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NA]라는 잡지가 있었고 거기엔 다른 작가들의 만화와 함께 김진태의 [호텔 캘리포니아]도 연재되고 있었다. 다른 김진태의 작품들과 별 다를 바 없는 역시 그 '김진태'표 개그를 여실히 드러내는 작품이지만 무려 열린책들에서 깔끔한 디자인으로 박혀져 출판된 것을 보면 김진태 자신이 가장 좋아한다는 쌍팔년도 미국 감옥 영화들에 대한 애착이 착실하게 반영됐다는 이 작품에 대한 작가의 애정이 남다른 듯 하다.

핸드폰 전성기 시대의 산물로 종합문화잡지를 표방하던 그 월간지는 패셔너블한 센스가 돋보이는 꽤 괜찮은 읽을거리였거니와 핸드폰 이용자들의 주머니를 거덜내서 채워진 탄탄한 회사 재정을 반영하듯 만지면 흥분되는 훌륭한 종이질을 자랑하고 있었다. 거슬러 올라가, 1990년대 말은 월간 [페이퍼]를 비롯한 무가지-종합문화잡지의 춘추전국시대였던 때로 [런치박스]라든지 월간 [베스트셀러] 같은 잡지들이 홍대 인디씬의 활성화와 맞물린 젊은 세대의 전위적 경향에 편승하여 우후죽순으로 솟아나고 무너지고를 반복하던 때였다. [NA]는 그 전통의 마지막 적자였다.

인디씬이 시간과 대중에 패퇴하여 마이너한 영역으로 고착되고 비슷한 류의 종합문화지들이 제대로 수익성을 확보하지 못하자 그 낯설었던 이미지들은 진짜로 낯선 것이 되어서 지하로 숨어들었다. 월간 [페이퍼]는 유료로 전환되고 드럭은 M&A를 치뤄내야했으며 인디락클럽이 무너진 자리에 힙합클럽이 들어서고 클럽이 세미드레스들의 유희장으로 바뀌는 시간 동안에 [NA]는 시대를 착각한 것처럼 모습을 드러냈다. 아니, 어쩌면 그것은 이동통신사의 빠방한 재력만이 커버가능했던 잡지의 컨셉과 젊은층의 기호를 묶어두고 싶어했던 물주측의 불안한 동거였을 것이다. 무가지로 배포되던 [NA]는 1년을 채우지 못하고 폐간된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의 잡지들이 보여줬던 미학적 성과는 이젠 웹페이지들의 것이 됐다. 그러나 스캔본 만화책을 볼 때의 불편함이 여전히 만화'책'의 가치를 보장해주는 것처럼 손에 잡히는 종이의 재질을 느끼며 그 낯설고 신선했던 감각을 되살려보고 싶은 생각이 가끔씩 든다. 나는 아직 신세기에 도달하지 못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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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와 뼈

느리다. 일본영화의 전반적 특성인가.... 하는 생각이 부럭부럭 드는 2시간 20분. 별로 안 과격함.



굿걸

계속 침울한 표정의 '레이첼'만 생각나는 바람에, 역시 고정된 이미지에서 달아나는 것은 힘들구나.... 라고 끄덕끄덕. 영화 자체는 괜찮게 만들어진 루즈중산층의 위기 장르. 볼만했다.



핫칙

왜 봤어?

-안나 페리스가 콜린 하스겔인 줄 알았거든....



수퍼 사이즈 미

결론 : 먹지 말자...

는 이미 영화를 보기 전에 나온 답이고, 그보다 좀 더 부차적인 차원의 문제들에 대한 답을 인간 마루타와 함께 보여준다. 의외로 우울한 편.



역도산

기억나는 건 설경구 하나.

 

이틀 동안 영화만 봤는데 기억나는 건 이정도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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긁적긁적 2005-04-23 2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우~ 너도 콜린 하스켈을 알고 있군. 애니멀의 콜린 하스켈은 흔해빠진 수사인 "상큼한" 매력이 뭔지 알려주는 장본인이지. 묘하게 매력있단 말야. 파멜라와는 다른 무언가가.. 훗.

hallonin 2005-04-24 1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니놈도 콜린 하스겔을 알고 있다니.... 참고로 난 그녀의 등짝에 반했지. 그런데 파멜라를 여따가 갖다붙이는 건 아무리봐도 옳은 처사가 아니야...-_-
 

아직 짧은 견문이지만 감히 말하자면 난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근대소설들과 모더니즘의 기운이 담긴 소설들이 좋다. 물론 제임스 조이스처럼 난감한 작가들도 떡하니 버티고 있는 것이 그 시기이지만 좀더 세세하게 들어가자면 19세기 전반의 탐미주의적 고딕 호러 소설들과 에드거 앨런 포에서 시작되어 제임스 조이스로 완성되기 바로 전인 딱 그 시점이 나의 취향인 영역이다. 그 시절의 소설들은 단아한 서술과 설명, 그에 대비되는 현란한 수사가 동반되는 대사들이 대치하는 가운데에서 기괴한 환상과 일상 속에 가두어진 욕망이 발전한 음침한 광기들의 꿈틀거림이 느껴진다.

오늘 도서관을 갔더니 이 책이 나와있었다. 어느 출판사, 어느번역자에 의한 것인지는 급한 마음에 알 수 없었지만 2004년 12원에 나란히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걸 보니 100년이 지난 다음이라 판권 문제가 크게 걸리지 않는 영역에 속하게 됐나 보다. 셔우드 앤더슨은 에드거 앨런 포와 제임스 조이스의 사이에 위치하여 그 둘의 가교를 잇는 모더니즘의 중반을 장식했던 인물이다.

몇  년 전에, 딴에는 영어공부를 해본답시고 펭귄북스에서 나온 원어판으로 구입하여 프롤로그라 할 수 있는 [괴상한 사람들에 관한 책] 파트를 낑낑대면서 번역하고는 집어던진 기억이 난다. 그때나 지금이나 게으름은 천적이야 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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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에 제작됐으니 보기로 맘먹은 이후로 어언 7년여가 지난 다음에야 드디어 보게되었다.

난 내가 이 영화를 좋아하게 되리란 걸 7년 전부터 알고 있었다. 처음, 트렌트 레즈너가 만든 또하나의 lost highway를 들었을 때부터. 데이빗 린치는 다양하고 겹겹이 쌓인 심연을 보여준다. 나는 이 영화에서 지금까지 접했던 회화의 모든 장르들이 살아서 꿈틀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것은 영화의 승리다.

실로 괴물 같은 영화다.



http://music.bugs.co.kr/Info/album.asp?cat=Base&menu=m&Album=13331

말이 필요없다. 앨범에서나 영화 속에서나 거의 유일하게 휴식시간을 안겨주는 조빔의 트랙이 빠져있는 것이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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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니 집에 나나난 키리코의 만화가 한 권도 없는 상태였다. 마이너한 만화들의 해적판 출간으로 명성이 높은 하이북스에서 나온 해적판 [water]와 [아픈 사랑]을 모씨에게 빌려줬기 때문. 해서, 그녀의 다른 작품, [호박과 마요네즈]를 맘잡고 구입하게 됐다. 정식으로 출간된 닉스미디어판을 구했으면 좋으련만, 현재 도매점에서 구할 수 있는 것은 하이북스 버전밖에 없었다.

[water]의 한 에피소드에서 내가 아는 어떤 여자를 발견할 수 있어서 놀랐던 기억이 난다. 심지어 그 에피소드의 도입부분에서 그 우울한 주인공은 어떤 사진에 찍혀있는 내가 아는 그녀와 똑같은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그 사진을 찍었던 이가 이 만화를 봤던 것일까. 아니면 그 포즈가 단순히 흔한 포즈여서 그랬던 것일까.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 에피소드의 주인공은 고통에 겨워 울고 있었고 당시의 그녀 또한 그랬다.

그리고 오늘, [호박과 마요네즈]에서 나는 내 주변에 있는 이중 한 명을 다시금 만나게 된다. 이런 세상에, 이번엔 헤어스타일까지 비슷하네. 재밌는 일이다. 그러나 나나난 키리코의 만화 속 주인공들이 썩 행복하지 못한 것처럼, 내가 대입하게 된 그 두 인물 또한 현실 속에서 고통스러워하는 이들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치유라는 것이 가능한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강박은 죽였다 싶으면 다시금 돌아오는 유령 같은 존재다. 그래서 되돌아오는 고통에 지친 이들에 비해 아직까지 눈물이 치유의 수단이 될 수 있는 이들은 충분히 행복한 이들이다. 때때로 무슨 일을 해야할지 모르게 되거나, 혹은 아무 말도 하지 말아야 마땅한 순간이 찾아오기 마련인데 나에겐 그런 경험이 너무 잦았다. 그럴 때마다 느끼게 되는 답답함은 시간을 두배로 늘려놓는다. 그래서 아무렇지 않은 척 연기하는 것조차 무척 힘든 일이 되어버린다.

나나난 키리코는 이 작품에서 여전히 사랑의 상처를 다루고 있다. 건조한 작화와 최소한의 필요한 말만 동원되서 능숙하게 짜여진 이 흔하지만 섬세한 이야기 속에서 그녀는 희망을 이야기한다. 언젠가는 예전처럼 가지게 될 그 안온한 일상에 대한 찬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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