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 톰의 정원에서 시공주니어 문고 3단계 14
필리파 피어스 지음, 수잔 아인칙 그림, 김석희 옮김 / 시공주니어 / 1999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톰의 한밤의 정원.' 뭐랄까. 다 읽고 난 뒤에 확인하게 된 이 원제가 전해주는 진한 소유감과 은밀한 공모의 냄새는 한글로 번역된 제목인 '한밤중 톰의 정원'이 만들어내는 주변화된 인상을 낯설게 보이게끔 만들고 있다. 한밤중 통의 정원- 이렇게 되면 읽는 이로 하여금 제삼자가 된 인상을 강하게 주어 처음서부터 톰의- 라고 할 때 만들어지는 일체감이 약하다고나 할까. 그렇잖아도 정원이란 공간은 우리에게 그리 친한 공간이 아닌데 말이다.


사실 이 책의 주요 소비대상이 될 한국의 아이들에게 정원이라는 공간은 그리 익숙한 공간이 아니다. 그것은 국가명이 정원의 한 양식으로 존재할 정도로 정원에 대한 개념이 발달해 있는 영국에 비추어 정원이라는 개념에 대해 익숙해지려면 양반층도 아닌, 거의 왕족 수준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우리나라의 역사적 전통 때문이기도 하겠고 개화와 근대화 이후 정원이라는 개인적인 공간의 소유보다는 아파트와 같은 밀집형 공간에 더 익숙해야 했던 우리들이기 때문이기도 하겠다. 물론 우리네에게 있어서 자연을 억지로 가꿔서 개인적인 공간으로 만든다는 개념은 너무 인위적이고 파괴적인 발상이라 그에 익숙치 않은 탓도 있다. 더군다나 여기서의 정원은 빅토리아 시대라는 영국적 노스탤지어를 자극하는 시공간이기에 톰, 정확히는 작가가 의도한 정도의 살가움을 느끼기란 힘들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름의 벽두에서부터 즐거운 계획들에 대한 가능성을 상당 부분 박탈 당한, 그래서 내내 툴툴거리고 있는 톰의 모습에서 우리의 옛시절, 혹은 지금의 나를 발견할 수가 있다. 세상 어디에 사는 인간이든 놀려고 하는데 방해받으면 열받기 마련이다. 이렇게 아주 단순한 사실에서부터 이 동화는 서서히 맞이하게 될 톰의 경이와 우리의 소망이 일맥상통한다는 것을 조금씩 보여준다.


어른의 명령에 의해 생활을 바꿔야 하는 톰 롱은 대개 그와 같은 상황에 처한 아이들 대부분이 그런 것처럼 첫장에서부터 불만에 가득차 있다. 톰은 강제로 집을 옮겨야 하기 때문에 자신이 놀 공간이 없어졌을 뿐 아니라 그로 인해 즐거운 여름방학을 보내게 될 모든 기회를 박탈 당한 소년이다. 심지어 그렇게 해서 도착한 이모네 집은 형편없는 정원에 다소 황량하기까지 한 인상을 풀풀 풍기고 있으며 히스테릭한 할머니 관리자라는 전형적으로 스트레스를 안겨주는 인물까지도 기다리고 있다. 이 불행한 소년에게 기적이 찾아오지 않으면 도대체 누구에게 기적이 찾아오겠는가. 실은 기적은 정말 불공평하게 찾아오는 법이지만 아무튼 톰은 자신만의 환상의 정원을 발견하게 되고 그곳에서 외로운 소녀 해티와 만나게 된다.


이 책이 1958년에 나왔다는 걸 기억하자.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 작품의 플롯은 지금의 우리들 눈으로 볼 땐 그리 엄청나거나 획기적이진 않고, 오히려 익숙하기까지 한 전개와 결과를 보여준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책이 가지는 미덕이라는 것은 앞서 말한 억울하고 원통한 소년의 소박하지만 자유로운 모험담이라는 점에서다. 미시시피강을 헤집고 다녔던 톰소여나 허클베리핀 정도의 막무가내와 풍자보다는 훨씬 점잖지만 영문도 모르는 체 보물덩어리를 선사받은 이 영국소년의 여름방학은 작가의 꼼꼼한 필치로 묘사되는 해티와 정원으로 인해 아기자기하고도 정감있는 시간의 모험을 치뤄낸다.


다시 정원으로 돌아가본다. 곳곳에 거위 같은 동물들과 식물들이 자생하고 있고 타고 올라갈 수 있는 커다란 나무들이 여기저기에 자라있으며 혼자라서 힘들고 외롭지만 활달한 소녀가 자신과 놀아줄 친구, 나를 기다리며 비밀기지를 만들고 있는 곳. 물론 작가는 그 고정된 시공간이 가질 한계와 비영속성을 잘 알고 있다. 꿈이 가진 허상의 위험함 또한 알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달콤한 공간이라면, 그 푸근함이 비록 꿈속에서나마 느껴 마땅하다는 건 충분히 용인한 바였다. 그렇다면 그 낭만적인 정원, 누군가의 환상 속에 들어간 내가 그녀의 추억이 되고 그녀 또한 나의 꿈이 될 수 있다면 이 어찌 멋진 일이 아닐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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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9-25 02: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hallonin 2005-09-25 2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화는 앞으로 몇개 더 할 생각.... 한창 읽고 있는 중이라.

2005-09-26 02: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hallonin 2005-09-27 0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헐. 쓸 생각도 있답니다-_-

2005-09-27 00: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hallonin 2005-09-27 0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헐-_- 그 생각도 있답니다-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