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력....

 

간만에 봤는데 탈력....

 

기대치&전작 대비 탈력....

 

타, 탈력....

 

17살보다 탈력....

 

...탈력.

 

이번에도 갈데까지 가는구나.

 

에혀....

 

적절한 거 같은데 끝내고 나니 탈력.

 

자연보호.

 

[예루살렘의 땅]을 존나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있어서. 근데 이건 좀 노티 남. 스티븐킹의 좀 떨어지는 장편들이 으례 그렇듯 끝에 가서 탈력.

 

 

 

으아 이 지옥 같은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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ことばことばことのは

코토바 코토바 코토노하

글자, 글자, 글.

 

ただ言葉が並んでいるだけなのに

타나 코토방아 나란데이루다케나노니

단지 글자가 나란히 줄지어 있을 뿐인데

 

それは涙をこぼさせる

소레와 나미다오 코보사세루

그건 눈물을 흘리게 해

 

それは生きていこうかなって気持ちにさせる

소레와 이키떼이코우까낫테 키모치니 사세루

그건 살아가야겠지 하는 기분이 들게도 해

 

それは温かかったりする

소레와 아타카깟타리스루

그건 따뜻하기도 했어

 

ただ言葉が並んでいるだけなんだけど

타다 코토바가 나란데이루다케난다케도

단지 글자가 나란히 줄지어 있을 뿐인데 말야

 

ことばことばことのは

코토바 코토바 코토노하

글자, 글자, 말

 

夏の終わりに淋しくなる

나츠노 오와리니 사비시쿠나루

여름이 끝날 즈음 외로워지게 되는

 

理由がわかった

리유가 와캇따

이유를 알았어

 

悲しすぎて笑ったりする

카나시스기떼 와라앗타리스루

너무 슬프면 웃음이 나와버리거나 하게 되는

 

理由がわかった

리유가 와캇따

이유를 알았어

 

夏いちばんナツイチ

나츠 이치방 나츠이치

여름의 첫번째 나츠이치

夏いちばんナツイチ

나츠 이치방 나츠이치

여름의 첫번째 나츠이치

 

私は世界を旅する 言葉をつれて

와타시와 세카이오 타비스루 코토바오쯔레테

나는 세상으로 여행을 떠나. 글자를 따라서

私は私を旅する 言葉をつれて

와타시와 와타시오 타비스루 코토바오쯔레테

나는 나 자신으로 여행을 떠나. 글자를 따라서

 

いつか 出会う あなたに

이츠까 데아우 아나타니

언젠가 만나게 될 너에게

いつか 出会う その時

이츠까 데아우 소노토키

언젠가 만나게 될 그 때를 위해

 

あなたにあげる 言葉を さがそう

아나타니 아게루 코토바오 사가소오

너에게 해줄 말을 찾으며.



-네이버 아오이 유우 팬카페 dus_latimer님 독음, 해석.

http://cafe.naver.com/yuaoi.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6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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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도 다 끝나가는 판에 올리는 뒷북. 여기서 나오는 나츠이치란 말은 슈에이샤에서 아오이 유우 데리고 만든 여름에 책을 읽읍세 캠페인CF로 여름에 적어도 한권 이상이라는 것인지 나츠-여름 이치-1을 붙여서 만든 조어입니다. 하아하아 아오이 유우 최고. [훌라걸즈] 보고 영화는 그저 그랬는데 아오이 유우 보면서 뭐랄까 절제된 에로함이랄까 그 비슷한 걸 발견할 수 있었는데 이 영상의 마지막 부분에서 그녀의 나긋나긋한 춤을 볼 수 있습니다. 정말 선이 곱다는 생각이 풀풀 들어서 또 하앟하앙.

 

일본은 저쪽 업계의 작업이 무척이나 전문화 칼퇴근화 컴팩트화 되어 있어서 좀 인기 있는 연기자가 맘만 먹으면 장난 아니게 찍어댈 수 있다고 합니다. 근데 아오이 유우는 영화판이 너무 개판이라서 자기라도 그 바닥에서 뛰어야겠다며 드라마는 자제하고 영화판에서 주로 노는 희귀 케이스인데 이런 '젠틀 매드니스'들을 광분케 할 광고나 찍어대니 또 하악하악할 수밖에 없잔하.

 

아 봉준호 존나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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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렌초의시종 2007-08-24 2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봉 감독이 부러우시다는 말에 백번동감!! 그런데 모델이 저리 고와서야 누가 책을 읽겠어요? 아오이 유우 신작을 더더 기다리게 만들 듯~^^;;

hallonin 2007-08-26 0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능력이 있는 남자가 미인을 차지하는 법....
 

사실 넥스트의 새유닛으로서의 복귀작인 이 앨범은 그리 탁월하다고 보기 힘들다. 새로운 기반이라고 보기 힘들게 반복되는 넥스트 특유의 매너리즘은 신해철이 가진 뽕끼에서 태생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해도 프로파간다적 성격이 강하게 드러나는 통에 노래와 함께 날아다니는 말로써의 묘미가 많이 죽어버린 가사라든지, 헐거운 듯 집중력이 떨어지는 구성은 앨범 전체를 즐기려는 이에게 쉬이 피로를 안겨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 형태에 있어서나 짜임, 노랫말들에 있어서 보여주는 직설적인 힘은 이 거친 앨범의 젊은 에너지를 숨기지 않고 보여주는 미덕이 있다. 그것은 넥스트의 새로운 일신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앨범 전체에 막무가내적 활력을 은근히 불어넣는 동력원이 된다. 이것이 내가 이 앨범의 세부적인 면에서의 실망과 더불어 지치지 않고 귀에 꽂을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근데 디워 헌정앨범은 뭐하러 만들었는지 모르겠네. 뭐 스타크 헌정에도 참여했으니 쌈마이 문화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라고 보고는 싶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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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07-08-24 1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들아, 정치만은 하지마~~
이 앨범에 대한 bdafuck 님의 글을 보니 저 가사가 제일 먼저 떠오르는군요. 훗.

hallonin 2007-08-24 2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름대론 절박했죠 저때 신해철은.
 



 

몸으로 보여주시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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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8-24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하하하하하~ 전여오크님 -_-b

다락방 2007-08-24 1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암요, 저렇게 살아야지요!! ㅋ

hallonin 2007-08-24 2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흐크흐흐흐흐


뒤틀린 의미의 대인배.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 - 오타쿠를 통해 본 일본 사회
아즈마 히로키 지음, 이은미 옮김, 선정우 감수 / 문학동네 / 2007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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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오타쿠가 가지는 게토적 성질은 새로운 세대의 단초로 볼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카타리파 수도자들처럼 멸종해버릴 운명인 것인가. 적어도 일본의 경우, 현재의 웹문화의 상당 부분이 그들로 인해 구축되어있는 만큼 전자의 경우로도 볼 수 있지만 그 정치적 의지결여는 그들의 고착을 지속시킨다. 마치 지하 속을 면면히 흘러왔던 일렉트로니카의 역사처럼 일본에서의 오타쿠는 점진적인 자기패러디와 확장을 통해 세계를 유지한다. 여기엔 새로운 문화, 쓸만한 상품으로서의 오타쿠의 가치를 발견한 기성세계에서의 구애가 기다리고 있으며 이것은 그대로 산업적인 측면에서의 파이 확장과 직결된다. '오타쿠라는 것'에 대해 자부심과 자기혐오가 뒤섞였던 것은 어느 쪽이 더 함량초과든 간에 그들만의 특질이란 것을 유지시켜주는 바였다. 그러나 지금 오타쿠들은 3세대까지의 고전적인 의미에서의 고집과 팔리는 트렌드로서의 오타쿠와 서로 경쟁하고 있다.

일전에 관련 페이퍼에선 서사의 붕괴에 대한 반작용으로 [카우보이 비밥]과 그외의 애니메이션에서의 성과를 섣불리 생각했지만 여기서 아즈마 히로키는 장르 자체가 다른 영역, 즉 미소녀게임에서의 서사적 특질에 주목하고 그것을 서사의 붕괴에 대한 반작용의 일례로 제시한다. 서사의 힘은 애니메이션이라는 고전적 영역을 벗어나 보다 데이타베이스 집중적인 퍼스널 컴퓨터의 세계로 들어갔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비중 있게 제시된 칸노 히로유키는 벌써 오래 전 양반이고 그의 작품들이 오타쿠의 데이타베이스적 사고를 훌륭하게 체현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제는 그의 시대가 아니다.

3세대 이후 오타쿠층에 있어서 작가적 아우라의 단절은 서사 붕괴 현상에 대한 직설적인 표상이다. 애니메이션에 있어서 마지막으로 명징한 작가군이라고 한다면 안노 히데아키쯤을 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후 오타쿠붐의 핵이었던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에 이르러 제작자들인 교토애니메이션은 하나의 집단으로 인식되지 특정한 작가의 의지가 표명된 것으로 인식되지 않는다. 그래서 특정한 작가성에의 주목이 미소녀게임계, 나스 키노코로 옮겨가서 가장 강력했던 팬덤을 구축했던 사실은 의미심장하고 아즈마 히로키의 판단이 옳았음을 증명하는 바이기도 하다. 그러나 [페이트] 이후 미소녀게임계 또한 관성적인 자기복제를 거듭하며 긴 휴지기를 맞이하고 있다.

애니메이션쪽으로 현재를 다시 생각해보자. 2007년 9월부터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2년에 걸친 또 한 번의 리믹스를 시도한다. 현재 오타쿠 트렌드를 이끌어가는 교토애니메이션의 [럭키스타]는 끊임없는 자기패러디로 서사 없는 오타쿠극을 보여주고 있다. 그들이 다음에 선보일 작품은 오타쿠 서사의 궁극을 지향했던 키의 미소녀게임 [클라나드]의 애니화다. [천원돌파 그렌라간]이 보여주는 이야기의 거침없는 속도감은 오타쿠서사의 응축화가 드러날 수 있는 어떤 지점을 보여준다. 이 현상들은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는 점, 서사의 붕괴 이후 서사라는 측면, 그리고 애니메이션이라는 고전적 영역이라는 부분에서 충분히 흥미롭다.

여기서 연결해낼 수 있는 재밌는 사실은 포스트모던 시대에 서사의 붕괴를 계속 얘기하면서도 중요한 것은 서사 그자체라는 점이다. 서사의 붕괴가 이른 시점에서 장르의 사형이 선고되고 서사라는 왕관은 다른 장르의 다른 소화양식을 찾아 통통 튀어가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다. 그것은 단순히 장르의 대체라기보단 새로운 활력의 탐색에 따른 결과와도 같다. 여기서 유희적 인간, 이야기를 원하는 인간이 재확인된다. 서사라는 힘이 아니라 인간의 본능에 더 밀접하게 접근지어지는 이 흐름의 다음은 아직 명확하게 제시되지 않은 걸로 보인다.

여기까지는 일본쪽의 얘기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우리나라의 오타쿠문화가 가지는 담론에서부터 트렌드까지에 이르는 전반적인 수입편향은 오래 전 [마징가제트]의 시대로 거슬러올라간다. [마징가제트]의 국적이 밝혀지고 [태권브이]의 표절성이 드러난 사건은 우리에게 강력한 트라우마였다. 그 이후로 우리는 끊임없이 극복에의 강박을 가지게 됐다. 영화는 헐리우드를, 애니메이션은 일본을. 이 강박은 미국 애니메이션에의 진한 영향 아래에서 대체역사를 꾸며내서 현재의 가면 쓴 세계, 포스트모던한 독자적 영역(아이러니다)을 구축해낸 것에 기반을 두고 있는 일본 애니메이션, 더 나아가 가짜고유성을 확보해낸 오타쿠 문화를 가진 일본과는 다른 점이다.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에서도 언급되고 있고 김준양의 저작 [이미지의 제국]에서도 지적되는 바이지만 우리가 일본의 원천기술, 데즈카 오사무의 발명품쯤으로 알고 있는 리미티드 애니메이션은 실은 2차 대전 이전에 이미 미국에서 풀애니메이션에 대한 예술적 반발로써 존재했던 기술이며 그것이 전후에 일본에서 기술적으로 차용이 된 바이고, 2차 대전 이전의 일본 애니메이션계는 마치 지금의 우리나라가 가지는 무형의 강박처럼 디즈니에 대한 질투와 동경이라는 강박으로 가득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일본은 그 영역을 가짜 역사로 대체할 수 있었지만 우리는 너무 늦거나 일렀다. 그래서 우리의 강박은 계속해서 개발성취적인 영역으로 회귀한다. 이와 관련된 극히 최근의 사건들, 황우석파동과 [디워] 논쟁은 여전히 우리가 그 영역에 고착되어 있음을 알려준다. 이른바 독자성이라는 환상이다. 대체할 역사를 꾸며내지 못한 상태에서 급작스럽게 바닥을 알아버린 이들이 가질 수밖에 없는 꿈과 같은 것.

사실 이 부분까지 오면 우리나라에서의 서브컬쳐 소비층의 전반적인 차원에서 해당되는 문제다. [트랜스포머]의 성공과 [디워]의 옹호층이 로봇물과 괴수물 팬덤의 숫자를 증명한다곤 생각되지 않는다. 아즈마 히로키가 설명한 오타쿠의 2세대와 3세대 어느 가운데에 샌드위치처럼 끼워져 있는 것이 우리나라의 서브컬쳐 양상처럼도 보이지만 문제는 그렇게 딱딱 나뉠 것 같지 않다. 인터넷 유토피아라는 범세계적 망상에 발맞춰서 국민의 정부에서 전략적으로 주도했던 인터넷망의 비정상적인 확장은 가짜역사의 확립 또는 역사의 재발굴이 없는, 컨텐츠 부재 상태에서 이뤄지면서 대한민국 인터넷망 안에 정보의 무차별적인 수입과 평준화를 통한 기이한 공백을 가져온다. 이것은 2세대적 인간상과 3세대적 인간상의 혼잡스러운 동시출현이다. 그 결과는 그야말로 유희적 유희라는 차원에서의 온라인 게임, 컨텐츠의 범람으로 보여지고 있다. 소비풀로서의 우리나라는 가히 이상적이지만, 정말로 문제가 되는 것은 고색창연한 묘사라고도 할 수 있는 '창조적 견지에서의 빈한함'이다. 내게 이것은 뒤죽박죽인 혼돈 상태로 보인다. 소위 일본에서의 한류라는 짧은 유행이 복고성 때문이었다는 지적은 그래서 산업적으로 잔인해보이는 결론이다.

아즈마 히로키의 이 책은 저자 자신도 거듭 밝혔듯이 뒤늦게서야 도착한 책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지적되는 바들은 예리하고 효용성 있으며 여전히 중요하다. 이것은 우리가 가질 수 있는 미래의 한조각을 미리 비춰보는 설명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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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inpix 2007-08-21 2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리뷰 잘 읽었습니다.

hallonin 2007-08-23 0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하지만 아직 멀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