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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생 5 - 완결
키오 시모쿠 / 대원씨아이(만화) / 2001년 3월
평점 :
품절
[현시연] 6권을 보면 결국 포기를 모르는 사나이가 되어버린 마다라메의 모습에서 제법 동정심 및 공감대를 느꼈을 사람도 있겠거니와, 이미 4권에서 안드로메다 저 편의 님을 향하게 된 그의 홍조띈 얼굴에서부터 [현시연]의 미래에 대해 이 작가의 전작을 떠올리며 불길함을 느꼈던 이들도 상당수였을 것이니 그 근거가 되는 문제의 전작이 바로 '연애지옥도' [5년생]인 것이라.
[5년생] 1권을 처음 봤을 때의 갑갑함을 잊기란 힘들다. 고등학교 시절, 그제 막 만화를 본격적으로 보기 시작한 나로선 가히 극리얼리즘이라고 불릴 법한 이 만화의 방향성에 조금 당황하고 있었음이 틀림없었다. 절제된 감정과 치밀한 일상 묘사. 멀어져가는 연인들의 심리에 대한 집요한 추적. 이 모든 것을 아직 사랑 한 번 제대로 겪어보지 못한 그때의 내가 완전하게 이해했다면 당연히 거짓말이고. 그러나 아무 것도 몰랐던 나로서도 마치 현실을 그대로 베껴낸 듯한 전개에 숨이 턱턱 막혔던 기억만은 생생하다.
그게, 세월은 흐르고 흘러 이제 나도 [5년생]의 등장인물들, 아키오, 요시노와 비슷한 나이가 됐다. 그리고 헌책방에서 이 [5년생]을 5권 전권으로 구해가지고 왔다. 난 나와 같은 고민과 일상을 다룬 이들의 이야기를 같은 나이대가 되서야 드디어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이것은 어찌 생각하면 행운이다. 치기에 씌여 읽어서 섣불리 내려졌을지도 모를 오독의 함정을 넘어갔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니. 뭐, 일본은 군복무 의무가 없으니까, 만화 속 인물들보단 나이는 넘어선 때이지만 결국 이들처럼 역할상으론 사회로 나가느냐 마느냐의 기로, 그리고 몇 차례의 쓰라린 기억들과 만화속 에피소드들이 오버랩되어 [5년생]의 리얼리티는 그 어느 때보다도 나에게 직접적으로 다가왔다.
5년생이라는 낙제생과 사회인의 괴리. 원격연애와 바로 옆에 잡히는 몸뚱이간의 괴리, 나의 마음과 너의 마음의 괴리, 남자와 여자의 괴리, 나와 나자신간의 괴리. 차이가 만들어내는 골에 대한 이야기를 살갑게 풀어내고 있는 [5년생]은 작화의 어색함을 감추는 기능을 함과 동시에 인물들의 정서를 그대로 끌어내는 페이스-바스트 클로즈업의 빈번한 사용과 주변적인 풍경에 대한 디테일함, 그리고 인물들의 생동감 넘치는 대화가 만들어내는 감정의 교류와 대립각에 그 미덕을 두고 있다. 다분히 정적이지만 정서적인 측면에서의 폭력적 흐름들로 인해 상처는 점점 벌어지고 인물들은 각자 겪어본 적이 없었던 감정과 경험에 대면하기 시작한다. 다르게 말하자면 뒤늦게, 혹은 다시 찾아온 열병, 첫사랑과도 같은 것이다.
이야기의 끝, 그 복잡스럽고 불편한 흐름들의 결말에서 이제 20대 중반이자 겪을 것도 다 겪었다 싶은 청춘들은 좀 더 능숙해지고 뻔뻔스러워진다. 그러나 나와 너는 끝까지 서로의 상처를 알지 못한다. 다만 짐작할 뿐이다. 그럼에도 한 번 부숴졌던 이들은, 보다 뻔뻔스러워져서 서로에게 두터운 장갑으로 둘러싸인 자신의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한다. 소위 어른이 된다는 것, 아키오의 5년째란 결국 유예의 연장이 아니던가. 그런가하면 일찌감치 유예를 끝냈다 생각했던 요시노는 자신이 통제 못하는 감정의 틈입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망가지는 시간을 보내야했다. 길고 험했던 통과의례를 끝마쳤지만 그들은 여전히 불안하다. 그래서 봄은 여전히 멀어만 보인다. 하지만 그들은 아주 오랜만에 서로에게 웃어보인다. 언제 또 찾아올지 모를 열병을 근심하며.