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코가... 저 코가 움직인다!

블러드 뿌라수가 2화까지의 황스런 전개로 별반 관심을 못 끌고 있는 가운데 이번에 새롭게 방영이 개시된 신작중 가장 이색적인 작품이라면 바로 이 [투패전설 아카기]. [도박묵시록 카이지]라고 쓰고 젊은이들의 바이블이라고 불리우는 작품을 만든 후쿠모토 노부유키가 근대마작에 연재했던 원작을 애니화한 작품이다. 마작이라는 인기없는 소재를 채택한 덕에 우리나라에는 아직 안 나온 상태.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당연한 것처럼 원작을 그대로 옮겨놓고 말았다. 더군다나 위화감도 없다.


이건 뭐 거의 100% 옮겨놓은 것 같다.

오프닝에서부터 아주 땀내나는 아저씨들의 애환을 절절하게 느끼게 만드는 주제가로 시작해서 마작에 목숨을 건 사나이들의 세계를 착착 그려나가고 있는 이 작품은 원작에서 보여주는 노부유키 특유의 연출을 애니메이션으로 어떻게 옮길까에 상당히 고민했던 듯 싶다. 그 결과로 마작판은 3D로, 나머지는 2D로 그림으로써 마작판이라는 비좁은 공간에서의 박력 넘치는 연출을 아주 매끈하게 잘 뽑아내고 있다. 또한 작가 특유의 느낌표 팍팍 들어가는 인물 나레이션이라든지 저 해결 불가능한 표정이라든지. 그리고 중요한 건 그 박력! 홍콩 가기 직전인 인물들의 심리를 극대화시키는 원작 특유의 박력도 그대로 살려놓고 있어서 노부유키의 팬들이라면 그냥 넘길 수가 없다. 더군다나 출판 가능성도 별로 없다-_-


악역과 선역의 구분이 없는, 오직 적자생존의 법칙만이 존재하는 하드보일드한 세계. 개인적으론 노부유키 원작의 여자들을 봐서라도 여자 캐릭터는 나오지 않았음 하는 바램이다....-_-

 

 

 



GBC용 [데지코의 마작파티]. 한글화도 되어 있어서 마작 배우기에 딱이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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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2005-10-28 2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옷~!+.+ 너무 보고 싶어요!

hallonin 2005-10-28 2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작에 대한 지식이 없다 해도 즐길 수는 있겠으나.... 역시 마작을 알아야 재밌을 듯.
 

끝을 보길 미루고 미루던 [써전 아이즈]를 결국 완결 40권까지 읽고야 말았다.... 음.

아이큐점프의 [드래곤볼]이 대박을 치면서부터 후속주자로 나온 소년챔프에서 그에 대한 대항마로 적극적인 홍보를 펼쳐가며 지면에 연재를 깔기 시작했던 것이 바로 이 [써전 아이즈]였다. 요마물이라는, 당시 우리나라 환경에서 더없이 낯설었던 장르와 인도신화를 바탕으로 깐 흡입력 있는 설정들, 간간이 엿보이는 [우로츠키 동자]와의 이미지적 일치점, 그리고 무지막지하게 귀여웠던 히로인 파이 덕에 상당한 매니아층을 만들어내는 덴 성공하지만 만화의 단계를 넘어선 만화였던 [드래곤볼]에는 역부족이었던지라 결국 대원에선 2부 정도까지 연재를 하고는 후속 판권계약 및 연재에 있어서 지지부진한 입장을 보이고 있었고 그 도중에 퀄리티가 제법이었던 '무삭제' 해적판이 한 차례 나왔으며 그로 인해 인기를 다시 얻게 되자 서울문화사에서 판권을 인수하여 재출간했다.

소년챔프 별책으로 출간 연재되었던 [써전 아이즈]의 2부는 무지막지한 가위질 및 화이트질의 생생한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이야기 중후반 즈음이 되면 파이가 속옷 차림으로 내내 왔다갔다 하게 되는데 그걸 일일히 화이트칠과 엉터리 사인펜질을 통해 억지로 슈즈를 입힌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한마디로 아주 개판이었는데, 그 무지막지한 가위질을 본 다카다 유조가 밥맛이 떨어져서 더이상의 출판계약을 허락하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

앞서 말한 것처럼 [써전 아이즈]는 요마물의 능숙한 변용이었다. 기쿠치 히데유키의 소설이나 마에다 토시오의 애니메이션에서 보여지는 요마물의 성적인 표현들을 청년지 수준으로 줄이는 동시에 초반에 보여줬던 소소한 퇴마 에피소드에 이어서 힌두신화에서의 적극적인 차용을 통한 큰 줄기로의 전개로 이어지는 서사구조에서의 단단한 설정과 장치들, 그리고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펼치는 로맨틱한 이야기는 잘 빠진 만화의 완성을 기대하게 만들어주기에 충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써전 아이즈]는 마지막으로 가면서 길을 잃었다. 15년이란 긴 연재기간 탓이었을려나. 사건을 벌리다 보니 수습이 안되는 영역으로 들어서게 된 작품은 초기에 보여줬던 신선함은 거세되고 [드래곤볼] 풍 이미지들과 과도하게 난무하는 매력없는 액션씬, 큰 사건의 강조만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루즈한 전개로 작품을 사랑하던 많은 팬들에게 실망을 준 것도 사실이다.

고백하건데 [써전 아이즈]는 어린 시절의 나를 완전히 사로잡은 작품이었다. 이 작품을 보기 위해 매주마다 소년챔프를 모조리 사기도 했었고 애니메이션이라든지 관련 정보의 수집에 있어서 이 작품만한 애정을 바친 만화가 없었다. 어린 시절의 정열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그만큼 [써전 아이즈]는, 적어도 내가 그렇게 하던 시절엔 그리 할만 한 가치가 충분한 만화로 나아가고 있었다. 영원을 살  수밖에 없게 된 소년과 원죄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소녀. 그리고 무한한 시간과 공간 속에서 보여지는 둘의 만남이란 주제는 너무나 매력적이어서 환장할 지경이었다. 아직도 소년챔프에 연재됐던 1부의 마지막은 잊혀지지가 않는다. 스스로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소녀를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의 증거가 되는  남자가 오직 그녀를 찾아내기 위하여 끝없이 방랑하게 되는 마지막 씬. [써전 아이즈]는 어쩌면 좀 더 일찍 끝났어야 하거나, 후반부의 길과는 다른 길을 선택해야 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1부의 마지막을 그대로 가져온 40권의 마지막만큼은, 역시 좋아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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긁적긁적 2005-10-28 2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지막지한 부록을 노리고 소년챔프 1권을 샀었던 기억이 난다. 마법사의 아들 코리도 연재되었던 기억이 나누만. 언젠가 투니버스에서 본 써전아이즈 OVA 백사편(?)인가에 나오는 BGM의 멜로디가 구슬프게 아름다웠다.

hallonin 2005-10-29 1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러브히나가 연재되던 찬스도 안 사던 너가 살 정도의 부록이란 대체 무엇이었더냐...

배가본드 2006-07-02 04: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번째 보는 글이지만 눈에 띄길래.. ㅋ
중딩때 해적판을 접한이후 고딩때 완결을 찍었는데 그래도 그 대단원이 막을 내렸단 사실만으로도 기쁨이 몰려오던 만화 ㅎㅎ
 

03.07.04 22:41


이런 영화에 대해서 무책임한 이들이 흔히 하는 얘기가 보고서 있는 그대로 느껴라, 이다. 글쎄, 적어도 이 작품에 대해서 그렇게 말하는 것은 한심한 것이라고, 그렇게 말해주고 싶다. 올해로 28살이라는 감독은 이 작품에 자신의 십대 시절을 투영시켰으며 노스탤지어와 서브 컬쳐로 뒤섞인 정치적인 코드들을 이곳저곳에 배치함으로써 알지 못하면 거의 즐길 수 없게 만들어놓고 있다. 지나간 시간에 대해 얘기한다는 것은 그 시간에 대해 이야기 할 의지가 있어야 가능한 얘기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본인, 1988년에 대한 정보나 경험이 꽤나 빈곤한 상태라, 상당히 좌절스런 기분으로 이 글을 쓰고 있다는 것 또한 알아줬으면 좋겠다. 따라서 다음 이야기는 상당히 원론적일 모양새로 나올 것이다.

1988년의 미국은 보수주의자들의 시대이자, 그 틈이 드러내어진 시기였다. 이란-콘트라 사건은 1980년부터 시작된 레이건 정부의 도덕성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히면서 진정한 악의 축이 어떤 나라인지를 만천하에 보여준 사건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정상적-도덕적-평화적이라고 불리는 키워드들에 가식적인 속임수라는 팻말을 달게 만들었으며 모든 분명한 것들은 그 지위를 의심 받게 만들어버렸다. 평온함 뒤에 숨은 불온함은 언제 그 모습을 드러낼지 모르게 되었고 무의식 적으로 불안이라는 유령이 사람들에게 스며들기 시작했다. 비록 이란-콘트라 사건은 개인의 입장에서 보면 별 의미가 없는 일이기도 했지만 무의식적으로 도덕적 패배감을 지워버리는 건 힘들었을 것이다. 소수들만의 근심이었던 에이즈가 숨겨왔던 그 두툼한 몸집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슬럼가에서는 크랙이 창궐하고 있었다. 전투로써의 랩이 일 년 전 퍼블릭 에너미에 의해 시도되었고 일 년 후엔 지상의 사회를 지탱하기 위해 지하의 악마와 손잡는 이야기인 [양들의 침묵]이 토마스 해리스에 의해 쓰여졌다. 신경증으로 경계가 불분명해진 몽롱한 세상에서 진보는 한참 우회하고 있었고 보수는 얻어맞고 구원 받으며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영화는 도니 다코가 어느 길가에서 잠들어있다 깨어나는 걸로 시작된다. 그는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고 관련된 약을 중독적으로 먹고 있으며 밤이면 몽유병에 걸린 것처럼 어디론가 나가버리기 일쑤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방으로 난데 없이 비행기 엔진이 떨어져 내려 집안을 부숴버린 밤, 꿈결처럼 바깥으로 나간 도니는 기괴한 토끼 가면을 쓴 프랭크(마땅하고 당연한데다 진부한 느낌까지 들지만 이 순간, 앨리스라고 외쳐도 좋다)에게서 종말에 대한 계시를 받는다.

이후 꿈과 일상의 경계는 없어진다.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는 프랭크는 도니에게 지시하고 그 지시에 따르는 도니의 행동은 일탈적이고 불온한 모양으로 드러나지만 그 결과는 안정된 일상의 어둠을 까발리는 도구의 역할을 수행한다. 그것은 사실을 모르는 타인들(그 상황이 전개된 모양에 대해서나 그 실체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나)의 입장에선 공포와 불안의 현상이다.

공포.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의 한 축은 바로 저 공포다. 짐 커닝햄(13일의 금요일 감독인 숀 커닝햄을 패러디)에 의해 이뤄지는 난데 없는 공포 극복 프로그램에 의하면 일탈은 공포에서 나온다. 삶에 대한 두려움, 자신감이 없는 것에서 나오는 두려움. 그는 비디오를 통해 무턱대고 밝고 즐겁게, 자신에게 자신감을 가지라고 말한다. 그러나 자신조차 모르는 미지의 존재인 자신을 무슨 수로 신용하라는 건지. 내내 웃으면서 밝고 건강한 빛의 세계만을 보여주는, 대개 별 효과를 올리지 못하는 정신 병자 치료 프로그램 같은 비디오나 만드는 그를 도니는 무의식적으로 증오한다. 그도 그럴 것은 그와 가장 대치된 지점에 서있는 것이 도니이기 때문이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프랭크는 미지의 존재이며 무의식의 공포를 상징한다. 도니는 두려워하면서도 프랭크-공포에게 자신을 맡긴다. 알 수 없는 공포가 들려주는 종말에 대한 말을 신용함으로써 그는 덮어두고 모든 게 다 잘될 거라는 파시즘적인 억지를 처음부터 거부하고 일상에 내재된 불안을 직시하게 된다.
도니의 불안은 '모른다'는 것이다. 과정은 물론 결과조차. 대체 종말 하루 전까지 할로윈 파티가 벌어지는 이 흔한 일상에서 종말은 어떤 형태로 드러난다는 말인지. 모든 키는 그에게 쥐어져있는 채로 모든 일이 벌어질 시간만을 기다리는 입장인 그는 답답하다. 하지만 그가 의지를 갖게되는 순간이 그 계시가 성취되는 순간이라는 건 아이러니이자 이야기의 완성이다. 그는 더이상 두려울 게 없어졌으니까. 불안해 할 필요도 없어졌으니까.

영화가 희대의 로맨스물로 탈바꿈하는 건 이 순간이다. 산재한 모든 사건들을 해결하는 것은 다름 아닌 '사랑'인 것이다. 영화 중간에서 사랑과 공포가 대척점에 놓인 걸로 표현된 것을 보고 도니는 반발한다. 삶은 그리 간단하지가 않다고. 말처럼 도니는 공포에 자신을 완전히 담금으로써 사랑을 얻게된다.(그 증거가 종말 하루 전, 그것도 할로윈 파티날 집에서 일어난다는 것은 꽤 티나는 상징이었다) 그래서 도니 자신에게 있어 무의식적인 공포의 실질적 현상-종말이라고 하는 것은 사랑의 파괴로 드러나며 그런 현상을 거부하기 위해 그는 자신을 버리는 쪽을 택하게 된다. 영화 내에서 그는 과거-기억을 상징하는-를 바꿀려면 어떤 것하고 바꾸겠느냐는 질문에 그에 대한 대답으로 자신의 존재라는 것을, 실천에 옮기게 된다. 정작 그렇게 되면 도니를 기억조차 못하게 되는 연인을 살리기 위해서 말이다. 그래서 그는 마침내 평온하게 된다. 구원이라면 더럽게 씁쓸한 구원이지만 한편으론 절절한 러브 환타지라고 해도 들어맞을 수 있겠다. 다만 이 결과가 상징하는 바가 '결국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으로 해라' 라는 보수 안착적 덮어버리기의 인상 또한 드는 것은 내 사소한 민감함 때문일까? 어쩌면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무려 자신마저 내던지고 모든 것을 용서할 '사랑'이라는데 말이다.

할 말을 만들어내자면 끝도 없이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은 영화를 만들어낸 건 감독의 비범한 재능이다. [도니 다코]는 작품이 드러내는 모든 상황들을 통제하고 있다고 보긴 힘들지만 과거의 멋진 작품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 모든 아이콘들이 집중된 인상을 보이며 온갖가지 서브 텍스트들을 양산할 수 있는 상호 소통하는 영화의 미덕을 잘 보여주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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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암에 대한 사전정보가 전무한 상태에서 접하긴 했는데.... 주인공 남매.... 화재 나서 엄마 잃고 집잃고 누나는 장님 된 상태에서 절에서 살아가다가 공부한답시고 암자로 떠난 동생은 굶어죽는다.... 라는 의외로 잔혹한 시추에이션이라 놀랐다-_- 보는 내내 상실과 그리움의 신파가 넘쳐나는지라 [플란다스의 개]가 생각나게 만드는데 그만큼 매끄럽지는 못하다는 느낌. 특히 누나의 역할이 좀 아쉬웠다고나 할까. 뭔가 더 나아갈 수 있을 거 같은데 어느 순간 멈춰버린 기분이 드는 것은, 후반에 죽음으로의 길을 걷게 되는 동생의 비중이 이야기의 비극성을 한순간에 확대시켰기 때문인 듯.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 불교에 대한 기술적으로 고려된 서사적 장치는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노골적이었거나, 혹은 너무 관대했거나 둘중의 하나가 불러 일으킨 리스크일 듯 싶다.

우리나라에서 애니메이션에 대해서 분석한다는 사람들은, 대부분은 90년대 말에 피시통신과 같은 지하에서부터 시작된 일본 애니메이션붐의 서브컬쳐적 역할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한 사람들로, 한마디로 말해서 매니아가 아니다. 그래서 매니아 계층의 사람들이 애니메이션을 다룬 서적들에 대해 공통적으로 불만을 가지는 것은 정보의 부정확함과 작품에 심취한 이의 정서를 이해 못하는 과잉 해석의 내용들이었다. 반면, 사회분석틀로 애니메이션을 접한 사람들은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그 흐름에 눈길이 간 것이지 애니메이션 자체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들뢰즈와 에드워드 사이드를 읽던 눈으로 본 애니메이션의 세계는 편견과 마초성과 파시즘이 난무하는 세계였으리라. 우리나라는 일본과는 달리 애니메이션 시장의 전통이 흔치 않았고 동시에 애니메이션이 사회축을 흔드는 역할을 한 적도 없었기에 매니아의 수준이 분석가의 전당에 오를 정도는 되지 못한, 여전히 향유자의 입장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고 소위 분석가들은 위에서 말한 것처럼 수박 겉햝기적 현학만을 보여줬을 뿐이었다. 매니아와 전문 분석가의 이런 깊은 골은 한국 애니메이션의 제작 현장에까지 이어져서 기술력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그에 걸맞는 애니메이션을 생산해내지 못한다는 비판을 꾸준하게 받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 한국 애니메이션에 대한 비판 중 가장 중요하면서도 가장 간과되었던 것은 바로 애니메이션 내의 서사에 대한 문제다. 우리나라 애니메이션이 가진 고질적인 문제인 것으로 끊임없이 인지되긴 했지만 아무도 뛰어들려고 하진 않았던 이야기 구조에 대한 문제제기에 적극적으로 뛰어든 이 책은 기대 이상의 성과를 보여준다. 비록 작품의 팬이라면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잘못된 정보들과 다소 편협하게 선정된 예시들이 안타깝긴 하지만 이 책에서 보여주는 분석에의 적극성과 고찰, 그리고 애정은 이런 류의 분석에 있어선 하나의 모범사례로 남을만 하다. 특히 저자 자신도 팬이라고 밝힌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서사흐름을 온갖 그래프와 모형틀을 동원해가며 풀어낸 부분은 압권.

처음 나왔을 때 읽고, 6년만인 이번에 다시 읽었는데. 글쎄.... 처음 읽었을 때와 느낌이 똑같다. 역시 별로다-_- 누군가에게 설명하는 건 재밌겠으나 스스로 즐기진 못 하겠다.

드디어 거사를 치루는 두 주인공. 그러나 아직도 하드하게 꽂는 단계는 아닌데.... 뭔 원작소설이 계절 이름 따서 4권씩이나 나왔다냐-_- 아직도 봄밤인 걸 보면 일년 채울려면 어지간히 대하물이 될지도.

똥폼 잡는 먼치킨 소년물의 일가를 착착 이뤄나가고 있는 소년점프의 주력작품. 스토리에서 보여주는 막 나가는 에스컬레이터 구조가 볼때마다 배실배실 웃게 만드는데 그런 뻔한 서사에 반해서 똥폼을 연출해내는 작가의 능력은 꽤 괜찮다. 그리고 소울 소사이어티에서 벌어진 반전이 출중했던 편. 안티 욘사마코믹의 선두주자? 개인적으론 소이폰의 팬이다-_- 18권은 감격스럽게도 그녀가 표지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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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너브러더스사의 이사진이 조엘 슈마허의 [배트맨]이 어딘가 맛이 갔다는 걸 알아채는데 어째서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 모를 일이다. 아무튼 뒤늦게 정신을 차린 워너브러더스는 아예 배트맨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거의 사운을 걸다시피 하면서 크리스토퍼 놀란에게 전권을 위임해서 만들어진 [배트맨]의 새로운 시리즈는 투자자들을 충분히 흡족하게 만들 정도의 내외적 성공을 거뒀다. [오션스] 시리즈를 우습게 만들 정도의 연기파 배우들의 대거 포진과 잘 나가는 각본가 데이빗 S. 고이어(그자신 개인적으로 상당히 안타까운 일이겠지만 [블레이드3]의 감독이기도 하다)의 균형감 있는 시나리오(물론 닌자놀이가 보여주는 쌍팔년도풍 B급스러운 냄새를 지우긴 힘들었다), 그리고 [인썸니아]로 관록의 배우들을 다루는 일과 정극 스릴러의 양쪽에서 신뢰할만한 실력을 보였던 놀란의 연출은 두시간이라는 러닝타임을 밀도감이 넘치게 메우고 있다(영화가 시작한 이후 한시간동안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정신이 없을 정도다).

다만 아쉬운 것은 액션씬에서의 놀라울 정도의 산만함과 빈궁함이다. 핸드헬드 카메라로, 그것도 클로즈업 상태에서 배트맨의 동선을 따라 휙휙 휘둘러서 찍은 것처럼 보이는 액션씬은 꽤 심각한 문제제기가 필요할 듯 싶다. 또한 그와 연계된 문제로 촬영을 장악한다는 점에 있어서도 놀란은 그림을 제대로 그리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블레이드 런너]를 추억하며 돈을 쏟아부은 세트와 미술은 의외로 제 위치를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이것은 정극 스릴러의 건조한 공간에 익숙했던 감독의 한계일지도 모른다.

그에 반해 리들리 스콧의 거대 서사물 2탄이라고 할 수 있는 [킹덤 오브 헤븐]은 그림을 그릴 줄 아는 감독이 화면을 어떻게 장악하는지를 모범답안처럼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중량감 떨어지는 올랜도 블룸과 뭐하러 나왔는지 궁금한 에바 그린의 두 축이 잠깐잠깐씩 화면에 틈입하는 살라딘역의 가산 마수드 하나도 당해내지 못하는 이 영화는 되려 우리가 통속적으로 중심축이라고 믿었던 것들을 주변화시킴으로써 풍경에 대한 감독의 연출력을 반대급부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물론 그게 전혀 의도된 바라고 보이진 않지만.... 영화 본편보다는 되려 역사공부 확인 차원에서 즐거웠던 영화. 하긴, 십자군 전쟁의 하이라이트라고 칭송되던 살라딘과 리처드의 싸움도 실제론 그리도 지지부진했었는데 어련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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