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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생각해보면 배우로서의 조니뎁에게서 정말로 강렬하게 매력을 느꼈던 것은 [라스베가스에서의 공포와 혐오]와 [캐리비안의 해적] 둘밖에 없었다. 사실 그 전에는 감수성의 이질감을 느꼈다고나 할까. 무언가 어중간한 느낌이었다. 그가 고르는 출연영화들의 근저에 흐르는 묘한 취향을 빼놓는다면 왜 캐스팅되는 건지도 납득이 잘 안 갔고. 얼굴은 중년이 되니까 멋있어졌지 그 전에는 그리 감흥이 없었고.... 그렇다면 [캐리비안의 해적]은 어떻게 봤느냐 하면.

보다가 잤다. 암튼 조니뎁 없었으면 망했을 영화.

오션스 시리즈보단 조금 낫더라.
일전에 잠깐 언급한 적이 있는, 이 작가가 [크로노스 헤이즈]를 때려치게 만든 요인이 된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의 발현인 로리형 흡혈귀물. 모든 요소들이 어디선가 본 것 같다는 점에서, 창작력의 부족과 작가의 노골적인 취향에의 집착을 동시에 확인할 수 있다. 저 표지의 금욕적인 포즈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예상은 했지만 예상한 것 이상으로 시원시원한 맛은 찾아볼 수 없으며 그렇다고 해서 [양의 노래] 만치로 텁텁하면서도 고아한 매력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통렬한 한 방이 아쉬운 좀 부족한 느낌.

일과 목적, 노력과 인정받음에 대한 이야기. 1권에 비해서보다도 안노 모요코 특유의 유머는 거의 사라졌지만 그만큼 시리어스해진 이야기를 끌어가는 솜씨가 상당히 능숙하며 그를 통해 보다 어른스러워진 삶의 풍경들을 잡아내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

다시 읽으니 이 작가가 이 소설을 쉽게 써냈다고 한 말이 늦게서야 이해가 갔다. 물론 그 '쉽다' 라는 표현이 지극히 상대적인 것이라는 점에서 범인들에겐 여전한 좌절감을 안겨주지만.

현대물에는 일정한, 혹은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있다는 걸 느끼게 만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