 곱게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결코 아름답게 여길 수는 없을 것 같다.  불륜이라는 것은 소위 말해 결혼이라는 제도로 확증된 두 사람이 제도 속 계약권자가 아닌 다른 자를 사랑하는 것인데 그렇다면 배우자의 믿음과 신의를 져버린 그것을 어찌 미화할 수 있겠으며 아름답다 두둔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이야기는 아름답지 못했다.  (아름답지 못하다고 해서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내 생에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  표제가 주는 느낌은 소중하고 절대 잊지못할 기억들로 가득한 이야기들이 담겼을 것만 같다.  예를 들어, 잊지 못할 생일선물이라든가, 기분좋게 특별한 경험이라든가.  그런데 이야기의 시작부터 끝까지 우울했다.  남편(호경)의 내연녀와의 대면에서부터 인규(외간 남자)와의 사랑 그리고 파멸.  이 책의 제목을 찬찬히 들여다 보면 내 생에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이다.  '하루뿐인' 도 아니고 '하루뿐일' 이다.  이것은 다시없을 것이라는 확신에 찬 표현이다.  게다가 '꼭' 이라는 단어도 힘주어 써두었다.  내(미흔) 생에 꼭 하루 뿐일 특별한 날은 인규와의 만남이었다.  인규와의 사랑이었다.  호경(남편)에게 배신감을 떨칠 수 없었던 상처받은 미흔이 인규를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다.  인규는 그녀의 영혼을 위로해주고 오로지 그를 통해서만 정신적인 위안을 얻는다.  인규의 말대로라면 상처를 주고 받지 않아도 되는 '게임'이다.  어느 한 쪽이 사랑한다고 말해버리면 지게 되는 게임.  승자는 없고 패자만이 존재한다는 게임.  그런 게임을 제안하는 인규는 어떤 상처가 있었을런지.  이 책에 나오는 자들은 누구나 자기만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  빈 집터로 남았지만 그 곳에 살았던 부희, 휴게소 여자 은연, 미쳐버렸다는 인실 할머니, 미흔의 엄마.  그리고 미흔, 인규, 호경.  모두 상처받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상처와 대면할 용기가 없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자신 내부에서가 아닌 타인이나 바깥의 것으로 그것들을 치유하려 하고 있다.  살던 곳을 떠나 이사를 한다(미흔&호경, 휴게소 여자 은연, 부희네 집 사람들)  그러나 간절히 상처가 낫기를 바라며 번민하는 고독한 사람들의 모습이다.

  전경린의 화두는 '성'이다.  <엄마의 집> <열정의 습관> 그리고 이 책 <내 생에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 역시.  전경린은 이 책에서 상처받은 자들이 서로를 치유하는 과정을 '성'을 빌어 풀었다.  두 사람의 정사.  서로의 몸에 자신을 기록하기 위한 정사.  그것은 인규와 미흔만의 대화 방식이었다.  그들은 우리가 흔히 하는 데이트 같은 것보다 서로의 몸에 탐닉하는 행위로 대화를 대신했다.  잘 모르겠다.  섹스라는 것이 남녀에게 혹은 부부에게 얼마나 큰 문제의 것이며 어느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는 것일지.  오로지 '미친듯이' 몸을 섞는 짓만으로 사랑을 할 수도 있는지.  아니 그것을 사랑이라 불러도 좋을지를 말이다.  이 책의 성애는 은밀하면서 노골적이다.  그런 행위 가운데 숨겨둔 뜻이 있으리라 믿기에 저질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 책에서 미흔과 그녀의 친구들은 이렇게 말한다.  '대체 예술이 되는 섹스와 외설이 되는 섹스의 차이가 뭐라고 생각하니?....(중략).... 가슴이 빈약하고 머리가 짧고 화장도 하지 않고 단순한 속옷을 입은 여자가 하면 예술이고 가슴이 크고 머리가 길고 화장도 하고 튀는 속옷을 입은 여자가 하면 외설이야.  거의 그래(p.218)' 에서 처럼 미흔과 인규가 튀지 않는 평범한 자들이기에 그들의 짓을 예술로 읽어야 할지.  

  불륜.  그러나 그들은 그런 관계 속에서 상처를 떨친다.  절대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을 것만 같던 인규가 '사랑한다' 말하고 다시는 삶을 삶같이 살지 못할 것 같던 여자 미흔에게도 열정이 생기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나를 쏟을 수 있는 그 무엇.  헤어나오지 못하게 나를 빠뜨릴 수 밖에 없게 하는 그 무엇이 없는 일상은 무미건조하다.  그것이 아픔을 간직한 채 살아야 하는 자들에게라면 더더욱.  전경린의 이야기는 모두 하나의 이야기다.  한 권의 소설은 또 다른 한 권의 소설에 속편처럼 존재한다.  <엄마의 집>도 <열정의 습관>도 <내 생에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도.  서로가 서로의 속편이다.  어쩌면 전경린의 모든 소설이 그러하지 않을까 싶다.  그녀의 다른 책도 급히 읽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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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부재중
안토니오 무뇨쓰 몰리나 지음, 박지영 옮김 / 레드박스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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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선택한 이유가 있다.  어느 정도의 나의 공감과 호기심을 부르는 책 소개글 때문이었다.  불러오자면, '왜 더 많이 사랑하는 쪽이 언제나 상처받는지, 상대방이 나를 더 사랑한다고 느끼는 순간, 비로소 사랑의 강자로 군림하게 된다'는 것이다.  띠지에서 한 마디로 일축하고 있는 것처럼 "사랑은 권력관계다"  과연 그럴까? 

  많이 사랑한다, 덜 사랑한다.  이는 사랑을 양적인 측면에서 보고 말하는 것일 게다.  그런데 사랑이라는 것을 어떻게 '더 많이, 그보다 덜' 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그것을 측정한다는 게 가능할 것인가?  그렇다면 그것은 어떤 비교를 통해 또 무슨 준거로 그리 규정할 수 있을까?  단지 느낌에 의해?  사랑의 깊이와 양을 측정하기는 쉽지 않다.  아니 그것을 설명하기가 힘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사랑은 권력관계다'는 말에 동의한다.  반드시 그러하다고 단정지을 수 있는 성격의 것은 아니겠지만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짝사랑의 예를 들어보자.  짝사랑의 경우로 보자면 구애하는 사람의 사랑이 받아들여지기까지는 모든 것은 사랑을 받는 자의 태도와 행동 여하에 따라 달라진다.  쌍방이 소통하는 사랑이 되느냐, 일방적으로 홀로 사랑하고 마느냐 하는 것이 말이다.  다시 말해, 사랑의 선택권은 사랑을 받는 자의 것이 된다.  그렇기에 사랑을 하는 자는 그 사랑의 대상에게 알게 모르게 예속되게 된다.  끊임없이 그 대상의 호감을 살만한 일을 해야하고 상대의 마음이 완전히 나의 것이 될 때까지 고통도 감내해야 한다.  그렇기에 사랑을 받는 자보다 더 많이 힘들고 때로는 회의가 들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자연히 권력관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관계에서 더 많은 선택권을 쥐고 있는 자가 된다는 말이다.  나의 예가 적절한지는 모르겠으나 사랑을 하는 자와 사랑을 받는 자, 더 많이 사랑하는 자와 그 보다 덜 사랑하는 자 사이에는 쌍방 모두에게 서로를 향한 사랑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일 것이다. 

  이 책에서는 서로 교감하고 공감할 수 있는 것이 전혀 없는 한 부부의 이야기다.  블랑카를 끔찍이(그러나 실지 이런 사랑, 조금은 끔찍하다 ㅋ) 사랑하는 마리오.  마리오는 블랑카 주변의 남자들로 인해 번뇌와 고민과 질투 그리고 소외감에 늘 마음이 괴롭다.  그러던 그녀가 어느 날 떠나고 마리오에게 블랑카와 똑같은 그러나 블랑카가 아닌 여자가 나타나게 된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 책 역자가 말한 것처럼 책에서는 블랑카 같은 그녀가 블랑카와 닮은 제 삼자인지, 블랑카를 바라보는 마리오가 달라졌기에 달리 느껴지는 것인지 설명하고 있지 않다.  내 생각은 반드시 후자이리라 생각한다.  사랑의 대상이 변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사랑이 변했기에 그 사랑이 달라보이는 것이 아닐지. 

  블랑카를 보는 시선이 싸늘해진 마리오.  이제 예전의 블랑카를 찾을 수 없다는 마리오.  마리오의 아내 블랑카는 그의 곁에 있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녀는 그에게서 부재중이다.  (나는 앞서 말한 블랑카의 실체가 후자쪽이라고 굳게 믿고 하는 말이다)  이것은 인간의 시각이, 마음이 어떤 대상을 어떻게 바라보느냐 하는 것에 따라 무한히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이 아닐까?  사랑하고 사랑해서 꼭 나만의 것이기를 바라는 연인이 될 수도 있고 연인이던 그녀와 그저 닮았을 뿐인 타인으로 느끼게 할 수도 있었다.  '마음 먹기 달렸다'는 말이 딱 맞는 말이다.   

  그리고 배우자를 선택함에 있어, 단지 그(혹은 그녀)를 향한 탐욕만으로 선택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가 하는 것을 생각을 해보았다.  얼마나 깊이 서로 소통하고 교감할 수 있는지, 얼마나 많은 것을 함께 하며 기뻐할 수 있을지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  이 얇은 책은 나로 하여금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인간과 인간의 단절이 얼마나 고독한 것인지, 사랑의 대상에게 사랑받지 못한다는 것, 그 대상의 마음을 온전히 차지하지 못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좌절인지 말이다.  그런것들을 배우자에게 느껴야 했던 안타까운 마리오.  만인의 연인 블랑카 사이에는 공통분모가 전혀 없었기에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도 부족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정말 안타까운 현시대 우리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부부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함께 살지만 함께 살지 않는.  서로를 마음에서 쫓아낸 채 '부재중'으로 여기며 사는 부부들의 모습 말이다.  이렇게 보면 사랑이라는 것은 특별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단지 끊임없이 공통 관심사를 놓고 소통하고 함께 하며 지속적으로 그 끈을 이어가는 것이 아닐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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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과학자 50
夢 프로젝트 지음, 박시진 옮김 / 삼양미디어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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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시리즈 중에서 두 번째 읽은 책이다.  이 책은 앞서 읽었던 <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클래식 50>의 좋은 기억때문에 읽은 집어 든 책이다.  50곡의 클래식에 대한 소개와 작곡가들의 미스터리.  그리고 들어보아야 할 레이블가지 소개하고 있어 참으로 인상깊었던 책이다.  이 '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시리즈 중 한 권인 이 책 역시 그와 같이 훌륭하리라는 기대감으로. 

  50인의 과학자 이야기다.  그들의 학설과 이론에 대해 이렇게 쉽게 풀어 쓴 책이 또 있을까?  그야말로 상식을 위한 책 맞다.  학자에 대해 깊이 알기 위한 책으로는 부족하겠지만 역시 학자의 이름과 이론을 연결짓기에는 이만한 책이 없는 것 같다.  오래전에 배웠던 이론들.  그리고 이 곳에 소개된 학자들 또한 익히 들어본 자들이었다.  그들의 이론 역시 밑줄 그어가며 달달 외웠던 학창시절이 떠올랐다.  설명 또한 쉽게 되어 있다.  '상식' 으로나 혹은 과학자의 이론을 정리해 알아두어야 할 학생에게 적격이 아닐까 싶다.

  이 책에서 소개된 50인의 과학자들.  물론 천재로 밖에 생각할 수 없을만한 이들도 있었다.  그렇다 한들, 그들의 명석한 두뇌가 그 모든 것들을 일구어 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들의 집요함과 노력이 뒤따랐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우연을 계기로 연구를 시작하게 된 것들 역시 그냥 지나치지 않고 그것에 파고들었기에 가능한 것들이었다.  유레카라고 외치며 목욕탕에서 알몸으로 나왔다는 일화가 있는 아르키메데스, 거짓말을 한 죄로 법정에 서기도 한 갈릴레오 갈릴레이.  이름을 다 열거할 수 없을만치 많은 50인의 과학자들.  그들의 이야기를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어 읽는 내내 즐거웠던 책이다.  솔직히, 나는 과학, 수학....  이런 과목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한 번도 눈을 떼지 않고 읽은 책이기도 하다.

  또 이 책은 시대별로 과학자들을 정리해두었다.  어떤 과학자가 동시대 인물이었는지도 알 수 있었다.  또 눈에 띄었던 것은 우리나라 과학자들이었다.  이 책은 꿈프로젝트 라는 집단에서 쓴 책이고 박시진이라는 자가 옮긴 책이다.  그러면 번역서라는 말인데 그들이 우리나라의 과학자까지 손꼽았다는 사실은 뿌듯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들의 이름을 나열해 보자면 이순지, 홍대용, 우장춘, 이태규, 리승기다.  개인적으로는 장영실이 빠졌다는 사실이 조금 의아하기는 하다.

  삼양미디어의 '상식' 시리즈는 참 흥미롭다.  그 분야의 핵심만 꼽아놓은 책이라 역시 상식시리즈 라는 목적을 충실히 달성하고 있는 책인 것 같다.  다른 상식 시리즈도 읽어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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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버드 - 그 사람의 1%가 숨겨진 99%의 진심을 폭로한다면
피에르 아술린 지음, 이효숙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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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그 사람의 1%가 숨겨진 99%의 진심을 폭로한다면....'  나의 호기심을 부른 카피다.  사람들은 공인의 사생활과 실체에 관심을 갖는다.  예쁜 외모처럼 성격도 착한 A양인지.  꽃미남 B군이 주말에 무엇을 했는지.  이 책 <로즈버드> 역시 그것들이 궁금한 독자에 의해 펼쳐졌다.  물론 이 책에서 다룬 인물들은 TV 스타들은 아니다.  전 세계를 무대로 세간의 관심을 끌었던 자들이다.  러디어드 키플링,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레이디 다이애나, 파블로 피카소, 피에르 보나르, 파울 첼란, 장 물랭이 그들이다.  물론 이 들 중에서는 이 책을 통해 처음 접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의 로즈버드를 다룬 책이다.

  개인적으로는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과 피에르 보나르의 전기가 인상적이었다.  자신만의 접이식 의자를 가지고 다니며 미술관에서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그를 묘사한 장면이 참 인상적이었다.  너무나 진지했다.  고야의 '1808년 5월 3일'을 보며 눈물 흘리고 몇 시간이고 그 의자에 앉아 그림을 바라보았다니.  나는 무언가에 미친듯이 빠져있는 사람이 좋다.  그런 사람들은 묘한 호기심을 불러 일으킨다.  제 아무리 휴대용 의자라 하지만 항시 지니고 다니기에는 힘들었을텐데 일평생을 그것과 함께 했다니 참으로 대단한 열정의 사람이다.  좌)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그리고 다른 한 사람.  피에르 보나르.  늘 자신의 작품을 미완성으로 생각했던 화가.  완벽
하길 바랬기에 이미 마쳐버린 자신의 작품에 몰래 덧칠을 해왔던 화가.  보나르만큼 완성에 대해 집착했던 예술가가 또 있었을까?  그는 미술관에서 자신의 그림을 수정하다 여러 차례 적발되곤 했단다.  몰래 주머니에서 물감과 붓, 팔레트를 꺼내 아무도 모르게 그림을 고쳤다니.  게다가 그는 그의 작품에 '완성' 을 의미하는 서명 또한 꺼렸단다.  완벽주의.  스스로에게는 참으로 피곤하겠지만 그로 인해 비로소 제대로 된 작품이, 멋진 성과가 나오는 것은 아닐지. 우) 피에르 보나르

  이 책은 이 두 명의 호기심가는 인물을 알게 해준 책이다.  그것만으로도 내게는 큰 성과다.  무언가 더 알고싶은 그들이 생겼기에 말이다.  그러나 이 책은 상당히 읽기 힘들었던 책이다.  나는 이 이유가 저자 '피에르 아술린'이 독특한 기술법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간 접해온 전기와는 분명 달랐다.  전기를 위한 문장으로는 지나치게 감성적이고 문학적이었기 때문이다.  은유와 비유, 모호한 해설들.  솔직히, 그 때문에 적잖이 불편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이 또 이 독특한 전기만의 매력이라면 매력이랄까?

  이 책을 읽기전에는 '대중에게 각인된 그들의 이미지와는 다른 모습들' 을 볼 수 있으려니 했다.  그러나 특별히 그러한 점은 없었다.  7인의 사소한 일화를 보여준 전기집.  이는 그들의 삶의 모습과 열정을 다시금 들추어 보인 책이었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  '역시 뭔가 남다른 구석이 있는 자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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