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적 액션이란 무엇일까요? 홍콩의 와이어 액션이나 각이 딱딱 맞는 90년대 중반까지의 헐리웃 액션과 차별되는 우리나라 액션 디자인의 특징은 막무가내 엉겨붙기형 리얼 액션이 아닐까 싶습니다. 미리 그림을 그려놓고 그 그림에 맞춰서 움직이는 게 아닌, 정말로 현장에서 싸움이 벌어지는 걸 찍어낸 듯한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물론 와이어도 도입됐고 롱테이크형 액션도 도입된지 오래긴 하지만 그, 강박 있잖습니까. '한국적'이라는 강박. 그런 강박을 조금이라도 채워줄 수 있는 건 역시나 [초록물고기]에서 송강호가 보여줬던 그런 엉성하면서도 할 수 있는 거 다 해보려고 발버둥치는 듯한 느낌의 소박한 생활형 난투극입니다. 이것을 특징적인 의미에서 지극히 싸움에 비효율적인 이들이 효율적 끝장을 추구하는 '한국적 잔혹함'이라고도 부를 수 있겠습니다(물론 효율적인 싸움이란 '아예 처음부터 안 싸우는 것'입니다).
그런 엉겨붙는 쌈질에선 스트레이트가 별 소용이 없습니다. 유도나 음양술로 훈련된 조이기의 대가가 아니라면 그 상황에서 다리를 쓰는 건 에로영화 연출의 모범답안만 보여줄 것입니다. 온몸이 근육으로 채워진 스프링 주먹의 달인이 아닌 한엔 어퍼컷도 힘든 얘깁니다. 여기서 룰을 지배하는 것은 곡선의 법칙, 즉 머리를 이용해 박치기를 가하거나 어설프게나마 훅으로 우회하여 상대방 옆구리를 찍는 것이 효과적이지요. 진창을 뒹굴면서 벌어지는 일견 별 효과가 없을 것 같은 허공을 휘둘러지는 반쯤은 몸부림에 가깝고 반쯤은 훅에 가까운 이러한 주먹질은 영화 속뿐만 아니라 우리의 생활 속에서도 익숙한 모습이기도 합니다. 즉, '진짜' 싸움이란 대개 그렇게 이뤄지기 마련인 법이죠.
[구타유발자들]을 두고 무슨 생뚱맞게 액션 얘기냐 하겠지만 이게 꽤 관련이 있습니다. 바로 원신연 감독이 전직 무술감독이기 때문입니다. 단숨에 말하자면 [구타유발자들]은 저 '한국적 액션'이 불러 일으키는 가혹한 인상들을 통째로 구워낸 듯한 두시간 짜리 능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영화는 임권택의 영화들이나 [살인의 추억] 같은 것들과는 다른 측면에서 아주 찐하게 한국적 정서라고나 할까요. 경운기가 오가고 오래된 나이트클럽 벽지가 버스정류장에 붙어 있는 교외 시골이라는 공간성, 앞서 얘기한 한국적 액션이 전해주는 엉겨붙고 우회하며 진부하지만 확실하게 결과를 추구하려 하는 우직한 잔혹함, 그리고 삼겹살구이가 만들어내는 비뚤어진 공동체 의식 등등의 아우라가 지향하는 바는 명백한 지역성입니다. 또한 '한국적'이란 분류에서 거론될 그 어떤 선례들보다 신경질적이고 폭력에 대한 심적 집중이 돋보이면서도 영화는 그 안에 구수한 정서가 곁들여진 해학을 담아냅니다(무의식적으로라도 이 영화를 마당극이라고 칭한 사람들은 그런 점에서 정확했습니다). 진창에서의 아귀다툼에서 저 빙 돌아가지만 성공률 높게 꽂힐 수밖에 없는 훅이 무겁게, 그리고 차근차근 상대의 체력을 빼는 것처럼 [구타유발자들]은 밀집된 정서와 태도들의 짧은 충돌을 보여주지만 궁극적으론 순간이 아닌 긴 흐름을 지향합니다. 그러니 이 두시간 동안의 악몽에서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잠재된, 혹은 이미 결정된 확신범이라는 것은 당연할 수밖에 없습니다.
깔끔했고, 소문처럼 잔인하진 않았습니다. 되려 영화는 바로 당장 무슨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긴장 속에서도 폭력의 순간들을 습관적으로 억제하고 유예합니다. 귀신보다 무서운 건 사람이라는 말처럼(혹은 카피처럼) 정말로 잔인한 건 보이는 폭력이 아니라 그 뒤에 숨어 모든 것을 만들어내는 응어리 진 정서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