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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의 목적(2disc)
한재림 감독, 이대연 외 출연 / CJ 엔터테인먼트 / 2005년 8월
평점 :
품절
1. 관계
무릇 대부분의 연애를 다룬 영화들이 숙명적으로 지니게 되는 속성이 그렇듯이 이 영화 또한 관계에 대한 탐구의 일환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영화가 단순하게 연애의 목적이란 제목이 함유하는 질문에 정확히 무엇이다라는 결론이 내려지도록 촛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 아닌, 치유와 화해의 과정을 다루고 있다는 것 또한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바일 것이다. 그런데 이 과정이 좀 묘하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연애의 목적]은 홍의 정신병력 치료기랄까.
우리가 그간 봐왔던 연애영화들을 기억해보자. 대부분의 영화들은 사회다수인 남성적 판타지에 그 촛점을 맞추어 공주님을 습득한 그지왕자, 그 둘은 (아마도) 영원히 오래오래 사랑을 나눴습니다, 로 끝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 둘이 이혼을 하건 사별을 하건 중국에서 주식투자로 때돈 번 아내 몰래 남편이 정부를 들이건 일단 영화는 그 아름다운 커플이 온갖 고난을 겪고 결국 표피적인 사랑을 쟁취하는데 성공한 지점에서 끝나는 것이 영화적 미덕이라고 생각하는 영화들이다. 실제로 이제 백년이 좀 넘어간 영화의 역사 속에서 대부분의 연애물들이 이런 구조에 기대고 있다는 것을 부정하진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와 반대편에 선 영화들이 있다. 어차피 인생 존나 쿨하게 사는 게 손해 안 보고 사는 거다, 해서 쿨한 여자와 쿨한 남자가 만나서 진하게 사랑을 나누고 서로 잘 놀고 잘 빠굴치는데 결국 나중에 헤어질락말락할 때 알고보니 요게 사랑이었다.... 90년대 초반 이후의 영화들에서 이런 공식을 찾아보는 것은 어렵지가 않다. 별외로 연애대왕 허진호의 영화들은 어떠한가. 소멸되어가는 것에 대한 아련한 매혹이 담긴 그의 영화들에서 남녀의 정치성에 대한 적극적인 모색을 발견하기 힘들다. 적어도 그의 영화들 속 캐릭터들은 고전적이며 전개는 상투적이었다. 우리가 허진호의 영화를 새롭게 느낄 수 있었던 건 그의 관조적 시선 덕이었을 것이다.
꽤 노골적이었던 예고편과 카피 등으로 미리 관객을 달궈놓은 [연애의 목적]의 시작은 누구나 느끼겠지만 앞서 말한 라인 중 쿨한 인생의 쿨한 사랑 공식에 맞춰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섹스에 대한 맹렬한 의지를 가지고 있는 유림의 작업에 의해 점점 허물어져 가는 홍. 다짜고짜 섹스하자고 하는 남자와 그를 받아치는 50만원을 내라는(솔직히 50만원은 너무 비싸....) 당당한 여자를 보여주는 이 영화는 쿨한 남녀의 그렇고그런 청춘편력기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그리 단순하지가 않다. 섹스가 목적이었던 유림의 작업이 성공한 시점이 영화의 런닝타임이 한시간이 채 되지 않는 시점이라는 것을 생각해보자. 그 이후 영화의 반절은 유림은 홍과 같은 자리로 내려앉기 시작하기 과정이며 동시에 홍의 치료기로 전환되는 부분이다. 그럼 어째서 유림은 홍에게 매혹되는가.
이 영화의 정치성이 지향하는 젠더적 평등성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 이 부분은 불안과 불면을 달고 사는 홍에게 매혹된 유림의 동정심과 '사랑은 알 수 없어요'라는 인류보편적 반복형 레파토리에 의한 결과로 고려할 수밖에 없다는 점은 이성의 위대함에 확신을 가진 이들에겐 영화의 정치적 좌절로 보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우선 유림이란 캐릭터가 홍과는 달리 트라우마가 없는, 그래서 맹목적인 섹스에의 욕구에 완벽하게 적용될 수 있는 캐릭터라는 것을 알아둬야 한다. 그는 상식적으론 받아들이기 힘들 정도로 노골적으로 대시하며 그의 야비스러운 말투와 에로영화에서나 쓰일 법한 대사들은 선생이란 지위가 주는 아우라를 충분히 배반할 수 있을 정도로 천박하다. 그리고 이미 애인이 있고 그녀와 충분한 섹스를 나누는 사이임에도 그는 홍에게 매혹된다. 좋게 말하면 사랑은 이렇듯 어쩔 수 없이 벌어지는 사태라는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숫컷본능이랄 수 있는 이러한 유림의 태도에 의해 흘러가게되는 영화의 얼개는 이후 동정과 애정이 뒤죽박죽된 매혹에 빠진 유림의 갈팡질팡하는 정신세계의 도움이 크다. 영화 속에서 유림이 보여주는 태도는 너무 미숙해보여서 그가 이런 일에 별로 익숙하지 못한 인간이란 것을 확인해준다. 그는 홍에게 사회의 쓴맛에 대해 강의하면서 처음부터 어른인 척 하지만 에로소설과 김진명 소설만 디리따 본 어린아이와 별로 다르지 않다. 섹스신에서의 그의 행동선이 유난히 사춘기적 열정을 가진 격렬함을 가지고 있다는 걸 주목하자.
이 시점에서 홍은 어떤 정신상태일까. 영화 중후반부에 가서야 밝혀지는 그녀의 과거에 대한 진실은 영화 전반에 흐르는 그녀의 태도가 아직 낫지 않은 정신적 상처에 의해서 비롯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녀가 유림과 섹스를 하게되는 순간은 역시나 '사랑은 알 수 없는 것'이란 편법이 동원되는 순간이지만 우리가 알게된 유통기한이 끝나지 않은 그녀의 과거가 이 파트를 받아들이게 만든다. 진부하게 느껴지는 것까지 지워버리진 못했지만. 아무튼 그것은 유림에게 일단 한 수 접혀버렸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이며 이후 그녀의 상처를 다시금 후비게 되는 스위치가 된다. 그래서 그녀 또한 자신의 정신세계에 대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며 자기혐오에 빠져든다.
정신과의사들이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가장 먼저 행하는 것은 환자와 같은 위치에서 바라보려고 노력하는 일이다. 평등해지기. 그래서 홍의 정신적 외상을 치료하기 위해 영화는 홍에게 성추행고백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부여하고 섹스에 대한 열정만 넘치면서 인간사회의 정치성을 다 아는 듯한 허세만 부렸지 정작 쓴맛을 보지 못했던 유림을 생전 느껴보지 못했던 나락으로 떨어뜨리게 한다. 이것이 바로 '연애의 목적', 혹은 홍의 재활치료기의 마무리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다. 난데없이 날아든 상황에 유림은 골로 가게 되고 홍은 드디어 불면증에서 해방된다. 사회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망가진 유림의 눈은 드디어 홍의 눈과 같은 위치에 서게된다. 이 고난하고 폭력적인 과정이라니. 생각해보면 폭력을 처음 행사했던 것은 유림이었으니, 결국 유림과 홍의 미래가 마냥 장밋빛이라고 보장하는 성급한 실수는 하지 않더라도 이 과격한 치료행위의 마지막이 권선징악적 쾌감을 불러온다고 말하지 않을 순 없으리라. 남자와 여자라는 이항대립에 대한 끝없는 의문과 짝퉁 답변들이 넘치는 (혹은 계속 넘칠 것이 분명한)세상에서 이처럼 정치적으로 위트있는 아이러니의 묘미를 살린 연애물의 미덕은 쉽게 찾아보기 힘든 것이다.
2. 현실(남자의 입장)
한마디로, 유림처럼 작업하고 찌질거려서 여자를 눕히기란 확률적으로 대단히 어려운 일이라고 본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홍의 상처라는 변명이 계속 존재하고 있긴 하지만, 영화 자체적으로 유림의 천박함이 홍의 태도를 무너뜨리는 것과 관련하여 홍의 트라우마가 어떻게 작용했는지 유기적으론 잘 설득이 안되기에 보는 내내 영화가 되다만 경험을 말끔하게 잘 포장하려 애썼다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뭐, 환상에서라도 즐거움이 제공되지 않는다면 인간세상 살아가기에 얼마나 빡쎈 일일텐가. 그의 찌질거림에서 우리-남자-는 얼마나 뼈저린 정서적 공감을 얻을 수밖에 없는가. 하지만 결국 유림과 홍의 격렬한 섹스신을 보면서 그 환상이 채워짐에 따른 만족과 그에 대비되는 수많은 실패의 경험들을 되씹어보면서 씁쓸해하지 않을 수 없음이라. 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