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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부재중
안토니오 무뇨쓰 몰리나 지음, 박지영 옮김 / 레드박스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선택한 이유가 있다. 어느 정도의 나의 공감과 호기심을 부르는 책 소개글 때문이었다. 불러오자면, '왜 더 많이 사랑하는 쪽이 언제나 상처받는지, 상대방이 나를 더 사랑한다고 느끼는 순간, 비로소 사랑의 강자로 군림하게 된다'는 것이다. 띠지에서 한 마디로 일축하고 있는 것처럼 "사랑은 권력관계다" 과연 그럴까?
많이 사랑한다, 덜 사랑한다. 이는 사랑을 양적인 측면에서 보고 말하는 것일 게다. 그런데 사랑이라는 것을 어떻게 '더 많이, 그보다 덜' 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그것을 측정한다는 게 가능할 것인가? 그렇다면 그것은 어떤 비교를 통해 또 무슨 준거로 그리 규정할 수 있을까? 단지 느낌에 의해? 사랑의 깊이와 양을 측정하기는 쉽지 않다. 아니 그것을 설명하기가 힘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사랑은 권력관계다'는 말에 동의한다. 반드시 그러하다고 단정지을 수 있는 성격의 것은 아니겠지만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짝사랑의 예를 들어보자. 짝사랑의 경우로 보자면 구애하는 사람의 사랑이 받아들여지기까지는 모든 것은 사랑을 받는 자의 태도와 행동 여하에 따라 달라진다. 쌍방이 소통하는 사랑이 되느냐, 일방적으로 홀로 사랑하고 마느냐 하는 것이 말이다. 다시 말해, 사랑의 선택권은 사랑을 받는 자의 것이 된다. 그렇기에 사랑을 하는 자는 그 사랑의 대상에게 알게 모르게 예속되게 된다. 끊임없이 그 대상의 호감을 살만한 일을 해야하고 상대의 마음이 완전히 나의 것이 될 때까지 고통도 감내해야 한다. 그렇기에 사랑을 받는 자보다 더 많이 힘들고 때로는 회의가 들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자연히 권력관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관계에서 더 많은 선택권을 쥐고 있는 자가 된다는 말이다. 나의 예가 적절한지는 모르겠으나 사랑을 하는 자와 사랑을 받는 자, 더 많이 사랑하는 자와 그 보다 덜 사랑하는 자 사이에는 쌍방 모두에게 서로를 향한 사랑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일 것이다.
이 책에서는 서로 교감하고 공감할 수 있는 것이 전혀 없는 한 부부의 이야기다. 블랑카를 끔찍이(그러나 실지 이런 사랑, 조금은 끔찍하다 ㅋ) 사랑하는 마리오. 마리오는 블랑카 주변의 남자들로 인해 번뇌와 고민과 질투 그리고 소외감에 늘 마음이 괴롭다. 그러던 그녀가 어느 날 떠나고 마리오에게 블랑카와 똑같은 그러나 블랑카가 아닌 여자가 나타나게 된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 책 역자가 말한 것처럼 책에서는 블랑카 같은 그녀가 블랑카와 닮은 제 삼자인지, 블랑카를 바라보는 마리오가 달라졌기에 달리 느껴지는 것인지 설명하고 있지 않다. 내 생각은 반드시 후자이리라 생각한다. 사랑의 대상이 변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사랑이 변했기에 그 사랑이 달라보이는 것이 아닐지.
블랑카를 보는 시선이 싸늘해진 마리오. 이제 예전의 블랑카를 찾을 수 없다는 마리오. 마리오의 아내 블랑카는 그의 곁에 있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녀는 그에게서 부재중이다. (나는 앞서 말한 블랑카의 실체가 후자쪽이라고 굳게 믿고 하는 말이다) 이것은 인간의 시각이, 마음이 어떤 대상을 어떻게 바라보느냐 하는 것에 따라 무한히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이 아닐까? 사랑하고 사랑해서 꼭 나만의 것이기를 바라는 연인이 될 수도 있고 연인이던 그녀와 그저 닮았을 뿐인 타인으로 느끼게 할 수도 있었다. '마음 먹기 달렸다'는 말이 딱 맞는 말이다.
그리고 배우자를 선택함에 있어, 단지 그(혹은 그녀)를 향한 탐욕만으로 선택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가 하는 것을 생각을 해보았다. 얼마나 깊이 서로 소통하고 교감할 수 있는지, 얼마나 많은 것을 함께 하며 기뻐할 수 있을지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 이 얇은 책은 나로 하여금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인간과 인간의 단절이 얼마나 고독한 것인지, 사랑의 대상에게 사랑받지 못한다는 것, 그 대상의 마음을 온전히 차지하지 못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좌절인지 말이다. 그런것들을 배우자에게 느껴야 했던 안타까운 마리오. 만인의 연인 블랑카 사이에는 공통분모가 전혀 없었기에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도 부족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정말 안타까운 현시대 우리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부부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함께 살지만 함께 살지 않는. 서로를 마음에서 쫓아낸 채 '부재중'으로 여기며 사는 부부들의 모습 말이다. 이렇게 보면 사랑이라는 것은 특별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단지 끊임없이 공통 관심사를 놓고 소통하고 함께 하며 지속적으로 그 끈을 이어가는 것이 아닐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