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부순다.
이 영화의 제작진이 사우스파크의 제작진이라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가 보여줄 일련의 성향이란 것은 작중에서 그들이 노래 하나를 바쳐가면서 씹어대는 마이클 베이가 [나쁜녀석들] 속편을 제작한다고 발표했을 때 정도로 뻔한 것이었다. 물론 그 더럽게 재미없는 블럭버스터는 막판에 생뚱맞게 소규모 [더 록]을 선보이는 통에 꽤 실험적인(동시에 돈도 많이 든, 더욱 재미도 없어진) 영화가 되어버렸지만 [팀 아메리카]는 그딴 미덕은 엿이나 먹으라며 한치의 오차 없이 욕설과 이죽거림의 고속도로를 그대로 달려간다. 이 욕설과 이죽거림의 블럭버스터는 구조적으론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대한 비아냥거림이었던 극장판 [사우스파크]의 틀을 그대로 빌려온다(김정일에게 노래 한소절 부르게 만들어주는, 전작에선 후세인에게 제공했던 배려까지). 물론 블럭버스터의 법칙에 따라 더 지저분하고 더 노골적으로 만들어서. 2차원 종이에서 SD에 가까운 인물들이 보여주는 살육잔치보다 3차원으로 보다 리얼하게 발전된 인형 캐릭터들이 벌이는 살육과 섹스극은 꽤 자극을 주는 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팀 아메리카]는 모든 것을 씹는다. 전례에 비추어 조지 클루니나 멧 데이먼, 팀 로빈스 같은 인물들이야 이젠 익숙할 정도이긴 하지만 에미넴과 마이클 무어 같은 씹기의 대가들마저 사냥감이 된다. 그런데 여기서의 씹기는 전작에서의 씹기처럼 마냥 느긋하지만은 않다. 어째서?
얘네들 다 죽는다.
그들이 만든 영화 중 내용적으로나 시기적으로나 가장 정치색이 강한 작품으로 완성된 [팀 아메리카]는 '마이클 무어의 영화를 보고 민주당을 지지하는 인간들이야말로 공화당보다 문제있는 핫바리들이다'라고 주장했던 그들의 엄격한 가치중립적 정치성에도 불구하고 우파적 무정부주의의 유령에서 자유롭기가 힘든 작품이다. 마이클 무어의 극영화인 [캐나다 베이컨]에서 모티브를 빌어온 듯한 전작 [사우스파크] 극장판에서 캐나다라는 존재는 그 정치적 엉뚱함 때문에 개그적인 스타일로 밀어부쳐도 정치적함량에 대한 의문이 상당 부분 희석될 수 있었지만 여기서 드러나는 북한과 중동이란 존재들은 실존하는 세계정치의 자극적인 기능축이란 점에서 쉽게 정의를 내리기가 힘들어지는 아이콘들이다. 그래서 '팀 아메리카'의 입을 빌어 막판에 설파되는 약한놈-미친놈-엄한놈의 삼자 정의는 꽤 위험스럽게 보여진다. 왜냐하면 그 단순무식한 논리가 보여주는 파시즘에 우파적 사고관의 결정체가 들어있기 때문이고 그것이 상당한 설득력을 가진다는 점에서다. 물론 그 삼자정의란 것이 영화속 어떤 '술주정뱅이'의 입에서 나온 것을 그대로 빌어온 것이라는 것과 연기라고 하는 일종의 사기극 수단의 연장에서 보여졌다는 점에서 제작진이 보여주고자 하는 농담의 일부라는 것을 증명할 수는 있지만. 아마도 또하나의 너저분한 농담극이었어야 할 이 영화를 사우스파크를 볼 때처럼 즐겁게만 볼 수 없는 것은 '팀 아메리카'가 내세우는 정의란 것의 논리가 그 단순무식함에도 불구하고 진실을 그대로 옮겨놨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여기서 보여지는 극도의 희화화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기 힘든 것은 아마도 이 이야기가 우리 현실과 지독하게 겹치는 것인 점에서도 찾을 수 있겠다. 이젠 헐리웃의 전통이 되버린 듯 중국식 궁전과 차이나 드레스가 돌출하는 영화 속 북한이란 공간의 환상성은 역으로 북한이란 국가를 바라보는 미국의 시선을 '현실적으로' 보여주는 듯 하다(물론 이 씹고 싸는 영화 속를 원맨쇼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활약한 트레이 파커는 북한에 김정일외에 뭐가 있는진 신경도 안 썼을테지만 말이다). 그리고 미군의 폭격은 영화속 [팀 아메리카]가 그런 것처럼 이미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의 문화유적들을 아작내놓은지 오래다. 여기서 보여지는 그 무수한 극단적 패러디들은 기이하게도 대부분 현실로 드러난 것들이다. 그 황당하지만 이제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현실 때문에 이 웃을 수 없는 시뮬라시옹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끊임없이 의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