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없어도 먹고 살 수 있습니다
요시나가 후미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5년 9월
평점 :
품절


요시나가 후미라면 반사적으로 집어들게 되는 훈련된 손이 일을 그르쳤다.... 가뜩이나 긴축경제를 몸으로 겪고 있는 마당에, 음식소개만을 위해 총력전을 펼치는 만화책을 집어들다니.... 제목하야 [사랑이 없어도 먹고 살 수 있습니다]. 오호라, 저 제목 좀 봐라. 당당하게 성욕을 능가하는 식욕의 위대함이라는 진리을 설파하는 동시에 아주 대놓고 먹는다는 행위에 대한 찬란한 예찬을 풀어놓고 있는 제목을.

동경을 중심으로 한 요시나가 후미의 음식점 기행기랄 수도 있는 이 작품은 [서양골동양과자점]에서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것이었지만 '일할 때랑 잘 때 빼고는 거의 하루종일 먹는 것만 생각하면서 살아왔다'는 작중의 비장한 대사에서처럼 작가가 좋아하는 음식에 대해 수다를 떨려고 작정을 하고 나선 결과물이다. 그 취지에 지나치게 걸맞게 프랑스, 중국, 일본, 한국에까지 이르는 다양한 양식의 요리들을 먹어치우면서 인물들이 뱉어내는 수다는 위속 산성농도를 기하급수적으로 올려놓는데 탁월한 기여를 한다. 더군다나 그것이 나처럼 밤인 경우엔 그 고통의 농도가 더욱 진해질 듯 싶다.

읽기 전, 음식과 음식점에 대한 소개가 주를 이룬 만큼 작중의 이야기가 부실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있었지만 그 이야기 부분도 의외로 괜찮은 맛이 있다. 의례적인 당연함이 섞인 처음 들어가기 전, 이야기는 모두 픽션이고 실제인물과는 상관이 없다는 작가의 말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명백하게 주인공이 'Y나가 F미'라고 묘사되는 차에야, 더군다나 그 사람의 직업이 '남자들간의 애널섹스 등등을 그려 생계를 잇고 있는 31세'라고 하는 데에야, 어찌 오버랩을 안 시킬 수가 있겠는가. 물론 극적 흐름을 위해서 이야기에 공상, 망상, 허상, 호접몽 등등이 첨가가 안됐을 리가 없겠지만 요시나가 후미라는 만화가의 일상과 사고관의 단면을 단편적으로나마 잡아낼 수 있다는 점에서도 작품의 장점은 보장될 듯 싶다. 또한 원래의 의도대로 동경 부근 음식점들에 대한 안내서적으로서의 역할도 충실하여 각 음식점들의 주소에서부터 영업시간, 교통편, 지도, 주차장 유무까지 기재되어 있다.

어찌 생각해보면 당연한 얘기지만 이 작품에서 요시나가 후미의 창작품들이 지금까지 보여줬던 쿨한 게이라든지, 복잡다단한 인간관계라든지, 손가락 긴 멀대남이라든지 하는 것들과 그들의 '쌔끈한' 농탕질은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여기선 그녀 특유의 입삐죽 옆모습조차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노처녀 작가의 칼로리 넘치는 음식점 기행기를 따라다니며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어깨에 힘 뺀 작가와 그녀의 주변인들이 보여주는 보통 사람다운 모습들과 잘 만든 음식 하나하나에 환호하며 시시껄렁한 연애담과 인간관계들을 풀어내는 평범한 이야기들이다. 그렇지만 그 심심하고 정감있는 풍경들이 독자에게 실망을 안겨줄 것 같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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