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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은 백화점표, 난 노점상표 쓰레기 글 쓰는 놈도 있어야지…”
[뉴스 쏙] 한겨레가 만난 사람 ‘열광과 혐오의 경계인’ 대중소설가 이원호
중동에 섬유를 수출해 한 달 100만달러를 주무르던 마흔세살 사업가는 1990년 하루아침에 알거지가 된다. 걸프전으로 중동 거래가 중단되는 바람에 부도가 난 것이다. 빚쟁이들을 피해 도망다니던 그는 다단계판매회사에 들어가 200만원짜리 자석요를 팔러 한 선배를 찾아갔다. 선배는 그에게 물었다.
“원호야, 너 이거 효능 아냐?” “모릅니다.”
“이거 팔면 얼마 남냐?” “30% 남습니다.”
“그거 줄게 안 사면 안 되냐?”
“…주세요.”
돈을 받아들고 사무실을 나오는 순간 사업가는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문득 창 아래를 내려다봤다. ‘확 떨어져 죽어버릴까.’ 7층에서 뛰어내리면 완전히 박살나 죽을 것 같았다. 몇 층 내려가서 보니 이번엔 설죽을 것 같았다. 위아래를 30분 정도 오가던 그에게 갑자기 묘한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는 억울하니 자서전이나 쓰고 죽자.’ 대학 시절 문학상을 두 번 받았던 왕년의 문학청년은 자기 이야기를 소설로 썼다. 빚쟁이를 피해 숨어서 한 달 만에 쓴 책이 운좋게 출판되어 그는 수배 중에 데뷔를 한다.
자살까지 생각했던 그 사업가가 ‘한국 통속대중소설의 지존’ 이원호(61)다. 그를 보면 소설가가 되는 유전자는 분명 따로 있는 것 같다. 졸지에 망해 엉겁결에 소설가가 된 뒤로 지금까지 18년 동안 그의 소설은 900만부가 팔렸다. 이른바 ‘재야의 이문열’이다. 도서대여점 덕에 뜬 최고 수혜자이자, 빌려 보는 바람에 책이 덜 팔린 최대 피해자이기도 하다.
이제 대여점은 사라지고 있지만 이원호의 소설은 건재하다. 중요한 것은 그가 18년째 재미 하나로 버텨왔다는 사실이다. 예나 지금이나 그의 책은 광고를 하는 법이 없다(윤태호와 합작해서 만든 아이템 괜찮은 [주유천하]를 최근에야 알았으니 요즘은 확실히 광고를 안 때리는 거 같긴 한데 예전엔 왕창왕창 했었다). 그래도 찍기만 하면 2만부는 바로 팔린다고 출판사는 귀띔한다.
지명도로만 보면 그는 2000년대 이후 더 유명해졌다. 열광과 혐오를 동시에 부른 문화일보 연재소설 <강안남자> 덕분이다. 중년 남성들을 정확하게 겨냥한 ‘성적 판타지’로 논란을 일으킨 이 소설로, 그를 도색작가로 여기는 이들도 많아졌다. 변하지 않는 것은 그의 은둔주의다. 사람들의 비판을 즐기듯 연재소설의 표현 수위를 올리고 내리면서 독자들과 심리게임을 벌이고 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새로운 단행본 소설들을 쏟아내고 있다. 올해 펴낸 책만 4종 9권. 곧 새 소설 <무반>이 나올 예정이어서 한 해 펴낸 책이 두자릿수를 넘길 전망이다(알라딘에서는 2008년에 나온 이원호의 책이 5종 14권으로 나온다. 그러니 이미 두자릿수를 넘긴 셈이다). 이쯤 되면 소설 쓰는 기계다.
-인천공항 서점에서 가장 책이 많이 팔리는 소설가라고 들었습니다.
“제 책이 킬링타임용이니까요. 도착지 공항에 가보면 쓰레기통에 다 읽고 버린 제 책이 많을 거라고 농담하곤 합니다. 잘 팔리는 책, 재미있는 책을 만들어야겠다, 장사를 해야겠다는 마인드가 강해요.”
-판매량도 많지만 참 많이도 쓰십니다.
“인터뷰한다고 세보니까 47종 160권을 썼습니다. 1년에 7~8권은 쓰고, 신문 연재도 2곳에 하고 있고…, 하루에 원고지 50장씩 씁니다. 하도 많이 쓰니까 대리작가를 쓴다는 소문도 있었습니다.”
-첫 소설 다음에 낸 <밤의 대통령>과 <황제의 꿈>은 당시 정말 인기였습니다. 감옥에서 썼다는 소문을 들었는데요.
“부도가 나서 1년을 기소중지 상태로 도망다녔어요. 그때 그냥 한번 쓴 자전적인 소설을 보고 누가 알음알음으로 연락해 왔어요. 강금실씨(전 법무부 장관) 전남편이었던 출판사 이론과실천 김태경 사장이었는데 소설을 하나 써보라는 겁니다. 그때가 노태우 정권 말기였는데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는 짜증나는 시절이었어요. 뭔가 화끈하게 대리만족 시켜주는 소설을 쓰자, 그래서 전국구 조폭들 이야기로 <밤의 대통령>을 썼어요. 두 달 만에 1부 세 권을 썼어요. 또 내가 기업도 했겠다 기업소설도 한번 써보자 그래서 무역 영업맨 이야기인 <황제의 꿈>을 같이 쓴 거죠.”
90년대 만화방을 찾던 성인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그렇게 빌려 보는데도 두 소설 모두 300만부 가량씩 팔렸다. 소설을 내고 얼마 뒤 그는 불심검문에 걸려 구치소에 들어갔는데, 출판사에서 인세로 빚을 갚아줘 풀려나왔다. 그 뒤로 엄청난 인세 수입으로 빚을 갚아나가는 길고도 오랜 탕감기가 시작됐다. 그는 신문 연재 고료를 현찰로, 그것도 1년 단위로 한번에 받는다. 초기 월별로 받을 때 가압류당했던 기억이 남아서라고 한다.
-기존 이원호 팬들은 <강안남자>가 오히려 생소했을 것 같습니다.
“<강안남자>로 이미지가 고착되는 걸 탈피하고 싶기는 합니다. 그래도 제 브랜드가 높아지는 것은 좋은 거죠. 어찌 됐든 제 소설이 신문에 실리는 게 감사해요.”
-<강안남자>가 선정적이어서 처음부터 말이 많았습니다. 요즘에도 노골적인 성애묘사가 좀 심하다 싶던데요.
“워낙 호오가 분명하니까…. 저는 이 소설이 나른해질 오후 무렵 남성 독자들에게 활력을 주고자 했어요. 처음에는 하도 욕을 먹어서 의기소침해지기도 했는데 그래도 어쩌겠어요. 인터넷에 누가 ‘이원호 이 새끼 아직도 영창 안 갔냐’고 써놨기에 제가 ‘예, 아직 안 갔습니다’라고 댓글을 달았습니다.”
-욕을 먹든 안 먹든 읽게 만드는 것이 힘인 것 같습니다. 대중들에게 먹히는 글쓰기법이 있습니까?
“전 묘사를 안 해요. 제 소설은 생각하는 게 없습니다. 대화와 행동으로 표현하는 거죠. 끊임없이 장면이 바뀌어 정신은 없겠지만 질리지는 않을 겁니다.”
그가 종합일간지와 인터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기자가 처음 인터뷰를 요청한 것은 2006년이었다. 한국의 프로 글쟁이들을 소개하는 시리즈에 그를 넣으려고 했는데 그는 “제발 살려달라”며 “나중에 하자”고 사정했다. <강안남자>의 선정성이 한창 논란이 될 때였던 탓이다. 그는 인터뷰 약속을 지켰다. 2년 만에야 만난 그가 건넨 명함에는 ‘대중소설가’란 다섯 글자가 큼직하게 찍혀 있었다. ‘대중’이란 글자를 넣은 것이 오기와 자존심이리라 짐작은 됐지만 그래도 이유를 물어봤다. 그는 “소설가라고 쓰기 낯뜨거워서”라고 운을 뗀 뒤 진짜 이유를 들려줬다.
“평소 제 팬이라고 자처하던 후배가 한번은 ‘형은 문단에서 보면 면허증 없는 운전사예요’ 하는 겁니다. 웃으며 넘겼지만 크게 쇼크를 먹었죠. 그래서 일부러 명함을 그렇게 팠어요. 니들 그러지만 나는 나다, 니들이 떠들어봤자 몇천권인데, 난 기본이 몇만권이다, 그런 거죠.”
-대중소설가의 정체성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황석영씨나 이문열씨가 백화점에 매장 가진 사람들이면 저는 좌판 들고 돌아다니는 행상 비슷해요. 행상치곤 좌판 이름이 알려지긴 했죠. 그래도 대중소설가여서 아직 매장은 못 열었구만요.”
-요즘 한국 대중문학이 좀 주춤합니다.
“한국 대중문학은 주춤한 게 아니라 완전히 죽었어요. 서점 가 보면 깔린 대중문학이 다 일본 것들입니다. 일본 소설을 보면 뭔 놈의 상이 그렇게 많은지 별놈의 상을 다 받았다는 책들이 한국에 와서 범람하고 있어요. 한국 대중소설은 글로벌화는커녕 한국 속에서도 무시당하는데…. 대중소설 장르를 넓혀야 해요. 제가 바닥에 있는 쓰레기 거름이라도 되고 싶어요. 나처럼 쓰레기라도 만드는 놈이 또 누가 있습니까? 물론 팔리니까 펴내 주는 거겠지만.”
그는 위악적으로 느낄 만큼 자신을 까보였고, 자기모멸처럼 들리는 이야기도 망설이지 않고 털어놓았다. 자기 소설을 쓰레기라고 부르는 히트 작가의 모습은 문화의 등급을 많이 따지는 한국에서 대중문학을 하면서 갖게 된 자기방어 기제처럼 보였다.
-원래 그렇게 자기를 확 드러내세요?
“무역을 할 때 중동 사람들 상대하면서 생긴 습관이에요. 제 약점이나 모자란 점을 털어놓으니까 그게 통했어요. 그 뒤로 버릇이 된 거죠. 손해도 많이 봤어요.”
-사업 경험이 작품 내용에도 많이 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제가 사업 망한 게 제품을 다양화시키지 못했고 시장을 다변화 못해서였어요. 그래서 소설에선 장르를 다양화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했습니다. 폭력소설, 기업소설로 떴어도 역사소설, 무협소설, 연애소설, 에스에프로 바꿔 가며 썼어요. 계속 새 장르를 시도하다 보니까 독자들도 저한테 익숙해졌고 제 시장을 늘릴 수 있었죠.”
-그 많은 이야기를 짜내시는 겁니까, 아니면 머릿속에서 그냥 나오는 겁니까?
“머리에서 술술 안 나오면 소설가가 되지 못하죠. 소설은 줄거리고 이야기예요. 억지로 만들어서 될 이야기가 아니거든요. 임기응변이 중요해요. 제가 사업할 때 어떻게 한 줄 아십니까? 외국 바이어가 왔는데 제품이 안 나오는 겁니다. 그래서 직원을 시켜서 바이어 태우고 가는 제 차를 살짝 받으라고 했어요. 다치지도 않은 바이어를 병원에 이틀 입원시켜서 제품 완성할 시간을 벌었습니다. 트릭이고 사기죠.”
-이원호표 소설은 재미는 있는데 세태와 욕망을 너무 노골적으로 그린다는 평도 많습니다.
“기업 속의 배신, 욕망 같은 것들이 기존 한국 소설에는 잘 표현이 안 돼 있더라고요. 실제 현실에선 음해나 배신이 비일비재하거든요. 저도 배신자예요. 다니던 회사 직원들 다 데리고 나와 제 회사 차렸거든요. 그런 것들을 솔직하게 표현한 소설을 본 적이 없어요. 문맥이나 따지고…. 그런 치열한 경쟁, 투쟁 그런 것을 제 경험에 비춰 자연스럽게 표출한 거예요.”
-그럼 <강안남자>의 주인공 조철봉은 작가의 분신인가요?
“그건 아니에요(웃음). 성격은 비슷해요. 여자를 좋아하지만 존중도 하니까. 조철봉이 소설에서 나쁜 여자 말고는 등쳐먹거나 괴롭힌 적은 없어요.”
-그래도 밤문화를 다루시는 것을 보면 생생한 취재가 아니고선….
“나이트클럽, 카바레, 룸살롱 공부 많이 했어요. 저는 여자 없는 데서는 술 안 먹습니다. 좋아도 하고 소설에도 필요하고. 기사도 독자 흥미를 끌어야 하니까 이거 기사에 넣으세요.”
-돈은 얼마나 버셨어요?
“많이 벌었다고 쓰지 마세요. 한 오륙십억 벌었다고 하세요. 빚도 그만큼 됐어요.”
-환갑 넘은 나이에도 요즘 독자들에게 먹히는 게 참 쉽지는 않아 보입니다.
“제가 능력이 대단한 것도 아니고 운이 좋은 건데, 그 운을 놓지 말아야죠. 저는 골프는 시간 아까워서 못칩니다. 헬스도 다녀봤는데 두 시간이면 원고지 20장 쓴다고 생각하니 그것도 아깝더라고요. 대중소설가는 끊임없이 독자들에게 어필해야 해요. 잊혀지면 그건 죽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밀리언셀러 한번 냈다고 폼잡으면 안 되죠. 제가 어디 감히 그렇게 폼을 잡겠어요. 나이가 드니까 초조해져요. 정말 많이 쓸 겁니다. 저도 장서용 책을 한번 남기고 싶어요.”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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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대통령]과 [황제의 꿈]은 정말 엄청난 인기였었다. 그런데다 스테디셀러기도 했다. 당시 조선일보를 열독했던 나도 거의 1년 365일 매일 실리는 [황제의 꿈] 광고와 도서출판 모아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으니 말이다. 문득 [뼁끼통]과 그 연작을 줄줄이 써서 펄프픽션계의 대가로 치자면 만만찮은 급수를 가지고 있을 이진수가 요즘 뭘 드시고 사시는지 궁금해졌지만, DJ를 까는 [거짓말 선생님] 같은 책을 썼으니 한겨레에서 인터뷰를 해줄 것 같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