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로우 블랙잭]의 성공 이후로 각 전문직 분야에 침투한 양심적인 신참들의 비슷비슷한 이야기들이 줄줄이 나오는 가운데 [법 앞에 평등하라]는 그중 법조계를 타겟으로 삼고 있다. 물론 [헬로우 블랙잭]처럼 초짜와 고참 간의 갈등과 서류와 현실 간의 갈등, 말과 행동 간의 갈등과 같은 전형적인 패턴을 따르고 있지만 여기서 의료업계와 법조계가 다른 점은 생명을 구한다 라는 의료업계의 대의에 비추어 편갈라서 싸운다 라는 법조계의 모양은 아무래도 그 감동의 정도가 덜할 수밖에 없는 것. 작화상으론 내내 부담가는 얼굴뎃셍과 어깨를 움츠린 듯 세우고 있는 듯한 인물들이 보여주는 거부감을 이겨낼 수 있다면 장르물이 기본으로 지켜주는 재미는 보장하는 편.

 

유시진의 작품들에서 보여지는 국내 순정만화에선 쉬이 찾아볼 수 없는 진지한 뎃셍이라든지 여러가지 차원의 소재들을 추구하는 실험정신은 참으로 맘에 드는 바이나 일단 캐릭터 면상에서 정감이 안 느껴지고 동선에서의 뻘쭘함이 자꾸 눈에 띄니.... 그 이야기에 좀만 작화적인 면에서 진화했으면 하는 바램이랄까. [그린빌에서 만나요]는 1권은 괜찮았으나 2권은 상당히 루즈해져버린 기분인지라 3권에서의 뒤집기를 기대해보는 상태.

 

안노 모요코가 이제는 게임개발자를 꿈꾸는 모양. 여성용 하렘형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으로 딱인 내용과 설정들. 소녀만화라는 측면에서 바라보면 무난하겠지만 안노 모요코 특유의 독설과 센스있는 오버액션을 기대했던 이라면 이 작품은 [트럼프스]의 악몽을 떠올리게 만들어줄 것이다.

 

내가 이 책을 보면서 왜그리 혼란스러워해야 했는지 어느 정도 눈에 익은 다음에야 깨달았다. 말그대로 혼돈스러운 개념설명들과 순서들.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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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music.bugs.co.kr/Info/album.asp?album=32694

조피디의 이름을 달고 나온 이번 앨범에서, 정작 조피디는 한 발 뒤로 물러나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대신 그는 자신의 앨범의 자장을 자신의 동료들에게 기꺼이 내준다. 그래서 각 트랙들의 주인은 조피디가 아닌 힙합씬의 피춰링 군단이며 거기서부터 이번 앨범의 독특한 성과가 드러나고 있다. 상대적으로 개성이 강했던 조피디의 손길이 덜해진 덕인지 아니면 그 모든 것을 피춰링팀에게서 끌어낸 조피디에게 공을 돌려야 할지, 어찌되었든 간에 이 앨범의 각 트랙들은 개개가 곡주인들의 개성을 강하게 살려내며 디제이 샤인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압도적인 출발을 보여줬던 드렁큰 타이거의 6집을 넘어서는, 근간 들어본 한국 힙합 앨범 중 거의 최고 수준의 그루브감을 보여주고 있다. 아마도 이 앨범이 헌정된 클럽 브룩클린에 별로 가보고 싶지 않은 사람들도 맘에 들어할 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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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없어도 먹고 살 수 있습니다
요시나가 후미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5년 9월
평점 :
품절


요시나가 후미라면 반사적으로 집어들게 되는 훈련된 손이 일을 그르쳤다.... 가뜩이나 긴축경제를 몸으로 겪고 있는 마당에, 음식소개만을 위해 총력전을 펼치는 만화책을 집어들다니.... 제목하야 [사랑이 없어도 먹고 살 수 있습니다]. 오호라, 저 제목 좀 봐라. 당당하게 성욕을 능가하는 식욕의 위대함이라는 진리을 설파하는 동시에 아주 대놓고 먹는다는 행위에 대한 찬란한 예찬을 풀어놓고 있는 제목을.

동경을 중심으로 한 요시나가 후미의 음식점 기행기랄 수도 있는 이 작품은 [서양골동양과자점]에서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것이었지만 '일할 때랑 잘 때 빼고는 거의 하루종일 먹는 것만 생각하면서 살아왔다'는 작중의 비장한 대사에서처럼 작가가 좋아하는 음식에 대해 수다를 떨려고 작정을 하고 나선 결과물이다. 그 취지에 지나치게 걸맞게 프랑스, 중국, 일본, 한국에까지 이르는 다양한 양식의 요리들을 먹어치우면서 인물들이 뱉어내는 수다는 위속 산성농도를 기하급수적으로 올려놓는데 탁월한 기여를 한다. 더군다나 그것이 나처럼 밤인 경우엔 그 고통의 농도가 더욱 진해질 듯 싶다.

읽기 전, 음식과 음식점에 대한 소개가 주를 이룬 만큼 작중의 이야기가 부실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있었지만 그 이야기 부분도 의외로 괜찮은 맛이 있다. 의례적인 당연함이 섞인 처음 들어가기 전, 이야기는 모두 픽션이고 실제인물과는 상관이 없다는 작가의 말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명백하게 주인공이 'Y나가 F미'라고 묘사되는 차에야, 더군다나 그 사람의 직업이 '남자들간의 애널섹스 등등을 그려 생계를 잇고 있는 31세'라고 하는 데에야, 어찌 오버랩을 안 시킬 수가 있겠는가. 물론 극적 흐름을 위해서 이야기에 공상, 망상, 허상, 호접몽 등등이 첨가가 안됐을 리가 없겠지만 요시나가 후미라는 만화가의 일상과 사고관의 단면을 단편적으로나마 잡아낼 수 있다는 점에서도 작품의 장점은 보장될 듯 싶다. 또한 원래의 의도대로 동경 부근 음식점들에 대한 안내서적으로서의 역할도 충실하여 각 음식점들의 주소에서부터 영업시간, 교통편, 지도, 주차장 유무까지 기재되어 있다.

어찌 생각해보면 당연한 얘기지만 이 작품에서 요시나가 후미의 창작품들이 지금까지 보여줬던 쿨한 게이라든지, 복잡다단한 인간관계라든지, 손가락 긴 멀대남이라든지 하는 것들과 그들의 '쌔끈한' 농탕질은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여기선 그녀 특유의 입삐죽 옆모습조차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노처녀 작가의 칼로리 넘치는 음식점 기행기를 따라다니며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어깨에 힘 뺀 작가와 그녀의 주변인들이 보여주는 보통 사람다운 모습들과 잘 만든 음식 하나하나에 환호하며 시시껄렁한 연애담과 인간관계들을 풀어내는 평범한 이야기들이다. 그렇지만 그 심심하고 정감있는 풍경들이 독자에게 실망을 안겨줄 것 같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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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와 늑대 눈높이 어린이 문고 23
진 크레이그헤드 조지 지음, 유기훈 그림, 작은 우주 옮김 / 대교출판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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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시작하자마자 우리는 곤경에 처한 에스키모인인 줄리, 아니 미약스를 발견하게 된다. 그녀는 친구가 있는 샌프란시스코로 가던 길에 조난을 당해서 북극 한복판에 떨어져 있는 상황이다. 그녀는 당장 잘 곳은 커녕 먹을 것조차 제대로 마련되 있지 않은 상태고 북극의 날씨는 더없이 춥다. 극한의 상황에서 그녀는 살아남아야 한다.

시작부터 꽤 살벌한 동화 [줄리와 늑대]는 그때까지 겪어본 적이 없는 상황에 처한 미약스가 자연과, 특히 늑대와의 교감을 통해서 어떻게 살아남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그렇기에 생각외로 긴장감이 도는 전개 속에서 그녀는 어렸을 적 아버지와 함께 돌아다니면서 체득한 에스키모 사람들의 지혜를 활용하기 시작한다. 그녀는 그 오래된 지혜들을 통해 늑대 무리와의 적극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함으로써 결국 그들과 같은 일원으로 인정받기에 이른다.

이 이후부터 우리는 소녀와 늑대들 간에 싹튼 우정을 확인할 수가 있다. 그리고 그 과정이 보여주는 양상은 자연을 존중하는 법, 자연과 하나가 되는 법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그래서 죽음과 가까이 간 장소, 너무도 괴로웠던 상황은 늑대들과의 우정과 자연과의 동화를 통해 서서히 바뀌어 나가고 이약스는 그제껏 느껴보지 못했던 따스함과 충만한 정서를 느끼게된다. 그에 반해서 미약스가 북극 한복판에 떨어지게 된 이유, 그리고 미약스의 소중한 것들을 앗아가게 되는 것은 현대문명에 의해서다.

실로 작가가 지향하는 자연에 대한 애정과 그 반대쪽에 서는 문명과의 대립각은 이야기 전체를 꿰뚫고 있다. 자연과 하나가 되어 살아가는 지혜들에 비추어 볼 때 문명은 진보와 발달이라는 고상한 옷을 입은 야만이며 미약스를 끊임없이 위협하는 것들의 본질이다. 서구문명의 유입과 함께 미약스가 살던 땅은 근본에서부터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샌프란시스코라는 달콤한 가면을 쓴 문명은 늑대들을 사냥하는 비행기로 드러나서 미약스를 위협한다. 인간은 자연과 멀어지고 자연은 인간을 홀대하기 시작한다.

어째서 이 이야기의 제목이 '미약스와 늑대'가 아니라 [줄리와 늑대]일까. 이 불길한 제목에서부터 이 이야기는 좌절의 이야기임이 암시된다. 그러나 그 좌절이 이제는 너무도 자연스러운 것이 되버린 것이기에 집으로 돌아가는 '미약스'의 발걸음은 그리도 슬퍼 보이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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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2005-10-26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
좋은서평 이벤트에서 우수리뷰로 뽑히신걸~

hallonin 2005-10-26 1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이쿠 좋아라
 
한밤중 톰의 정원에서 시공주니어 문고 3단계 14
필리파 피어스 지음, 수잔 아인칙 그림, 김석희 옮김 / 시공주니어 / 199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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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의 한밤의 정원.' 뭐랄까. 다 읽고 난 뒤에 확인하게 된 이 원제가 전해주는 진한 소유감과 은밀한 공모의 냄새는 한글로 번역된 제목인 '한밤중 톰의 정원'이 만들어내는 주변화된 인상을 낯설게 보이게끔 만들고 있다. 한밤중 통의 정원- 이렇게 되면 읽는 이로 하여금 제삼자가 된 인상을 강하게 주어 처음서부터 톰의- 라고 할 때 만들어지는 일체감이 약하다고나 할까. 그렇잖아도 정원이란 공간은 우리에게 그리 친한 공간이 아닌데 말이다.


사실 이 책의 주요 소비대상이 될 한국의 아이들에게 정원이라는 공간은 그리 익숙한 공간이 아니다. 그것은 국가명이 정원의 한 양식으로 존재할 정도로 정원에 대한 개념이 발달해 있는 영국에 비추어 정원이라는 개념에 대해 익숙해지려면 양반층도 아닌, 거의 왕족 수준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우리나라의 역사적 전통 때문이기도 하겠고 개화와 근대화 이후 정원이라는 개인적인 공간의 소유보다는 아파트와 같은 밀집형 공간에 더 익숙해야 했던 우리들이기 때문이기도 하겠다. 물론 우리네에게 있어서 자연을 억지로 가꿔서 개인적인 공간으로 만든다는 개념은 너무 인위적이고 파괴적인 발상이라 그에 익숙치 않은 탓도 있다. 더군다나 여기서의 정원은 빅토리아 시대라는 영국적 노스탤지어를 자극하는 시공간이기에 톰, 정확히는 작가가 의도한 정도의 살가움을 느끼기란 힘들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름의 벽두에서부터 즐거운 계획들에 대한 가능성을 상당 부분 박탈 당한, 그래서 내내 툴툴거리고 있는 톰의 모습에서 우리의 옛시절, 혹은 지금의 나를 발견할 수가 있다. 세상 어디에 사는 인간이든 놀려고 하는데 방해받으면 열받기 마련이다. 이렇게 아주 단순한 사실에서부터 이 동화는 서서히 맞이하게 될 톰의 경이와 우리의 소망이 일맥상통한다는 것을 조금씩 보여준다.


어른의 명령에 의해 생활을 바꿔야 하는 톰 롱은 대개 그와 같은 상황에 처한 아이들 대부분이 그런 것처럼 첫장에서부터 불만에 가득차 있다. 톰은 강제로 집을 옮겨야 하기 때문에 자신이 놀 공간이 없어졌을 뿐 아니라 그로 인해 즐거운 여름방학을 보내게 될 모든 기회를 박탈 당한 소년이다. 심지어 그렇게 해서 도착한 이모네 집은 형편없는 정원에 다소 황량하기까지 한 인상을 풀풀 풍기고 있으며 히스테릭한 할머니 관리자라는 전형적으로 스트레스를 안겨주는 인물까지도 기다리고 있다. 이 불행한 소년에게 기적이 찾아오지 않으면 도대체 누구에게 기적이 찾아오겠는가. 실은 기적은 정말 불공평하게 찾아오는 법이지만 아무튼 톰은 자신만의 환상의 정원을 발견하게 되고 그곳에서 외로운 소녀 해티와 만나게 된다.


이 책이 1958년에 나왔다는 걸 기억하자.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 작품의 플롯은 지금의 우리들 눈으로 볼 땐 그리 엄청나거나 획기적이진 않고, 오히려 익숙하기까지 한 전개와 결과를 보여준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책이 가지는 미덕이라는 것은 앞서 말한 억울하고 원통한 소년의 소박하지만 자유로운 모험담이라는 점에서다. 미시시피강을 헤집고 다녔던 톰소여나 허클베리핀 정도의 막무가내와 풍자보다는 훨씬 점잖지만 영문도 모르는 체 보물덩어리를 선사받은 이 영국소년의 여름방학은 작가의 꼼꼼한 필치로 묘사되는 해티와 정원으로 인해 아기자기하고도 정감있는 시간의 모험을 치뤄낸다.


다시 정원으로 돌아가본다. 곳곳에 거위 같은 동물들과 식물들이 자생하고 있고 타고 올라갈 수 있는 커다란 나무들이 여기저기에 자라있으며 혼자라서 힘들고 외롭지만 활달한 소녀가 자신과 놀아줄 친구, 나를 기다리며 비밀기지를 만들고 있는 곳. 물론 작가는 그 고정된 시공간이 가질 한계와 비영속성을 잘 알고 있다. 꿈이 가진 허상의 위험함 또한 알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달콤한 공간이라면, 그 푸근함이 비록 꿈속에서나마 느껴 마땅하다는 건 충분히 용인한 바였다. 그렇다면 그 낭만적인 정원, 누군가의 환상 속에 들어간 내가 그녀의 추억이 되고 그녀 또한 나의 꿈이 될 수 있다면 이 어찌 멋진 일이 아닐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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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9-25 02: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hallonin 2005-09-25 2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화는 앞으로 몇개 더 할 생각.... 한창 읽고 있는 중이라.

2005-09-26 02: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hallonin 2005-09-27 0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헐. 쓸 생각도 있답니다-_-

2005-09-27 00: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hallonin 2005-09-27 0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헐-_- 그 생각도 있답니다-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