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류의 아이 러브 베이스볼 - 초보가 베테랑이 되는 상큼한 야구 다이어리
김석류 지음 / 시공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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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야구는 내 취미 중 하나다.  물론 관람이다.  내가 야구에 빠진 것은 2006년경인 것 같다.  우연히 찾아갔던 야구장.  경기를 볼 줄 몰라도 재미있었다.  모든 관중들이 해설위원이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응원하는 팀에게 유리한 경기가 펼쳐지면 열광을 한다.  모두다 뛸 때 나도 뛰고 모두가 심통해 할 때는 나도 그냥 가만히 앉아 쉬면 되었다.  더욱 웃긴건....  그 날 나는 처음 야구장에 갔고 열심히 응원한 탓에 응원단장이 주는 피자 한 판을 받아서 앞뒤좌우 관객들과 나누어 먹었다.  나의 야구 사랑은 이것이 시작이었다. 

  야구장을 다녀오고 한 껏 응원을 하고 온 날이면 승패와 상관없이 내게서 박하향이 나는 것 같았다.  시원하고 알싸하고 일에 대한 스트레스건 사람에 대한 고민이건, 한 줌도 남아있는 것이 없었다.  그렇게 점점 야구장을 가는 일이 잦아졌고 천천히 야구를 알게 되었다.  어쩌면 김석류씨와(그녀가 2007년에 스포츠 아나운서로 모 방송국에 입사했다니까) 같이 야구에 입문한 게 아닐까 싶다.   

  물론 나의 연고는 대구이고 삼성 라이온즈의 경기를 보는 일이 많았기에 나는 삼성팬이다.  내 응원유니폼의 등번호는 45.  내가 좋아하는 선수는 권오준 선수다.  이 역시 불 난 집에 기름 붓는 격이었고 나는 더 줄기차게 야구장을 찾았다.  몇 해 전부터는 주말 원정경기도 다닐 정도로 누가봐도 야구광팬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이런 나도 처음부터 야구를 좋아했던 것은 아니었다.  내가 우연히 친구와 야구장을 찾을 당시, 나의 직장동료들은 야구를 정말 좋아했다.  그러나 나는 극구 같이 야구장에 가자는 권유를 에둘러 핑계됐다.  "선생님은 몰라. 홈런 한 방에 시원한 맥주 한 잔과 그 닭 맛을...."  나는 술을 거의 입에 대지 않는다.  '술맛도 관심없고 야구도 관심없고 빨리 퇴근해서 책이나 읽는게 내겐 최고' 였다.   

  그런데 김석류 아나운서가 말했더니 야구의 매력을 느끼기 시작했다.  김석류 아나운서의 경우는 일로부터였고 나에게는 응원으로부터 시작됐다.  흥겨운 관중들이 좋았다.  신나는 응원도 재미있었고 마치 콘서트장을 방불케하는 스탠딩(공격 할 때, 경기 잘 풀릴 때는 자연스럽게 스탠딩 됨.  그래서 항상 블럭의 맨 뒷 줄에 앉는다)에 대구구장에서 나누어 주던 그 파란 풍선과 불꽃놀이는 또다른 묘미였다.  지금은 그때의 직장동료들보다 내가 야구를 더욱 좋아하게 되었다. 

  김석류 선수의 <아이 러브 베이스볼>은 참 많은 공감이 갔다.  야구의 매력은 그야말로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보는게 제일이다.  나처럼 경기 룰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도 재미를 느낄 수가 있다.  야구의 매력은 경기 그 밖에도 많은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고 분식집 개 삼 년이면 라면을 끓인단다.  그렇게 직접 찾아가 봤던 야구는 나를 야구와 아주 친숙하게 해 줌은 물론 경기 룰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그런 내게 <아이러브 베이스볼>은 경기를 좀 더 즐길 줄 아는 눈을 선물해 준 것 같다.  야구를 좋아만 했지, 야구공이 왜 그런 모양이지 108개의 솔기(스티치)의 의미도 알지 못했고 그렇게나 다양한 볼 쥐는 법이 있는지도 처음 알았다.  명색이 투수를 좋아한다는 팬이 말이다.  

  또 <아이 러브 베이스볼>는 선수들에 대해서도 아주 많은 정보를 담고 있었다.  어떤 선수는 공을 어떻게 던지고 어떤 선수는 어떤 성격인지도 짐작할 수 있게 했다.  그야말로 온통 야구 얘기뿐이라 읽는 내내 즐거웠다.  전혀 몰랐던 것들에 대한 '아하' 의 순간들을 마주하며 좀 부끄럽기도 했다.  '이러면서 그동안 내가 야구팬이라 할 수 있었나?' 싶었다.  양준혁 선수의 말이 딱 맞다.  (어쩜 양신 책을 요약하는 능력까지 있다냐? 호호.)  이 책은 '야구 초보자에게는 훌륭한 참고서가, 야구 마니아에게는 따뜻한 에세이가 될 것이다' 한 마디 덧붙이자면 야구 마니아에게도 수준에 따라서는 훌륭한 참고서가 되기도 한다는 사실.  월드컵이 개막했다.  하지만 야구장의 관중들은 줄지 않는다.  두고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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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 을유세계문학전집 16
프란츠 카프카 지음, 이재황 옮김 / 을유문화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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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읽어본 프란츠 카프카의 작품으로는 <변신> 뒤 <소송>이 두 번째다.  그의 많은 작품을 읽지는 못했지만 어렴풋이 '카프카'의 냄새를 알 것도 같다.  이 소설은 <변신>만큼이나 흡인력있었던 소설이다.  이야기의 전개가 빠르지 않고 왜 '소송'을 당했는지 전혀 알 길이 없는 가운데서도 이 책은 묘하게도 집요하게 나의 눈길을 놓지 않았다.  

  이 소설은 미완성이란다.  그의 친구 브로트가 카프카의 명을 어기고 출간하게 됨으로 세상에 알려졌단다.  이 소설이 미완성이라지만 내게는 그것은 전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제자리 걸음을 걷는 듯한 이야기 전개에 독자로서는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상황에 놓여있는 주인공에 관한 이야기지만 이 소설은 아주 집중력있게 읽혔다.  다시 말해, 스토리나 기법에 마음을 빼앗긴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오히려 이 소설의 그로테스크한 면이 나에게는 더욱 신비롭게 느껴졌다.

  이상하게 많은 여자에게 쉽사리 흔들리는 듯한 K 그리고 마치 그를 오래 알아온 것처럼 K를 대하는 여자들(뷔으스너터, 세탁부, 레니, 엘자),  그림보다 법원 일에 밝은 화가,  피고를 위해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는 듯한 변호사,  유부녀와 바람난 법대생, 음란도서를 즐기는 예심판사, 성당 신부,  하숙집 여주인 등.  이 처럼 많은 등장인물들 역시 모호하다.  이 뿐 아니라 이야기가 펼쳐지는 공간들 역시 의아한 곳이 많았다.  예를 들면, K의 하숙집 방에서 심문을 하고 가정집과 법정이 연결되어 있고 다락방이 법원 사무처이다.  이것 역시 의문이자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하지만 카프카는 이것들이 왜 그러할 것이라는 유추를 거부하고 단순히 그냥 그 사실을 독자로 하여금 받아 들이게 한다. 

  K가 소송에 휩싸였고 독자는 그의 소송 내용이라든지 누구로부터인지는 전혀 알 수 없다.  그런데 K가 서서히 소송에 집착하게 되기 시작하면서 그의 일상이 조금씩 흔들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혹자는 K는 소송을 게의치 않고 법원 출두 명령도 무시하지 않았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이 역시 K가 소송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신경이 날카로워지기 시작하고 그 긴장의 상태들을 여자들을 통해 풀어버리곤 하는 것 같았다.(여자들과의 일이라고는 하지만 그녀들과의 '정사'는 전혀 없었다.  이 역시 의문을 자아낸다.  그렇다면 K는 왜 그토록 그녀들에게 집착하는지)  그가 신경질을 부리며 분노하지만 않지만 그의 모든 행동은 소송으로 인해 아주 불안한 상태임을 여러 곳에서 보여준다.  이는 K 뿐만 아니라 소송을 당한 다른 자에게서도 볼 수 있는 모습니다.  또 다른 소송중인 상인 블로크를 보면 이 불안의 상태가 더욱 극대화된 것을 알 수가 있다.  블로크는 변호사를 여럿두고 있다.  K가 해당 변호사로부터 변호를 중지하기 위해 그 곳을 갔을 때 블로크는 거의 정신병자와 같은 정도의 행동을 한다.  K 앞에서는 무력한 변호사를 힐책하고 나무라더니 변호사 앞에서는 거의 개처럼 엎드려 굽신거린다.  이는 권력에 대한 소시민들의 무조건 적인 복종을 상징하는 것은 아닐지. 

  뿐만 아니라 K 주변의 모든 이들이 법원과 연관관계를 갖고 있는 자들이다.  제조업자나 부지점장(확실친 않지만 그렇다고 본다.  법원 신부에게 K를 보낸 것으로 봐서) 그리고 법원 신부, 화가 등.  그리고 화가는 가장 이와 같은 인간관계 형성에 대해 아주 적절한 변을 길게 늘어 놓았다.  이런 인맥이 실제 소송사건에서 판정을 보류하거나 가상적 무죄로 이끌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실제로 프란츠 카프카는 법학을 전공했단다.  그렇기에 법원의 구조나 소송에 관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에 관한 부조리한 면이나 환멸을 느낄 법한 것들을 열거함으로 이 사회 권력에 대한 부조리, 법원에 대한 불신을 표명하고자 한 것은 아니었을까?   

  더욱 기이한 것은 K는 채석장에서 두 사나이로부터 칼에 찔려 죽음을 맞게 된다.  어떤 소송이 피고를 무참히 살해하는 것으로 이어진다는 것일까?  이를 보았을 때 K는 아주 큰 법적 세력으로부터 소송을 당한 것이 틀림없다.  그렇기에 이렇게 피고를 판결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법의 권한 밖(사형집행이 아닌)에서 죽게 한 것이 아닐지 싶다.  이처럼 이 소설은 모든 것이 불명확하다.  알베르 카뮈는 "모든 것을 제시하지만 아무것도 확증하지 않는 것이 <소송>의 운명이자 위대함이다" 고 말했다.  전적으로 동감한다.  카프카가 왜 그가 소송을 당했고 자신을 변호하기 위해 주력하는 이야기로 풀어갔다면 그것은 법정소설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또 이 소설 역시 독특한 방식으로 쓰여졌다.  카프카는 소설의 시작과 결말을 미리 써 둔채 가운데 이야기들로 살을 붙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것을 쓰다 미완성으로 그냥 내버려 두었는데(대개 작가들이 죽음으로 작품을 마무리하지 못하는 것과는 다름) 그렇기에 인물에 대해 묘사(수염색깔등) 가 바뀌기도 한다.  어찌보면 완전무결한 작품이 아니다.  그러나 세계 많은 독자들에게 읽혀지고 오늘날까지 그 명을 이어오는 것을 보면 바로 카프카만의 매력이 녹아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앞으로 카프카의 작품들을 더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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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가 좋은 아이 - KBS 특집 다큐멘터리 : 읽기혁명, 한 살 아기에게 책을 읽혀라
KBS 읽기혁명 제작팀.신성욱 지음 / 마더북스(마더커뮤니케이션)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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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원 동기 선생님이 권해준 책이다.  <뇌가 좋은 아이> 는 읽기 교육, 독서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이를 통해 뇌가 발달된다는 이야기다.  실로 많은 육아, 교육 서적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는데 그 책들의 목소리가 비슷하기도 하지만 상반되는 경우도 적지 않아 어떤 보고서를 더 신뢰해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대개 육아, 교육서적의 내용은 뻔하다.  자기계발서 같은 소리다.  차라리 논문 한 편 제대로 읽는 것이 도리어 낫다 싶을 정도로 독창성이 없다.  그렇지 않으면 상반된 주장을 하는 책들 역시 많다.  (나의 편견일 수도 있다)  이것들 틈에서 독자가 유용한 정보를 가려내기란 결코 쉽지 않다. 

  이 책은 읽기 교육이야 말로 아이의 뇌를 발달시키는 지름길이라고 말함과 동시에 부모와의 상호작용을 중요시하고 있다.  내용에 있어서 눈에 띄게 혁신적이거나 '오~ 놀라워' 할 만한 내용은 없었다.  이 책은 먼저 '독서영재' 라는 개념에 반박하고 있다.  그리고 조기교육을 지양하라고 말하며 대신 '읽기'를 제안한다.  그리고 선진국과 읽기지도가 잘되는 나라와 학교의 실례를 보고하고 있다. 

  모든 유아교육 서적에서 말하는 가장 중요한 핵심은 '부모의 무릎이다'  특히나 어머니와의 애착형성은 모든 것의 기초라고 할만큼 강조되고 있다.  이 책 역시 부모와의 상호작용과 긴밀한 애착이야말로 완전한 교육이라고 말한다.  이처럼 육아에 있어서 어머니의 역할을 절대적으로 강조한다.  그러나 사회적 분위기는 여성의 취업을 권장하고 도우려는 분위기다.  나는 정말 고민스럽다.  나를 위해서는 '일'도 무시할 수 없으며 아이를 위해서는 '휴직하지 않으면 안되겠구나' 싶다.  혹자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훌륭한 부모 역할을 할 수 있지 않나요?' 하겠지만 나는 자녀에게 극소한의 교육만을 원할시에만 가능하다고 말하고 싶다.  아이의 반응에 응해주고 눈을 맞춰주고 일상생활에서의 모든 것들에 반응해주고 제대로 상호작용 제대로 해주기 위해서는 엄마는 아이가 깨어있는 시간에 함께해야 한다.  그러나 대다수 맞벌이 부부들이 그러하듯이 출근 전 아이를 깨워 유아교육기관에 보내고 퇴근하며 데려와 저녁을 먹이고 재우기에 급급한 게 사실이다.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게 된 것 같은데 이 책에서 권유하는 읽기 교육과 무분별한 영상 시청으로부터 자녀를 보호하고 애착형성을 도모하려면 취업모에게는 역시나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한 말이다.  실제로 이 책에서는 취업모의 자녀가 발달에 더욱 불리하다는 연구결과를 담고 있다.  '출산을 하고 정말 일을 쉬어야 하는가?  그러나 나를 필요로 하는 일자리는 내가 아이를 다 키워놓고 복귀할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는다' 참 슬픈 현실이다.  앞으로 더 고민해보아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이 책은 2세 이전의 영아에게 TV를 시청하게 하는 행위는 뇌 발달의 독이 되므로 절대 금하라고 한다.  텔레비젼, 컴퓨터 이들이 편리하고 재미있기는 하나 유아들의 발달에는 악영향을 끼친다는 보고들이 많다.  한편 시대의 흐름에 발맞춘 멀티미디어 교육을 강조하기도 하다.  (역시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모르겠다.) 실제로 내가 근무한 유치원에는 '멀티미디어를 이용한 교수, 하면 안되요' 하며 교실마다 컴퓨터를 비치하지 않고 멀티비젼 역시 없는 기관에서 근무한 적도 있다.  또 다른 기관에 근무하며 교육청에서 주관하는 수업발표대회에 출전하였을 때는 '멀티미디어를 적절히 사용하는가?' 가 평가항목이었고 세련되게 기계를 조작하는 교사에게 높은 점수를 주었다.  양측다 핵심은 '과유불급'이다.  너무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렇게 상반된 견해와 환경 앞에 교사나 부모가 소신을 갖기는 참으로 힘들다.  그러나 이 같은 혼란은 어린 영아(이를테면 2세 이하)를 대상으로 하는 논지는 아니기에 나중에 내가 아이를 갖고 출산하게 된다면 2세 이전의 내 아이에게 TV를 시청하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또 이 책은 조기교육은 지탄하지만 영유아기에 뇌 발달 및 지능과 인성이 대부분 갖춰진다고 말한다.  후자를 맹신하기에 조기교육을 하는 것이 아닐까?  조기교육을 지탄하고자 한다면 좀 더 명백한 근거를 들어 조기교육과 발달을 도모하는 교육적인 행위를 분명하게 구분해주어야 할 것이다.  어떤 이에게는 발달을 도모하는 교육적인 행위가 될 수도 있고 어떤 이가 보기에는 이것이 조기교육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모호한 저술은 육아, 교육서적에서 너무나 쉽게 볼 수 있다.  이 책에서는 한 살 아기에게 책을 읽히라고 하면서 이는 조기교육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리고 사회적인 일반적인 통념을 보면 조기교육은 외부의 도움을 얻거나 학습지 혹은 교사를 두고 하는 것이며 부모가 집에서 자녀를 대상으로 하는 것은 어떤 방법인지를 막론하고 적극적인 상호작용이라는 식으로 오개념에 빠져있다.  이 책을 비난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부분은 많은 책들에서 다루고 있지만 좀 더 명확한 차이점과 근거를 제시하지 않고 하는 말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유아들에게 하루 30분에서 1시간 정도 독서의 시간을 주는 것이 좋다고 한다.  가급적이면 다정하게 안은 상태에서 부모가 책을 읽어주는 것이 가장 좋다고 한다.  그림 또한 아이들에게는 스토리를 이해하는 언어이기에 그림책은 반드시 부모가 이야기를 들려주고 유아들이 청각(이야기를 듣는 귀)과 시각(삽화를 보는 눈)이 함께 반응하도록 도우라 한다.  또 출산 후부터 무조건 말을 많이 걸어주라는 것이다.  태담을 중요시 하는 이유도 그러하다.  유아들은 소리에 먼저 반응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형성되는 부모 자식간의 애착과 소리에 대한 반응은 발달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리라 믿는다.   

  또 자녀가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도우라고 한다.  정말 중요한 것이 사회성 발달인데 사람을 많이 만나고 이것 저것 참여해보는 아이들일수록 성취의 기회와 빈도가 높은 것은 당연하다.  그렇기에 반드시 자녀에게 많은 것을 보여주고 체험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끝으로 이 책을 읽으며 여러 육아, 교육 서적에 혼재되어 있는 모호한 개념이나 상반되는 주장들에 고민스럽기는 했지만 최소한 내 아이의 뇌를 발달시킬 수 있는 방법들을 알았고 이것들을 실천하고 싶다.  요약하면 2세 이하의 영아에게 TV시청은 절대 안되며 책은 하루에 30분에서 1시간 정도 보도록 하고 엄마는 15분 정도 무릎 위에 자녀를 앉혀 이야기를 들려주고 말을 하지 못하는 시기의 아이에게도 많이 말을 걸어주고 가급적 많은 경험을 하라는 것이다.  내가 아이를 갖고 낳아 기르게 된다면 이것은 꼭 지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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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유아 독서영재 교육 시작 전 필독서 - 뇌가 좋은 아이
    from 도서출판 예문당 - 함께 만드는 책 놀이터 *^^* 2010-06-30 11:25 
    이 책은 2009년 5월 5일 KBS 특집 다큐멘터리 '책읽는 대한민국, 읽기혁명'[링크]에 소개된 내용과 못다한 이야기를 책으로 엮은 것입니다. 요즘은 좋은 다큐멘터리들이 책으로 많이 출간되는데요, 저는 이런 책들을 좋아합니다. 이 방송 보셨나요? 전 관심있게 봤습니다. 저는 2005년 10월에 큰아이를 낳고나서, 2006년 8월부터 본격적으로 유아 독서와 그림책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 4년 시간이 흐르는동안, 자녀교육서도 많이 읽..
 
 
 
아불류 시불류 - 이외수의 비상법
이외수 지음, 정태련 그림 / 해냄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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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외수는 언어의 연금술사?  이제는 이 말도 식상하다.  그에게는 더욱 신선하고 참신한 수식어가 필요할 것 같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언어의 연금술사다.   

   <아불류 시불류>는 <하악하악>과 닮았다.  <하악하악> 2권같은 느낌이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전 출간된 <청춘불패>와도 닮은 구석이 있겠으나 내가 읽은 두 권으로 비교해야 할 것 같다.  두 작품 모두에서 정태련씨의 그림, 향기로운 책갈피를 볼 수 있다.  그리고 짧은 단상, 유머, 풍자, 위트를 담고 있는 글이라는 점에서 두 권은 아주 닮았다.  실제 <하악하악>은 '이외수의 생존법'이고 <아불류 시불류>는 '이외수의 비상법'이라니 두 권을 시리즈의 느낌으로 보아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여자도 여자를 모른다는 '이외수의 소통법'이고 청춘불패는 '이외수의 소생법' 이라는데 그렇다면 이 모두는 형제뻘일 듯 싶다.) 

  그럼 이 책 <아불류 시불류>를 보자.  '아불류 시불류'가 대체 무슨 뜻일까?  나는 이 책을 읽기 전 네번째과 다섯번째 글자의 조합에서 욕설이 아닌가 했다.  그러나 무식하게도 전혀 아니올시다.  '我不流 時不流'는 '내가 흐르지 않으면 시간도 흐르지 않는다' 라는 뜻으로 '그대가 시간의 주인이다' 라는 의미를 담고 있단다.  어쩜 이런 속깊은 뜻을 나는 한갓 욕설로 짐작할 수 있었을까?  허허.          

  그의 글을 읽을때면 항상 드는 생각이 있다.  그의 글은 '글쓰기 교과서'다.  은유, 활유, 비유 등.  이 모든 것들이 살아 숨쉬는 생어들의 향연이다.  감성마을에 사는 이 답게 그의 글에는 감성이 녹아있고 또 통찰력과 풍자와 위트를 발견할 수 있다.  그렇기에 그의 문장은 아름답기도 하고 무릎을 치게 되기도 하고 또 웃음이 나기도 한다.  많은 문하생을 거느리고 있는 이 답게 그의 글은 생동감 있고 숨이 있는 언어다.  그리고 그의 글을 읽노라면 글쓰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단지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활자 속에 녹여내느냐가 관건이다.  (이게 어려운걸지도;;)  어찌되었건 그의 글을 읽으면 짧은 글을 짓더라도 좀 더 쓰여져야 할 만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이 책은 소셜네트워크 대표주자인 트위터를 통한 그의 320개 글들의 모음집이란다.  이외수씨는 디씨인사이드, 트위터 등에서 맹활약하고 있는 작가로 유명하기도 하다.  이것들은 그가 세상과 무한히 소통하고 싶어한다는 뜻이 아닐지.  또 트위터가 1회에 트윗할 수 있는 글자가 140자로 제한되어 있는 것을 보면 그는 함축과 요약의 정신을 투철하게 반영하였다.  그렇기에 그의 글은 장황하지 않다.  간결하면서 맛이 있고 깔끔하며 담백하다.  이것이 바로 <아불류 시불류>다.       

  앞으로도 그의 작품과 행보에 주목해야 겠다.  또 자신만의 색깔과 호흡법이 있는 글들을 내놓겠지?    끝으로 <아불류 시불류>에서 그만의 통찰력으로 젊은이들의 세태를 꼬집은 짧은 구절을 소개하며 어설픈 서평을 마치려 한다.                    

 

'술 한잔 마시자' 라는 표현이 '술 한잔 꺾자'라는 표현으로 변하고  

'밥 한번 사겠다'라는 표현이 '밥 한 번 쏘겠다'라는 표현으로 변했다.  

'웃었다'라는 표현은 '뿜었다', '터졌다'로 통용된다.   

세상이 척박해지고 사람들이 공격적으로 변했다는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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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로 이야기 세트 - 전3권
시모무라 고진 지음, 김욱 옮김 / 양철북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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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모무라 고진의 <지로이야기>  나는 이 책의 저자가 교사였으며 이 소설은 오랜 기간을 걸쳐 완성한 교육소설이라는 것을 어디에선가 접했고 그 하나의 이유가 나로 하여금 이 책을 읽게 만들었다.  지로와 나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나는 지로의 코흘리개 시절부터 그가 훌륭하게 자라기까지를 모두 지켜보았다.  할아버지의 깨진 주판을 제가 한 일이라 하여 꾸지람을 들을 때도 아버지 슌스케에게 수영을 배웠던 개울가에도 나는 함께 있었다.  중학교 입학 시험을 앞두고 교이치와 뜬 눈으로 지샌 밤 속에도 그들의 대화를 들을 수 있었다.  술집 여주인 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릴 때도, 아사쿠라 선생님의 유임을 위해 혈서를 쓰고 새끼 손가락을 동여매고 있을 때도 나는 그의 곁에 있었다.  그 녀석을 지켜보는 동안 나는 웃음이 나기도 했고 함께 울기도 했다.  때로는 가슴이 먹먹하고 목구멍이 얼얼해지기도 했다.

  지로와 함께하는 동안 나는 이 아이를 정말 사랑하게 되었다.  그는 말썽장이고 엉뚱하다.  하지만 누구보다 정의롭고 용기있는 아이며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아이다.  또한 지로의 어깨 넘어로 본 그의 행동들은 내게 값진 것들을 일깨워 주었다.  어느새 나는 지로가 되어 있었다.

  어느샌가 나는 오하미를 그리워했고 오타미의 죽음 앞에서 나는 그녀를 이해하게 되었고 지난 시간들을 반성했다.  양계장에 있어서 만큼은 슌스케보다 지혜롭고 당차던 오요시를 존중하게 되었다.  그리고 언제나 내 편이 되어 나를 믿어주는 내 아버지, 슌스케를 그 누구보다 존경했다.  그리고 아사쿠라 선생님의 가르침은 나에게 참된 인간의 길을 보여 주었다.  나는 지로였고 지로는 나였다.

  지로는 분명 개구쟁이었고 말썽장이었다.  그런데 이 아이가 세상을 향해 눈을 뜨며 형제간의 우애를 느끼며 할머니를 대하는 바른 태도를 실천하고 존경하는 선생님의 올바른 가르침과 아버지의 자애로움으로 멋진 청년이 되어가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이렇듯 지로는 모두가 함께 길러냈다.  어린 가슴에 불타던 분노를 그는 다스릴 수 있게 되었고 진정 바른 일에 앞장서려는 의지를 갖게 되었다.  이처럼 지로의 성장과 변화는 내게도 큰 교훈이 되었다.

  나는 유치원 교사다.  참 많은 어린 지로들을 매일같이 만난다.  그들은 지로처럼 개구쟁이이며 말썽장이이다.  그러나 누구보다 사랑스러운 아이들이다.  나는 그들도 지로와 같이 마음 한 켠에 그들만의 작은 씨앗이 있을 것이라 믿는다.  지로가 가족의 사랑과 올바른 스승의 가르침을 양분으로 훌륭하게 자랐듯이 나는 이 아이들에게도 이와 같은 비료가 주어진다면 모두 또 다른 지로가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슌스케와 아사쿠라의 모습을 통해 진정 참된 어른의 모습을 옅볼 수 있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지로를 믿어주었다는 점이다.  모두가 다그치고 꾸지람할 때 지로를 이해해주고 믿어주었으며 그들의 모습과 행동을 통해 지로에게 감동을 주었다.  이들은 우리가 닮아가야 할 어른의 모습이다.  나 역시 내가 만나는 나의 아이들을 진심으로 이해해주고 믿어주며 나의 행동과 모습으로 그들을 가르쳐야 할 것이다. 

  책장을 덮었다.  지로의 이야기도 끝이 났다.  하지만 지로는 우리의 가슴에 아직 살아있다.  그의 감동적인 성장일기는 또 다른 지로의 일기가 될 것이다.  이제 그는 더 이상 사고뭉치도 아니며 거짓말쟁이가 아니다.  모르긴 몰라도 그는 슌스케와 아사쿠라처럼 건장한 청년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저를 닮은 유년을 가진 수많은 아이들에게 참된 스승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 않을까 싶다.  이제는 지로를 세상으로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아니, 보내주어야 한다.  그 아이가 가진 작은 씨앗이 푸르르게 자라 영글었듯이 모두가 지로처럼 가슴 속 작은 씨앗을 싹 틔울 수 있기를 바란다. 

  이제 지로를 세상으로 나섰다.  내가 사는 곳 어딘가에서 지로를 만난다면 그 어느 때 보다도 다정한 눈길과 미소로 인사를 건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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