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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 ㅣ 을유세계문학전집 16
프란츠 카프카 지음, 이재황 옮김 / 을유문화사 / 2008년 12월
평점 :
내가 읽어본 프란츠 카프카의 작품으로는 <변신> 뒤 <소송>이 두 번째다. 그의 많은 작품을 읽지는 못했지만 어렴풋이 '카프카'의 냄새를 알 것도 같다. 이 소설은 <변신>만큼이나 흡인력있었던 소설이다. 이야기의 전개가 빠르지 않고 왜 '소송'을 당했는지 전혀 알 길이 없는 가운데서도 이 책은 묘하게도 집요하게 나의 눈길을 놓지 않았다.
이 소설은 미완성이란다. 그의 친구 브로트가 카프카의 명을 어기고 출간하게 됨으로 세상에 알려졌단다. 이 소설이 미완성이라지만 내게는 그것은 전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제자리 걸음을 걷는 듯한 이야기 전개에 독자로서는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상황에 놓여있는 주인공에 관한 이야기지만 이 소설은 아주 집중력있게 읽혔다. 다시 말해, 스토리나 기법에 마음을 빼앗긴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오히려 이 소설의 그로테스크한 면이 나에게는 더욱 신비롭게 느껴졌다.
이상하게 많은 여자에게 쉽사리 흔들리는 듯한 K 그리고 마치 그를 오래 알아온 것처럼 K를 대하는 여자들(뷔으스너터, 세탁부, 레니, 엘자), 그림보다 법원 일에 밝은 화가, 피고를 위해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는 듯한 변호사, 유부녀와 바람난 법대생, 음란도서를 즐기는 예심판사, 성당 신부, 하숙집 여주인 등. 이 처럼 많은 등장인물들 역시 모호하다. 이 뿐 아니라 이야기가 펼쳐지는 공간들 역시 의아한 곳이 많았다. 예를 들면, K의 하숙집 방에서 심문을 하고 가정집과 법정이 연결되어 있고 다락방이 법원 사무처이다. 이것 역시 의문이자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하지만 카프카는 이것들이 왜 그러할 것이라는 유추를 거부하고 단순히 그냥 그 사실을 독자로 하여금 받아 들이게 한다.
K가 소송에 휩싸였고 독자는 그의 소송 내용이라든지 누구로부터인지는 전혀 알 수 없다. 그런데 K가 서서히 소송에 집착하게 되기 시작하면서 그의 일상이 조금씩 흔들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혹자는 K는 소송을 게의치 않고 법원 출두 명령도 무시하지 않았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이 역시 K가 소송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신경이 날카로워지기 시작하고 그 긴장의 상태들을 여자들을 통해 풀어버리곤 하는 것 같았다.(여자들과의 일이라고는 하지만 그녀들과의 '정사'는 전혀 없었다. 이 역시 의문을 자아낸다. 그렇다면 K는 왜 그토록 그녀들에게 집착하는지) 그가 신경질을 부리며 분노하지만 않지만 그의 모든 행동은 소송으로 인해 아주 불안한 상태임을 여러 곳에서 보여준다. 이는 K 뿐만 아니라 소송을 당한 다른 자에게서도 볼 수 있는 모습니다. 또 다른 소송중인 상인 블로크를 보면 이 불안의 상태가 더욱 극대화된 것을 알 수가 있다. 블로크는 변호사를 여럿두고 있다. K가 해당 변호사로부터 변호를 중지하기 위해 그 곳을 갔을 때 블로크는 거의 정신병자와 같은 정도의 행동을 한다. K 앞에서는 무력한 변호사를 힐책하고 나무라더니 변호사 앞에서는 거의 개처럼 엎드려 굽신거린다. 이는 권력에 대한 소시민들의 무조건 적인 복종을 상징하는 것은 아닐지.
뿐만 아니라 K 주변의 모든 이들이 법원과 연관관계를 갖고 있는 자들이다. 제조업자나 부지점장(확실친 않지만 그렇다고 본다. 법원 신부에게 K를 보낸 것으로 봐서) 그리고 법원 신부, 화가 등. 그리고 화가는 가장 이와 같은 인간관계 형성에 대해 아주 적절한 변을 길게 늘어 놓았다. 이런 인맥이 실제 소송사건에서 판정을 보류하거나 가상적 무죄로 이끌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실제로 프란츠 카프카는 법학을 전공했단다. 그렇기에 법원의 구조나 소송에 관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에 관한 부조리한 면이나 환멸을 느낄 법한 것들을 열거함으로 이 사회 권력에 대한 부조리, 법원에 대한 불신을 표명하고자 한 것은 아니었을까?
더욱 기이한 것은 K는 채석장에서 두 사나이로부터 칼에 찔려 죽음을 맞게 된다. 어떤 소송이 피고를 무참히 살해하는 것으로 이어진다는 것일까? 이를 보았을 때 K는 아주 큰 법적 세력으로부터 소송을 당한 것이 틀림없다. 그렇기에 이렇게 피고를 판결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법의 권한 밖(사형집행이 아닌)에서 죽게 한 것이 아닐지 싶다. 이처럼 이 소설은 모든 것이 불명확하다. 알베르 카뮈는 "모든 것을 제시하지만 아무것도 확증하지 않는 것이 <소송>의 운명이자 위대함이다" 고 말했다. 전적으로 동감한다. 카프카가 왜 그가 소송을 당했고 자신을 변호하기 위해 주력하는 이야기로 풀어갔다면 그것은 법정소설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또 이 소설 역시 독특한 방식으로 쓰여졌다. 카프카는 소설의 시작과 결말을 미리 써 둔채 가운데 이야기들로 살을 붙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것을 쓰다 미완성으로 그냥 내버려 두었는데(대개 작가들이 죽음으로 작품을 마무리하지 못하는 것과는 다름) 그렇기에 인물에 대해 묘사(수염색깔등) 가 바뀌기도 한다. 어찌보면 완전무결한 작품이 아니다. 그러나 세계 많은 독자들에게 읽혀지고 오늘날까지 그 명을 이어오는 것을 보면 바로 카프카만의 매력이 녹아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앞으로 카프카의 작품들을 더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