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빨간 커버처럼, '연대를 구하여 고립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라는 단호한 구호처럼, 이 책은 어언 40여년 전에 어느 캠퍼스에서 있었던 두시간 반 동안의 숨막히던 관념들의 뜨거운 결투 현장을 날 것 그대로 펼쳐 보여준다. 미묘한 일치와 동감이라는 어설픈 의식 따윈 저 멀리 날려버린 채 같은 시간, 같은 땅을 차고 앉았지만 다른 세계를 꿈꾸는 두 세력, 아니 더 파고 들어가면 거기서 또 세세하게 나뉘는 이 사람들의 토론은 날을 세운 채 독이 든 유머를 나누며 자신들이 틈입해 있는 현실을 쉬지 않고 재구성해낸다. 논의는 자주 논제를 벗어나고 모든 이야기들의 총합은 결과적으론 지나치게 큰 궤적을 그리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 모든 좌충우돌의 열기는 단순히 미시마 유키오와 동경대 전공투라는 특정 세력들 간의 알력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메이지유신에서부터 전후 일본, 그리고 명멸해가는 두 세력의 말미와 그 미래를 점지해보려고 하는 치열한 안간힘이자 밀집된 지적유희의 순간들 그 자체다(이 시점에서 야스다 강당은 이미 기동대에 의해 함락된 이후였으며 미시마는 다음 해에 저 유명한 할복 사건으로 생을 마친다). 그래서 뒤에 따라오는 이후 남은 이들의 당시에 대한 회고와 사유는 관념의 유희로서 15시간 동안의 또하나의 방대한 궤적을 낳고 만다. 이 모든 기록은 우리가 가진 미시마 유키오란 인간과 전공투라는 집단에 대한 의식의 재고를  촉구한다. 이 책과 함께 한다는 것은 어디로 튈지 몰라 종잡을 수 없이 격렬하고 화끈한 관념의 달리기, 그러나 치열하게 현실을 지향하는 과격하면서도 스트레이트한 달리기다. 기실 놀라운 것은 저 끝없이 육체-물질적인 영역의 주인들이었던 것 같은 이들의 놀라울 정도의 현학적 탐색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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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적 액션이란 무엇일까요? 홍콩의 와이어 액션이나 각이 딱딱 맞는 90년대 중반까지의 헐리웃 액션과 차별되는 우리나라 액션 디자인의 특징은 막무가내 엉겨붙기형 리얼 액션이 아닐까 싶습니다. 미리 그림을 그려놓고 그 그림에 맞춰서 움직이는 게 아닌, 정말로 현장에서 싸움이 벌어지는 걸 찍어낸 듯한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물론 와이어도 도입됐고 롱테이크형 액션도 도입된지 오래긴 하지만 그, 강박 있잖습니까. '한국적'이라는 강박. 그런 강박을 조금이라도 채워줄 수 있는 건 역시나 [초록물고기]에서 송강호가 보여줬던 그런 엉성하면서도 할 수 있는 거 다 해보려고 발버둥치는 듯한 느낌의 소박한 생활형 난투극입니다. 이것을 특징적인 의미에서 지극히 싸움에 비효율적인 이들이 효율적 끝장을 추구하는 '한국적 잔혹함'이라고도 부를 수 있겠습니다(물론 효율적인 싸움이란 '아예 처음부터 안 싸우는 것'입니다).

 

그런 엉겨붙는 쌈질에선 스트레이트가 별 소용이 없습니다. 유도나 음양술로 훈련된 조이기의 대가가 아니라면 그 상황에서 다리를 쓰는 건 에로영화 연출의 모범답안만 보여줄 것입니다. 온몸이 근육으로 채워진 스프링 주먹의 달인이 아닌 한엔 어퍼컷도 힘든 얘깁니다. 여기서 룰을 지배하는 것은 곡선의 법칙, 즉 머리를 이용해 박치기를 가하거나 어설프게나마 훅으로 우회하여 상대방 옆구리를 찍는 것이 효과적이지요. 진창을 뒹굴면서 벌어지는 일견 별 효과가 없을 것 같은 허공을 휘둘러지는 반쯤은 몸부림에 가깝고 반쯤은 훅에 가까운 이러한 주먹질은 영화 속뿐만 아니라 우리의 생활 속에서도 익숙한 모습이기도 합니다. 즉, '진짜' 싸움이란 대개 그렇게 이뤄지기 마련인 법이죠.

 

[구타유발자들]을 두고 무슨 생뚱맞게 액션 얘기냐 하겠지만 이게 꽤 관련이 있습니다. 바로 원신연 감독이 전직 무술감독이기 때문입니다. 단숨에 말하자면 [구타유발자들]은 저 '한국적 액션'이 불러 일으키는 가혹한 인상들을 통째로 구워낸 듯한 두시간 짜리 능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영화는 임권택의 영화들이나 [살인의 추억] 같은 것들과는 다른 측면에서 아주 찐하게 한국적 정서라고나 할까요. 경운기가 오가고 오래된 나이트클럽 벽지가 버스정류장에 붙어 있는 교외 시골이라는 공간성, 앞서 얘기한 한국적 액션이 전해주는 엉겨붙고 우회하며 진부하지만 확실하게 결과를 추구하려 하는 우직한 잔혹함, 그리고 삼겹살구이가 만들어내는 비뚤어진 공동체 의식 등등의 아우라가 지향하는 바는 명백한 지역성입니다. 또한 '한국적'이란 분류에서 거론될 그 어떤 선례들보다 신경질적이고 폭력에 대한 심적 집중이 돋보이면서도 영화는 그 안에 구수한 정서가 곁들여진 해학을 담아냅니다(무의식적으로라도 이 영화를 마당극이라고 칭한 사람들은 그런 점에서 정확했습니다). 진창에서의 아귀다툼에서 저 빙 돌아가지만 성공률 높게 꽂힐 수밖에 없는 훅이 무겁게, 그리고 차근차근 상대의 체력을 빼는 것처럼 [구타유발자들]은 밀집된 정서와 태도들의 짧은 충돌을 보여주지만 궁극적으론 순간이 아닌 긴 흐름을 지향합니다. 그러니 이 두시간 동안의 악몽에서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잠재된, 혹은 이미 결정된 확신범이라는 것은 당연할 수밖에 없습니다.

 

깔끔했고, 소문처럼 잔인하진 않았습니다. 되려 영화는 바로 당장 무슨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긴장 속에서도 폭력의 순간들을 습관적으로 억제하고 유예합니다. 귀신보다 무서운 건 사람이라는 말처럼(혹은 카피처럼) 정말로 잔인한 건 보이는 폭력이 아니라 그 뒤에 숨어 모든 것을 만들어내는 응어리 진 정서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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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생각해보면 배우로서의 조니뎁에게서 정말로 강렬하게 매력을 느꼈던 것은 [라스베가스에서의 공포와 혐오]와 [캐리비안의 해적] 둘밖에 없었다. 사실 그 전에는 감수성의 이질감을 느꼈다고나 할까. 무언가 어중간한 느낌이었다. 그가 고르는 출연영화들의 근저에 흐르는 묘한 취향을 빼놓는다면 왜 캐스팅되는 건지도 납득이 잘 안 갔고. 얼굴은 중년이 되니까 멋있어졌지 그 전에는 그리 감흥이 없었고.... 그렇다면 [캐리비안의 해적]은 어떻게 봤느냐 하면.

보다가 잤다. 암튼 조니뎁 없었으면 망했을 영화.

오션스 시리즈보단 조금 낫더라.

 

일전에 잠깐 언급한 적이 있는, 이 작가가 [크로노스 헤이즈]를 때려치게 만든 요인이 된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의 발현인 로리형 흡혈귀물. 모든 요소들이 어디선가 본 것 같다는 점에서, 창작력의 부족과 작가의 노골적인 취향에의 집착을 동시에 확인할 수 있다. 저 표지의 금욕적인 포즈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예상은 했지만 예상한 것 이상으로 시원시원한 맛은 찾아볼 수 없으며 그렇다고 해서 [양의 노래] 만치로 텁텁하면서도 고아한 매력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통렬한 한 방이 아쉬운 좀 부족한 느낌.

일과 목적, 노력과 인정받음에 대한 이야기. 1권에 비해서보다도 안노 모요코 특유의 유머는 거의 사라졌지만 그만큼 시리어스해진 이야기를 끌어가는 솜씨가 상당히 능숙하며 그를 통해 보다 어른스러워진 삶의 풍경들을 잡아내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

다시 읽으니 이 작가가 이 소설을 쉽게 써냈다고 한 말이 늦게서야 이해가 갔다. 물론 그 '쉽다' 라는 표현이 지극히 상대적인 것이라는 점에서 범인들에겐 여전한 좌절감을 안겨주지만.

현대물에는 일정한, 혹은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있다는 걸 느끼게 만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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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본드 2006-08-18 2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캐리비안' 이외에서의 그의 매력이란 좀처럼 가늠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최근작들 中 '해적2'는 전작보다 유치해진 모습, '네버랜드를 찾아봐'는 보던 도중에 꺼버렸고 '초콜렛'은 받아놓고 감히 보지 못하며 '그의 초콜렛 공장'또한 접근하기 힘드니 그는 애매한 애증의 느낌만 남는 녀석?이신게 분명하다는 ㅋ

hallonin 2006-08-20 2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작보다 유치하다면 그래도 졸리운 건 덜할지도 모르겠군요..
 



이제는 시사회 전용 극장이 되버린 드림시네마에 가서 보고 왔습니다.

원래 마이클 만이 이 프로젝트를 만든다고 할 때부터 그리 애정이 가지 않았던데다 공개 후 쏟아지는 악평들의 홍수 덕에 더욱 기대치를 낮춘 채로 보게 됐습니다. 그런데 하도 재미가 없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기 때문인지 정작 영화는 그리 재미없게 본 것만은 아니게 된, 그런 경험을 또 하고 말았습니다(물론 그런 삘링의 이유엔 소요비용이 1800원이었다는 상대적으로 저렴했던 경제상황도 포함됩니다).

친구중 한 명이 마이클 만의 영화는 마치 사막 같은 느낌이 난다고 표현했는데, 그 말대로 [마이애미 바이스], 일단 무지막지하게 삭막합니다. 그런데 여기서의 삭막함은 좀 더 강렬해서 우리의 주인공들이 인간마초가 아니라 인형마초처럼 보일 정도입니다. 저는 그 유난스레 돋보이는 삭막함의 원인이 전작들에서 버디물적인 관계들을 통해 보여줬던 최소한의 감정선마저 이 영화에선 증발됐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마이클 만의 영화를 얘기할 때면 사람들이 마초마초 노래를 부르면서 그 엄하고 절도 있으며 살벌삭막한 관계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만 그런 감각을 더욱 부채질하고 마침내 비극적인 감정마저 불러 일으키는 요소는 그의 영화속 등장인물들이 실은 서로 통하고 있는 상태, 미묘한 교류를 나누는 풍부한 정서로 충만한 사이라는 것 때문이었지요. 그런데 [마이애미 바이스]에서 저 흑백형사는 영화 시작 전에 대판 싸우기라도 했는지 별로 교감 같은 거엔 서로 관심이 없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습니다. 뭐 이것저것 이유를 댈 수 있겠습니다만 마이클 만적으로 생각을 하자면 저 둘은 일단 적이 아니라 동지니까요. 전통적으로 그의 영화에선 적들끼리만이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곤 했습니다. 덕분에 제이미 폭스와 콜린 파렐의 관계는 서류상 용병 파트너쉽 이상이 아닌 인상을 줄 정도입니다.

정작 [마이애미 바이스]는 저 투톱을 내버려두고 마이클 만의 영화에선 드물게도 콜린파렐과 공리라는 남녀 관계에게 그 교류의 축이자 영화의 핵을 담당하게 하고 있습니다. 적과 동업자, 속고 속이며 먹든지 먹히든지의 관계. 동시에 사랑하는 관계. 미묘합니다. 전작들에서의 그 흐름의 풀빵 버전입니다. 적어도 얘기만 들어선 그렇군요. 그러나 마이클 만의 영화가 전통적으로 여자들이 들러리였다는 걸 기억해보자면 이 영화에서도 그 부분에 관해선 딱히 기대할 건 없다는 걸 눈치챌 수 있을 겁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이 영화에서 감정선은 내내 표류하고 있다는 기분이 듭니다.

그렇다보니 그의 전작들에서 제기되던 풍부한 긴장감과 비극성, 느와르 알레고리의 하드보일드한 정서가 잘 느껴지질 않고.... 차라리 그렇다면 철저하게 다큐멘터리적인 접근이 더 나았을 것 같은데, 분명히 영화 자체는 영화라는 자각이 있어서.... 결과적으로 어중간한 기분이 들더군요.

전체적으론 영화가 되다 말다 되다 말다 하는 기조를 꾸준히 유지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히트]나 [콜래트럴]에서 보여줬던 흐름의 유기성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자잘하게 들끓고 있는 인상이라고나 할까요. 앞서 얘기한 것처럼 마이클 만 영화의 마초 정서를 뒷받침할 기반, 즉 삭막한 정서 속에서 배어나오는 그 특유의 진한 감수성이 빠져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마이클 만의 광팬들마저도 이 영화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할지 곤란할 듯 싶습니다.

도시풍경의 대가답게 디지털로 잡아낸 마이애미의 풍광은 그의 전작들 만큼이나 확실하게 멋집니다. 그럼에도 남는 의문은 "도대체 제작비 1억 달러는 어따 갖다 버린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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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wup 2006-08-13 0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세는 악평이었나요? 제가 간혹 본 평들은 '역시 마이클 만'이던데요. 최소한의 감정선마저 사라진 마초 영화라니. 뭐 나름 궁금하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론 <콜래트럴>이 꽤 맘에 들었습니다.

hallonin 2006-08-13 0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 건너에선 영 시큰둥한데 우리나라 비평쪽은 대체로 후한 편이더군요. 역시 마이클 만이긴 한데 훨씬 잘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마이클 만의 신도들이 대부분은 수도자와도 같은 자세로 그의 영화에 임한다는 걸 생각하자면 이 영화 또한 마이클 만의 컬트작 목록에 올라갈지도 모르겠습니다.

배가본드 2006-08-23 15: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통 형사콤비의 진한 우정보다는 확실히 콜린파렐과 공리 제이미폭스와 그의 애인 나오미 헤리스의 사랑에 초점이 맞춰진것으로 보이더군요. 확실히 영상미는 넘쳐났지만 후반에는 지루했던감도 없지는 않았습니다.
 

정확하게 잡아낸 지역적 공간성을 바탕으로 장르의 법칙을 끈질기게 따라가는 잘 빠진 영화. 류승범과 황정민이 워낙 자신들의 역할을 집요하게 치뤄내는 바람에 다른 연기자들이 밀리는 느낌.

영화 속에서 흡사 연두부 같은 최강희는 신기의 칼솜씨를 지닌 연쇄살인마 역할에 어울리듯 안 어울리듯 미묘한 느낌. 그보다는 여지없이 동감을 불러 일으키는 박용우의 찌질한 연기에 영화의 리듬이 매끈하게 돌아가는 인상. 찌를 곳 팍팍 찔러주는 잘 짜인 시나리오에 비해 HD의 가능성은 좀 더 진행해봐야 할 듯.

CG 구경하려고 봤음.

작가적 의지를 존중한다는 의미를 조금 접어두자면 이것은 다소 만용이 아니었나 싶다. 그러나 원없이 펼쳐보이지 않으면 어디로 옮겨 갈 수 있겠는가.

아트북을 지향한 만화책. [위대한 캣츠비]를 예고하는 보다 덜 매끄러운 전초전.

여기서 제목인 워킹맨이란 워커홀릭을 위한 일종의 주문이다. 매 장마다 다른 남자들이 등장하지만 그들의 역할은 저 특촬물 포즈 여주인공의 워킹라이프 자가진단을 위한 거울 이상이 아니다(연애? 주인공은 남친과 동거하고 있지만 3개월째 섹스 부재 상태다.). 연애가 빠진 자리를 채우는 인생의 의미에 대한 안노 모요코 나름의 쿨한 직장인 만세 열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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